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딕
미국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자본주의의 종주국으로 자리를 정립한지 오래되었다. 적어도 2차 세계대전의 최고 승전국으로써 파괴된 경제와 민주주의 체제를 회복하고 전파하면서 명실상부한 최고의 국가가 되었다. 그런데 미국을 상징하는 『코카콜라』와 『맥도널드』의 상표가 세계의 방방곡곡을 접수하면서 모든 경계를 허무는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그 으뜸은 『스타벅스』가 아닌가 싶다. 중요한 요지의 건물에 빠짐없이 이 가게가 들어서면서 이 커피숍의 유무에 따라 건물의 가치도 좌우된다고 한다.
인간은 문학작품을 통하여 성장한다. 간접경험을 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바로 문학작품이다. 물론 종교나 철학 혹은 문화예술을 통해서도 인간의 지적 활동의 지평을 넓힐 수 있겠지만 소설이 주는 영향을 따를 수는 없다. 그만큼 소설은 독자에게 생생한 경험을 전파하고, 심리적인 안정과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주기 때문이다.
얼마 전 탁월한 문예비평가인 친구(김종호)가 쓴 『모비딕』의 평을 접하면서 바로 서점으로 달려갔다. 이 책은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는 물론이고,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연상케 하였다. 해양문학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더불어 대자연과 맞서 싸워야만 하는 인간의 숙명에 대해 오랜 숙고를 하게 되었다.
이 소설은 미국의 「허먼 멜빌(Herman Melville : 1819~1891)」이 1851년에 출간했으며, 원제는 『Moby-Dick ; The Whale 』이다. 그의 대표작이자 미국을 대표하는 고전 소설이다. 먼저 소설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화자인 나 「이슈메일」은 뉴베드퍼드의 여인숙에서 만나 친구가 된 작살꾼 「퀴퀘크」와 함께 포경선 『피쿼드호(Pequod)』의 선원이 되기로 한다. 출항 전 바다에 도전하는 자는 영혼을 잃게 될 것이라는 신부의 경고를 비롯해 여러 가지 불길한 징조가 나타나지만, 『피쿼드호』는 무작정 항구를 떠난다.
항해를 시작한 지 며칠 만에 「에이해브」 선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고래 뼈로 만든 의족을 한 그의 모습에 「이슈메일」은 경악하는데, 사연인즉슨 전설의 흰고래 ‘모비 딕’이 선장의 한쪽 다리를 앗아갔다는 것이다. 선장이 바다에 나가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즉 ‘모비 딕’에 복수하기 위해서다. 선장이 고래잡이는 안중에도 없을뿐더러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모비 딕’을 잡겠다고 선언하자, 선원들은 동요한다. 그러나 선장은 ‘모비 딕’을 가장 먼저 발견하는 자에게 금화를 주겠다며 오히려 그들을 선동한다. 신중한 성격의 일등항해사 「스타벅」은 선장을 말리려고 노력하지만, 집념과 광기에 사로잡힌 「에이해브」 선장은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오직 ‘모비 딕’을 좇아 무리한 항해를 계속한다. 항해 중 만나는 상대방 배의 선장이나 자선의 선원에게 묻는 첫 마디는 항상 ‘흰 고래를 보았는가?’이다. 『피쿼드호』는 대서양에서 희망봉을 돌아 인도양, 태평양까지 진출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 앞에 모비 딕이 나타났다. 태평양에서의 3일간의 대격투장면이 이 책의 압권이다.
첫날, 선장은 코를 킁킁거리며 향유고래가 멀리까지 퍼뜨리는 냄새를 맡고 고래를 발견한다. “윗 돛! 보조 돛! 아래, 위, 좌우 양쪽 돛을 모두 달아라!” “물줄기다! 고래가 물을 뿜고 있다! 눈 덮인 산처럼 하얀 혹이다! 모비 딕이다!”선장은 공중에서 갈매기가 우는 듯한 소리를 내질렀다. 세 척의 보트를 내려 고래를 추적하지만 모비 딕은 자신을 공격하는 선장의 보트를 박살내고 유유히 사라진다.
둘째 날, 세 개의 돛대 꼭대기에 망꾼을 배치하고 고래를 추적한다. 원래 천부적 재능을 가진 선장은 고래가 마지막으로 발견되었을 때의 모습을 한 번 보기만 해도 주어진 상황에서 고래가 당분간 헤엄쳐 나갈 방향과 그 동안의 예상 속도까지도 아주 정확하게 예견할 수 있다. 또 다시 선장이 ‘모비 딕’을 발견한다. 그러나 ‘모비 딕’의 포악한 공격으로 작살과 창에 연결된 밧줄들이 서로 뒤엉키면서 보트 세 척이 충돌하여 산산 조각난다. 본선에 구조되어 점검을 해보니 선원 한 명(배화교도인 페들러)이 실종되었다. 일등 항해사 「스타벅」은 선장에게 더는 고래를 추적하지 말자고 간곡하게 호소하나 이를 거부하고 내일은 세 번째로 떠오를 것이라고 확신한다. 선원들은 등불 밑에서 예비 보트를 완벽하고 세심하게 준비하고 새 무기를 날카롭게 갈면서 새로운 정비를 한다.
