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말하다 / 정인성
어떤 기별도 없다가
어느 날 불쑥 찾아와
가슴을 흔드는 꽃
눈 감으면 아련하게 돋아나는
저 풍경 앞에서
내일이면 또 그리워질 시간의 꽃
바라보고만 있어도
그리워지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돌아오지 않는 강 / 정인성
흐려진 안경 너머
유년 시절 아버지와 함께한 시간
물안개 처럼 가물가물 피어난다.
한여름 저문 시간
강으로 나가 천렵을 했다.
흐르는 물에 주낙을 놓고
새벽에 가보면 메기나 피라미,
어떤 때는 민물 장어도 걸려있었다.
제법 많은 물고기가 잡혔다.
큰 주전자에 담아 집으로 가져가면
어머니는 그 고기들을 푹 삶아
고운 체에 뼈를 걸러내고
맑은 추어탕처럼 끓여서
아침상에 내놓았다.
어린 시절 아련한 기억의
여름 풍경이다.
강물은 하염없이 흘러
수많은 여름을 지나
멈춰버린 시곗바늘의 고립이듯
모두 떠나고 없다.
어둠처럼 깊어지고
망각처럼 늙어가는 삶이여
낮과 밤 떠나간 자리에
슬픔은 점점 깊어지는데
안경은 기억하고 있을까
그동안 보아온 수많은 세월의 강을
이제 노안으로 흐려진 안경
그것마저 벗어야 할 때가 왔나 보다.
꽃비 / 정인성
비가 내립니다.
꽃비가 내립니다.
피었다 지는 것은 순리인데
가슴에 쌓이는 꽃잎
올해는 더 처연합니다.
내리는 저 비는
언제라도 내리겠지만
지는 꽃은
또 한해를 기다려야 합니다.
무상한 인생
바람에 난무하는 꽃비
지르밟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