|
약 40여분의 동영상인데 필자가 비평하고자 하는 핵심 위주로만 말하려고 한다. 반복되는 어구는 반복해서 비평할 필요가 없고 또 이 자의 비성경적인 영, 혼, 몸 관념에 대해서도 따로 지적할 것이 있다.
서달석이는 이렇게 가르친다. 왜 시대별로 하나님이 구원의 방법을 바꾸느냐? 양심시대, 율법시대, 은혜시대로 나누는 것은 세대주의의 오류다라는 식이다. 이 점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하자면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시기를 기뻐하셨고 그렇게 하셨는데 서달석이가 생각하는 하나님의 "은혜"는 이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인이 거듭나는 그 은혜에 국한된 것이고 이 은혜복음과 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모르는 시대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모두 지옥에 보내실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들에게 적합한 구원의 방편들을 주셨다고 말하는 것이다.
즉, 서달석이는 구원의 방법은 모든 시대에 같아야 된다고 가르치면서 시대를 나누지 말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당연히 세대주의 입장에서는 서달석이에게 이런 반문을 던지게 된다. 너는 실질적으로 그 시대 사람들, 아담 당대나, 노아나 아브라함이나 모세, 구약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은혜를 받아서 어떻게 믿고 어떻게 구원을 받았다는 것인지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라, 대안도 제시 못하면서 틀렸다고 어깃장만 놓을 것 같으면 당신의 이론은 사이비라고 할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클라렌스 라킨이나 피터 럭크만 박사나 우리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이 할짓이 없어서, 심심해서 성경을 이 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갈치 토막내듯 토막내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거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은혜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너보다 훨씬 잘 알고 있다. 또 믿는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몰랐고 알 수도 없는 시대의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각 시대별로 은혜의 방편들을 주셨음을 당연히 믿는다. 기본적으로 너보다는 우리가 은혜에 대해서 더 절절히 믿고 있으니 남말 하지 말라는 것이다.
필자가 "양심시대", "율법시대"에 대해서 약간의 힌트를 드리는 참조 발언을 하겠는데 여러분이 아무 배경 지식없이 라킨의 세대적 진리를 턱하고 읽었다고 하면 이 사람은 왜 이렇게 자꾸 나누느냐, 너무 머리아프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사실 서달석이의 투정과 어리광도 그런 수준에서 나온 것인데 마귀가 악의적으로 조장시켜서 모독까지 시키는 것이다.
"양심시대"라는 것은 사람들이 전적으로 양심에 의해서, 양심적으로 살기만 하면 그냥 구원받는 시대라는 이야기냐?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겠다. 그 시대에 "기록된 성경 말씀"이 어디 있었습니까? 제사장이 있었습니까? 죄들을 용서받을 수 있는 합법적 근거가 마련되어 있었냐고 묻는 것이다. 그런 것이 없었다. 그 시대에는 사람들이 자기 양심으로 하나님을 찾을 수 있었고 실로 하나님께서는 멀리 계시지 않았다. 카인과 아벨은 하나님과 아주 가까이 있었다. 수시로 음성을 들었다. 그 이후 시대에는 그런 것이 점점 드물어지지만 말이다. 그 시대에 사람들이 양심을 통해서 하나님을 찾는 것과 지금 혼탁해진, 이미 변질된 사람들이 양심으로 하나님 부르는 것과 다르다는 것이다. 솔직한 말로 우리는 노아 이전 시대에 어떤 식으로 하나님을 경배했는지에 대해 자세히 아는 바가 없다. 그러나 욥기를 통해 추측해 보는 것은 그 시대에 율법이라는 것이 없었다고 해서 사람들이 마구 엉망진창으로 살아도 아무 견제 장치가 없었던 게 아니라 지금 시대보다 훨씬 강력했던 사람들의 양심이 그것을 밝히고 고발했었단 사실이다. 그리고 양심의 명령을 순종하면 그는 하나님께 순종하고 구원을 받았던 시대가 양심 시대이다.
