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산(이효석)은 1907년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나서 1942년 36세 나이에 일찍 세상을 떠났다.
1928년 <도시와 유령>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문학활동을 시작한 가산의 초기 작품들은
카프(KAPF,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로부터 동반자작가라고 불리었듯이
프롤레타리아 이념과 계급혁명주의적 좌경사상이 바탕에 깔린 경향문학의 색채가 짙었으나
1930년대 초를 기점으로 순수문학으로 작품의 기조가 바뀌게 되었다.
비록 가산의 초기 작품이 경향문학이라고 하지만
요즈음 시대의 진보 좌경과 같은 맥락에서 그의 작품을 해석하거나 평가해서는 안 된다.
가산보다 15살이 많은 춘원 이광수(1892-1950)가 애국과 친일의 경계를 교묘하게 넘나드는
문학경향을 보이는 동안 가산은 친일이 아닌 경향문학의 길을 잠시 추구하다가
곧 바로 구인회에 참여하면서 순수문학으로 회귀하여 그 뿌리를 깊게 내렸다.
그 당시 국내적으로는 조선 말기의 노일전쟁과 청일전쟁 이후로 주변 강대국의 각축장으로
오랜 기간 시달리다가 결국은 우리나라가 군국주의 일본에게 강점당한 시기였다.
또한 국제적으로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가 사상적으로 동서 진영이 동등하게 양립되어
서로 균형을 이루던 시기였었다.
1917년 볼쉐비키혁명에 뒤이어 1922년 소비에트연방의 탄생으로 기존의 세계 질서였던
자유 민주주의가 급격히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사상적 바탕으로 하는 공산 사회주의적
이념으로 힘의 분산이 이루어지던 시기였다.
산업혁명이 가져다 준 엄청난 부의 창출은 고전적인 자유주의에 있어 많은 사회적 부작용을
만들어 내었고 이러한 문제는 1938년 파리학술회의에서 제안된 신자유주의의 개념이 태동될
때까지는 자유 민주주의에게는 위기의 기간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지해야 한다.
이는 새로운 유토피아로 인식되어가고 있는 공산 사회주의의 개념을
당시 전 세계의 많은 석학들이 앞다투어 관심을 가지고 동조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잘 표현했던 동서 진영간의 냉전(Cold War)이라는 용어가 나타났고
동과 서는 서로가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대등한 경제적, 정치적 체계로서 양립하던
시기였기도 했다.
실제로 미국에서도 1950년 메카시 상원위원이 미국 내의 좌경화된 관료사회를 폭로하였다.
반대파들은 그 사건을 두고 메카시즘이라고 폄화하기도 하였지만 어떻던 당시 미국의 유능한
고위 관리층까지 공산사회주의의 꿈같은 미래를 동경하고 동조하였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경성제국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한 가산의 시각은 주변국가에 휩싸여 있는 현실적 환경보다는
자연스레 스스로 언어적으로 쉽게 접할 수 있는 새로운 외부의 세상인 미국과 유럽에 대해
어느 누구보다 많은 정보를 가졌었고 그래서 그들의 새로운 흐름을 따랐을 것으로 생각된다.
커피를 즐겨 마시며 모짜르트와 쇼팽의 음악을 좋아하고 서구적 사고와 진보적 눈을 가진
시대의 선구자였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그와 그의 철학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당시의 사회주의 이론은 지식인들만이 접할 수 있는 분야였으며 그들의 지적 영역을
새로운 유토피아적 세계로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고
그러기에 가산의 초기 작품에서 나타나는 경향주의적 색채는
먼저 깨인 선구자적 지식인이었던 가산이 접근할 수 있었던 당연한 귀착점일 수도 있다.
당시의 사회주의적 경향이 아직 검증되지 못한 새로운 체제에 대한 이론적이고 논리적인
접근이었다면 구 소련의 붕괴와 중국의 개방으로 더 이상 유토피아로서의 공산 사회주의가
실현될 수 없다는 사실이 검증된 후에 나타나는 좌경현상은 지극히 현실적인 이기주의를
바탕으로 논리적이지 못한 허구를 쫓는 가식일 뿐이라는 것이 서로 다른 점이라 할 수 있다.
1930년대 초기를 기점으로 경향문학에서 순수문학으로 되돌아온 가산은 끊임없는 열정으로
새로운 작품활동에 전념하였다.
<메밀꽃 필 무렵>을 집필한 1936년은 가산이 평양에 있는 숭실전문대학에 교수로 임용되어
생활에 여유가 생기게 됨에 따라 행복한 가정생활과 함께 더욱 강한 집필 의욕을 보였다.
그러나 그러한 행복한 생활과 왕성한 집필활동은 결코 길지 못하였다.
가산은 1940년 사랑하는 처와 차남을 연이어 잃었고 2년 뒤인 1942년에는 자신 또한 36세의
많지 않은 나이에 결핵성 뇌막염으로 세상을 떠났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남겨 주고 우리를 떠났다.
레이(유원덕)
첫댓글 버터냄새 나는 사람이라고 비판을 많이 받았다죠? ..
"메밀꽃 필 무렵"을 읽었던 시절의 기억을 되살려주네요.
가산의 짧은 일생과 가족에 대한 얘기도 더 많은 좋은 작품을 남겼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