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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내과를 찾는 환자 중에서 소화기계통의 환자가 가장 많다고 하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조금 주의 깊게 관찰해보면 난치병들 중의 하나인 암의 경우, 우리나라에서의 발병 빈도를 살펴보더라도 소화기계통의 암이 가장 많음을 알 수 있다. 즉 남성의 경우 가장 많이 발병하는 암이 위암이고 그 다음으로 간암과 폐암이 2, 3위를 놓고 엎치락 뒷치락을 하고 엄연한 4위 자리에는 대장암이 자리 잡고 있다. 여성의 경우 자궁암과 유방암이 합류할 뿐 마찬가지로 위암, 간암, 대장암이 상위 5위안에 포진하고 있을 정도로 소화기계통은 각종 하찮은 질병으로부터 난치병까지 온갖 질병의 온상이 되고 있다. 위암, 간암과 대장암을 똑같은 선상에서 그 원인과 결과에 대해서 논할 수는 없다. 지금까지 알려져 온 그 질환들의 원인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단지 위장관 질환과 관련된 최신의 정보를 소개하고 이 기회를 통해서 기존의 문제점과 진단과 치료방법에 있어서의 발전을 소개하고자 한다. 위암은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사는 정도가 다소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진 동남아 국가들에 있어서 거의 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질환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나라들에서는 예외 없이 위염이나 위궤양과 같은 치유 가능한 소화기 질환도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내과적으로 이러한 위장관 질환의 원인으로는 대부분 음식물을 원인으로 생각해 왔다. 즉, 우리나라와 같이 맵고 짠 음식을 좋아하는 국가에서 많은 소화기 질환자들을 보고하였기 때문에 음식물이 각종 소화기질환의 전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하는데도 무리가 없는 것으로 받아 들여져 왔다. 그러나 1980년대 말에 들어서면서 만성 위염이나 위궤양의 원인이 반드시 음식에 의해서만 발병하는가에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하였고 급기야는 그 내부환경 (강한 산의 존재) 때문에 많은 내과의사들이나 미생물학자들이 거의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미생물이 위 속 (정확히는 위장 점막하조직)에 생존하고 있고 그 균들 때문에 위염이나 궤양이 생길 수 있다는 보고를 하기에 이르렀고 그 균의 이름이 초기에는 캠필로박터 필로리 (Campylo-bacter pylori)로서 소화기질환의 원인분석 및 그에 따르는 치료법 개발에 새로운 장을 열게 되었다. 그 후 균을 동정하여 배양을 하고 균의 각종 화학적, 미생물학적 성상을 규명하게 되었는데 매우 다행스러운 것은 이 균들이 시중에 흔히 나와 있는 페니실린 유도체의 항생제에 치료가 잘 되기 때문에 기존의 소화기질환의 치료에 획기적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실제 지금까지 국내외의 연구를 통해서 알려진 바에 의하면 십이지장궤양의 95 %가, 위궤양의 70 %, 그리고 위암의 70 %, 뿐만 아니라 위장관점막내 림프구로부터 기원된 림프종양의 100 %가 이 균과 관련이 되어 있다는 놀라는 보고가 제기되어 이 균을 적절히 제어하는 것은 건강을 위한 국민적 사업의 하나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현재는 이 균에 대한 많은 것이 알려져 있어 이름도 헬리코박터 필로리(Helicobacter pylori)라고 바뀌었고 이 균에 대한 치료방침이 명확히 정해져 있다. 따라서 최근에는 급만성 위염이나 궤양의 치료에 그 병변 자체치료를 위한 고전적 방법에 반드시 이 균을 살균하는 항생제 요법을 겸해야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H. pylori에 의한 감염은 미국을 위시한 선진 국가들에서는 한 번의 항생제 치료로 재발이 되지 않고 잘 치료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우리나라의 경우 재발 혹은 재감염으로 항생제 치료에 의한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 할 수 있다. 이 균에 대한 발견 자체가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외국학자들에 의해서 발견되고 주도적으로 연구되어 왔는데 1990년대 들어 많은 국내의 의학자들이 이 균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하기 시작하여 국내에서도 제법 여러 의학자들에 의해서 연구되어지고 있다. 국내의학자들의 보고에 의하면 학자간에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국민의 70 - 95 %가 이 균의 보균자라는 놀라운 보고다. 그리고 그 전염의 방식이 소위 경구감염으로 알려져 있어 화장실 문화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준다. 즉, 화장실을 나온 후 손을 씻는 것이 생활화된 미국 등의 선진국에서는 보균율이 20 %대에 머무는데 반해 화장실을 나온 후 거의 손을 씻지 않는 우리나라의 경우 보균율이 높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높은 보균율은 계속되는 재감염의 우려로 항생제 치료의 효용성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근본적인 대안이 절실하다 할 수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비타민-C 복용이 헬리코박터에 의한 위암발병률을 낮추어 준다는 보고가 나왔고 많은 헬리코박터에 의한 위, 십이지장궤양 환자들이 비타민-C 복용으로 치유되고 있다는 보고가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울러 지난 해에는 이 균의 유전자가 완전히 밝혀져 H. pylori에 대한 예방주사(vaccine)를 만들어 항구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장티푸스나 콜레나 등의 예방접종을 통해서 상당수의 장티푸스, 콜레라 환자를 퇴치하고 있는 바와 같이 그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할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너무나 많은 보균자를 가진 나라에서는 적극 추진되어야 할 치료방법으로 생각된다
◎ 2002. 11.03/ 이왕재(서울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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