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은행나무 두 그루. 장미 덩굴, 푸른 잔디 뜰, 그 사이로 난 오솔길, 붉은 벽돌로 지어진 연립형 아담한 주택과 집을 감싸고 올라 간 담쟁이, 천정 높은 레스토랑과 아주 작은 바...... 어느 도시공간에 각인된 도시의 추억들이다. 그 안에는 크고 작은 편린들이 삶의 정원을 이루고 있다. 정원은 어두운 밤 하늘에 총총한 별의 영롱함과 띠를 두르고 있는 은하수처럼 아름답다. 난 지금도 그렇지만 유화(油畵)보다는 수채화(水彩畵) 같은 본질을 사랑하는 청년이었다. 그 안으로 오늘 들어가기 위하여 아침부터 분주했다. 오전9시 예약된 제노의 진료를 위해서.. 앞 좌석을 앞으로 바짝 당기고 뒤 좌석 공간을 크게 만든 후 슬리핑 백과 메트레스를 말아 올려 그 위에 발을 올려놓게 한 후 아파트를 출발하였다. 잿빛 하늘과 늦은 가을 강변에서 느낄 수 있는 쓸쓸한 애상(哀想)도 출근시간 때라 사 치었다. 수많은 위험 요소를 극복한 후 도착한 병원, 예정보다 15분 지체되었다. 수속을 한 후 문진을.... 그리고 치료실로 옮겨 재차 진료의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 것이다. 착오로 MRI 일정이 빠진 것이다. 일정상 시간이 없어 도저히 할 수 없으나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촬영을 하기로 하여 완료하였다. 그럴 즈음 제노의 언니와 오빠가 와 한 달에 한 번씩 갖는 가족회의 겸 문병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그리고 오전 근무자였던 전문의도 오후까지 진료시간을 연장하여 영상물 판독을 하기로 하였다. 점심 식사 후 2시까지 약속이 잡혔다. 그 사이 우린 옛 스칸디나비아 클럽이 있던 건물로 가 점심을 챙기며 가족모임를 겸한 식사 나눔을 가졌다. 모처럼 온 이곳은 한국에서 최초 시작한 바이킹 식 뷔폐식당이 있었다. 6.25 전쟁 중 의료진을 파견하여 우리나라를 돕던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3국의 도움을 받아 세웠던 NMC,(國立醫療院)을 지속적으로 돕기 위하여 설립한 한스 재단에서 운영하던 바이킹뷔폐식당, 이런저런 사유로 찾던 곳이다. 지금은 한식 위주로 변해 과거 속으로 묻혔다. 그리고 이곳에서 근무하던 수많은 의료진들과 인연 또한 과거 속의 인연으로 흩어졌다. 시간은 현실의 모든 인연들 끊어 버리고 과거 속으로 차곡차곡 숨겨 놓는다. 표면적인 것들이 사라진 낮섦음을 통하여 옛일들을 회상하는 시간이 몰려왔다. 시간적 여유가 별로 없어 비빔밥 종류를 시켜놓고 커다란 창밖을 보면서 잠시 과거 속에 머물렀었다. 식사 후 시계를 보자 약속한 시간이 다가왔다. 외래로 가 다시 영상물 기준으로 진료의 시간을 가졌다. 1) 관절 부근 뼈 크랙, 2) 연골 손상 의심. 보행이 불편하니 일단 입원하는 것으로 결정, 그리고 금요일까지 모든 시술 완료하고 향후 1개월 반 정도 보행을 자제해야 하는 것으로 소견을 가졌다. 단 방사선과 전문의 소견을 첨가할 경우 변경 사유는 있었다. 일단 절차를 거쳐 정형외과 병동 본관 6층 남산타워가 보이는 병실에 입원하였다. 저녁 다시 MRI 실에서 연락이 왔다. 의심스러운 부분을 정밀 촬영을 하자는...
다시 촬영을 끝낸 후, 다음날 아침 최종 결론을 얻기로 하였다. 환자에게 필요한 물품을 준비하기 위하여 귀가하여 준비해 놓고 잠을 청했다. 아침 물품을 다시 챙기며 사진을 찍어 제노에게 보냈다. 오른쪽 것 그리고 맨 왼쪽 것 이런 식으로 주고받으며 갖고 갈 물품을 챙겼다. 그리고 떠나려 하자 연락이 왔다. 보람 아빠! 응~ 차를 갖고 오셔요. 왜? 퇴원해도 좋다네, 응?? 알았어 일단 갈게, 항상 다니던 길이라 낯설지 않은 동호대교, 장충동 길, 출근할 때 항상 함께 했었다. 저녁은 내가 늦는 경우가 많아 각자였지만 아침은 먼저 내려준 후 나의 근무지로 가는 것이 매 일상이었다. 차 속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가다 보니 좋은 점이 많았다. 그러다 일이 바빠진 나는 차를 준비해 주었다. 스텔라라는 차를 주었더니 너무 대형 차라고 싫어했다. 그래서 붉은색 소형차를 이어서 노란색 소형차를 몰도록 준비해 주고 정비는 내가 알아서 세차와 함께 해 주었었다. 모처럼 차를 타보면 차를 정말 잘 몰았다. 거침없이 모는 모습을 보면서 다른 내면을 보는 것 같아 참 신기한 생각이 들어었지.... 동호 터널을 빠지면서 나도 모르게 옛일을 회상하며 미소를 지었다.
병실에 도착하여 입실하려 하자 제노의 침대 곁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옛 함께 근무했던 후배들이었다. 현직에 있는 사람들이 입원 소식을 듣고 문병차 방문한 것이다. 복도 끝 데라스 부근에 머물며 잠시 기다렸다. 긴 시간이 흘러도 기다려야 했다. 그러다 한스 클럽이 있던 정원 산책을 나와 버렸다. 커피 한 잔을 들고 걸으며 이곳에서 있던 삶의 체취들을 떠 올리며 당시 인연 짓던 추억을 되새김했다. 喜怒哀樂이 섞여 있는 삶의 추억들 언젠가 회고를 할 때 적어 놓으려 한다. 그리고 아이들의 아이가 또 그 아이의 아이가 가문의 역사가 궁금할 때 펼쳐 보게 하려고 한다. 병실로 돌아 오자 환자가 없어졌다. 근무자에게 행방을 묻자 통증재활과로 갔다는 것이다. 1층 로비로 가 찾았다. 휠체어를 몰며 내가 없을 때 생긴 이야기를 제노가 해 주었다. 정밀 진단을 다시 해 보니 시술을 할 만큼 상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 통증재활로 방향을 본인이 바꿔다는 것이다. 퇴원 수속을 밟고 있는데 정형외과 전문의가 방문하였다. 주사를 처방하였으니 맞고 효과를 체크하며 상태를 보자 한다. 본인은 손을 안대는 것이 좋지만 지금 느끼는 통증을 없애야 한단다. 병원비 정산과 퇴원 후 통원 예약과 관련한 비용 선 지불한 후 금요일 오전 통증재활 의학과를 방문하기로 하였다. 며칠 관망하며 통증을 잡아야 한다. 나이를 먹으면 결국 약해진 몸 이것저것에서 우리를 괴롭히는 신경 통증이 문제다. 근육을 평소 강화시켜 주어야 하는 이유는 뼈를 보호하고 각 신경계통이 제 위치에서 자기 역할을 도모해 주는 일이다. 걸으면 웬만한 작은 병에서 큰 병까지 자연치유가 된다.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