셋째 날, 이 날도 선장이 고래가 뿜는 물줄기를 발견한다. 보트를 타러 내려 가다가 「스타벅」과 작별의 인사를 나누는데 제발 가지 말라고 애원하는 「스타벅」은 끈적끈적한 아교와도 같은 눈물을 흘린다. 드디어 「에이해브」가 ‘모비 딕’의 옆구리(눈)에 작살을 명중시켜 치명상을 입히지만 분노한 ‘모비 딕’은 「피쿼드 호」에 돌진하여 침몰시키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선장을 비롯한 모든 선원이 사망하고, 「퀴퀘크」가 미리 관으로 만든 구명부표가 배에서 떨어져 나와 「이슈메일」 혼자 살아남아 표류하다가 둘째 날에 지나가던 배(레이첼호)에 의해 구조된다.
“나를 이슈메일이라 부르라(Call me Ishmael).” 소설은 위의 짧지만 꽤 유명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모비딕』에는 성경을 비롯하여 수많은 역사적 인물, 다양한 지명과 소설 그리고 그리스 로마 신화 등 서구 문학 고전 작품을 함께 접할 수 있다. 이는 마치 21세기의 가장 위대한 시(詩)라고 칭송을 받는 「T.S. 엘리엇」의 『황무지(The Waste Land)』에서처럼 광범위한 고전의 인용과 유사하다. 『황무지』는 수많은 고대의 신화와 전설, 그리고 35명에 달하는 고전작가들의 글을 인용하고 이를 온갖 문학적 기법으로 형상화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가의 높은 철학적 사고와 문학, 신앙 및 자연관 그리고 고래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인문·사회적 통찰의 휴머니즘을 함께 할 수 있는 걸작이다.
『피쿼드호』의 30여 명의 항해사들과 작살잡이들은 미국을 구성하는 다양한 인종과 지역을 나타낸다. 작가는 다양한 인종/ 종교(기독교/ 배화교/ 샤만/ 유태교)가 화합하고 어울려 사는 대동세상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실종된 인접 선장의 아들을 수색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시간마저 거부하는 「에이해브」 선장의 태도는 비장감마저 느끼게 한다. 생명조차 경시하는 선장의 단호한 태도는 인류 사회의 염원인 공동선의 지엄한 가치를 거부하는 이단아의 행태로 결국 자신뿐 아니라, 다수의 선원까지도 비극적인 최후를 맞아 파멸의 길로 사라지게 한다.
스타벅은 『피쿼드호』의 1등 항해사이자 미국적인 신사의 상징이다. 「에이해브」 선장의 복수심에 대해 굉장히 우려하고 있기에 몇 번이나 그의 마음을 돌리려고 시도하지만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다. ‘모비 딕’과의 조우 이후에도 매번 직접 나서는 선장을 대신해 훌륭히 배를 지휘하지만 결국 『피쿼드호』와 함께 최후를 맞는다. 배가 침몰할 당시 자애로운 천사들에게 여자처럼 기절 해 죽지 않도록 해달라고 빌었다.
그런 스타벅이 1972년 샌프란시스코 대학 동창인 고든 보커(Gorden Bowker), 제리 볼드윈(Jerry Baldwin), 지브 시글(Zev Siegle)에 의해 새로운 생명을 얻어 다시 태어난다. 이들은 시애틀에 스타벅스(Starbucks)라는 조그만 원두커피 소매점을 창업하며, 로고(Logo)는 세이렌(Seirēn)으로 정했다. 1982년 탁월한 경영자 하워드 슐츠(Howard Schultz)에 의해 인수된 후 이제 세계 최고의 커피 제국이 되었다. 아마 천사의 가호가 있었던 듯하다.
필자는 시애틀에 들렸다가 「보잉사」의 어마어마한 부지에 펼쳐진 각 종 항공기 제조회사를 구경하였다. 그 떨리는 심장을 부여안고 찾아간 곳이 부둣가의 스타벅스 1호 매장이었다. 완전히 관광의 명소로 자리하여 줄을 서서 한참을 기다려야 커피 맛을 볼 수가 있었다. 특히 세 명의 세이렌자매의 로고가 걸려있는 가게는 매우 인상적 이었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1954)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대표작 『노인과 바다(The Old Man and the Sea)는 「산티아고」라는 한 노인의 실존적 투쟁과 불굴의 의지를 절제된 문장으로 강렬하게 그려냈다. 인간과 자연을 긍정하고 진정한 세대 간 연대의 가치를 역설한 수작이다.
