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增補篇
주역에 가로되
“선을 쌓지 않으면 이름을 이룰 수 없고,
악을 쌓지 않으면 몸을 망치지 않을 수 있거늘,
소인은
자그마한 선은 유익함이 없다고 하여 하지 않고,
자그마한 악은 해로움이 없다 하여 버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악이 쌓여 가리지 못하고
죄가 커져 풀지 못한다.”
周易曰
주역왈
善不積이면 不足以成名이요
선부적 부족이성명
惡不積이면 不足以滅身이어늘
악부적 부족이멸신
小人은
소인
以小善으로 爲无益而弗爲也하고
이소선 위무익이불위야
以小惡으로 爲无傷而弗去也니라
이소선 위무상이불거야
故로
고
惡積而不可掩이요
악적이불가엄
罪大而不可解니라
죄대이불가해
서리를 밟으면 단단한 얼음이 이르나니,
신하가 그 임금을 죽이며 자식이 그 아비를 죽이는 것이
하루 아침이나 하루 저녁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 그 유래는 점점 쌓여 온 것이다.
履霜하면 堅氷至하나니
이상 견빙지
臣弑其君하며 子弑其父는
신시기군 자시기부
非一朝一夕之事라 其所由來者漸矣니라
비일단일석지사 기유래자점의
八反歌 八首
어린 자식이 나를 나무라면 내 마음은 기쁨을 깨닫고, 부모님이 나를 꾸짖고 화를 내시면 나의 마음에 도리어 달가워하지 않는다.
하나는 기쁘고 하나는 달갑지 아니하니, 자식을 대하고 어버이를 대하는 마음이 어찌 이다지도 다를까 그대에게 권하노니, 오늘 어버이에게 꾸지람을 듣거든 어린 자식에게 꾸지람을 들을 때와 같이 하라.
幼兒는 或詈我하면 我心에 覺懽喜하고
유아 혹이아 아심 각환희
父母는 嗔怒我하면 我心에 反不甘이라
부모 진노아 아심 반불감
一喜懽一不甘하니 待兒待父心何懸고
일희환일불감 대아대부심하현
勸君今日逢親怒어든 也應將親作兒看하라
권군금일봉친노 야응장친작아간
어린 자식은 천 마디 말을 하되
그대는 들으면서 늘 싫어하지 않고,
어버이는 한 번만 말을 하여도
잔소리가 많다고 한다.
부질없는 잔소리가 아니라
어버이가 걱정이 되어 그러는 것이다
흰머리가 되도록 긴 세월에 아는 것이 많고 경험이 풍부하다.
그대에게 권하노니 늙은 사람의 말을 공경하여 받들고,
젖냄새나는 입으로 길고 짧음을 따지고 가르치려 하지 말라.
兒曹는 出千言하되 君聽常不厭하고
아조 출천언 군청상불염
父母는 一開口하면 便道多閑管이라
부모 일개구 변도다한관
非閑管親掛牽이니 皓首白頭에 多諳練이라
비한관친괘견 호수백두 다암련
勸君敬奉老人言하고 莫敎乳口爭長短하라
권군경봉로인언 마교유구쟁장단
어린아이의 오줌과 똥의 더러움은
그대 마음에 싫어하거나 꺼림이 없지만,
늙은 어버이의 눈물과 침이 떨어지는 것은
도리어 미워하고 싫어하는 마음이 있다.
여섯 자되는 (그대의)몸이 어디서 왔는고.
아버지의 정기와 어머니의 피로 그대의 몸이 이루어졌다.
그대에게 권하노니, 늙어가는 사람을 공경히 대접하라.
젊었을 때 그대를 위하여 살과 뼈가 닳으셨도다.
幼兒尿糞穢는 君心에 無厭忌로되
유아뇨분예 군심 무염기
老親涕唾零엔 反有憎嫌意니라
노친체타영 반유증혐의
六尺軀來何處오 父精母血成汝體니라
육척구래하처 부정모혈성어체
勸君敬待老來人하라 壯時爲爾筋骨敝니라
권군경대노래인 장시위이근골폐
그대가 새벽에 시장에 가서
밀가루 떡을 사고 또 쌀떡을 사는 것을 보았는데,
부모에게 드린다는 말은 거의 들리지 않고
아이들에게 준다는 말만 많다.
