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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와 십일조를 논하시는 하나님
말라기 2장 17절-3장 15절
세상은 정의로워야 한다고 외치면서 정작 자신은 정의롭지 못하게 살아간다면, 그처럼 어불성설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정의를 요청하면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의로운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정의롭지 못한 삶은 충실한 종교생활로 대체되지나 만회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충실한 삶은 반드시 정의와 공의를 실현하는 삶으로 이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때가 이르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러 세상에 일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리 그의 길을 준비할 언약의 사자를 보내어 백성을 정결하게 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명령을 어긴 자들은 심판하실 것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죄악을 지적하시며, 죄에서 떠나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책망하시고 권고하십니다.
네 번째 경고 : 하나님의 정의를 의심하고 비방(2:17-3:5)
정의의 하나님께서는 어디 계시냐는 질문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언약의 사자를 보내시겠다고 대답하십니다. 그 언약의 사자가 하는 일은 심판입니다. 정의의 하나님을 기다리면서 악을 행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심판의 하나님을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분주한 종교생활로 정의 없는 삶을 가리려 말아야 합니다.
17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롭게 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롭혀 드렸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모든 악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좋게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하며 또 말하기를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함이니라 1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2그가 임하시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가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3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하게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공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바칠 것이라 4그 때에 유다와 예루살렘의 봉헌물이 옛날과 고대와 같이 나 여호와께 기쁨이 되려니와 5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점치는 자에게와 간음하는 자에게와 거짓 맹세하는 자에게와 품꾼의 삯에 대하여 억울하게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하게 하며 나를 경외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언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2:17-3:5)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해서 언제 여호와를 괴롭혔냐고 반문하면서, 하나님께서는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을 좋아하신다는 말도 안 되는 말로 하나님의 마음을 괴롭혔습니다. 본문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의 네 번째 논쟁입니다.
(1) 하나님의 경고(17a)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로 하나님의 정의를 불신하고 어지럽혔습니다. 하나님을 불신하고, 말씀을 곡해하고, 타인에게도 이 생각을 서슴지 않고 전하는 이스라엘의 행위가 하나님을 괴롭게 하고 피곤케 하였습니다.
(2) 백성들의 반응(17b)
이스라엘 백성은 한 발 더 나가서 ‘우리가 어떻게 괴롭혔나이까’라며 반문합니다. 도리어 행악자가 하나님의 눈에 선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기뻐하신다고 빈정거립니다. 그들은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계시냐?’고 떠듭니다.
(3) 하나님의 응답(1-5)
하나님께서는 이 패역함에 대해 심판주로서 직접 예고 없이 임하실 것이라고 응수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오시기 전에 사자를 보내어 그 길을 준비하게 하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늘 하나님의 사자들을 부지런히 보내셔서 이스라엘이 돌아오게 하셨습니다(신명기 17:15-19; 역대하 36:15; 예레미야 7:26; 미가 6:4).
특히 이사야 40:3의 광야에 와외치는 자의 소리로서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처럼, 이 사자는 하나님께서 오시는 길에서 장애물을 없애고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4:5에서 이 사자는 엘리야로 예고되며, 예수님은 그가 세례 요한이라고 하셨습니다(마태복음 11:10, 14). 하나님께서 이 사자를 보낸 후, ‘주’이자 ‘언약의 사자’가 갑자기 성전에 임하실 것입니다. 이 ‘언약의 사자’는 앞에 나온 사자와 동일인이 아닙니다. 이 사자는 하나님과 같이 이스라엘의 주인(1:6)이자, 성전의 주인이며(3:1), 이스라엘의 즐거워하는 대상(3:1)이자,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은 자입니다.
