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RCA1 RCA는 자동차뿐 아니라 세라믹&글라스, 아트&디자인 등의 학과 역시 갖추고 있다. 2 2007년 졸업 작품 전시회에 선보인 다니엘 카프카의 자동차 디자인.
생
각도 머리카락처럼 자란다. 물에 영양소를 섞어놓으면 흙 없이도 식물이 자라는 것처럼 머릿속에 창의적인 기운과 에너지를
‘풀어놓으면’ 창조적 아이디어는 매일매일 꾸준히 자란다. 디자인 학교는 그래서 중요하다. 강박적이라 할 만큼 다르게 보기,
다르게 상상하기를 계속해서 요구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배운 그 상상과 창의력의 힘으로 거리와 마을, 도시와 국가는 새롭게
변신한다. 물론 가끔씩 학교 교육을 일절 받지 않고도 천재적 디자인 능력을 펼쳐 보이는 이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디자이너는
좋은 학교, 명성 높은 학교에서 배운 것을 창의력의 자양분으로 삼는다. 한국은 지금 디자인 혁신 중이다. 서울 디자인
올림픽도 열었고 각종 공공건물을 디자인적으로 바꾸는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그 결과가 만족스럽지는 못하다. 첫술에 배부를
순 없지만 체계적이고 깊이 있는 고민과 국제적 감각 없이 서둘러 작업한 공간은 어쩔 수 없이 군데군데 어설픈 티가 난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김치호는 “비우는 것도 디자인이고, 아무것도 만들지 않는 것도 디자인이다. 국제적 감각과 심미안 없이
우리나라는 뭔가를 열심히 만들고, 세우고, 변형하는 것만이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한다. 어쩌면 우리는 뭔가
가시적 성과를 서둘러 보여주느라 정작 중요한 인재 양성에는 무관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여기 소개하는 4개의 디자인
학교는 모두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곳들이다. 그들의 수업 내용과 교육 방침을 보면 현실 감각을 갖춘 체계화된 상상력과
창의력이 훗날 한 도시와 국가에 얼마나 큰 거름이 될지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3 RCA에서 학생들이 디자인하고 제작한 작품은 수시로 대중에게 공개돼 평가를 받는다. 4 무려 17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RCA의 외관.
우리는 기술이 아닌 사고력을 가르친다 영국 왕립미술대학원
런던의 조용한 주택가에 위치한 영국 왕립미술대학원Royal College of Arts(이하 RCA)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디자인 학교 중 하나다. 사회에 진출한 졸업생이 명함에 ‘RCA’ 로고를 자랑스럽게 새길 만큼 인지도와 자부심이 대단하다.
RCA에서 비히클Vehicle 디자인학과를 수료하고 페라리 등 세계적 컨셉트 카를 디자인하는 이탈리아의
피닌파리나Pininfarina사에서 일하는 박찬휘 씨는 말한다. “RCA 네트워크는 그야말로 전 세계적이다. 1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동문 디너 행사를 열고, 학교와 관련한 새로운 소식을 이메일로 알려주는 등 동문 간의 교류가 활발하다. 영향력 있는
거물급 디자이너가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어 자연스럽게 후배를 끌어주는 역할도 한다. 유럽은 우리나라와 비교해 ‘학연’의 힘이
비교적 약하지만 RCA만큼은 예외다.” 영국 왕실의 애정도 두텁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남편인 필립 공은 매년 열리는 졸업
작품전에 수명의 의전관과 보좌관을 데리고 참가해 학생들의 작품을 직접 보고 설명도 듣는다. 학생들은 필립 공과 만나는 것을
대비해 고어古語 인사법을 따로 교육받는다. 학교가 설립된 때는 무려 112년 전인 18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37년 RCA의 전신인 ‘정부 디자인 학교’로 1837년에 출발했으니 그것까지 포함하면 무려 170년 동안 디자인 학교로
자리한 셈이다. RCA는 영국 유일의 디자인 대학원으로 이미 각종 산업체와 학교에서 기본을 닦은 인재들의 감각을 한 단계 더
높은 경지로 끌어올린다. 과는 총 21개. 애니메이션, 세라믹&글라스, 커뮤니케이션 아트&디자인, 큐레이팅
컨템퍼러리 아트, 패션, 금속공예, 산업디자인, 조각, 사진, 엔지니어링, 비히클 디자인 등 거의 모든 디자인 영역을 아우른다.
