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때 귀젖(중이염)을 아주심하게 앓았다. 그것도 왼쪽귀만 그랬다. 귓속에서 누런고름이 매일 흘러내렸다. 목화밭에서 수확한 꼬투리속의 하얀솜을 비벼서 늘 귓속을 막고 다녔다. 어떤날은 자고나면 왼쪽얼굴 턱부분까지 고름이 흘러내린 적도 있었다. 가끔은 엄마손을 잡고 읍내에 있는의원에게 치료를 받았지만 좀처럼 낫지 않았다. 내가 철들무렵(7살경)에야 왼쪽귀가 전혀 안 들린다는것을 느낄수가 있었다.고막이 완전히 상실되었기 때문이다.나는 그것이 정상인줄 알고있었으니, 그당시 인체공학에 대한 나의 지식은 그정도밖에 안되었던 모양이다.
초등학교 저학년때는 그냥 지나갔는데 상급학년이되니까 학교에서 신체검사를 실시했다. 신체검사라야 담임선생님이 교실에서 추저울과 줄자 손목시계랑 시력표를 준비하여 앉아!서!를 두어차례 시키면서 사지판단을 하고 추저울은 몸무게, 줄자는 가슴둘레를 측정하는정도의검사 방법이다. 그리고 청력 검사는 손목시계로 한다. 나의 청력검사 차례가 왔다. 전면을향해 의자에앉아 눈을감고 있으면 선생님께서 등뒤에서 손목시계를 오른쪽 왼쪽귀에 번갈아 들이대고 째깍째깍 소리나는쪽 손을 들라고 하셨다. 처음엔 오른손 몇초 지난후 왼손을 들었다.
당연히 정상으로 통과하였다. 왜냐하면 먼저한 친구들의 검사방법을 보았기에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나는 늘 그런수법으로 나 자신을 속이고 고등학교까지도 1급으로 신체검사를 통과하였던 것이다.
나의 신체1부분에 문제가 있다면 남들이 나를 병신이라 취급할까하는 두려움과 자존심 때문이었을것이다. 내나이 19세가되어 남자들이 다가는 군대에가기위해 징병검사에서도 갑종1급을 받고 이듬해
징집통지서를 받았다. 그런데 그 당시만 해도 돈있고 빽있는집 아들은 현역에서 제외 보충역으로 편한생활을 하였다.36개월이란 군대생활을 해야하는 현역에 비하면 보충역은 고작 14개월 정도만 고향이나 후방에서 출퇴근으로 방위근무를 하면 병역의무를 마치게되는 그런제도가 있었다. 돈도 없고 빽도없는 나보다 4살이나 많은 형님은 휴전선근처 최전방 근무로 엄청 많은 고생을하고 제대하였기에 방법만 있으면 현역복무는 안하는게 좋다고 하였다. 그런데 어쩌겠나? 갑종1급인데. 입영일자 하루전 동네사람들 불러놓고 입대식겸 송별잔치를 크게벌렸다. 군대에 가면 영영 돌아올수없는 마지막이 될수도 있다는 염려도 있는듯 하다. 월남전이 한창일때라 파병으로가서 죽은사람도 꽤있다고들했다. 나는 입영일자에 집결지인 영주중부초등학교로 갔다. 내가 아는 친구들도 몇몇 보였다.논산훈련소에가서 함께 군생활 잘 해보자고 다짐도 하였다.
계급장을단 군간부가 단상에서 환영한다면서 논산까지 열차이동중 주의사항등을 연설하였다. 도중에 휴식시간이 주어지길래 화장실에 갔는데, 나는 거기서 묘한 이야기를 엿들었다. 중사계급장을 단 군인과 어떤사람이 나눈 대화중에 여기서 빠지면 보충역으로 갈수있다는 말과함께 무엇인가를 주머니에 넣어주는 모습을 엿볼수 있었다. 순간 나는 이것이 부조리이구나 싶었다. 그러면서도 나도 어떻게 보충역으로 빠질수 없을까 하는 생각에 잠겼다. 화장실용무를 마친 나는 미리 밖에나와 대기를 하였다. 용기 백배하여 화장실에서 혼자나오는 중사를 붙들고 애원하듯 말했다. 어떻게 좀~~, 제가 왼쪽귀가 안들리는데~~~ 하면서... 주저 주저하는데, 중사가 하는말이 다시모여 결격자 조사를 할때 손을들고 앞으로 나오라는 것이다. 아마도 그분은 내가 자기들의 현장을 보았다고 눈치챈걸로 보였다.그리하여 나는 거기서 귀가조치되어 몇주후 대구국군통합병원에가서 정밀신체검사를 받고 좌측청력상실로 다음해 다시 정밀검사를 받으라는 군의관의 통보와함께 돌아와 하던 직장생활을 하였다. 나와 엄마와 형님만 이사실을 알고 계셨고 다른사람은 아무도 모르게 비밀로 하였다. 이렇게 또 다음해에 정밀신체검사결과 4급으로 판정 보충역이 되었다. 그리하여 고향 예비군중대에서 14개월 12일간을근무하고 병역의무를 완수하면서 자격증도 취득하면서 사회생활에 필요한것을 준비할수 있었다. 신체적 장애를 숨기면서까지 학교생활 직장생활등 사회생활을 하는데는 불편함도 적지 않았지만 자존심 때문인지는 몰라도 참을수밖에 없었다. 학교에서나 회의석상이나 모임에가면 지정석이 아닌이상 내자리는 항상 맨 앞줄 왼쪽자리로 정해진다. 나이가 드니까 잘 들리던 우측귀 마져도 청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결국은 55세되던해 어쩔수없이 모든 사실을 털고 이비인후과를 찾아가서 좌측청력회복불가.우측보청기착용요함 이라는 진단.처방과함께 청각6급장애등급 판정을받고 보청기를 제작 착용하고있다. 자녀들에게도 숨겨왔던 청각장애가 들통이났다. 이제나이 70 이되고보니 주위에 보청기 착용하신 분들을 쉽게 만날수가 있다. 나로서는 크게 자격지심이 훼손되지는 않는것 같다. 나이들면 다 그런거지 뭐. 눈 멀고 청력 떨어지는것은 자연의 현상이 아니든가. 벌써 보청기가 3개째다. 지금은 5년에 한번씩 국가에서 보청기 구입비를 복지예산으로 지원해 준다 .세상은 좋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