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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ickr ‘주디 누아르’ 회원들이 파리 시내의 빈 건물에 들어가 주거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내딛거나 부모로부터 독립한 프랑스 젊은 층이 겪는 첫 번째 어려움은 집 구하기다. 해마다 오르는 월세를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프랑스의 비싼 임대료에 저항하는 운동단체도 생겨났다. 2006년에 설립된 주디 누아르(Jeudi noir) 협동체는 빈 건물에 들어가 집단으로 생활하며 주거 문제를 비판하는 다양한 시위를 조직하고 있다. 이들을 찾아 프랑스 젊은 세대의 불안한 주거 현실을 살펴봤다.
파리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파리 5구의 생 미셸. 레스토랑이 즐비한 하프 거리의 가운데 건물 벽 위로 ‘2004년부터 빈 건물, 크루스는 매달 거주자 한 명당 3000유로를 요구한다’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이곳은 예전에 파리 대학 장애인을 위한 보건센터로 현재 주디 누아르 협동체가 접수해 생활한다.
총 500㎡의 3층 건물인 이곳은 지난 1월14일부터 젊은이 10여 명이 점거해 사는 스콰트(Squat:빈집 무단 점거)다. 이들은 20대 초반에서 30대 중반까지의 학생, 비정규 직장인으로 공동생활을 한다. 이들이 건물을 무단으로 점거해 모여 사는 까닭은 하나다. 집을 빌릴 돈이 없기 때문이다. 이곳에 사는 니콜라스 씨(33)는 영화 조감독이다. 프랑스 남쪽 지방 페르피냥 출신인 그는 두 아이의 아빠로 2년 전 이혼했다. 그 후 영상 분야 쪽 일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은 파리로 상경했지만 그가 겪은 첫 번째 어려움은 주거 문제였다.
일정한 수입이 없는 비정규직인 그에게 자신만의 아파트를 찾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아파트를 임차하려면 일정한 수입과 보증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결국 친구 집과 싸구려 호텔을 전전하다 주디 누아르를 통해 스콰트 생활을 하게 됐다.
여대생 모르강 씨(26) 처지 역시 마찬가지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소르본 대학에서 역사학 석사과정에 재학 중인 그녀는 대학에 입학하기 전 일을 시작했다. 직장이 있을 때는 보금자리가 있었지만 계약기간이 끝나고 실업 상태가 되자 상황은 달라졌다. 갈 곳이 없어진 그녀는 잠시 여행을 떠났다가 사촌 소개로 이곳에 입주했다고 한다.
매달 전기세와 물세로 100유로 지불
일반 주택은 아니지만 대학 병원센터 건물은 10여 명이 살기에 크게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 1층에는 공동 거실과 부엌이 있고 2층과 3층에는 각자의 방이 있다. 4년 동안이나 비어 있던 건물에서 전기나 물은 어떻게 해결할까? 빈 건물의 전기나 물을 끊는 일은 없다고 한다. 생활은 여러 명이 함께 사는 만큼 청소나 정리 등 최소한의 규칙만 서로 지키면 될 뿐 개인 생활에 간섭하는 일은 없다고 한다. 단, 매달 전기세와 물세를 한 사람당 100유로씩 내야 한다. 나중에 이 건물에서 나가고 난 뒤 그동안 사용한 전기와 물 요금을 지불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스콰트 생활은 무단 점거인 만큼 언제 어떻게 쫓겨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 게다가 법원에서 정한 유예기간 마지막 날인 5월23일이 며칠 남지 않았다. 현재 이들은 거주 기간을 연장하기 위해 건물주인 최고교육부 측과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이 건물의 재건축이 시행되기 전인 9월 말까지 기간을 연장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결과를 예측할 수 없고 이곳에서 나오면 또 다른 보금자리를 찾아야 한다. 그나마 이곳은 나은 편이다. 파리 15구 세브르에 있는 스콰트의 경우 무단 거주에 대한 집주인의 고발로 법원에서 5000유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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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디누아르 제공 ‘주디 누아르’ 회원의 깜짝 ‘시위 파티’(위)에는 춤과 음악 그리고 샴페인이 빠지지 않는다. |
