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철 - 하늘 나라 청지기 - 6. 김제교회 인도자로서 1 선생님께서 전 축복가정에게 임지를 배정해 주셨는데 나의 임지는 전북 김제라고 했다. 퇴원 후 쇠약해져 힘은 들었지만 한시라도 지체할 수가 없었다. 선생님은 무척 염려를 해주셨다. 퇴원 3일 후 통영에 들려 정든 식구들과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이제 가면 언제 오나, 기약 없는 슬픈 이별, 나 간다고 서러워 마라, 때가 오면 다시 오리”라는 이별의 노래를 불렀다.
2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식구들이 흔드는 손길을 보며 떠났다. 어린 것을 4년이라는 기간 동안 돌보아 주셨음을 감사했다. “어린 식구들 변치 말게 하여 주시고 더욱 사랑으로 지켜 주시어 크게 쓸 재목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멀어져 가는 식구들의 모습을 보며 눈물로 기도했다.
3 저녁 늦게야 김제 청하면에 도착했다. 장영창 선생과 한양례 권사님과 몇 분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저녁 환영 파티는 옥수수 튀밥이었다. 그러나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흐뭇했다. 내 얼굴을 본 식구들은 “송장을 치르게 되나 보다” 하고 걱정도 되고 겁이 났다고 했다.
4 대수술을 받은 지 며칠 되지 않아 몰골이 보기 딱했던 모양이다. 나는 그런 것도 모르고 도착 3일째 되는 날부터 교역 내 구석구석 식구들을 찾아다니며 김제 복귀를 위하여 전심전력을 다했다. 한 번 두 번 만나게 되니 식구들과도 정들게 되고, 하는 일마다 하늘의 역사로 잘 되어 갔다.
5 몽시로써 순회 올 것을 아는 식구가 생겼으며, 찾아가면 반겨주는 식구들이 늘어만 갔다. 인도자와 식구가 하나 되어 열심히 하니 하늘은 복을 주셨다. 한국에서 제일 넓은 평야에 3개이던 교회가 8개로 늘어났다. 6 교구 본부에서의 집회 때 고작 100~200명 식구가 모여도 지역마다 이런 수가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늘 생각하던 꿈이 이루어졌다. 봄 가을 지역 통합 예배 때는 100~150명의 식구들이 거뜬히 모였다. 하나님을 중심하고 사정과 뜻이 맞으니 하늘은 역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7 남의 집 일을 하면서 생활하시던 한양례 권사님은 인도자 부부가 약하다고 작은 밭을 팔아 염소를 사서 대접하면서 모심의 생활을 했다. 지금은 기성 가정 축복을 받으시고 세 자녀가 1800가정과 6000가정에 축복을 받아 남부럽지 않은 가사를 꾸리게 되었다니 정말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8 교역 본부를 김제읍으로 옮겨 새로운 개척 생활이 시작되었다. 선생님이 축복하신 공기총 판매는 예상외로 잘 되었다. 그러나 겨울에 연탄 한 장으로 간신히 냉기만을 면하는 살림을 꾸려 갔다. 공적인 물건은 더욱 아끼며 어느 하나 허비할세라 살림해 준 아기 엄마가 고맙게 느껴졌다. 9 첫 아기인 혜주가 나오지 않는 젖을 빨며 보채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반찬 없이 보리밥 두 끼로 하루를 보내니 젖이 잘 나올 리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사와 사랑 가운데 아기도 엄마도 건강한 모습을 갖게 되니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10 지금도 이상헌 선생님은 나만 보면 “봉철씨는 기적을 먹고 산 사람이다”라고 말씀하신다. 맹장 수술만 하여도 6개월이나 1년의 요양이 필요하다는데 정말 미련하기도 했다. 하나님께서 돌보아 주신 것이다.
11 김제에서의 4년도 열심히 했다. 교역장이 하는 일은 거절하지 않고 잘 따라 주었다. 공기총 10정의 대금을 여름에 선불하라는 본부의 지시를 받고 어느 교역보다 먼저 내자고 결의하였다. 어린 학생에게 이르기까지 헌금하고 모자라는 금액은 차용해서 바쳤다. 전북 교구에서 제일 먼저 김제에서 냈고 전국에서는 전북 교구가 일등으로 냈다. 12 본부에서는 시상으로 공기총 한 정씩 주셔서 처음으로 총을 판 돈으로 양복을 해 입었다. 전북 교구에서 “대열차 작전”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전북 곳곳을 누비며 부흥회와 반공 강의를 하였다. 13 진안 교역 내 개척 교회에서 부흥회를 하도록 예정되어 찾아갔다. 어려운 생활에도 강사라 하여 구하기 힘든 반찬을 장만했다. 나는 농담 삼아 “눈먼 고기라 이 산골까지 들어왔구나” 했다. 이 말을 들은 여자 인도자는 생선이 상했다고 말하는 줄 알고 부엌에 나가 울었다고 했다. 윗사람은 한 마디 말과 행동에도 조심해야 되겠다고 느꼈다. |
첫댓글 감사드립니다. 글에서 정말 그때의 발걸음 숨결들이 느껴지는 듯 싶으며, 심지어 비록 오해로서 우셨던 진안 개척교회 여자 인도자 식구님의 그 설움의 흐느낌마저 들려오는 것 같고, 그에 따라 새롭게 결심을 하시는 김봉철 선생님의 결의도 느껴져오는 것 같습니다.
정말 생생한 증언의 글들 깊이 감사드리며 읽고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