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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편의 역법으로 역을 추산하게 하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25년 7월 6일(음력)자에 실린 기록이다. 내편의 역법이란 《칠정산(七政算)》. 조선의 독자적인 천문·달력 체계다. 세종실록의 기록은 1443년, 조선이 중국에 의존하던 시간과 달력, 기상과 천문 관측을 완전히 바꾸었다는 뜻이다.
칠정산은 문자 그대로 '7개의 움직이는 별을 계산한다'는 뜻. 해와 달, 5개의 행성(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의 위치를 파악해 절기는 물론 일식과 월식 등을 예보하는 역법 체계다.
세종대왕이 고유 역법을 만든 것은 중국의 역법이 부정확했기 때문이다. 위도와 경도 차에 따른 오차로 일식과 월식을 제대로 계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집현전 학자들을 대거 투입한 지 10년 만인 1442년 완성해 이듬해부터 적용한 《칠정산》의 정확도는 상상을 뛰어넘는다.
원나라 수시력과 명나라 대통력을 한양의 위도에 맞게 수정·보완한 《칠정산》, 〈내편〉에서는 1년을 365.2425일, 한 달을 29.530593일로 정했다. 현재의 기준과 소수점 여섯 자리까지 일치하는 계산이다. 아라비아의 회회력을 흡수한 〈외편〉은 원주를 360도, 1도를 60분으로 정한 새로운 기준을 담았다. 역시 오늘날 기준과 똑같다. 이 정도로 정교한 계산을 할 수 있는 나라는 당시 아라비아와 중국, 조선뿐이었다. 일본이 고유 역법 체계라고 세계에 자랑하는 《정향력》(1683)도 《칠정산》의 계산 체계를 전수한 조신통신사 일행 덕분이다.
《칠정산》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과학 한국의 상징물이다. 《칠정산》은 물론 혼천의, 앙구일부, 고도로 정밀한 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 등도 마찬가지. 한동안 잊혔던 조상의 과학적 전통은 재도약을 기약하는 한국인에게 세계 최고 수준을 되찾기 위한 디딤돌이며 자양분이다.
칠정산내편七政算內篇
유형분야
요약 『칠정산내편』은 원나라의 수시력의 원리와 방법을 이해하기 쉽게 해설하여 편찬한 역법서이다. 조선 전기 문신·천문학자 이순지와 김담 등이 세종의 명으로 1442년(세종 24)에 편찬하였다. 3책의 활자본이다. 칠정이란 일·월과 목·화·토·금·수의 5개 행성을 가리킨다. 이 책에서는 칠정에 관한 자료를 다루고 있다. 내용은 권두에 천체의 여러 상수가 실렸다. 다음 역일·태양·태음·중성·교식·오성·사여성 7개의 대목이 있다. 권말에는 동지와 하지 후 일출몰 시각과 밤낮의 길이를 나타낸 표가 실려 있다. 이 역서는 오늘날의 천체력 구실을 하고 있다.
내용
3책. 활자본. 원나라의 수시력(授時曆)에 대한 해설서이다. 칠정(七政)이란 일 · 월과 오성(五星), 즉 목(木) · 화(火) · 토(土) · 금(金) · 수(水)의 5개 행성(行星)을 가리킨 것으로, 이 해설서에서는 이들 천체의 운행에 관한 자료가 다루어져 있다.
세종은 1423년 우선 학자들에게 선명력(宣明曆) · 수시력(授時曆) · 보교회(步交會) · 보중성역요(步中星曆要) 등의 역법(曆法)의 차이점을 비교, 교정시켰다. 세종은 이어 1432년 예문관제학 정인지(鄭麟趾) · 정흠지(鄭欽之) · 정초(鄭招) 등에게 명나라의 『칠정추보(七政推步)』 · 『대통통궤(大統通軌)』 · 『태양통궤(太陽通軌)』 · 『태음통궤(太陰通軌)』 등의 서적을 연구하여 수시력의 원리와 방법을 이해하기 쉽게 해설한 『칠정산내편』을 편찬하도록 명하여 10년만에 그 완성을 보았다.
『칠정산내편』의 내용은 권두에 여러 천문상수(天文常數), 즉 천행제율(天行諸率) · 일행제율(日行諸率) · 일월식(日月食)의 여러 상수가 실리고, 다음에 역일(曆日) · 태양 · 태음 · 중성(中星) · 교식(交食) · 오성(五星) · 사여성(四餘星)의 7개의 대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권말에 한양을 기준으로 한 이지(二至), 즉 동지(冬至)와 하지(夏至) 후의 일출몰(日出沒) 시각과 밤낮의 길이를 나타낸 표가 실려 있고, 각 장에 필요한 곳에는 입성(立成)이라고 부르는 여러 가지 수표(數表)가 들어 있다.
일월오성의 운행을 다룬 것으로 보면 이 역서는 단순한 달력이 아니라 오늘날의 천체력(天體曆)의 구실을 하고 있다.
일행제율의 항에서 보면,
세주(歲周, 1년의 길이)=365일 2,425분으로 되어 있고
1일=10,000분(分)=100각(刻)
1각(刻)=100분(分)
의 십진법(十進法)이 쓰인 것으로 보면, 1년의 길이가 현재 실시하고 있는 그레고리(Gregory)태양력과 같은 365.2425일이고, 1분은 현행 8.64초와 같았음을 알 수가 있다.
서양과 다른 점의 하나는 하늘의 한바퀴인 주천도(周天度), 즉 원주의 각도를 360°가 아니라 365°25′75″로 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태양이 하늘을 한바퀴 도는 일수를 그대로 도(度) · 분(分) · 초(秒)로 나타낸 것으로 각 도에서도 십진법으로,
1도=100분, 1분=100초
로 하고 있는 데 유래한다.
여기 1도는 오늘날의 0.9756°에 해당한다. 끝의 대목에 있는 사여성은 실제로 존재하는 별이 아니다. 이들은 어느 특정한 위치의 규칙적인 변동, 또는 규칙적으로 운행한다고 본 가상적인 천체의 이동을 생각하여, 마치 별의 운행처럼 보고 이를 복술가(卜術家)의 추산의 근거로 쓴 것 같다.
사여성의 이름은 자기(紫氣) · 월패(月孛) · 나후(羅睺) · 계도(計都)인데, 『칠정산내편』에 의하면 이들은 각각 28년, 8년 10개월, 18년 7개월로 하늘을 한바퀴 돈다. 이 중 나후와 계도는 태양이나 달과는 반대로 돌고 있는데 이 둘은 본래 중국에는 없었던 것으로, 인도에서 온 범어(梵語)의 Rahu와 Ketu에 유래한다.
중국에서는 이 둘을 보이지 않는 별(二隱星)이라고 하여 나계(羅計)로 총칭하였고, 일월오성은 칠요(七曜), 여기에 나계 둘을 합하여 구요(九曜), 또 자기와 월패를 더하여 십일요(十一曜)로 불렀다.
칠요양재결(七曜攘災決)에는 나후를 일명 식두신(蝕頭神), 계도를 일명 식미신(蝕尾神)으로 하였는데, 하늘을 도는 주기와 일월식이 관련되는 데서 미루어 이들은 황도(黃道)와 백도(白道)의 두 교점으로 추정된다. 규장각도서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