“주거는 소유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프랑스의 18~29세 젊은이 가운데 56%인 500만명은 부모로부터 독립해 생활한다고 한다. 독립하는 데 제일 중요한 첫 단계는 살 집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런데 해마다 상승하는 집세를 감당하기가 벅차다. ‘불평등에 관한 연구’의 주택 전문 연구가인 발레리 슈네이더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1998년부터 2008년까지 월세가 40% 올랐다. 지방과 수도권이 차이가 나는데 특히 파리의 경우 집세는 살인적이다. 보통 15~20㎡ 스튜디오 임대료가 500~700유로 정도(약 85만~120만원) 한다. 이런 집을 구하려면 일정한 수입이 있거나 또는 든든한 보증인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파리에서 임차한 자신의 아파트에 살면 럭셔리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프랑스 정부는 학생이나 월급이 적은 직장인에게 주택보조금을 지원한다. 집의 조건에 따라 다르지만 170~200유로(약 28만~34만원) 정도의 보조금이 나온다. 하지만 집주인들은 이를 계산해 월세를 더 올리기 때문에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
임차료가 치솟으면서 기댈 곳은 부모 등 가족의 지원이다. 그런데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서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사람은 열악한 주거 환경을 받아들여야 한다. 일명 하녀방이라 불리는 건물 꼭대기층에 수도 시설이 없는 곳, 복도의 화장실 및 샤워 시설을 함께 사용해야 하는 곳, 습기가 차는 집 등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또 집이 너무 작거나(10㎡ 미만) 돈이 없어서 난방을 사용할 수 없는 이들도 있다. 그래도 집을 구할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해결책은 친구 집에 얹혀살거나 단기 임차를 하거나, 무단 거주(스콰트) 그리고 마지막은 거리의 노숙자 텐트다.
일정한 직장을 구해서 힘들게 집을 사는 경우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보통 은행 크레디트를 통해 집을 사는데 높은 이자 때문에 대출 상환기간이 20년에서 30년 걸린다. 즉, 30대에 집을 사면 50~60대에 이르러서야 그 집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상황이 이쯤 되면 가만히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만들어진 단체가 ‘주디 누아르’다. 주디 누아르는 검은 목요일이라는 뜻이다. 역사적으로는 1929년 미국 월스트리트의 경제 위기를 상징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보통 목요일에 열리는 시위를 지칭함과 동시에 집을 찾는 이들의 심정을 담은 표현이기도 하다. 프랑스에서 집을 구하는 이들은 매주 목요일에 발간하는 벼룩신문의 일종인 <PAP(Particulier a Particulier)>를 참고한다. 이 신문을 통해 집 매매 및 임대 상거래를 직접 할 수 있어 많은 이가 찾는다. 그런데 신문에 나온 집 임대 광고는 집 찾기의 문턱이 얼마나 높은지 보여준다. 비싼 월세와 까다로운 보증 조건도 문제지만 후보자 수십명 가운데 낙점되기란 쉽지 않다. 특히 파리가 그렇다. 그래서 집 찾는 이들에게 목요일은 우울한 날이다.
주디 누아르는 2006년에 6명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졌다. 주거는 소유가 아니라 생존임을 보여주는 운동단체다. 그들은 특히 날로 상승하는 월세와 주거 공간의 불평등을 다양한 방식으로 공론화하기 위해 투쟁한다. 그들이 즐기는 투쟁은 게릴라 방식으로 이뤄지는 깜짝 방문이다.
2006년 10월28일 첫 투쟁으로 파리 17구의 부동산 중개 사무실을 깜짝 방문했다. 이곳은 파리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가 모인 동네로 부동산 중개 사무실만 해도 몇 백 개에 달한다. 주디 누아르 회원 수십명은 특별한 의상과 음악, 전단, 종이 꽃가루를 준비했다. 준비물에 샴페인도 빠질 수 없다. 약속 시간에 맞춰 그들은 기습적으로 부동산 중개 사무실에 들어가 30분 동안 점거했다.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면서 샴페인을 직원과 나눠 마시며 자신들의 취지를 설명했다. 이때 부동산 중개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원 2명이 자신들 역시 집 구하기가 어렵다는 아이러니한 고백을 했다고 한다.