그중 가장 유명한 학과는 비히클 디자인. 최근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가 “자동차 디자이너 인명록의 절반 이상을
거뜬히 채울 수 있을 정도”라고 표현할 만큼 영향력이 대단하다. 재규어 수석 디자이너인 이언 칼럼, 포드 북미 디자인 담당
이사인 피터 호버리, 푸조의 디자인 총괄 디렉터 키스 라이더 등이 이곳 출신으로 우리나라에만도 약 40여 명의 졸업생이 활동하고
있다. 최근 RCA로부터 전 세계 예술인의 최고 영예로까지 평가받는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기아의 피터 슈라이어 디자인 부사장은
<럭셔리>와 인터뷰에서 “RCA에는 마술과 같은 무언가가 있다. 1979~1980년 이곳에서 공부를 했는데 그 당시의
시간과 경험은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부분 중 하나다. RCA야말로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예술계의 진정한 로열 컬리지다”라고
말했다.
RCA의 교육은 미래지향적이되 실현 가능한 것으로 집약된다. 꿈과 상상력을 실현시키는 방법을 교육한다고
보면 정확하다. 1980~1981년 RCA에서 수학해 국내 RCA 졸업생 1호가 된 박종서 국민대 교수는 이야기한다.
“RCA에서는 너무 모험적이거나 미래지향적인 것보다는 21세기에 현실 가능한 디자인을 가르친다. 그림을 잘 그리느냐 못
그리느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창조적인 사고력을 발휘해 어떻게 논리적으로 전개해나가느냐가 중요하다. 이를
위해 기업에서 실제 활동하는 디자이너나 전문가가 수시로 수업 과정에 참여한다. 벤츠, 포드, 재규어, BMW 등 세계 유수의
브랜드는 유리와 합성, 플라스틱 같은 재료를 지원하거나 이와 관련된 전문 강의를 제공함으로써 미래의 자동차 디자이너에게 상상력을
실현할 다양한 방법을 일러준다” 학과 간 교류나 공동 프로젝트도 활발하다. 다양한 시도와 실험으로 미처 알지 못했던 ‘길’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술이 아닌 사고력을 가르친다”는 원칙은 RCA의 모든 교수들이 공유하는 가치다. RCA의
졸업생 명단은 화려하다. 조각가 헨리 무어, 산업디자이너 한스 베그너, 전위예술가 트레이시 에민, 가수이자 프로듀서 브라이언
이노 등이 이 대단한 오라의 학교를 졸업했다. www.rca.ac.uk

 1 도무스 아카데미 학생들이 선보인 ‘The Power of Seating’의 광고 이미지. 일반인, 여왕, 슈퍼맨, ‘생각하는 사람’의 의자로 ‘앉는 것이 지닌 힘’을 표현했다. 2 패션의 도시 밀라노에 소재한 곳답게 패션학과의 명성도 높다. 3 손가락 장단에 맞춰 음원을 디지털화해 전혀 다른 음악을 창조하는 반지. 이미 상용화되어 팔리고 있다. 4 자동차학과의 실험실. 도무스 아카데미는 최근 아우디와 손잡고 자동차 디자인 과정을 신설했다.
