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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조춘숙
말 씀 사무엘하 1장 17-27절
제 목 하나님앞에 선 사람들[1]
오늘부터 사무엘하 강해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사무엘상 강해를 통해서 하나님의 깊은 사랑과 섭리가 얼마나 깊고 놀라운지 깨닫게 었고 그 은혜를 삶 곳곳에 풀어놓아 더욱 풍성한 감사를 알게 되었습니다.
사무엘상 강해를 통해 여러분의 삶과 믿음이 성장했으리라 믿습니다.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자녀들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인간의 생각을 뛰어넘어 인간 그 자체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세상은 하나님을 모르지만 성도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확실하게 알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으며 그 안에서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은 자신이 하나님앞에 서 있다는 것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하지만 성도는 하나님과 믿음의 형제들 앞에 서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사람의 눈에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세상을 보고 역사하고 계시기 때문에 핑계 댈 수 없고,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이것이 얼마나 두려운 말씀인지 아시길 바랍니다.
세상이 그 어떤 죄도 숨길 수 없는 것처럼 빛이신 하나님앞에 서 있는 성도의 죄 역시 숨길 수 없습니다.만약 여러분이 이 시간 생각나는 죄가 있거든 지금 기회를 주실 때 회개하시기 바랍니다.성도가 사는 동안에 죄를 지을 수밖에 없으므로 날마다 죽는 심정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은 누구 앞에 서 계십니까?
여러분의 마음은 무엇으로 가득차 있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성령의 충만함이 가득하십니까?
오늘 설교를 들으시면서 나는 누구와 같은 모습을 가하고 있는지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약 여러분의 마음에 충만한 것이 세상이라면 회개하셔야 합니다.왜냐하면 하나님은 죄를 너무나 싫어하시는 분이고, 인간의 감정과 이익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용서하지 않는 분이기 때문입니다.전능하신 하나님은 자녀들이 비록 육적인 세상에 있을지라도 세상위에서 영적인 자녀로 살기를 바라고 계십니다.그런 삶은 비록 어려움은 있지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고, 열매를 드리는 삶인 것입니다.
사무엘하 1장은 하나님앞에서 속이려는 사람과 속지 않는 사람의 대화로 시작합니다.
속이려는 사람은 아말렉소년이고 속지 않는 사람은 다윗입니다.속이려는 사람앞에서 속지 않는 다윗은 그 중심에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에 속지 않는 것이고, 거짓말을 분별 할 수 능력이 있었습니다.이 사건이 일어난 시점은 다윗이 자신의 가족과 연약한 여인들과 아이들을 끌고 갔던 아말렉을 공격해서 모든 것을 되찾고 돌아와 시글락에 머물고 있을 때였습니다.
다윗이 블레셋왕과 만나서 이스라엘을 공격할 것인지 실랑이하고 있는 사이 아말렉은 시글락을 공격하였고 전쟁에 승리한 것이 흥에 겨워 술을 마시며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아말렉은 힘이 없는 다윗과 백성을 공격해서 승리했다는 생각만 했지 하나님앞에서 그 분의 백성을 괴롭혔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이런 아말렉이 다윗에게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은 하나님앞에 바로 서 있는 다윗을 사랑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진노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앞에 바로 선 사람을 비판하고 공격하는 것은 하나님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는 것과 같습니다.사람들은 흔히 믿음으로 살지 못한 사람들의 과거를 가지고 조롱하거나 공격하거나 비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하지만 과거에 부족한 삶을 산 사람이 지금 믿음으로 살고 있다면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세상은 전과기록처럼 죄가 그를 따라 다니며 괴롭히지만 하나님안에서는 모든 죄가 도말되는 것입니다.
다윗도 연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사울을 피해다니며 믿음생활을 하지 못할 때도 있지만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아말렉이 다윗을 공격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일입니다.
하나님안에 있는 것은 세상에 있는 것과 이렇게 다른 것입니다.