자, 기본적으로 양심시대에도, 은혜시대에도, 율법시대에도 항상 기본 베이스로 깔려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은혜가 없이는 아무도 하나님 앞에 나올 수가 없다. 서달석이가 은혜에 대해서 오해한 점은 구원 문제에만 은혜를 국한시켜서 모든 시대들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무작스럽게 수평화시키려고 하는 무지함에서 나온 것이다. 노아 시대 사람들은 예수를 믿기만 하면 무조건적 은혜로 구원받고 무조건적 보장을 받아 하늘나라로 직행하는 그런 은혜를 받지 못했다. 족장 시대나 모세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그런 은혜는 사람들에게 보여진 적이 없다.
서달석이는 아니라고만 부정할 게 아니라 양심시대, 율법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개인 구원을 받았던 것인지 대안을 보여줘야 한다. 그때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흘려지지도 않았는데 무슨 피를 근거로 구원받았는지 말이다.
은혜시대는 2천년 뿐인데 하나님이 속이 좁은거냐? 그런 시대 같은 거 없다.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전부 은혜의 하나님이다. 이상, 달석이의 말을 옮겼다.
자, 은혜시대가 2천년 뿐인데 하나님이 속이 좁은 거냐라고 묻는 이 자의 주장에 대해서 대답하겠다. 필자는 이미 은혜는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있는 것이라고 대답했고 우리가 "은혜시대"라고 말하는 신약 역사는 교회의 역사라는 점을 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교회가 영원 전부터 존재했던 것이 아니다. 또 이 교회를 통해 은혜 복음이라는 것을 전파하는 이런 시대가 앞으로 영원히 가는 것도 아니다. 이 시대는 약 2천년, 성경의 시대로 보면 그 정도면 끝날 수 밖에 없는 제약된 기간이다.
우리가 은혜시대라고 하는 의미를 무식한 서달석이는 은혜시대에만 하나님의 은혜가 있고 다른 시대들에는 은혜가 전혀 없다는 식으로 오해한 모양이다. 그래서 율법시대에는 율법만 있고, 양심시대에는 양심만 있고, 그런 식이라는 얘기다. 이 정도면 배울 만큼 배운 학자로서 부끄럽지 않을까 한다. 세대적 진리를 제대로 한번 읽기만 했어도 이런 초보적인 오해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갈라디아서 3:19에서 볼때 율법은 나중에 더해진 것으로 약속의 씨가 올때까지다. 은혜에 더 추가된 거라는 소리다. 은혜가 은혜되려면 사람은 죄인인 것을 먼저 깨달아야 된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은혜로 죄인들과 관계하셨는데 먼저 죄인이 은혜를 받으려면 은혜 아니면 구원이 안된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
상기, 서달석이의 말이다.
서달석이는 바울 서신을 고장난 레디오처럼 반복하면서 은혜시대에 있는 바울이 과거를 돌아보며 율법시대를 당시와 비교해서 가르치는 구절들을 오히려 구약 자체에다 적용하려고 애쓰고 있다. 이 사람 서달석이는 바울이 이미 율법시대에서 벗어나서 은혜시대로 넘어온 사람이라는 것을 부러 망각한 것인가 착각한 것인가? 사도 바울은 지금 율법시대에 사람들이 어떻게 구원받았는지, 그 당시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의의 기준을 충족시키는지 같은 주제로 가르치는 게 아니라 그의 핵심 관심사는 이제 은혜시대로 넘어온 죄인들이 이 은혜 복음을 믿고 구원을 받도록 하는 데 있다. 왜 자꾸 연목구어 식으로 딴소리를 하며 서신서 구절을 엉뚱한 데 적용하느냐는 것이다.
그리하여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우리의 지도교사가 되었으니 이는 우리를 믿음으로 의롭게 하려 함이라(갈 3:24).
여기서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이 계속 "율법"과 "우리"를 비교하는데 바울이 말씀하는 "우리"가 대체 누구냐고 물으면 달석씨는 대답 가능하겠는가? "우리"는 바울이나 바울 주변에 있는 유대교에서 크리스챤으로 회심한 유대인 출신 성도들이다. 이방인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원래 율법을 지켰던 그 유대인 출신 말이다. 서달석이 당신하고 해당사항이 없고 아니면 바울 당대가 아닌 이사야나 예레미야나 다윗이나 모세 때의 이스라엘 사람들 얘기하는 것도 아니다. 달석아, 달석아, 제발 정신차리거라. 이 구절을 어찌 구약시대 구원론에 맞춰서 적용하느냐?