어버이는 아직 맛도 보지 않았는데 아이들은 먼저 배부르니,
자식의 마음은 부모의 마음이 좋아하는 것에 비할 수 없다.
그대에게 권하노니, 떡 살 돈을 많이 내어
흰머리에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부모님을 봉양하라.
看君晨入市하여 買餠又買餻하니
간군신입시 매병우매고
少聞供父母하고 多說供兒曹라
소문공북모 다설공아조
親未啖兒先飽하니 子心이 不比親心好라
천미다아선포 자심 불비친심호
勸君多出買餠錢하여 供養白頭光陰少하라
권군다출매병전 공양백두광음소
시장에 약 파는 가게에
오직 아이를 살찌게 하는 약만 있고,
어버이를 튼튼하게 하는 약은 없으니,
무슨 이유로 두 가지로 보는가?
아이도 병들고 어버이도 병들었을 때
아이의 병 치료하는 것을 어버이의 병 치료하는 것에 비할 수 없다.
다리를 베더라도 도로 어버이의 살이다.
그대에게 권하노니, 빨리 두 어버이의 목숨을 보호하라.
市間賣藥肆에 惟有肥兒丸하고
시간매약사 유유비아환
未有壯親者하니 何故兩般看고
미유장친자 하고양반간
兒亦病親亦病에 醫兒不比醫親症이라
아역병친역병 의아불빙디친증
割股還是親的肉이 勸君亟保雙親命
할고환시친적육 권군극보쌍친명
부하고 귀하면 어버이를 봉양하기가 쉽지만
어버이는 항상 편하지 못함이 있고,
가난하고 천하면 아이를 기르기가 어렵지만
아이는 배고픔과 추위를 겪지 않는다.
한 가지 마음 두 가지 길에
아이를 위함이 마침내 어버이를 위함만 같지 못하다.
그대에게 권하노니, 어버이 봉양하는 것을 아이를 기르는 것과 같이 하고,
모든 일을 집이 부유하지 않다고 미루지 말라.
富貴엔 養親易로되 親常有未安하고
부귀 양친이 친상유미안
貧賤엔 養兒難하되 兒不受饑寒이라
빈천양아난 아불수기한
一條心兩條路에 爲兒終不如爲父라
일조심양조로 위아종불여위부
勸君養親如養兒하고 凡事를 莫推家不富하라
권군양친여양아 범사막추가불부
어버이를 봉양하는 것은 다만 두 사람인데
늘 형제들과 다투고,
아이를 기른 것은 비록 열 사람이더라도
그대가 모두 혼자 스스로 맡는다.
아이에게 배부르고 따뜻한가는 친히 항상 물어보지만,
부모의 배고프고 추운 것은 마음에 있지 않다.
그대에게 권하노니, 부모를 봉양함에 반드시 힘을 다하라.
당초에 입을 것과 먹을 것을 그대에게 빼앗겼다.
養親엔 只二人이로되 常與兄弟爭하고
얌친 지유이인 상여형제쟁
養兒엔 雖十人이나 君皆獨自任이라
양아 수십인 군개독자임
兒飽煖親常問하되 父母饑寒不在心이라
아포난친상문 부모기한부재심
勸君養親을 須竭力하라
권군양친 수갈럭
當初衣食이 被君侵이니라
당초의식 피군침
어버이는 십분 사랑함이 있으나
그대는 그 은혜를 생각하지 아니하고,
아이가 조금이라도 효도함이 있으면
그대는 곧 그 이름을 드러낸다.
어버이를 대함엔 어둡고 자식을 대함엔 밝으니,
누가 부모님의 자식 기르는 마음을 알까?
그대에게 권하노니, 아이들의 효도를 믿지 말라.
아이들의 어버이자 어버이의 자식이 그대 몸에 있다.
