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코스: 가평역 – 신천역
경기 둘레길 20코스를 마치니 12시35분이다. 예정대로 21코스를 걸어갈 수 있는 시간이 되어 20코스에 이어 21코스를 걷는다. 처음 산에 다니기 시작하였을 때에는 산에서 내려와 아스팔트를 만나면 다시 산에 오르기 싫었고 도보 여행을 할 때는 한 코스를 끝나면 다른 코스를 이어서 걷지 않았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걸어갈 수 있는 시간이 되면 무조건 걸어가게 되었다. 걷기의 진일보일까?
새롭게 건설된 가평역 광장에서 21코스의 종착지 산천 역으로 향한다. 굴다리를 지나 달전교에 이르러 좌측으로 방향을 전환하여 달전천의 둑길을 걸어간다. 천에는 물이 맑은 고장 가평군답게 왜가리가 날고 있다.
자전거 동호인에게 널리 알려진 북한강 자전거길이자 경기 둘레길 21코스의 도보 여행가의 전용도로이다. 걷는 길과 자전거길이 구분되어 서로의 가는 길을 걸어가게 되어 자연을 벗으로 삼아 편안하게 걸어갈 수 있는 길이다.
오늘은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이고 또 어제 내린 눈으로 길이 미끄러운 탓인지 자전거 동호인은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길을 걷는 사람이 주인공이 되어 자연이 주는 온갖 혜택을 다 누리며 걸어간다.
하색 1교를 건너 달전천과 작별하고 산악지대를 쉼 없이 내달리던 기관 열차가 되어 걸어간다. 공교롭게도 이 길이 경춘선 폐철로 위에 개설하여 우리의 걸음을 더욱 진지하고 참되게 만들어 주었다.
기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느꼈던 단상이 좋아 어려서는 기차여행이 좋았고 성인이 되어서는 두 발로 걸어가며 보고 느끼는 것이 좋아 도보 여행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오늘은 내가 기차가 되어 나를 이끌고 도보 여행을 하는 것이다.
나의 두 다리는 나를 목적지인 상천역까지 안전하게 모셔다드릴 수가 있을까? 오늘 용추계곡 버스 정류장에서 걸어와 가평역까지 8.3km를 걸어왔고 또다시 9km를 걸어가야 하는데 편안하게 인도하여 줄까 ?
기차는 천천히 가는 것보다는 빨리 가는 데서 더욱 쾌감을 느꼈다면 오늘 보행자 전용도로에서 마음껏 신나게 걸어 최단시간에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속물다운 생각이 은근히 발동한다.
앞, 뒤는 직선의 곧은 길, 좌, 우는 밭이 아니면 산뿐이고 사람이 사는 마을이 형성되어 있는 곳은 보이지 않고 간혹 산기슭에 자리한 한, 두 채의 집만을 볼 수 있는 어쩌면 혼자는 외로워 걸어가기 싫은 길일 수도 있었다.
밋밋한 길이라고 할까? 아니면 과거 기차만이 다니던 길을 사람이 두 발로 걸어갈 수 있는 신비한 길을 걸어가는 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배고프다고 빨리 밥을 먹으면 체하듯이 직선의 길은 빨리 걸어가면 오래 걸어가지 못하고 낙오하기 쉽다.
오로지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여야만 편안하고 안전하게 목적지에 이를 수 있는 것임을 잘 알면서도 날씨가 다소 추워 추위를 이겨내고자 빠른 걸음으로 잠시 진행도 하는 만용을 부릴 수 있었던 것은 보행자 전용도로이기 때문이었다.
천천히, 빨리를 제멋대로 하며 몸 상태의 반응을 점검도 해 보며 제멋에 겨워 걸어갈 때 超我의 奉事란 표지석이 세워져 있었다. 그렇다. 직선의 길에서는 사색 또는 명상을 하는 길이다.
느리고. 빨리의 반복적인 육체적인 동작은 체력을 다소 증진해주는 효과가 있지만 걷기의 목적은 아니다. 항시 ”육체적인 산행이 아니라 정신적인 산행이어야 한다“는 우리 걷기 모임의 대부이신 조 회장님의 말씀처럼 사색의 걷기를 해야 한다.
나를 초월하는 봉사의 표지석에서 성서의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씀을 떠 올리며 진정한 봉사란 나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불가의 無住相布施를 그려도 본다.
갈수록 산속으로 깊이깊이 파고드는 것일까? 길바닥에는 눈이 전혀 녹지 않고 그대로 깔렸다. 눈 탓인지 자전거 동호인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 외로운? 산간지대를 경기 둘레길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걸어갈 수가 있었으랴!
외로움이 고마움과 기쁨으로 바뀔 때 둥근 구멍이 보였다. 아마도 경춘선 터널로 여겨졌다. 발걸음이 가벼워지며 빛 고개 3교를 지나 다다르니 예상대로 경춘선 폐터널이었다. 이제 기차가 아닌 사람이 산속을 뚫고 지나간다면 이는 인간이 아닌 수십 년간 도를 연마한 도사가 되어 산속을 뚫고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터널은 예상보다 길었다. 오죽하면 터널을 통과하면서 한기를 느끼고 여름에 오면 시원하여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터널을 통과하였더니 입구의 벽에 색현터널 423m라고 표기하여 놓았다.
항시 좋은 소식을 전해 주어 사람을 즐겁게 한다는 의미에서 인지 ‘좋은 소식’이란 애칭을 지닌 안진호 씨는 21코스는 밋밋하여 인상될 만한 것이 없었는데 터널을 통과한 것은 두고두고 남겠다고 터널을 통과한 소감을 피력한다.
터널을 통과하여 목적지인 상천역이 가까워졌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후미와 보조를 맞추기 위해 천천히 진행하라는 당부이다. 혼자 온 걷기는 아닌데 매번 선두, 후미를 나누어 걷게 되어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번에는 보조를 맞추어야지 하면서도 실제 걷다 보면 또다시 선두, 후미를 나누는 반복적인 악습은 언제 시정될 것인가? 자전거 길을 걸으면서 자전거 동호인과 반가운 인사조차 제대로 나누지 못하고 마침내 중감천교에서 자전거길과 헤어지고 상천역에 이르렀다. 21코스는 실제로 걸은 사람만이 그 묘미를 느낄 수 있는 길이었다.
● 일 시 : 2022년 12월4일 일요일 맑음
● 동 행 : 박찬일 사장님, 김헌영 총무님. 빙고. 좋은 소식. 산 거북이
● 행선지
- 09시35분 : 용추계곡 버스 정류장
- 10시20분 : 연인산 탐방 안내소
- 12시25분 : 가평역
- 14시45분 : 상천역
● 총거리 및 소요시간
◆ 총거리 : 17.99km(20코스 : 9.3km. 21코스 ; 8.6km.)
◆ 소요시간 : 5시간10분(20코스 : 2시간50분. 21코스 : 2시간2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