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락(獨樂)이란 말은 원래 아름다운 자연을 벗삼아 홀로 유유자적(悠悠自適)하면서 안빈낙도(安貧樂道)를 꿈꾸었던 옛 선비들이 붙여 사용하던 말이다. 이는 번잡한 세상사에 얽매이지 않고 나름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염원(念願)이라 생각된다.
중국에서도 동진(東晉)때의 도연명(陶淵明)은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와 『좋은 때라 생각되면 홀로 거닐고 때로는 지팡이 세워놓고 김을 매리라. 동쪽언덕에 올라 조용히 읊조리고 맑은 시냇가에서 시를 짓겠다』면서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지었고 북송(北宋)때의 재상이었던 사마광(司馬光)도 조정에서 퇴출되자 낙양(洛陽)에 은거하면서 자기가 사는 뜰을 독락원(獨樂園)이라 이름하고 독락생활을 즐겼다. 사마광은 자신이 쓴 독락원기(獨樂園記)라는 글을 통해 不知天壤之間, 復有何樂, 可以代此也(부지천양지간, 부유하락, 가이대차야)라 하였는데, 풀이하자면 천지사이(세상)에 어떤 즐거움이 이것(독락생활)을 대신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말이다.
우리나라 역시도 자연과 더불어 은거하면서 독락의 즐거움을 예찬했던 선비들이 많았다. 조선시대의 정극인(丁克仁)은 상춘곡(賞春曲)을, 송순(宋純)은 면앙정가(俛仰亭歌)를, 윤선도(尹善道)는 오우가(五友歌)를, 정철(鄭澈)은 성산별곡(星山別曲)을 지었고 여러판서(判書)를 두루 지냈던 이언적(李彦迪)도 벼슬자리에서 물러나자 고향인 경주에 낙향하여 독락당(獨樂堂)이라는 사랑채와 계정(溪亭)이라는 정자를 짓고 시를 지으며 학문에만 열중했다고 전해진다.
오우가 서시(五友歌 序詩) / 고산 윤선도
나의 벗이 몇인가 헤아려 보니 수석(水石)과 송죽(松竹)이라.
동산에 달이 밝게 떠오르니 그것은 더욱 반가운 일이로다.
나머지는 그냥 두어라. 이 다섯 외에 더 있으면 무엇하리
추강(秋江)에 밤이 드니 / 월산대군(月山大君)
추강(秋江)에 밤이 드니 물결이 차노매라
낚시 드리우니 고기 아니 무노매라
무심(無心)한 달빛만 싣고 빈 배 저어 오노매라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안빈낙도하는 독락생활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갖지만 주머니 사정이나 배우자의 반대 등, 여러 형편 때문에 실행에 옮긴다는 것이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남들과 어울려 조직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혼자라는 사실을 대부분 잊고 지내다가 막상 은퇴라는 문턱을 넘어 혼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문뜩 깨닫게 될 때에는 누구나 할 것없이 심리적으로 심한 허탈감과 많은 갈등을 겪게 된다.
더구나 자녀의 혼수 준비, 부채(負債), 건강 등 여러 사정으로 인해 경제적 여유마저 없을 경우에는 그 강도가 더욱 심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현업에 있을 때 미리 은퇴 후 쓸 수 있는 용돈을 어느 정도는 마련해 두어야 한다. 물론 우리네 사람들 중에는 노후걱정이 전혀 필요없는 사람들도 많다. 자격증을 가지고 평생 직장생활 하는 사람들도 있고, 또한 일찍부터 혼자 즐기며 사는 것에 익숙한 이들도 있다. 시나 소설을 쓰는 문인들,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을 하는 예술가들, 그리고 나는 자연인이다- 라는 방송 프로의 주인공들이 그 대표적인 사례인데 그러나 이들은 혼자 지내는 일이 일상생활이기 때문에 보통의 직장 은퇴자들과는 비교가 적절치 않다.
여하튼 수명이 길어진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있어 여생을 힘들지 않게 살아가려면 미리 미리 나름의 계획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서 저축을 통해 노후를 대비하고 운동을 통해 건강을 관리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은퇴 후, 혼자서 지낼 수 있는 소일거리를 만드는 일이다. 요즈음 은퇴자들 중에는 『문밖을 나서니 갈 곳이 없구나』라면서 자탄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스개 소리 같지만 세간에서는 이들을 두고 불백, 가백, 월백, 화백이라 하기도 하고 영식님, 일식씨, 이식이, 삼식놈이라는 말로 회자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은 이미 소속감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마땅히 갈 곳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들을 자포자기하고 허송세월하면서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
경험을 살려 마땅한 일거리를 찾을 수만 있다면야 더욱 바람직하겠으나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스스로가 혼자 즐기며 살아갈 수 있는 독락의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나름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옛 선비들의 경우에는 주로 소요(逍遙-산책)와 독서를 통해 자신을 다스렸다. 지금은 물론 시대가 바뀌었다고는 하나,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을 성 싶다. 각자의 취향이나 여건에 따라 다를 수는 있겠지만 비교적 경제적인 방법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을 수 있다.
우선은 독서이다. 평소 읽지 못했던 책들을 골라 읽는 것도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이다. 공공도서관을 이용하는 것도 좋고, 가끔씩 책방에 들러, 읽고 싶은 책 한 두 권을 사다가 읽어 보는것도 좋다.
다음으로는 전원생활이다. 시골전원생활이 여의치 못하다면 요즘에는 도시 주변에도 소규모 텃밭을 임대하는 경우가 많다. 텃밭을 가꾸며 전원생활을 해보는 것도 마음을 다스리는 괜찮은 방법중 하나이다.
그 다음으로는 어디든 마음에 드는 길을 찾아 그저 멍청히 걸어보는 일이다. 『내려올때 보았네 올라갈때 못 본 그 꽃』이란 고은의 시처럼, 홀로 묵묵히 걸으면서 자신을 성찰하고 나름 깨달음까지 얻는다면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과거에 아무리 좋은 꽃길만을 걸으며 살았다 해도 우리네 삶은 유한한 것이다. 천희만락(千喜萬樂)도 일춘몽(一春夢)이요, 부귀영화(富貴榮華) 또한 일편부운(一片浮雲)이라 하지 않았던가! 오동잎이 떨어지면 가을이 왔음을 알아야 한다.
소질이나 취향이 있는 사람들은 글을 써보는 것도 좋고, 재즈(Jazz)나 고전음악 감상은 물론, 박물관이나 화랑 같은 곳을 순회하면서 우리의 문화재나 멋진 그림들을 감상해 보는 것도 좋고, 명상에 빠져보는 것도 좋다. 악기를 배워보는 것도 좋고 고전을 이해하거나 어학공부를 해보는 것도 권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