여러분이 확실하게 인지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은 세상사람이 아무리 인간적이고 착해도 그를 지키지 않습니다.그에게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상적으로 부족할지라도 믿음안에 있는 성도는 하나님께서 눈동자와 같이 보호하시며 지켜주고 계십니다.이 세상이 하나님께 판단 받고, 심판받은 것이 변하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 역시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이것을 잊게 되면 아말렉소년처럼 거짓말을 말하는 엄청난 죄를 짓게 될 것입니다.아말렉소년은 사울과 함께 전쟁에 나갔기 때문에 비참하게 죽어간 사울의 죽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사울의 왕관과 팔찌를 가지고 있다는 것 때문에 그가 도엑의 아들이어서 사울이 안심하고 맡겼다는 말도 있지만 하여튼 그가 사울의 곁에 있었기 때문에 왕관과 팔찌를 가진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사무엘상 마지막 장을 보면 사울은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이 와서 자신을 찌르고 모욕할까 두렵다고 무기를 든 자에게 자기를 죽여 달라고 하였지만 병사가 두려운 마음에 사울의 청을 거절하자 사울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울이 자살했음에도 불구하고 소년은 다윗에게 부상을 당한 사울이 살 수 없을 것이라고 자기가 판단해서 사울의 부탁대로 그를 죽였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자신이 죽였다는 증거로 왕관과 팔에 거는 고리를 보여준 것입니다.
소년은 사울이 하나님께 기름부음을 받은 왕이라는 것을 쉽게 생각했기 때문에 이 같은 일을 한 것입니다.오직 다윗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그가 생각하기를 다윗에게 사울의 죽음을 알리면 분명히 자신을 괴롭히던 사울을 죽였기 때문에 큰 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쁨을 가지고 한 걸음에 달려 온 것입니다.
소년이 다윗만 속일 수 있다면 세상에서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자체가 바로 죄이며 악입니다.눈앞에 보이는 다윗이 아니라 그와 함께 계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영안으로 볼 수 있었다면 소년은 이런 엄청난 거짓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자기의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솔직하게 사울의 죽음을 보았고, 다윗에게 알려줘야 할 것 같아서 왕관과 팔찌를 가지고 왔다고 했다면 아마도 다윗은 그에게 감사를 표했을 것이고 상을 내렸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정직한 성도를 원하고 계십니다.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중심에 세우고 영적인 눈으로 세상을 보면서 참 된 진리를 바로 전하는 정직한 성도를 원하고 계십니다.십자가의 사건과 부활의 사건과 재림의 사건을 인간의 생각과 섞어서 거짓으로 전하지 말고 성경말씀 그대로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인간이 자신의 공을 섞지 않고 진리를 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려 주고 계십니다.하나님의 일에 인간의 생각과 이익을 담기 시작하면 소년처럼 자신이 하지 않은 일도 부풀려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14절 다윗이 저에게 네가 어찌하여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 죽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느냐고 진노했습니다.다윗은 사울의 신앙을 떠나서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이스라엘의 왕을 죽였다는 것에 대해 분개한 것입니다.
사울의 목숨을 해하였다는 것은 바로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께 도전하는 일이며 왕권을 침해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울이 자신을 공격한 지금까지의 시간과 상관없이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죽인 그 자체는 하나님의 질서를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에 다윗이 더욱 분노하며 용서하지 않은 것입니다.
교회안에서는 생각과 환경이 다른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에 일을 하면서 서로 생각이 다를 수 있고, 다툴 수도 있습니다.하지만 이방인이 사울을 죽였다고 했을 때 다윗이 분노한 것처럼 세상이 성도들을 실족시키지 못하도록 서로 보호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만 하나님의 나라가 단단하게 서 갈 수 있고 성도들이 사단의 공격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지금 사울의 죽음을 가장 기뻐해야 할 사람은 다윗이지만 기뻐하지 않았습니다.다윗은 사울에게 쫓겨 다닐 때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일 하실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린 것입니다.
성도가 해야 할 일은 상대가 누구이든 생명을 해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악인을 옮겨주실 때까지 인내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다윗이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사울을 피해 다니며 백성들을 돌보았고, 전쟁을 했으며, 하나님께 기도와 찬양을 드렸습니다.
여러분이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은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시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것입니다.성도는 성도가 비록 성숙하지 못했어도 사단에 의해서 실족하는 것을 절대로 기뻐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부족한 성도들끼리 보호하고 아끼지 않는다면 결국 사단이 승리하는 것이고 어둠속에 등불을 든 믿음의 형제를 밀어넣고 마는 것입니다.이런 모습을 보신 하나님께서 진노하실 것이며, 결국 또 다른 성도를 세워 하나님의 일을 명하실 것입니다.하나님의 일은 반드시 내가 해야 하는 것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안해도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하시지만 내가 하지 않으면 나에게 충성의 기회는 지나갈 것이고 상급도 없을 것입니다.
이 부분을 잘 이해해야만 교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을 잘 이해해야만 죽도록 충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소년은 자신을 아말렉사람 곧 외국인의 아들이라고 소개하였습니다.