본문의 문맥과 신약의 맥락(요한복음 2:19-22[성전]; 갈라디아서 3:15-18; 히브리서 12:14[언약])에서 볼 때, 언약의 사자는 메시아, 그리스도입니다. 언약의 사자의 역할은 제련공과 표백하는 자로서 백성들을 정결케 하는 것입니다. 그를 견디거나 그 앞에 당당히 설 자는 없습니다(2). 언약의 사자의 오심이나 불과 표백제의 연단을 통해 백성이 다 죽는다는 뜻이 아니라, 용광로의 불이 광석에서 불순물을 다 제거하여 순전한 금과 은을 만들어내고 표백제가 얼룩을 제거하여 깨끗이 하듯, 그가 하나님의 백성을 변화시킬 것이라는 뜻입니다.
특히 ‘레위 자손’(3)을 먼저 정결케 하여, 그들이 공의의 제물을 바칠 수 있게 하실 것입니다. 이는 제사장과 레위 자손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버리고 자신과 백성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했기에(2:1-9), 이들이 백성보다 먼저 성결을 회복하여 관계를 재개할 때 자신들은 물론이고 백성을 하나님께로 인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레위인과 백성이 모두 성결하게 되어 악행(1:7-8, 13-14)을 버리고 규례에 따라 예배하며 예불을 드릴 때, 말씀에 따라 예배드렸던 과거처럼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습니다(4).
이 연단의 과정 후에 하나님께서 직접 세상을 심판하러 임하실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책망과 경고를 하셨고, 그의 사자와 언약의 사자를 통해 정결케 되어 돌아올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기회를 거부한 자들에게는 지체 없이 그 죄악을 법정에서 증언하고 판결하실 것입니다. 그들은 우상을 섬기고 점을 치며 간음을 행하여 가정을 무너뜨렸습니다. 이웃에게 거짓 맹세하고 마땅히 줘야 할 삯을 주지 않고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를 착취하는 불의를 저질러 사회질서를 어지럽혔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관계를 기초로 이웃과 올바른 관계를 유지할 맘이 없는 자들의 모습입니다.
다섯 번째 경고 : 십일조와 헌물에 대한 책망과 권고(3:6-12)
악인이 대접 받는 세상을 보면서 하나님의 공의가 어디 있느냐고 불평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불의한 세상 때문에 신음하는 이들을 향해 나아가겠습니다. 백성은 여호와께서 행악하는 자를 선히 여기시고 그들을 기뻐하셨다는 거짓말로 여호와를 되롭게 하였습니다.
6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 7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조상들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는도다 8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9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10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11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12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6-12)
하나님께서는 앞서 1:6-14에서 희생 제물에 대한 제사장과 백성의 태도와 행위를 지적하셨습니다. 이제 3:6-12에서는 십일조와 헌물에 대한 잘못을 책망(6-9)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권고(10-12)하십니다. 이 단락은 다섯 번째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변치 않으시며 야곱의 자손들이 소멸되지 않을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1:2의 하나님의 야곱에 대한 언약적 사랑에 변함이 없었고, 지금도 미래에도 번함이 없음을 암시합니다. 야곱의 후손들은 조상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규례에서 돌아섰고, ‘내게로 돌아오라 그러면 나도 너희에게 돌아가리라’(7절)는 권고를 받지 않았습니다. 이 권고는 스가랴 1:3의 인용이며, 하나님이 귀환자들(주전 520년)에게 그들의 조상들에 대해 하셨던 말씀입니다. 포로 전에도 악한 길과 행실에서 돌아오라고 권고했으나(예레미야 18:11; 31:18)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포로로 끌려갔고, 그들은 바벨론에 가서야 자기들이 마땅한 심판을 받았음을 고백하고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이런 스가랴 시대부터 적어도 70-80년이 지났는데도 이스라엘은 조상들과 똑같은 권고를 받고도 ‘우리가 무슨 방법으로 돌아가리이까?’(7)라며 완악하고 어리석은 반응을 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십일조와 헌물을 약탈한 것을 반역의 증거로 들었으나,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어떻게 약탈했느냐고 반문합니다(8). 희생 제물은 죄와 관련된 제물이며, 십일조와 헌물은 의무로 드려야 할 헌물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희생 제물과 십일조를 열심히 바쳤고, 다른 제사와 절기들을 빼먹지 않고 열심히 지켰습니다. 예물이나 절기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형식적, 위선적, 습관적으로 행했을 뿐 식생활에서는 하나님을 찾지 않고 공의를 행치 않았습니다(아모스 4:4-5; 5:4-8, 22-23; 미가 6:6-8; 예레미야 7:21-22. 에스겔 20:39). 그런데 현재 이스라엘은 십일조나 헌물마저 바치지 않았으며, 일부를 드리거나 상한 것을 드리면서도 할 바를 다했다고 대답합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이례적인 제안을 하시면서 다시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 온전한 십일조를 드린 후 그가 하늘의 창문들을 열고 이스라엘에게 복이 쌓을 곳이 없도록 쏟아 부으시는지 아니 하시는지 시험을 해보라는 제안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시험하면 안 되는데(신명기 6:16), 자기를 시험하라는 파격적인 제안을 하신 것입니다. 십일조를 하면 해충을 금하고 열매가 떨어지거나 맺지 못하는 일이 없을 것이고, 이스라엘은 ‘즐거움의 땅’이 될 것이며, 이방인들로부터 행복하다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12).
