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애틀랜타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의 용의자는 21세의 백인 청년이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무고한 8명이 목숨을 잃었고, 그 중 4명은 한인 여성이었다는 점에서 한인 사회에 더욱 충격이 되고 있습니다. 범죄의 원인이 아시안계의 사람들을 향한 '증오범죄'라고 하지만 아직은 공식적인 발표는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이 확실하다고 여겨지고 있지요.
알려진바로는 범인인 청년이 그동안 주변인들에게 열심있는 기독교인이 었다는 사실입니다. 그의 가족도 마찬가지 였구요. 모범적일 정도로 인정을 받은 가정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이 청년의 신앙은 어떻게 된 것일까요? 올바른 기독교 신앙이 절대 아닙니다. 그는 신앙과 신념을 혼동하고 있었습니다. 망상(妄想) 그 자체일 뿐이지요. 단어의 뜻 그대로 그는 이치, 그러니까 기독교 교리에 맞지 않는 망령된 자기 생각에 몰입되어서 그 사건을 저지르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혐오의 감정이 있을 때 그 대상을 죽이라고 가르치지 않으셨습니다. '네 원수를 사랑하라'(마태복음 5장 44절)고 하나님의 마음을 가르치셨습니다. 나아가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태복음 5장 44절)고 하셨지요.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고', 그러니까 복수하라고 가르치지 않으셨습니다(마태복음 5장 38절 참조). 그러므로 범인인 그 청년은 아직 성령으로 온전히 거듭난 하나님의 사람이 되지 않은 상태이든지, 아니면 세상 일에 심취해서 성령의 능력이 약하여 져서 악한 영의 지배를 받게 되므로 말미암아 살인을 하게 된 것이라고 보여 집니다.
그가 매일 매일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면 그는 자기 감정을 컨트롤, 곧 제어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어느 기독교인들도 중국을 싫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감정일 뿐입니다. 거기서 더 나아가 증오심을 갖거나 죽이기 까지 하겠다는 악의를 품는 것은 이미 하나님 앞에 죄악인 것이지요. 성령의 능력인 절제와 오래참음, 그리고 긍휼과 사랑의 마음으로 자기 마음을 다스렸어야 했던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그는 자기 모순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따르지 않고 자기 의(義)를 취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사랑이 근본이 되지만, 이 청년의 자기 의는 극한 미움이라는 감정이 근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혐오라는 극한 감정을 신념화한 것일 뿐입니다.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전혀 잘못된 신앙일 뿐입니다.
그가 좋아하는 것 중에 총이 들어 있다는 것이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그에게는 그 총이 하나님을 향한 참된 신앙을 죽여버린 헛된 신념이라는 무기가 되어 버린 것이지요. 총은 세상을 사랑하는 정욕의 하나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보다는 세상을 어쩌면 더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요한일서 2장15절). 그리고 육신의 정욕은 하나님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요한일서 2장 17절).
편향적인 생각이나 신념에 빠져서 특히 기독교인들이 사회에 해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교회가 더욱 깨어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공중의 권세를 잡고 있는 악한 영들과 어느때 보다도 치열한 영적 전투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