아마존 식인종은 식인이 선의 기준이다. 중동에는 일부다처제를 하는데 그들에게는 그것이 선이다. 마찬가지로 양심이란 상대적 기준이다.
이상 달석씨 발언이다.
양심에는 절대적 기준이 없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식인행위를 하면서 아무 가책도 못 받는 경우가 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원래 그랬던 것이 아니라 죄인들의 양심이 점점 시대를 거쳐가며 더 화인맞고 더 퇴보되어 가면서 일어난 "퇴보 현상"이라 봐야 한다. 식인 행위가 정당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사실 정확히 말해 양심에 화인맞은 더러운 양심을 가진 자들이지 순수한 게 아니다. 인간의 양심을 상대화시켜서 말하는 이유는 서달석이 "양심시대"를 배격하기 위한 베이스 깔기로 말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양심에는 절대적 선과 악의 기준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율법 없는 이방인들이 백보좌 심판 때 판단받을 기준이 되는 만큼 정확하다.
딤후 1:9에서,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먼저 은혜를 주셨다. 따라서 은혜가 모든 시대를 총괄한다.
서달석 말이다.
또 반복하게 만드는데, 세상이 시작되기 이전에 우리(거듭난 신약시대 그리스도인)에게 은혜를 주셨다고 했다. 은혜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행위와 상관없이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으로 누군가에게 호의를 베푸셨다는 뜻이다. 구약시대에도 조건 없는 은혜를 하나님께 받은 사람이 있고, 이를테면 다윗, 신약시대에는 "구원 문제"에 관해서는 거듭난 사람 전체가 무조건적 은혜 하에 있다. 우리들 세대주의자들이 언제 구약시대에 은혜가 없다고 가르쳤나? 서달석이는 좀 똑바로 알고 가르치기 바란다.
이제 율법이 말하는 것은 무엇이나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인 줄 우리가 아노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이 하나님 앞에 죄가 있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는 그분 앞에 의롭게 될 육체가 없나니 이는 율법을 통해서는 죄의 깨달음이 있음이니라(롬 3:19,20).
율법 시대에 율법으로 구원받은 것 아니다. 은혜시대가 속좁게 2천년밖에 안되는게 아니다.
서달석이 말이다.
이런 표현, 은혜시대가 고작 2천년이면 하나님이 좁쌀 영감님이라는 게 맞을까? 고작 2천년이라는 이 자의 말 기준이 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인류역사가 왜 고작 6천년밖에 안되는지 그것은 왜 그냥 넘어가고 2천년 가지고 시비를 거는지 모르겠다. 당신이 2천살 만큼 살아보지 않은 이상에 짧다 길다 말하는 게 하루살이 수명 자랑하는 것 같아서 좀 민망하다.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계시고 자신의 형상대로 아담을 창조하셨을 때 그도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도록 지으셨다. 아담이 불순종했기 때문에 바로 따먹을 수 있는 생명나무 열매를 접어두고 먼 길을 돌고 돌아서 결국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인류 죄문제를 처리하고 교회를 몸으로 삼으시고 나머지 인류는 천년왕국 때 구속하시고 영원시대에 이르게 하시고, 이런 과정을 밟게 되었다. 이런 역사의 과정이 물론 영원 전에 하나님의 장중에 있었던 계획이요, 하나님은 아시고 계셨던 것이지만 사람이 하나님의 스케일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지구라는 행성은 왜 이렇게 쪼그맣게 창조하셨고 쓸데없이 은하계와 외부 우주는 왜 이렇게 큰가, 등 사람이 현재의 "시간과 공간"에 대해 품는 의문은 하나님이 해결해 주시기 전에는 끝도 없다. 서달석이는 성경을 좀 배우고 와서 "속좁은 하나님" 타령 하기 바란다. 이를테면 아래 구절 말이다.