이렇게 소개한 것은 이스라엘에 임시로 체류하는 타국인과는 달리 이스라엘에 정착하여 그 사회에 동화된 이방인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완전한 이스라엘백성처럼 대우를 받았고, 이스라엘백성이 드리는 십일조를 분배받는 특권을 누렸다고 합니다.레위기 16장 29절 말씀처럼 이스라엘백성들이 규례를 지킬 때 이들도 함께 율법을 지켰고 동시에 율법의 보호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누릴 수 없었던 것은 이스라엘백성처럼 땅을 소유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 나름대로 이방인들만이 느끼는 어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소년은 왕에게 사울의 죽음을 알리는 것이 이스라엘사람처럼 땅을 가질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하지만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람을 보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나머지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만 것입니다.
이런 실수는 성도들도 쉽게 저지르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세상에서 나그네로 살면서 많은 불이익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세상의 힘겨운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자신의 감정에 충실해지기 시작했고 하나님과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소년이 나는 이스라엘안에 사는 외국인이라고 떳떳하게 말하는 것처럼 성도들은 나는 하나님안에 있지만 세상사람과 같다고 떳떳하게 말하고 있습니다.하지만 이런 태도가 바로 아말렉소년처럼 죽임을 당하게 되는 조건이 되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믿는 자녀가 세상사람들과 동일한 의식을 가지고 행동을 하는 것은 바로 기름부음 받은 사울을 죽였다고 말하는 어리석은 행동과 같은 것입니다.
16절 다윗이 저에게 이르기를 네 피가 네 머리로 돌아갈찌어다 네 입이 네게 대하여 증거하기를 내가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죽였노라 함이니라 하였더라
사울을 죽이지도 않은 소년이 욕심 때문에 자신의 입으로 거짓말을 하는 순간 그 말은 사실이 되고 말았습니다.말이 바로 그 사람의 인격을 나타내는 척도가 되기 때문에 여러분은 늘 조심해야 합니다.마태복음 15장 18절에 보면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 말로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하였습니다.많은 사람들은 감정과 판단과 이익에 따라 움직이다가 양심에 찔리면 마음에 없는 말을 했다고 자신의 실수를 덮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말을 했다는 것은 그 사람이 이미 많은 시간을 가지고 그 생각에 사로잡혔다는 증거이고, 그 말이 곧 그의 인격이기 때문에 번복했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소년은 사울을 죽이지 않았고, 얻을 이익을 위해서 거짓말을 했지만 입밖으로 거짓말을 하는 순간 자신의 말에 의해서 죽음이 결정되고 만 것입니다.
소년이 끌려 나가면서 내가 사울을 죽였다고 말한 것은 거짓말이었다고 아무리 외쳐도 이미 기회는 지나간 것입니다.이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기회가 지나갔다는 것은 곧 영원한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너는 어디서 왔느냐고 다윗이 묻는 것이 기회이고, 사울이 죽은 것을 어떻게 네가 아느냐고 묻는 것이 마지막 기회입니다.여러분은 하나님께서 혹은 믿음의 사람이 질문했을 때 말씀에 비추어 잘 판단하시고 대답하시기 바랍니다.
26절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승하였도다
다윗이 어떻게 요나단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언제나 죽음의 자리에서 구해준 것은 요나단이었고, 자신이 왕자임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하나님의 택함 받은 자라는 것을 인정하여 섬기기를 다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 요나단이 악한 사울과 함께 죽은 것입니다.두 사람이 한 자리에서 죽었지만 하나님앞에서 어떤 삶을 살았느냐에 따라서 두 사람의 사후는 다를 것입니다.
요나단처럼 인생은 나그네 길이라는 것을 알아 사는 동안 하나님앞에서 하나님의 사람을 돕는 귀한 인생을 살았다면 죽어서도 부끄러울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말렉소년처럼 누구나 나그네 인생을 산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이스라엘안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철저하게 외국인이라고 생각한다면 그의 삶은 늘 불행했을 것이고, 그 생각이 불행한 죽음을 맞이하게 한 것입니다.아말렉소년은 이스라엘안에서 이스라엘사람들이 누리는 모든 혜택을 누리고 살았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신은 늘 이방인이었고 참 이스라엘이 되지 못한 것입니다.성도들은 하나님안에서 모든 은혜를 누리며 살아갑니다.
은혜를 받을 때는 기뻐하다가도 세상과 비교하면서 스스로 불행에 빠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늘 감사하며 기뻐하시기 바랍니다.모든 인간이 하나님앞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자각해야 합니다.
늘 돌이키고 반성하면서 거짓을 버려야 할 것입니다.
거짓은 바로 사단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하나님이 보시는 앞에 서 있는 것처럼 믿음으로 살기 바랍니다.
언제나 믿음으로 승리하여 칭찬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0, 6,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