親有十分慈하되 君不念其恩하고
친유십분자 군불념기온
兒有一分孝하면 君就揚其名이라
아유일분효 군취양기명
待親暗待兒明하니 誰識高堂養子心고
대친암대아명 수식고당양자심
勸君漫信兒曹孝하라
권군만신아조효
兒曹親子在君身이니라
아조친자재군신
孝行篇 續
손순이 집이 가난하여 그의 아내와 함께 남의 집에서 품팔이를 하여 그 어머니를 봉양하였는데, 아이가 있어 언제나 어머니가 드시는 것을 빼앗아 먹었다. 손순이 아내에게 말하기를,“아이가 어머니의 드시는 것을 빼앗으니 아이는 또 얻을 수 있지만 어머니는 다시 구하기 어렵다.”
그리고는 마침내 아이를 업고 취산(醉山)의 북쪽 교외로 가서 묻으려고 땅을 팠는데, 갑자기 매우 이상한 돌 종이 있거늘 놀랍고 괴이하게 여겨 시험삼아 두드려 보니 소리가 아름답고 사랑스러웠다. 아내가 말하기를,“이 기이한 물건을 얻은 것은 아마 아이의 복이니 묻는 것은 옳지 못한 듯합니다.”
손순도 그렇게 생각하여 아이와 종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대들보에 매달고 쳤다. 임금이 종소리가 맑고 멀리 퍼져 이상함을 듣고 그 사실을 자세히 알아보고서 말하기를,“옛 적에 곽거가 아이를 묻으려하자 하늘이 금으로 만든 솥을 주시더니, 이제 손순이 아이를 묻으려하자 땅에서 돌 종이 나왔으니 앞과 뒤가 서로 꼭 맞는다.”
하고, 집 한 채를 주고 해마다 쌀 50석을 주었다.
孫順이 家貧하여 與其妻로 傭作人家以養母할새 有兒每奪母食이라 順이 謂妻曰 兒奪母食하니 兒는 可得이어니와 母難再求라하고 乃負兒往歸醉山北郊하여 欲埋掘地러니 忽有甚奇石鍾이어늘 驚怪試撞之하니 舂容可愛라 妻曰 得此奇物은 殆兒之福이라 埋之不可라하니 順이 以爲然하여 將兒與鍾還家하여 懸於樑撞之러니 王이 聞鍾聲淸遠異常而覈聞其實하고 曰 昔에 郭巨埋子엔 天賜金釜러니 今孫順埋兒엔 地出石鍾하니 前後符同이라하고 賜家一區하고 歲給米五十石하니라
손순(孫順) - 신라 하대의 효자. ‘손순(孫舜)’이라고도 한다. 모량리(牟梁里) 사람
곽거(郭巨) -중국 후한(後漢) 때의 사람. 집이 가난하여 노모가 굶주리는 것을 보고, 이를 면하게 하기 위하여 자식을 묻고자 땅을 파다가 황금 솥을 얻었다고 한다.
상덕은 흉년과 전염병이 유행하는 해를 만나 부모가 굶주리고 병들어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상덕이 낮이나 밤이나 옷을 벗지도 않고 정성을 다하여 위안하였으되, 봉양할 것이 없으면 넓적다리 살을 베어 드시게 하고, 어머니가 종기가 나자 입으로 빨아 곧 낫게 하였다. 임금이 (이 소식을 듣고) 가상하게 여겨 물건을 매우 후하게 하사하시고, 그 집에 정려문(旌閭門)을 세우고 비석을 세워 이 일을 기록하게 하였다.
尙德이 値年荒癘疫하여 父母飢病濱死라 尙德이 日夜不解衣하고 盡誠安慰하되 無以爲養이면 則刲髀肉食之하고 母發癰에 吮之卽癒라 王이 嘉之하여 賜賚甚厚하고 命旌其門하고 立石紀事하니라
정려(旌閭) - 충신 효자 열녀 등을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하던 일.
도씨(都氏)는 집이 가난하였지만 매우 효성스러웠다. 숯을 팔아 고기를 사서 어머니의 반찬을 빠뜨리는 적이 없었다.
하루는 시장에서 늦어 바삐 돌아오는데 솔개가 갑자기 고기를 채 가버리자 도씨가 슬피 울면서 집에 와보니 솔개가 이미 고기를 집안 뜰에 던져 놓았다.