주디 누아르의 유쾌한 ‘주거 운동’
또 다른 투쟁으로는 세입자를 구하는 집을 찾아가는 것이다. 임대 아파트 가운데 크기에 비해 비싼 아파트를 찾아서 집단 방문하는 것. 약속에 맞춰 회원 60여 명이 몰려들어 부동산 중개인이나 집주인에게 비싼 집세에 대해 항의하는 시위를 벌인다.
2009년 3월에는 ‘주택 살롱전’에 나타나 전단과 꽃가루를 뿌리며 주택의 불공평성에 대해 항의했다. 또 파리의 빈 건물에 들어가서 깜짝 파티를 벌이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이들의 투쟁에서 빠지지 않고 나타나는 감초 같은 존재가 있다. 가발과 재미있는 복장으로 디스코를 추는 디스코 킹. 그는 방문 투쟁을 유쾌하게 이끄는 데 한몫한다.
주디 누아르가 벌이는 30분의 깜짝 파티는 프랑스 언론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또 그들의 행동을 담은 비디오가 유튜브와 데일리모션을 통해 상영되면서 젊은 세대의 주거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이끌어냈다.
비록 집 없는 천사 신세이지만 주디 누아르 회원의 투쟁은 심각하기보다 장난기 가득한 즐겁고 유쾌한 운동이다. 이는 불안한 현실과 미래 속에서도 그들에게 젊음이 있기에 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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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아 | 주디 누아르 회원인 니콜라스 튀베르트 씨(사진)를 만나 프랑스 주거 문제와 빈집 무단 점거에 관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스콰트 생활을 한 건 언제부터인가? 지난해 11월부터다. 집을 구하지 못해 전전하다 주디 누아르와 결합하게 됐다.
파리에 스콰트가 여러 군데 있다. 그만큼 빈집이 많다는 건가? 그렇다. 파리 전체 건물 가운데 10%가 빈 건물이라고 알고 있다. 이 빈 건물을 합하면 10만5000명 정도가 살 수 있다고 한다. 건물주가 건물을 비워놓는 까닭은 여러 가지다. 집값이 상승하기를 기다리면서 건물을 세놓기보다 비워두는 경우도 있고, 상속 문제나 건물 가격이 너무 비싸서 매물이 안 되는 이유 등이다.
보통 빈 건물은 어떻게 발견하나? 산책하면서 건물이 비었는지 알아본다. 보통 창이나 문이 더럽고 밤에 불이 늘 안 켜져 있다. 주변 이웃에서도 정보를 얻는다.
스콰트를 결정하면 어떻게 건물에 들어가나? 절대로 건물을 훼손하지 않는 걸 원칙으로 한다. 문을 여는 데 크게 어려움은 없다. 그런데 집주인이 스콰트를 못하게 집 내부를 아예 망가뜨린 경우가 많다. 집주인들은 스콰트하는 것보다 내부를 부수거나 빈집으로 두기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집주인과의 갈등도 많을 것 같다. 그렇다. 보통 프랑스 거주법에 따르면 무단 거주자라 하더라도 겨울 동안(10월15일부터 다음해 3월15일까지) 내쫓을 수 없다. 주인이 이를 고발해도 겨울이 지난 뒤 유예기간을 넘겨야 법적으로 강제 퇴거가 가능하다. 그런데 지난해 15구 건물에서는 기간이 한 달 남았는데도 주인이 이를 어기고 경찰에 고발해 강제 퇴거를 시켰다. 그래서 우리가 법원에 고발해 결국 승소했다. ‘주인은 건물 거주자 각 개인에게 200유로를 보상하라’고 판결이 났다.
미래에 대해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나? 현재로서는 5년 앞을 내다보기 어렵다. 그렇다고 40세가 되어서도 스콰트로 살 순 없다. 그냥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나의 목표인 영화 연출을 위해 열심히 일할 뿐이다. 지금으로서는 나만의 공간을 구하는 게 급선무다. 이곳 생활이 불편하지는 않지만 불안정한 환경으로 인해 시나리오 쓰기 등 나의 개인 프로젝트에 집중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