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문화사(22)-양양(襄陽)
강원특별자치도 동북쪽에 자리한 양양군은 동으로는 바다를 마주하고, 북으로는 고성군과 맞닿아 있으며, 남으로는 강릉과 경계를 이루고, 서쪽으로는 인제군과 접하고 있는 곳이면서 백두대간을 품고 있는 지역이다. 근래에 속초가 분리되기 전까지는 이곳까지도 양양군에 속해 있었다. 험준한 산악지역이 많은 데다 신라 시대부터 불교 성지로 부각 되면서 민족 문화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지역으로 자리매김했다. 고대에는 동예(東濊)의 땅이었다가 고구려를 거쳐 신라의 영토가 되었던 양양 지역을 일컫는 옛 땅이름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기록에 남아 있다.
조선 전기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는 양양의 고구려 시대 땅이름을 익현(翼峴)이라고 하면서 이문(伊文)이라는 별칭이 있다고 했다. ‘익현’이 기록으로 남아 있는 최초의 이름이므로 양양의 땅이름이 가진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것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우선이라고 할 수 있다. ‘날개’라는 뜻을 기본으로 하는 ‘翼’은 ‘羽(깃 우)’와 ‘異(다를 이)’가 아래위로 결합한 형태인데, 뜻을 나타내는 글자와 소리를 담당하는 글자를 합쳐서 새로운 의미를 가지도록 한 형성자(形聲字)에 속하는 글자이다. 이 글자에서 ‘羽’는 의미 부분을 담당하고 ‘異’는 소리 부분을 담당한다.
날짐승의 몸에 붙어있는 것이면서 길고 풍성한 깃털의 모양을 본떠서 만든 글자로 상형자(象形字)에 속하는 ‘羽’는 새나 곤충 등이 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중요한 구실을 하는 것이므로 ‘난다’라는 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것은 날개뼈, 혹은 근육에 붙어있으면서 날개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翼’이 ‘날개’라는 뜻을 가지도록 하는 데에 핵심적인 구실을 한다.
‘異’는 기본적으로 소리(聲)를 담당하도록 구성되었지만 ‘翼’의 뜻이 확대되도록 하는 데에 일정한 기능을 한다. 이 글자는 ‘廾(받들 공)’과 ‘畀(줄 비)’가 아래위로 결합한 모양인데, 머리 위에 물건 같은 것을 올려놓다, 머리에 이다(戴-일 대) 등이 원래 뜻이다. ‘廾’은 높이다, 공경하다 등의 뜻을 기본으로 하며, ‘畀’는 일정한 형태를 가진 물건을 지칭하므로 ‘異’는 높이다, 공경하다 등의 뜻으로 확장될 가능성을 확보한 상태로 되어 ‘높은 것’, ‘특이한 것’ 등을 지칭하게 되었다. 이 글자가 날개를 지칭하는 ‘羽’와 결합하여 ‘翼’이 되어서는 ‘날개’라는 뜻에 머물지 않고 ‘밝다’, ‘높다’, ‘공경하다’, ‘완벽하다’ 등으로도 쓰이게 된다. ‘익현’이라는 고구려 지명에서는 ‘높다’, ‘밝다’라는 뜻으로 쓰였다.
‘峴(고개 현)’은 ‘山(뫼 산)’과 ‘見(보일 견)’이 합쳐진 형태인데, 왼쪽 것은 뜻을 담당하고 오른쪽 것은 소리를 담당하는 방식이어서 형성자에 속한다. 이 글자는 ‘뫼’와 연관된 의미를 기본으로 하는데, 작으면서 가파른 구릉, 언덕, 산 등의 꼭대기를 지칭한다. 즉, 평지보다는 훨씬 높지만 길을 만들어서 사람이 넘어 다닐 수 있는 정도 크기의 산을 의미한다. 그런 상태의 지형을 나타내기 위해 글자 왼쪽에 ‘山’을 놓았다고 할 수 있다.
‘見’은 바깥에 있는 어떤 물질이나 상황이 바로 앞에 있어서 눈으로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가리킨다. 산으로 난 길을 따라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그 너머가 보이게 되기 때문에 ‘峴’의 오른쪽에 ‘見’을 놓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산의 양쪽에서 길을 따라 사람이 올라오면 그 꼭대기에서 서로 만나게 되므로 서로에게 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지칭하기도 한다. 고개를 가리키는 여러 지명에 이 글자가 많이 쓰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伊文’은 별칭이라고 했는데, 이것이 나타내고자 하는 뜻은 ‘익현’과 같다. 형성자(形聲字)에 속하는 ‘伊(저 이)’는 ‘人(사람 인)’과 ‘尹(다스릴 윤)’이 좌우로 결합한 형태이다. ‘人’은 두 발로 서 있는 인간의 옆모습을 본떠서 만든 것으로 ‘사람’이라는 뜻을 기본으로 한다. ‘尹’은 권력의 상징인 지팡이와 사람을 의미하는 ‘人’이 결합한 것으로 권력, 통치 등의 뜻을 기본으로 한다. 그러므로 ‘伊’는 높은, 우뚝한, 우두머리 등의 뜻을 가진다. ‘文’은 가슴에 아름다운 문신(紋章)을 한 사람이 땅 위에 우뚝 서 있는 것을 본떠서 만든 상형자(象形字)로 ‘아름답다’, ‘밝다’, ‘높다’ 등의 뜻을 가진다. 후대로 가면서 ‘문장’, ‘글’, ‘채색’, ‘아름답다’, ‘밝다’, ‘화려하다’ 등으로 그 뜻이 확대되었다. 그러므로 ‘이문’은 ‘높고 밝은 곳’이라는 뜻이 되어 ‘익현’과 같은 의미가 된다.