하루는 어머니가 병이 나서 제철이 아닌 홍시를 찾거늘 도씨가 감나무 숲을 방황하여 날이 저문 것도 모르고 있었는데, 어떤 호랑이가 여러 번 앞길을 가로막으며 타라는 뜻을 표시하였다. 도씨가 호랑이를 타고 100여리나 되는 산골에 이르러 인가를 찾아 투숙하였다. 얼마 후 집주인이 제삿밥을 내오는데 홍시가 있었다. 도씨는 기뻐서 감이 어디서 난 것인지 묻고 또 자신의 뜻을 말하자, 주인이 대답하여 말하기를,“돌아가신 아버지께서 감을 즐겨 드셨기에 해마다 가을이면 감 200개를 골라 굴 안에 저장해둡니다. (그리하여) 이 5월에 이르면 완전한 것이 7,8개에 지나지 않았는데 올해는 50개의 완전한 것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이상하게 여겼더니, 이것은 하늘이 그대의 효성에 감동한 것이다.”
하고는 20개를 주었다. 도씨가 사례하고 문밖에 나오니, 호랑이가 아직도 엎드려 기다리고 있었다. 호랑이를 타고 집에 돌아오니 새벽닭이 울었다.
뒷날 어머니가 천명으로 돌아가시자, 도씨는 피눈물을 흘렸다.
都氏家貧至孝라 賣炭買肉하여 無闕母饌이러라 一日은 於市에 晩而忙歸러니 鳶忽攫肉이어늘 都悲號至家하니 鳶旣投肉於庭이러라 一日은 母病索非時之紅柿어늘 都彷徨柿林하여 不覺日昏이러니 有虎屢遮前路하고 以示乘意라 都乘至百餘里山村하여 訪人家投宿이러니 俄而主人이 饋祭飯而有紅柿라 都喜하여 問柿之來歷하고 且述己意한대 答曰 亡父嗜柿라 故로 每秋에 擇柿二百個하여 藏諸窟中하여 而至此五月이면 則完者不過七八이라가 今得五十個完者라 故로 心異之러니 是天感君孝라하고 遺以二十顆어늘 都謝出門外하니 虎尙俟伏이라 乘至家하니 曉雞喔喔이러라 後에 母以天命으로 終에 都有血淚러라
廉義篇
인관이 시장에서 솜을 파는데 서조라는 사람이 곡식으로 그 솜을 사 가지고 돌아가는데 솔개가 그 솜을 채 가지고 인관의 집에 떨어뜨렸다. 인관이 서조에게 (솜을) 돌려보내며 말하기를,“솔개가 너의 솜을 내 집에 떨어뜨렸으므로 그대에게 돌려보낸다.”
서조가 말하기를,“솔개가 솜을 채어서 그대에게 준 것은 하늘이 한 일이다. 내가 어찌 받겠는가?”
인관이 말하기를,“그렇다면 (솜 값으로 받은) 그대의 곡식을 돌려보내리라.”
서조가 말하기를,“내가 너에게 주고 나서 벌써 장[市]이 두 번이나 섰으니, 곡식은 이미 너의 것이 되었다.”
두 사람이 서로 사양하다가 솜과 곡식을 모두 시장에 버리니, 시장을 맡아 다스리는 관원이 이 사실을 임금께 아뢰어 모두 벼슬을 주었다.
印觀이 賣綿於市할새 有署調者以穀買之而還이러니 有鳶이 攫其綿하여 墮印觀家어늘 印觀이 歸于署調曰 鳶墮汝綿於吾家라 故로 還汝하노라 署調曰 鳶이 攫綿與汝는 天也라 吾何受爲리오 印觀曰 然則還汝穀하리라 署調曰 吾與汝者市二日이니 穀已屬汝矣라하고 二人이 相讓이라가 幷棄於市하니 掌市官이 以聞王하여 竝賜爵하니라
홍공(洪公) 기섭(耆燮)이 젊었을 때 매우 가난하여 말할 수 없더니, 하루는 아침에 어린 계집종이 기쁜 듯 뛰어와 돈 일곱 냥을 바치며 말하기를,“이것이 솥 안에 있었으니, 쌀이 몇 섬이고, 나무가 몇 바리입니다. 하늘이 주고 하늘이 주신 것입니다.”