모든 성도들과 함께 그 너비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가 얼마인가를 깨달을 수 있게 해주시며(엡 3:18)
사람은 육신과 영으로 되어 있다? 죽으면 육신은 흙으로 영은 하나님께 돌아간다.
서달석이 말이다.
하나님은 한 영이시니 그분께 경배드리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경배드려야만 하리라.”고 하시니라(요 4:24).
그때에 흙은 예전에 있던 대로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셨던 하나님께로 돌아가리라(전 12:7).
누군가 서달석이에게 이 무지를 좀 깨닫게 해주기 바란다. 서달석이는 자기가 "영과 혼과 몸"을 엄정하게 삼분법 하는 킹제임스 성경을 한글로 번역했다고 자처해 왔다. 실제로 서달석의 성경을 온라인판으로 볼때 영과 혼과 몸은 제대로 나눠져 있다. 서달석이는 직접 성경 번역한 것인가, 아니면 조수를 시켰나 누가 번역했나? 킹제임스 성경을 번역했다는 이 작자가 영, 혼, 몸도 나눌 줄 몰라서 영혼이 어떻고 사람의 영이 구원받고 하늘나라로 가고, 이딴 소리를 하고 있는가?
필자가 간략히 전도서 12:7에 대한 부연 설명을 하도록 하겠다.
우리가 세대적 진리나 럭크만 박사의 소책자 등을 통해 이 진리를 접하게 될때 처음에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혼이 우리 자신이다라는 말이 선뜻 다가오고, 영은 별개라는 말이 확 와닿던가, 아리송하던가 말이다. 필자도 솔직히 아리송했다. 삼분법이 정확하다는 것은 믿어졌지만 혼이 어떻고 영은 어떻고 하는 말이 솔직히 체감은 안 되었다. 그런데 성경이 이렇게 분명히 "영은 그것을 주셨던 하나님께로 돌아가리라"로 되어 있는 이 계시의 말씀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도서 기자, 솔로몬 왕은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죽으면 이렇다라고 이야기하는 중이다. 특별히 구원받은 사람만 영이 하늘로 올라간다는 얘기가 아니다. 영은 어찌되었던 무조건적으로 하나님께서 회수해 가신다. 그렇게 되어 있다. 반면 혼은 구원 여부에 따라 하늘나라와 지옥으로 갈린다. 서달석이에게는 이 진리가 무척이나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킹제임스 성경을 번역할 때는, 그 자가 직접 한 게 맞다면, 기계적으로 혼이나 영이라는 단어는 뜻에 맞춰서 번역했을지라도 영이 뭔지, 혼이 뭔지 당췌 이해를 못하고 있는 것이다. 참 가련하다 아니할 수 없다. 성경씩이나 번역해 놓고 영,혼,몸도 모른다.
그것은 현재를 위한 모형이었으니, 그에 따라 예물들과 희생제물들을 드려도 양심에 관해서는 섬긴 자를 온전케 할 수 없었도다(히 9:9).
황소와 염소의 피와 암송아지의 재도 불결한 자들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함으로써 거룩하게 한다면,(히 9:13)
우리가 믿음의 온전한 확신 가운데서 진실한 마음으로 다가가자. 이는 우리의 마음은 피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깨끗해졌고 우리의 몸은 순수한 물로 씻겨졌기 때문이라(히 10:22).
서달석이가 강해 후반부에서 히브리서로 집중 공략하기 때문에 필요구절을 묶음으로 올려놓았다.
양심과 율법에 대해서 장황한 설명을 거치면서 율법으로는 양심이 온전케 되지 않음을 설명하는 서달석, 그런데 필자가 끝까지 듣지 못한 대답은 율법시대 살았던 유대인들은 어떻게 구원받았고 어떻게 지옥에 안 갔는지 그걸 못들었다.
