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퍼의 영역주권 사상은 널리 알려진 그의 핵심 사상이다. 영역주권 사상은 모든 원에 중심이 있듯이 중심에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이 주권자로서 모든 만물을 다스리신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하나님은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 주권을 부여하셨는데, 각 영역은 고유의 주권이 있고, 그 주권은 영역을 침범할 수 없다는 것이 골자이다. 정성구 박사는 카이퍼는 칼빈의 사상을 계승하여 발전시킨 신칼빈주의자로서 영역주권 사상도 칼빈의 하나님의 절대주권 사상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말한다. 구분선 아래에서 카이퍼의 영역주권 사상을 조금 더 살펴보도록 하자.
영역주권 선포 배경
카이퍼는 오래 전부터 고등교육 즉 대학을 세우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획일적인 국가가 주도하는 인본주의 세계관을 가르치는 대학교에 반기를 들고 순수한 복음적인 학교, 칼빈주의적 세계관을 가진 대학을 세우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왜냐하면 예수 믿고 구원얻는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국가나 사회나 학문, 예술, 교육의 모든 분야가 구조적으로 무신론적이고 인본주의 사상체계를 갖고 있다면 개혁주의자들이 자기의 정체성을 지키고 사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카이퍼는 정부로부터 자유롭고, 교권으로부터 자유로운 순수하게 하나님의 영광과 주권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대학, 그러한 하나님 중심의 사상이 학문의 전 분야에 중심이 되는 대학을 세우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드디어 카이퍼의 꿈이 이루어져 1880년 10월 20일에 뿌라야(자유)대학교를 개교했다. 그날 카이퍼는 총장 취임 연설에서 영역주권 사상을 선포했다. 카이퍼의 총장 취임 연설은 가히 화란과 유럽에 폭탄선언이라고 해도 좋을 듯싶다. 당시는 국가 지상주의 또는 국가 우상주의가 국가가 교회나 개인의 신앙, 교육 등을 모두 장악해서 개인의 자율권을 박탈하고 있었다. 더구나 개혁주의 입장에서 볼 때 국가가 철저한 인본주의와 현대주의 사상을 지원하고, 또한 그것이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 예술, 종교 등 생활 전반에 걸쳐서 영향을 주었다. 카이퍼는 하나님이 주권자이고 국가도 교회도 하나님의 도구이며 모든 삶이 영역에는 하나님이 주권을 가진다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이런 사상은 아브라함 카이퍼가 만들어낸 것은 아니고, 이미 그의 정신적 스승인 흐룬 반 프린스터(G. Groen Van Prinsterer)가 주장했고, 그전에는 독일의 루터교 철학자 스타알(Stahl)이 주장했던 사상이다.(카이퍼의 영역주권 사상에 대한 가장 좋은 역사적 연구는 J.D.Kdengerink, Critisch-Historisch Onderzoek naar de Sociologische Ontwinkkeling van het beginsel der "Souveriniteit is eigen Kring" in de 19C en 20C eeuw (J.H.Kok N.V.Kampen, 1948)이다. 이 책은 Herman Dooyeweerd 아래 제출한 박사학위 논문으로써 Dr. F.J.Stahl, Mr. G.Groen Van Prinsterer, Dr. A.Kuyper, Dr. H.Kooyeweerd, Geoger Gurvitch 등을 다루고 있다. 뎅크링크 박사는 뿌라야대학교에 이사로 있었고 나중에는 우트레흐트대학교에 기독교철학 교수로 일했다. 그리고 전 Kampen신학교 실천신학 교수였던 C.Veenhof의 Souveriniteit in eigen kring (J.H.Kok.Kampen, 1939)등이 있다.) 그런데 카이퍼는 이날의 연설에서 흐룬의 영역주권 사상을 발전시키고 구체화하고 그것을 실제화했다. 영역주권 사상이 체계적으로 삶의 현장에서 원리로 제시되었다. 카이퍼 박사 앞에서 영역주권을 주장했던 스타알이나 흐룬 반 프린스터는 19세기 말엽 스위스의 대부흥운동(Swiss Reveil)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스타알(F.J.Stahl, 1802-1855)(스타알(Friedrich Julirs Stahl)은 정통파 유대인으로 태어나 법철학을 공부했다. 엘랑겐(Erlangen)대학에서 헌법학, 교회법, 정치학을 가르쳤다. 후일에 그는 하원의원이 되었다. 특히 그는 복음교회의 지도자로서 공헌하면서 주 저서로는 법철학사 등이 있다. Encyclopedie vol VI (J.H.Kok.Kampen, 1961) p.247.)은 그의 글들을 통해서 영역주권에 대한 성경적 개념을 발견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사회의 여러 영역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에 일조를 했다. 그가 말한 영역은 교회뿐 아니라 국가나 가족 같은 영역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러나 스타알의 논리는 그저 학문적인 시도에 불과했다.
한편 영역주권 사상은 흐룬 반 프린스터부터 더욱 발전되었다. 인간 생활은 하나님의 말씀은 영적인 문제 뿐 아니라 인간 생활의 구체적 생활까지도 직접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영혼의 구원은 말할 것도 없고 문화 전반에 기여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영역주권이란 말이 개혁교회 성도들에게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아브라함 카이퍼 박사가 1880년 뿌라야대학교 개교시 총장 수락 연설할 때부터 시작되었다. 카이퍼는 영역주권 사상을 구체화하고 세분화하고 학문적 체계를 세워 대중들에게 도전했다. 영역주권이란 영어로는 Sphere sovereignity 라고 하는데 실제로 카이퍼가 채용한 이 말은 화란어로는 끄링(Kring)이라고 했다. 끄링이란 말은 싸이클 곧 원(圓)을 의미한다. 원이란 반드시 중심이 있다. 원이 두 개란 말은 중심이 둘이란 말이고, 원이 셋이란 말은 중심이 셋이란 말과 같다. 모든 원에 중심이 없다면 원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와 같이 인간의 삶의 모든 영역에는 그 중심이 하나님이시고, 모든 영역에는 하나님의 법칙이 있다. 하나님께서 모든 영역을 그의 주권으로 다스리신다. 그리고 각 영역은 고유의 주권이 있고, 그 주권은 다른 주권을 침범할 수 없다. 그리고 그 영역에 주권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께서 주권을 가지시고 천지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다스리신다.
