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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안요(왼쪽), 조각보박물관 |
우리말 '짓다'에는 참 다양한 의미가 담긴다. 집을 짓다, 밥을 짓다, 시를 짓다, 농사를 짓다, 옷을 짓다, 약을 짓다, 이름을 짓다, 미소를 짓다…. 이 말들의 공통적인 전제는 우리네 삶이다. 살아가기 위해서 다듬고 조율하고 해소해 가는 일련의 과정을 일컬어 우리는 '짓다'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단순한 행위인 '~하다'가 아니라, 생활과 밀착되어 의미 있는 삶을 만들어가는 것이 곧 '~짓다' 이다. 바꿔 말해, '살기'의 마인드가 충분히 깃들어 있을 때 비로소 '짓다'라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주변에는 '살기'를 쏙 빼먹은 채 지어지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경제적 논리로 집을 짓고, 정성을 담지 않고 식당의 밥을 짓는다. 때론 영혼 없이 미소를 짓는다. 공장에서 찍어낸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그릇에 아무렇게나 찬을 담아낸다. 삶의 결이 묻어나지 않는 대상들이 난무한다. 살갑지가 않다.
이런 메마른 일상 속에서 문득 결이 촘촘한 도구를 만난다는 것은 얼마나 반가운 일인지 모른다. 동공이 확대되고, 손끝이 파르르 떨리고, 가슴이 벌렁거리는 감흥을 이 공간에서 정말 오래간만에 느낄 수 있었다.
■미래에 남길 흙을 빚다- 장안요
'장안요'는 기장 장안사 들어가는 길목 작은 마을에 있다. 좁은 진입로 양편에 도열해 있는 돌담과 대나무를 지나면 흰색의 현대식 건물이 나온다. 유명한 도예가의 작업장이라고 하기에는 집의 외형이 너무 단순하여 뭔가 아쉬운 마음이 든다. 그것도 잠깐. 문을 열고 한 발짝 들어서는 순간, 예사롭지 않은 목문의 손잡이에서 반전의 기운을 감지한다. 내부의 넓게 열린 갤러리에는 풍만한 에너지의 작품들이 공간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다.
때마침 바깥일을 보고 들어 온 이 집의 주인장 도예가 신경균 선생과 자리를 했다. 넉넉한 손님 대접과 넉살 좋은 말솜씨에 기분이 한층 좋아질 때 즈음, 목소리를 한 톤 올려 그가 말한다. "전통은 과거에 박제화돼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최첨단이어야 한다." 뜻밖의 정의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구태의연하게 전통 그 자체만 계승해서는 안되고, 그 시대에 맞는 도구를 계속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의미다. 현대인의 다양화된 식생활 문화에 맞추어야 할 뿐만 아니라 20년, 30년 뒤에도 여전히 남아있을 그릇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맞는 말이다.
신경균 선생은 이 집도 본인이 직접 지었다고 한다. 의도했던 개념은 한옥의 현대적 재해석. 바깥은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았는지 모르나, 내부 공간은 대청마루와 방, 정지, 건넌방으로 이어지는 구성이 한옥의 느낌이 어느 정도 표현되었다. 다른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온돌을 지피는 작디작은 방은 한옥의 그것보다 훨씬 훌륭하게 연출되었다. 무진장 공들여 만든 격자목문, 고요한 빛이 드는 들창, 흙방 바닥 가운데 놓인 단풍나무 차상까지. 여기에 빗소리 풀 소리까지 더하니 행복감이 그냥 물밀듯 밀려오는 공간이다.
미려한 곡선의 형태미와 거칠게 칠해진 붓칠의 그의 작품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복잡미묘한 심상이 떠오른다. 좋은 흙을 감별하기 위한 매서운 눈매가, 애지중지 만지고 물매를 돌리는 손발의 감촉이, 질 좋은 나무를 기원하듯 던져 넣는 벌건 열기가 교차해 보인다. 몇몇 제대로 된 물건을 보며 옅은 미소를 짓는 도예가의 모습과 이 도자기를 사들여 달을 보듯, 자연을 보듯, 세상을 보듯 즐거이 감상할 어떤 이의 모습도 스쳐 보인다. 마음을 담아, 삶을 담아 지은 도구 앞에서 묵직한 교감이 일어난다.
■미래에 남길 옷을 깁다 - 조각보박물관
국내 유일의 '조각보박물관'이 해운대 신도시에 있다. 늘 지나던 길이건만 그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니 이건 너무한 일이다. 공간과 전시 내용을 둘러보고는 얼른 소개해야겠다 싶어 마음이 급해졌다. 조각보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전에 책을 통해 매료된 바 있었으나 이렇게 다양하고 화려한 작품들을 직접 대면하게 보니, 얼마나 문화에 몽매하고 게을렀던가 싶어 자괴심마저 든다.