아마, 서달석이도 무척이나 깝깝할 것이다. 언약신학을 강의하는 장로교 신학자들도 모르는 사실을 더 무식한 서달석은 어찌 알겠는가 말이다. 서달석이에게는 지하세계, 낙원, 지옥, 무저갱, 타타루스, 셋째 하늘 같은 진리도 별천지처럼 들리지 않을까 싶다. 구약시대 사람들은 왜 하늘로 직행할 수 없었고 낙원은 지옥 옆에 있었나, 서달석이에게는 무척 미스테리일 것이다. 앞서 보았지만 서달석이는 구약시대 사람들이 바로 하늘나라로 올라간 줄로 알고 있다. 전도서 12:7을 그렇게 독해했기 때문이다.
필자가 히브리서 구절들을 역시 간략하게 정리하고 넘어가겠다. 그리고 마무리짓겠다.
율법은 양심을 온전케 할수 없었다. 양심은 어디 속했는지 여러분 아는가? 서달석은 강해 중에 양심은 곧 영이고 영이 양심이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었을 때 필자는 서달석이 기초 신학이 전무한 자라는 느낌을 받았다. 개신교 신학자들도 대부분 양심은 사람의 혼적 영역에 귀속해서 설명하는 편이다. 물론 성경적으로 볼때도 사람의 양심은 혼적 분야에 속했지 영은 아니다. 다시 말해서 구약 율법이 사람의 양심을 정결케 하거나 온전케 못했던 것은 즉 혼의 구원이 불완전했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주 정죄받아서 지옥에 던져지는 게 아니라 "유보 상태"에 머무는 것인데 그곳이 지하세계 아브라함의 품, 즉 구약 낙원이다. 이 장소를 연옥과 혹시라도 혼동하지는 말라. 무식한 개신교 목사들 중에는 구약 낙원 이야기를 하면 연옥인 줄 알고 거부하는 사람도 보았다.
양심은 즉 혼적 영역이다. 히브리서 상기 구절들의 "양심"이라는 단어를 "혼"으로 대치해서 읽어보라. 충분히 이해가 갈 것이다. 혼의 구속이 완결되기 위해서는 주님 자신이 피흘리셔야만 했고 동물 제사로는 불가능했다.
히 9:13은 왜 인용했는가 하면 서달석이의 거짓말이 여기서 반론되기 때문이다. 서달석은 구약 제사는 죄를 깨닫게만 하는 것일 뿐 "전적으로 무효력"이라고 선언했다. 즉, 구약시대 사람들 자체한테도 동물 제사는 아무 쓸모가 없는 짐일 뿐이라는 것이다. 사실인가? 구약 제사의 효력이 어디까지 미치는지 우리는 이 구절에서 분명히 확인하게 된다.
구약 동물 제사는 "육체를 정결케 함으로써 거룩케 한다" "육체를"이라는 말을 밑줄치고 곰곰히 생각해 보라. 구약시대 죄인들은 거듭나지 못해서 육체와 혼이 한덩어리였다. 육체를 거룩하게 한다는 것은 혼도 같이 영향을 받아 거룩함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단지, 그 동물의 피라는 것은 영원하지 못하고 계속 반복 제사를 드려야만 하기 때문에 제사를 드린 그 당시에는 몸이 정결케 되고 혼도 잠시 정결케 되지만 조금 지나면 효력이 사라져서 다시 제사를 드려야 했던 것이다.
이 구절을 서달석이에게 주석해 보라고 하면 어떻게 버벅거릴지 상상만 해도 웃음이 나지 않는가? 그는 모른다. 하나도 모르는 것이다.
|
첫댓글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가짜목사(서달석)가 이 글을 읽으면 좋겠네요.
서달석은 언약주의자이네요.. 제 동무도 목사인데 구약의 구원에 관하여 서달석과 똑같이 말했었습니다.
저의 동무는 구약과 신약을 전혀 분별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구약인도 그리스도인이며 구약과 신약의 구원은 같다
"단지 동물의 피냐, 하나님의 피냐의 차이일뿐 어쨌든지 결국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았으니 구약이든
신약이든 전부 그리스도인이다"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정동수목사의 설교를 들어보니 그도 역시 "구약에서 구원받은 사람도 결국 십자가의 피로 치환되므로 구약인도 그리스도인이다"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저는 "구약인과 신약인이 다 같은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하여 전혀 동의하지 않습니다
제가 믿고 있는 바가 성경적으로 보아서 틀렸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