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지는 祭祀문화
제사(祭祀)는 원래 조상숭배에서 비롯된 전통문화다. 효(孝)사상을 존중하는 동양문화에서 조상의 제사를 모시고 추모하는 것은 자손 된 도리로서 절대적이었다. 따라서 '제사'라 하면 주로 유교의식에 기반을 둔 '조상 제사'를 가리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제사가 조선시대에는 종교적 의미가 강했고 때로는 정치적 수단으로까지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시묘살이에서 부터 부모 3년 상을 국가가 제도적으로 인정해 조정에 나아가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있었으니 제사가 얼마나 중요했던가는 췌언을 불요한다. 전통 적으로 보면 4대조까지 제사를 지내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위인을 많이 배출한 명문 양반 가문일수록 불천위라 하여 영구히 제사를 모시는 분이 많아졌다. 이로 인한 제례의 실용성 등에 대한 문제는 옛 유학자나 예문가들 사이에서 자주 예송논쟁(때로는 당쟁)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최근 제사주재는 ,남녀 불문 연장자 우선,이라는 대법원 판결로 제사가 또다시 사회적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대법원 판례를 계기로 우리사회의 제사문화도 시대에 맞게 새롭게 인식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현대사회에서 제사는 주로 유교의식을 존중하는 가정에서 많이 볼 수 있다. 기독교나 천주교 불교 신자 등 다른 종교를 믿는 이에겐 관심 밖의 일로 보일지 모르나 조상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보면 형식과 명칭만 다를 뿐 그 근본 취지는 어떤 의식이나 다를게 없다.
먼저 제사를 모실 장소에 대해 생각해보자. 반드시 장남 집에서 지내라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 묘소에서나 어느 곳이든 형제자매가 모이기 좋고 혹은 신성한 장소를 가려서 하면 된다. 매년 아들 딸 집을 번 가라 돌아가며 제사를 올려도 좋고 꼭 가정집이 아니라도 조용한 장소에서 현수막 걸고 성심껏 제사를 드려도 남에게 혐오감을 주거나 폐를 끼치지 않는다면 아무도 시비할 사람이 없다.
제사를 드리는 시각도 편리한대로 정하면 될 것이다. 모두들 직장을 가진 몸이니 토요일 또는 일요일 국경일 설이나 추석날 한식을 제사일로 정해서 형제자매가 교통하기 좋은 날로 정해도 무방하며 제사 드리는 시각도 조석주야 어느 때를 정해도 나쁘지 않다. 다만 형제자매가 한마음으로 정한 날이 제일 좋은 제삿날이고 시각이 될 것이다.
제사상 차리기만 해도 지나치게 형식에 치우치기보다 자유자재로 제사 드리는 모든 사람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상을 차리고 제사를 올리면 될 것이다. 제주(祭酒)도 반드시 술이어야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망인이 생시에 즐겨 마신 음료나 홍차 청정수로 제주를 대신해도 망발은 아닐 것이다. 다시 말해 오곡백과에다 해물 류도 마른 것으로 익히지 않고 차려도 무방하며 통조림 떡 빵 과자 면류도 제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식혜나 나물류, 전류와 같은 만들기도 번거롭고 부패하기 쉬운 음식은 되도록 피하고 번거롭게 집에서 조리하는 음식은 되도록 삼가는 것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신위와 축문도 마음에 새길 수 있으면 되지 않을까. 한글 축문도 좋고 내용도 옛날 식으로 도식적이어야 할 이유도 없다. 형편이 여유로우면 작은 현수막을 달아도 좋을 것이다. 제사는 이제 각 가정의 기호에 따라 노래를 부르거나 음향기기도 사용할 수 있으며 종교인이라면 그에 합당한 찬송찬미를 하고 서로 간에 덕담도 주고받을 수 있다.
제사는 이제 마음으로 드리고 존경으로 마치는 방향으로 달라져야 한다. 제사란 원래 마음의 제사가 제일이다. 그러니 부담이 되는 폐단을 일소하고 형제자매가 친목을 도모하는 장이어야 한다. 그래야 제사를 받는 조상님도 마음이 편해서 후손들에게 큰 복으로 보답할 것이다.
문화는 그때 그 때 시대의 변천에 따라 변하는 것이다. 경건하게 치러져야 할 제사가 부담이 되고 각 가정이나 가문에 크나 큰 갈등을 초래하여 부부갈등 고부갈등 가문갈등을 초래한데서야 말이 되는가. 제사를 드리는 것은 후손들에게 공경심과 효심을 나타내는 의식으로 사회적 소속감, 연대감을 증진하며 가족 간의 우애와 화목을 다지는 의미가 있다. 특히 현대 핵가족 사회에서 초래되는 단절과 공동체 의식의 결핍을 보완하여 현대적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안이 되기도 한다. 전국 방방곡곡에 나뉘어 살아가는 현대 가족들이 모여 정담을 나누고 가족애를 확인 할 수 있는 자리가 제사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제사를 올리는 많은 가정에서 지내는 제사의 경우 조상에 대한 숭배의 목적도 있지만 친척 형제와의 관계유지로 제사를 모시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대법원 판결이 출가한 여성의 재산권을 공평하게 보장해 준 것 까지는 좋았지만 만의 하나 자식 중 연장자라고 지금까지 친정에서 잘 모셔오던 제사를 모셔가라고 한다면 딸의 입장에선 참으로 난감해지지 않겠는지, 대법원 판결을 핑계 삼아 시집간 딸에게 제사를 떠넘기는 자식들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 공연한 걱정이기를 바란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제 남의 제사를 두고 이렇다 저렇다 왈 가 왈 부 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제사에 어떤 획일적인 것을 강요한다거나 권고할 입장도 아니다. 제사문화도 시류에 맞게 적응해 가는 것이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지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정운종 한국유림총연합 편집고문, 전경향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