이 집의 주인장 주천 김순향 선생은 침선 장인이며, 더불어 민속문화에 대해서도 조예가 깊다. 그래서 박물관의 2층에는 '주천문화원'을 같이 두어 다도와 침선, 전통예절에 대한 나눔과 교육을 열고 있다. 각종 다기와 소반, 좌식 테이블, 병풍이 조각보와 더불어 한데 어우러져 있어 전통문화를 전수하기에 안성맞춤인 공간이다.
박물관에 전시된 작품들은 어느 하나 할 것 없이 장인의 인고(忍苦)의 시간과 창작의 열의가 담보되어 있다. '우주를 삼키는 인내'가 필요하다고 말할 만큼 한 땀 한 땀 연이어 꿰매는 작업 과정은 절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미루어 짐작이 간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모든 작품의 색채 감각이나 조형성이 매우 뛰어나다는 사실이다. 각각 크기와 색이 다른 세모와 네모의 조각들은 연접하고 중첩되면서 작은 부분들이 모여 큰 전체를 이룬다. 자연의 생성원리와 같이 밀고 당기는 조율 가운데 고유한 하나의 형상을 갖춘다. 가히 몬드리안이나 피카소의 작품에 견줄만하며, 현대 회화의 새로운 한 영역으로 분류한다 하더라도 전혀 손색이 없다.
적색과 녹색이 맞물려 돌아가는 듯 꾸민 '톱니바퀴', 탑을 상부에서 내려다본 구도의 '탑보', 긴 삼각조각을 사선으로 이어붙여 역동적 구성을 한 '바람개비',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한복 옷감 토막들로 만든 꽃 같기도 보석 같기도 한 '무제'의 추상작품이다. 숱한 이미지를 은근히 불러 세우는 수작 앞에서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는다. 추상적인가 싶다가도 그 본성의 따뜻함이 묻어나고, 현대적 성향을 과감히 내비치면서도 전통적 감각을 품속에 담고 있다. 어디서도 본적 없는 이런 정교한 작품에 방문한 외국인 관람객들은 감탄을 연발한다고 한다.
선생은 아무리 복잡한 작품이라도 미리 스케치하는 법이 없다고 한다. 색감을 구상하고 색을 배합하는 모든 과정이 삶에서 느끼고 체득한 것을 몸 밖으로 그대로 흘려 내보내는 방식이다. 그러니 작품은 기계적으로 짜내는 것이 아니라, 몸이 살아온 궤적을 따라 짓는 것이다. 짓기 이전에 이미 삶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오늘을 사랑하고 내일을 상상하며 만드니, 이것은 단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미래에까지 남아 있을 삶이 된다.
■장인은 삶을 짓는 이들이다
도자기와 조각보라고 하는 전혀 다른 콘텐츠이기는 하나, 따지고 보면 참으로 공통점을 많이 가지고 있다. 신경균 선생은 한국 대표적 도예가인 장여(長如) 신정희 선생의 자제로 어려서부터 맹렬한 훈련을 받았다. 지금도 여전히 전통방식 그대로 장작가마와 목물레를 사용하여 작품을 만든다. 김순향 선생 역시 할머니와 어머니로부터 바느질 솜씨를 그대로 전수받아 지금도 그 많은 수작업과 작품의 구상을 직접 진행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전승에 매여 있지 않고 시대를 앞서 나가 미래에 남을 문화적 소산을 남기고자 하는 점도 닮았다.
흙과 옷감조각에 생기를 불어넣고, 손의 기억으로 연신 다듬어 만들되 매일 새롭게 만들고자 한다.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적 지속성과 땅, 하늘, 자연, 그리고 인간의 문화라는 장소적 지속성을 함께 버무린다. 이들이 짓는 도구는 손에서 떨어져 나가 있는 단순한 대상이 아니다. 이것은 손에 딱 들러붙어 있는 삶 그 자체이다. 삶을 짓고, 집을 짓고, 몸을 짓고, 내일을 짓고 있다. 우리 곁에 정신이 맑은 이런 장인들이 있음이 참으로 귀하다.
사진=조각보박물관 제공
동명대학교 실내건축학과 교수 yein1@tu.ac.kr
장안요 | 위치 | 부산시기장군 장안읍 장안리 307 | 시설 | 전시장 1~2층, 가마 | 관람시간 | 오전10~오후7시, 예약 필수 | 문의 | 051-727-8216(갤러리) 070-4113-3156(가게) www.janganyo.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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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보박물관 | 위치 | 부산시 해운대구 좌동 1352-3 | 시설 | 전시장, 문화원, 뒷뜰 | 관람시간 | 화~금 10~6시, 하루 전 사전예약 필수 | 문의 | 051-744-0026, 051-744-0196 www.조각보박물관.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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