교수 대부분이 현장에서 뛰는 프로다 이탈리아 도무스 아카데미
이탈리아의 패션 시티 밀라노가 자랑하는 또 하나의 디자인 브랜드다. 이곳은 무엇보다 화려한 교수진으로 유명하다. 세계 3대
산업디자이너인 카림 라시드와 론 아라드, 필립 스탁이 수시로 특강을 하며, 이탈리아가 자랑하는 세계적 디자이너 안드레아 브란치,
엔초 마리, 파비오 카발리니, 잔프랑코 페레 등도 학생들의 담당 프로젝트 교수로 수업에 참여했다. 최근에는 독특한 아이디어와
창의적 디자이너로 주목받는 프랭키 모렐로도 수업을 맡아 학생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는 디자이너를 대거
‘투입’하는 교육 방식은 도무스의 오랜 전통이다. 화석처럼 박제된 상상력과 창의력이 아닌 살아 숨쉬는 영감을 불어넣기 위해
아카데미는 상주하는 교수를 최소한으로 제한한다. 마리아 그라지아 마조키 총장은 “우리 학교에서 강의를 하는 교수 대부분이
현직에서 뛰는 프로다”라고 강조한다. 실제 한 학기에 강의를 하는 교수진의 수는 약 20~30명에 이른다. 도무스
아카데미는 영국 왕립미술대학원처럼 대학원 과정으로 운영된다. 12~14개월간 밀도 높은 교육과정을 거치는 학생들은 1년 동안 약
7~8개의 프로젝트를 소화하며 실전 감각을 익힌다. 수업은 철저하게 ‘창조적으로 사고할 것’을 요구한다. 특히 아카데미에서 가장
유명한 학과 중 하나인 인테리어 디자인의 경우 공간감과 물성은 물론이고 상상력을 갖추어야 좋은 디자인을 할 수 있으므로 구상
과제를 많이 내준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지구가 멸망했다. 가로 세로의 길이가 15m인 구 하나만 남아 있다. 그 안에
여성 두 명과 남성 한 명이 최후의 생존자로 남아있다. 이들을 위한 집을 디자인하라!” 학생들은 남성은 1명이고 여성은
2명이므로 자칫 남성이 여성들로부터 과중한 종족 번성의 압박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어 두 여성이 남성을 먼저 찾아갈 수
없도록 남성의 방을 교묘하게 숨기는 등(대신 남성은 언제라도 두 여성 중 한 명의 방을 찾아갈 수 있다) 온갖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사람의 동선을 면밀히 관찰하며 사는 이가 가장 편한 공간을 고민한다. 이러한 노력은 결국 창의적
결과물로 이어진다.
상상력 못지않게 현실 감각도 중요하게 교육한다. 특히 졸업 논문을 쓸 때는 상상력과 창의력이
가미된 실제 제품을 완벽하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도무스 아카데미를 졸업한 김치호 치호&파트너스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졸업 논문을 쓸 때 담당 교수는 기업 몇 개를 선정해 그들에게 필요한 제품을 만들도록 한다. 나는 자전거 안장이나 신발 깔창에
넣어 완충 역할을 하는 테크노 젤로 유명한 ‘로열 메디카’사를 파트너로 삼았다. 이 기업은 테크노 젤을 사용해 뭔가 다른 제품을
만들고 싶어 했고 그 바람에 신선한 해답을 제시하는 것이 나의 과제였다. 회사와 수차례 미팅과 아이디어 교환을 하면서 나는
‘마이구미’처럼 말랑말랑한 조명을 만들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고 이를 계기로 나는 밀라노에서 전시회까지 열 수 있었다. 졸업
논문이 끝나면 학교 측은 모든 졸업생에게 취업의 기회를 적극적으로 제공한다. 역량을 펼쳐 보이게 하기 위해서다. 도무스에서의
수업은 ‘즐거운 상상’에 바탕을 두지만 현실과도 많이 동떨어지지 않아 더욱 흥미롭다.” 도무스 아카데미는 액세서리,
비즈니스, 패션, 카&모빌러티, 건축 등 총 10여 개의 학과를 갖추었다. 올해 자동차 디자인 과정을 신설했는데 여기에는
아우디가 파트너로 참여했다. 35세에 제일모직 상무보대우로 파격 승진한 이정민 씨와 최우현 주얼리 디자인 연구소의 최우현 대표가
이곳 출신이다. www.domusacademy.it

 1, 3 무사시노 미술대학의 수업은 철저하고 전문적인 커리큘럼에 따라 진행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학생들은 수많은 색상과 종이 등을 비교ㆍ연구하며 최적의 조합을 찾아낸다. 2 직접 납땜을 하고 있는 여학생의 모습. 실무 능력은 무사시노 미술대학이 상상력만큼 강조하는 부분이다.