여섯 번째 경고 : 하나님을 거슬러 완악한 말을 하는 백성(3:13-16)
땅에 있는 하잘것없는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일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유다 백성과 제사장들은 하나님께 마땅히 바쳐야 할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지 않음으로써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고 있었고, 그런 악행이 상습화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돌아와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돌려드리는 자들에게는 재앙이 그치고 기쁨의 땅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13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 하는도다 14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서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15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번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 함이라 16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12-16)
하나님의 마지막(여섯 번째) 경고인 3:13-4:3에서는 의인과 악인이 누구이며(3:13-18), 마지막 때이 여호와의 날에 이들에게 임할 운명(4:1-3)이 무엇인지를 말합니다.
(1) 하나님의 경고(13a)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그를 거슬러 완악한 말을 서슴지 않았음을 지적하십니다(13). ‘완악하게 말했다’는 것은 하나님을 제압하듯 주제넘게 말했다는 뜻입니다.
(2) 이스라엘의 반응(13b)
이스라엘은 ‘우리가 하나님을 거슬러서 무슨 말을 했나이까?’라고 끝까지 반박합니다. 이스라엘은 어떤 말이 하나님을 거스르는 말인지를 분별하지 못하거나 알면서도 시치미를 떼고 있을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응답(14-16)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헛되다. 악인이 행복한 자들이다’(14-15)라는 말이 완악하다고 일러주십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섬기느라 명령을 지키고 슬프게 다니는 행동이 다 쓸데없다고 치부했습니다(14). ‘슬프게 행하는 것’은 상복을 입고 허리를 구부린 채 슬프고 어두운 표정으로 걷는 모습으로(시편 35:14) 겸손과 회개를 뜻합니다. 또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교만한 행악자를 행복자로 부르며(15), 그런 자들이 강성해졌고, 그들이 하나님을 시험하고도 심판을 피했다고 떠들어댔습니다(15). 이스라엘은 악을 행하는 자가 다 선하고 하나님이 그들을 즐거워하신다고 착각하고 있었습니다(2:17). 3:10-12의 십일조의 예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사는 자가 그의 즐거움이 되고 모든 열방으로부터 행복자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리석게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신뢰하는 것이 진정한 행복(시편 1:2; 2:12)임을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모세가 죽기 전에 말했듯 이스라엘은 만왕의 왕인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은 행복한 백성(신명기 33:29)인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왕과 주인으로 삼은 것이 행복이며 특권인지를 깨닫지도 못하고 그걸 누리지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십일조가 복을 불러오는 것은 아닙니다. 십일조는 은혜에 대한 화답이며, 사회의 약자를 돋보기 위한 세금입니다. 공평과 정의에 참여하는 중요한 방식입니다. 십일조는 소유의 진한 주인이 누군지를 환기시켜 개인적인 탐욕과 야망을 조절하는 길로서 여전히 그 정신이 유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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