이상의 논의를 바탕으로 할 때, ‘익현’은 ‘높고 밝은 고을’이라는 뜻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신라 경덕왕 때(725년)에는 ‘翼嶺’으로 바뀌는데, ‘峴’ 대신 ‘嶺’이 쓰였다. ‘山’과 ‘領(거느릴 령)’이 아래위로 결합한 형태인 ‘嶺’은 ‘고개’라는 뜻으로 널리 쓰이지만 ‘뫼(山)의 목’이라는 의미가 기본이다. ‘목(項)’은 머리와 몸을 이어주는 다리(橋)와 같은 구실을 하므로 통로, 도로 등의 뜻도 가지고 있다. ‘嶺’에서는 글자의 아래에 있는 ‘領’이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한다. 원래는 발음을 담당하지만 ‘목’, 혹은 ‘통로’라는 뜻을 가지면서 확장성을 담보하기 때문이다. 이 글자는 ‘令(하여금 령)’과 頁(목덜미 혈)이 좌우로 결합한 형태인데, 아래와 위를 이어준다는 뜻으로 ‘令’이 쓰이면서 ‘목’과 연결되어 길목, 도로 등의 의미를 지닌다. 다시 ‘山’과 결합하여 ‘嶺’으로 되면서 ‘뫼의 목’, ‘뫼에 난 길’ 등을 지칭한다. 그러므로 ‘익령’은 ‘익현’과 같은 뜻이다.
고려시대에는 ‘襄州’로 했다가 조선 태종 때에는 ‘양양’으로 고쳤는데, 지금도 이것을 법정 지명으로 쓰고 있다. ‘襄(높을 양)’은 뜻을 담당하는 ‘衣(옷 의)’와 소리를 담당하는 ‘𤕦(다스릴 영)’이 아래위로 결합한 것으로 형성자에 속한다. 여기에서 ‘衣’는 사람이 입는 옷이 아니라 ‘땅의 껍질’이라는 뜻이다. 또한 ‘𤕦’은 거칠거나 혼란스러운 상태에 있는 것을 가지런히 하여 다스리거나 통제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襄’은 딱딱하고 굳어진 땅의 껍질을 벗겨 부드럽게 함으로써 작물을 심을 수 있는 농토로 만드는 것을 지칭한다. 땅을 갈 때 파헤쳐져서 쌓여 있는 흙은 다른 곳보다 두드러져서 높으므로 ‘높다(高)’, ‘오르다(昻)’, ‘좋다(善)’ 등의 뜻으로도 확장되었다. 그러므로 ‘襄州’는 ‘높고 좋은 땅의 고을’이 되어 ‘翼峴’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襄’은 ‘壤(좋은 땅 양)’의 원래 글자이기도 한데, 물이 많고 밝은 빛을 내는 비옥한 토양을 의미한다. 이런 뜻을 가지는 글자에 ‘陽(볕 양)’이 붙어서 만들어진 것이 지금의 땅이름인 ‘襄陽’이다. 여기에서 ‘陽’은 ‘강의 북쪽, 산의 남쪽’이라는 뜻으로 ‘햇볕이 잘 드는 높고 밝은 공간’을 지칭한다. 지명으로 쓰일 때는 늘 이런 의미라고 보면 된다. 그러므로 ‘襄陽’은 ‘높고 물이 좋은 곳이면서 밝고 보드라우며 따뜻한 땅의 고을’이란 의미가 된다.
우리 선조들이 옛날부터 만들어서 썼던 땅이름들은 모두 해당 지역의 공간이 지닌 지형적 특성, 그 지역이 가지고 있는 특수한 성질, 통치상이거나 생활상의 필요 등을 바탕으로 해서 지어졌다. 오랜 전통과 역사를 담고 있는 이런 땅이름들이 가진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기만 해도 민족의 역사, 해당 지역의 생활 문화, 당시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삶의 의식(意識) 등을 중심으로 하는 문화적 특성을 제대로 짚어낼 수가 있다. 하나의 땅이름이 가진 뜻을 올바르게 파악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우리 모두 인지하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함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 들어오자 이런 점들은 깡그리 무시하고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글자(漢字)의 뜻만으로 풀이하려는 경향이 성행하면서 땅이름에 담긴 뜻과 문화적 의미를 본의 아니게 왜곡하는 일이 자주 벌어지고 있다. 양양을 ‘해 오름의 고장’이라고 하는 것도 선조들이 깊이 있게 성찰하고 관찰하여 만들었던 우리 땅이름의 참뜻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사례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강원도 양양군 소리를 들으면 봄, 가을에 산불이 먼저 생각납니다.
@손종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