손이 아닌 머리가 상상해야 한다 일본 무사시노 미술대학
일본의 3대 미술대학으로 도쿄 예술대학, 타마 미술대학, 무사시노 미술대학을 꼽는데 그중에서도 무사시노 미술대학은 미래지향적이고
진보적인 학풍으로 유명하다. 이력서에 쓰인 ‘무사시노 미술대학 졸업’이란 문구는 현장에서 유명 교수가 손수 쓴 추천장처럼 든든한
역할을 한다. 유화학과, 조각학과, 공예공업디자인학과, 예술문화학과, 건축학과 등 총 12개 학과가 있는데 특히 시각디자인학과와
영상학과가 유명하다. 이들 과에서는 개개인의 창의력을 최우선으로 키운다. 무사시노 미술대학 그래픽디자인과를 졸업하고, 도쿄
와세다 대학 인근에서 ‘유학 관련 백화점’ 다이고Daigo를 운영하는 박태문 사장은 말한다. “처음 이곳에 입학 시험을 보러
왔다가 깜짝 놀란 기억이 난다. 한국에서는 입시 준비를 하며 정물이나 석고를 놓고 이를 최대한 똑같이 그리는 데생이나 보색
개념에 관해 열심히 공부했는데 물감을 들고 들어간 시험장의 교수가 ‘공기를 그려라’ 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생각지도 않았던
과제를 받았으니 그야말로 진땀을 흘렸다. 무사시노 미술대학은 학생의 상상력이 얼마나 풍부한가를 유심히 본다. 수업 과정에서 역시
상상력을 강조한다. 다른 미술대학이 손을 많이 쓰게 한다면 이곳은 머리를 많이 쓰게 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훈련은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큰 도움이 된다. 상상력은 손이 아닌 ‘머리’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해
학교는 굳이 미술과 관련이 없는 분야에서도 적극적으로 전문가를 초빙한다. 이를테면 도요타의 엔지니어가 자동차의 구조에 관해
강의하는 식이다. 이런 ‘기술’ 시간을 통해 학생들은 기존과는 전혀 다른 영감을 얻는다. 박태문 사장은 “학교가 상상력을
강조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1~2년만 지나면 그림 그리는 능력은 모두 비슷해진다. 결국 누구의 머리가 더 많이 상상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리는데 이를 학교 측은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라고 덧붙인다. 바늘처럼 섬세하고 면밀한 일본의 교육은 무사시노
미술대학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이들의 교육은 철저하고 전문적이다. 이를테면 디자인 전공자는 의무적으로 색채론을 들어야
하는데 이 수업은 자동판매기, 표지판, 좌판 등 일상에 ‘널린’ 수많은 제품 색상을 비교하고 바꿔봄으로써 최적의 색채 비율을
찾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그 시간은 장마처럼 길고 지루하지만 그렇듯 철저한 관찰을 통해 학생들은 색채 간의 ‘궁합’을
이해한다. 1929년 설립한 도쿄제국미술대학이 전신인 무사시노 미술대학은 그간 수많은 ‘스타’를 배출했다. 세계적 화가 나라
요시토모, 세계 미식가 협회 임원으로 활동할 만큼 미식에도 통달한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류, 소설 <도쿄 타워>로
유명한 작가 릴리 프랭키, 일본의 저명한 인테리어 디자이너 데라하라 요시히코, 유명 영화감독 이시이 카즈히토 등이 이곳
출신이다. www.musabi.ac.jp
 1 바젤 디자인 대학은 세계 최고의 타이포그래피 디자인학과로 유명하다.