공이 놀라 말하기를,“이것이 어찌된 돈인가?”
하고 곧 ‘돈을 잃은 사람은 찾아가라’는 글을 써서 대문에 붙여 놓고 기다렸다. 얼마 후 성이 유(劉)씨라는 사람이 찾아와 글 뜻을 묻자, 공은 그 내용을 자세히 말해 주었다. 유가가 말하기를, “이치상 남의 솥 안에 돈을 잃는 일은 없으니, 참으로 하늘이 주신 것입니다. 어찌 취하지 않으십니까?”
공이 말하기를, “나의 물건이 아닌데 어찌 하겠는가?”
유가가 엎드려 말하기를, “소인이 어젯밤에 솥을 훔치러 왔다가 도리어 가세가 너무 쓸쓸한 것을 불쌍히 여겨 그것을 놓아두었습니다. 지금 공의 청렴함에 감동하고 양심이 저절로 우러나 다시는 도둑질하지 않을 것을 맹세하고, 항상 (공을)모시기를 원하오니 염려 말고 가지소서.”
공이 바로 돈을 돌려주며 말하기를, “네가 착하게 된 것은 좋으나 이 돈은 취할 수 없다.”
하고 끝내 받지 않았다. 뒤에 공은 판서가 되고 그의 아들 재룡은 헌종(憲宗)의 국구(國舅 : 임금의 장인)가 되었으며, 유가 또한 신임을 얻어 몸과 집안이 크게 번창하였다.
洪公耆燮이 少貧甚無料러니 一日早에 婢兒踊躍獻七兩錢曰 此在鼎中하니 米可數石이요 柴可數馱니 天賜天賜니이다 公驚曰 是何金고하고 卽書失金人推去等字하여 付之門楣而待러니 俄而姓劉者來問書意어늘 公悉言之한대 劉曰 理無失金於人之鼎內하니 果天賜也라 盍取之닛고 公曰 非吾物에 何오 劉俯伏曰 小的이 昨夜에 爲窃鼎來라가 還憐家勢蕭條而施之러니 今感公之廉价하고 良心自發하여 誓不更盜하고 願欲常侍하오니 勿慮取之하소서 公卽還金曰 汝之爲良則善矣나 金不可取라하고 終不受하니라 後에 公爲判書하고 其子在龍이 爲憲宗國舅하며 劉亦見信하여 身家大昌하니라
고구려 평원왕의 딸이 어렸을 때 울기를 좋아하니, 왕이 희롱하여 말하기를, “너를 장차 바보 온달에게 시집보내리라”
(딸이) 자라자 상부(上部) 고씨(高氏)에게 시집을 보내려 하니, 딸이 ‘임금은 식언(食言)을 해서는 안 된다’하여 굳이 사양하고 마침내 온달의 아내가 되었다.
온달은 집이 가난하여 다니며 빌어다가 어머니를 봉양하니, 당시 사람들이 지목하여 어리석은 온달이라고 하였다.
하루는 온달이 산 속으로부터 느릅나무 껍질을 짊어지고 돌아오니, 임금의 딸이 찾아와 보고 말하기를, “나는 바로 그대의 아내입니다”
그리고는 머리의 장식품을 팔아 밭과 집과 기물을 사서 상당히 부유하게 되고, 말을 많이 길러 온달을 도와 마침내 영달하고 이름이 빛나게 되었다.
高句麗平原王之女가 幼時에 好啼러니 王戱曰 以汝로 將歸愚溫達하리라 及長에 欲下嫁于上部高氏한대 女以王不可食言이라하여 固辭하고 終爲溫達之妻하니라 蓋溫達이 家貧하여 行乞養母하니 時人이 目爲愚溫達也러라 一日은 溫達이 自山中으로 負楡皮而來하니 王女訪見曰 吾乃子之匹也라하고 乃賣首飾하여 而買田宅器物頗富하고 多養馬以資溫達하여 終爲顯榮하니라
홍기섭- 조선 순조 때 형조판서를 지낸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