언젠가 미국 플로리다 주의 맨 아래 쪽에 있는 『키웨스트』를 찾아갔다. 사실은 완전히 「헤밍웨이」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아름다운 쪽빛 바다위에 떠있는 『키웨스트』는 섬과 섬을 다리로 연결하여 자동차 운행이 가능하였다. 무엇보다 「헤밍웨이」가 살았던 곳이 지금은 기념관으로 남아있다. 그의 두 번째 부인과 10여년을 살았던 곳인데 원형 그대로이고, 당시 부인이 만들어 놓은 수영장도 그대로이다. 침대에는 「헤밍웨이」의 친구가 주었다는 고양이의 후손들이 나른한 오수를 즐기고 있었고, 그가 사용하던 타자기와 장서뿐 아니라 각 종 가구와 생전의 4명의 부인들 사진도 있었다. 작가의 공간이었던 별채도 그대로이고 본가의 1층에 마련된 서점에는 작가의 소설을 판매하고 있었다. 인근에 있는 등대 구경도 했는데 술에 취한 「헤밍웨이」가 집을 찾아오는 이정표 역할을 했다고 하였다. 그가 평생 자주 찾던 술집과 유명한 극작가였던 「테네시 윌리엄스」의 기념관 및 역대 대통령의 별장으로 쓰인 『리틀 화이트 하우스』도 의미 있는 장소였다.
낚시광이던 작가는 한동안 쿠바의 『아바나』에서 살았다. 이후 쿠바와의 관계 악화로 자유롭지 못한 활동의 제한이 그를 자살하게 만든 주요한 이유였다고도 한다.
「오디세우스」는 밀랍으로 선원들의 귀를 막고 돛대에 자신을 묶어 「세이렌(Seirēn)」 자매의 유혹을 이겨낸다. 「세이렌」은 처녀의 얼굴에 반인반수의 모습인데, 뱃사람들을 현혹하는 노래를 불러 바다로 뛰어들게 만든 뒤 잡아먹는 식인조였다. “누구든 영문도 모르고 가까이 다가갔다가 세이렌자매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그의 아내와 어린 자식들은 더 이상 집에 돌아온 그의 옆에 서지 못할 것이며 그의 귀향을 반기지 못할 거예요.”(『오뒷세이아』에서 )
「에이해브」 선장은 고래와 정면에서 공격적으로 맞서다가 파멸한다. 하지만 「오디세우스」는 융통성과 부드러운 대응으로 난관을 극복한다. 결국 자연의 거친 도전을 슬기롭게 이겨내면서 귀향에 성공한다. 「산티아고」 노인의 대처도 비슷하다. 「산티아고」는 젊음을 상징하는 힘센 청새치, 시련을 상징하는 질긴 상어 떼 앞에 무릎 꿇지 않고, 물질적인 상실과 육체적인 고통에도 끝내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정신적인 승리를 거둔다.
이처럼 인간의 의지가 자연과 조우했을 때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에 대한 선택과 그에 따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고귀한 정신이다. 그러한 불굴의 의지와 용기, 그리고 부드러운 심성이 조화된 대동세상에 대한 갈망이 역사를 지탱한 힘이었다고 본다.
“세이렌 두 자매가 고운 목소리로 노래하자 내 마음은 듣고 싶어 했소. 나는 전우들에게 눈짓으로 풀어달라고 명령했으나 그들은 몸을 앞으로 구부리며 힘껏 노를 저었소. 그리고 더 많은 밧줄로 나를 더욱 꽁꽁 묶었소.”
“그곳에서도 우리는 내 용기와 내 조언과 내 지혜에 의해 벗어났거늘, 생각건대 이번 일도 언젠가는 우리에게 추억이 될 것이오.”(『오뒷세이아』에서 )
"세상에서 가장 위험하고 긴 항해를 한 번 끝냈다 해도 뒤에는 두 번째 항해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며, 두 번째 항해를 끝냈다 해도 뒤에는 세 번째 항해가, 그 뒤에도 또 다른 항해가 영원히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 세상에서의 우리의 노고란 그처럼 모두 끝이 없고 견뎌내기 힘든 것들이다." (『모비딕』에서)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라고 만들어진 게 아니야.” 그가 말했다.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어도 패배할 수는 없어.” (『노인과 바다』 중에서)
홀로 살아남은 「이슈메일」은“나만 홀로 피한고로 주인께 고하러 왔나이다”라고 성경의 『욥기』를 인용한다. 하느님이 주신 시련을 이겨낸 「욥」처럼 신 앞에서 솔직한 삶을 살아가라는 말인지! 온갖 자연의 시련을 이겨낸 화자(話者)가 지향하는 진정한 인간 내면의 소리로 들리지만 깊은 뜻은 더 숙고할 일이다. 인생은 끊임없는 좌절과 희망의 연속이다. 나이에 관계없이 희망이 없으면 사자(死者)나 다름없다. 눈앞의 난관을 지혜롭게 극복하는 힘도 결국 희망에서 나온다.(2022. 8.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