이론에 통달해야 깊이 있는 창의력이 나온다 바젤 디자인 대학
영국 왕립미술대학원과 더불어 유럽 최고의 디자인 학교로 명성 높은 이곳은 타이포그래피 디자인으로 특히 유명하다. 학교의 운영
목표 역시 타이포그래피, 뉴 미디어, 이미지&기호 세 분야의 전문가를 양산하는 데 맞춰져 있다. 타이포그래피란 인쇄의
문자 배열을 뜻하는 것으로 타이포그래피 디자인이라고 하면 활자 서체의 선정에서부터 크기, 배열, 장식 등을 결정해 활자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일컫는다. 각종 카드와 카탈로그, 포스터, 캘린더 등에 쓰인 ‘글씨 디자인’을 생각하면 쉽다. 세계적
타이포그래피 디자이너로는 바젤 대학의 교수로도 재직 중인 볼프강 바인가르트가 있다. 국내 디자이너 중에는 박우혁 디자이너가 바젤
디자인 대학에서 타이포그래피를 전공했다. 각종 디자인과 로고에서 그의 디자인을 확인할 수 있는데 영화 <생활의
발견>, <시월애>, <파이란>, <오아시스>, <나쁜 남자> 등의 포스터
디자인이 대표적이다. 대학은 상상력 대신 이론 교육에 치중한다. 이론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않고는 결코 현실 가능한
상상이 나오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언뜻 낙서하듯 쓱쓱 스케치를 하며 아이디어를 얻는 것이 타이포그래피 디자인이라 생각하기
쉬우나 이 간결해 보이는 디자인은 그 자체로 수학이요, 과학이다. 텍스트가 이루는 ‘조직’의 특성과 느낌을 시각적 메시지로
전달하려면 비대칭의 원리, 대비의 원리, 여백의 원리 등을 알아야 한다. 글줄 배열, 활자의 ‘무게감’, 색과 사진, 줄, 표
등 글자와 섞여 디자인을 완성하는 요소에 관한 명확한 이해도 필수다. 또한 타이포그래피 디자인은 시대의 변화와 흐름에 따라
유기체처럼 수시로 변화한다. 좀 더 단순하고 기능적인 디자인이 환영받는 때가 있는가 하면 로코코 스타일의 의자처럼 ‘우아한’
디자인이 유행할 때도 있다. 깊이 있는 학문적 연구와 디자인 역사의 이해 없이는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타이포그래피
디자인인 셈이다.
 2 캠퍼스 전경. 아담한 크기지만 영국 왕립미술대학원과 더불어 유럽 최고의 디자인 학교로 명성이 높다.
바
젤 디자인 대학이 타이포그래피로 명성이 높은 것은 이미 1960년대 타이포그래피 부문에서 스위스 국제주의 양식(우리가 영자체로
많이 쓰는 헬베티카Helvetica체와 유니버스Univers체를 바로 이곳에서 만들었다)을 탄생시킨 ‘뼈대’와 무관하지 않다.
박우혁 디자이너는 “대학은 오랜 전통을 통해 확립한 커리큘럼으로 교육한다. 기초 교육은 매우 깊이 있게 진행되는데 이 과정에서
다진 이론적 이해는 훗날 각자의 독창적 디자인을 찾는 데 풍부한 밑거름이 된다. 바젤 디자인 대학은 디자인의 역사를 다룰 때
빠짐없이 등장하는 학교로 학생들은 졸업 후 유럽이나 미주 등지로 진출해 타이포그래피, 편집, 영상 등 그래픽디자인 전반을
다룬다”라고 말한다. 바젤 디자인 대학은 유럽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1460년 바젤 시민이 대성당에 처음으로 문을 연
것이 시초라고 전해진다. 세계적 철학자 니체는 25세의 젊은 나이에 이곳의 교수로 재직하기도 했다. 스칸디나비아 디자인,
재패니스 디자인에 비해 비교적 덜 알려진 스위스 디자인은 군더더기 없는 간결함이 특징인데 그 막후에는 바젤 디자인 대학이
거목처럼 버티고 있다. 앞서 강조해 말했지만 깊이 없이는 간결한 디자인이 결코 나올 수 없는데 그 깊이 있는 교육이 바로 이곳
바젤 디자인 대학의 ‘전매 특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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