영역주권의 원리자 칼빈
카이퍼가 1880년에 주장했던 영역주권 사상에 대해서는 다음에 자세하게 생각하기로 하자. 이제 검토할 부분은 카이퍼가 그의 멘토로 삼고 있는 칼빈도 영역주권에 대해서 말했는가 함이다. 칼빈과 칼빈주의를 제창한 카이퍼 사이에 어떤 연속성이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칼빈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은 모든 인간 모든 만물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이 없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에 대해서 주권자이시며 통치자이시다. 하나님은 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인생조차 통치하시며, 하나님은 그의 구속사(國史)를 통치하시며, 역사의 종말론적 문제도 관여하시고, 다가올 하나님의 나라도 통치하신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도 우리와 관련된 모든 것에 관심과 사랑을 갖고 있다. 하나님은 인간의 삶의 영역에 간섭하시고 통치하시고 주관하신다는 것이다. 칼빈이 주장한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사상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은밀한 고삐로 사건을 억제하시고, 그의 하늘의 작정이 없이는 아무 일도 일어나게 하지 않으신다"(다니엘 주석 2권 p.314.)
"모든 국가와 민족의 흥망은 하나님의 손과 뜻에 달렸다"(예레미야 주석 3권 p.356.)
"사람들의 마음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통제 아래 있다. 그의 주권적 기쁨에 따라서 강퍅하게도 하시고 부드럽게도 하신다"(시편 주석 4권 p.243.)
"사탄은 하나님의 뜻과 동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기독교강요 1.14.17.)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지 않으면 신자들을 위한 구원은 없다"(하박국, 학개 주석 p.86.)
칼빈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이란 말은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적 지배를 일컫는 말이다. 그러므로 개인의 신앙, 공적인 삶 등 삶의 모든 부분에 하나님의 주권이 역사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국가와 교회에 권한을 따로 주셨다. 시민 정부라고 할 수 있는 세속권세로부터 사회를 평안하게 끌어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권세를 주셨다. 정부는 세속적 정의와 도덕과 질서를 세우기 위해서 하나님이 세워 주신 기관이다. 그리고 교회는 인간 영혼의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 세워주신 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카이퍼의 영역주권의 뿌리도 결국은 칼빈에게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단지 카이퍼는 칼빈의 주권사상을 더 세분하게 발전시키고 구체화시켰을 뿐이다. 그러므로 카이퍼가 주장한 영역주권 사상이 성경적 근거가 빈약하다든가 또는 그의 사상이 낙관주의적이 아닌가라고 평가하는 사람도 몇 사람 있지만, 확실히 카이퍼의 영역주권 사상은 결국은 칼빈의 하나님의 절대주권 사상에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칼빈주의와 신칼빈주의 사이에는 연속성을 가진다. 칼빈의 사상이 기본이라면 카이퍼는 보다 폭 넓게 적용하고 구체화시켰다. 그러면 1880년 10월 20일 카이퍼 연설문 '영역주권'에서 그의 뜻을 살펴보기로 하자. 물론 영역주권 사상은 그 전후해서 그의 여러 저작들과 팸플릿에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다.
먼저 카이퍼가 영역주권을 외친 배경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카이퍼가 영역주권을 소리높이 증거 하는 곳은 지금 새로운 칼빈주의 대학을 개교하는 자리에서이다. 카이퍼에게는 고등교육과 수준 높은 연구가 대단히 필요했다. 또 신앙적으로는 하나님의 창조의 위대성을 드러내어 교회가 교회다워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전략적으로 사회와 문화를 재구성하고, 보통 사람들의 자존심과 생존권을 신장하고 그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다.
정성구, 『아브라함 카이퍼의 사상과 삶』(킹덤북스, 2010), pp.259~263.
첫댓글 좋은 글입니다. 칼빈이 영역주권 원리의 창시자라고 보아도 좋습니다. 영역들이 구분되어 주권이 있지만, 그 영역들의 최고에 주님의 주권이 있는 것으로 이해하면 칼빈의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네, 오직 하나님께 영광 (Soli Deo Gloria)!
@노베 아멘!
구분되지만 분리되지는 않는다는 개혁주의 표현과 이해의 원리를 이해하면, 특별은총과 일반은총의 관계일 알 수가 있고, 이 빌드업의 상태에서 영역주권도 이해할 수가 있는 것 같습니다.
네, 구분되지만 분리되지는 않는다는 논리가 자주 나오는 것 같습니다.
@노베 알겠습니다.
"순수하게 하나님의 영광과 주권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대학, 그러한 하나님 중심의 사상이 학문의 전 분야에 중심이 되는 대학을 세우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
대학은 일반은총의 영역이지만 그 대학이 하나님의 영광과 주권을 위하여 복무할 때 특별은총과 중첩되는 부분이 생길 수 있습니다.
네, 각 영역들과 그 위의 최고 주권의 원 구도가 보이는 것 같습니다.
영역주권
영역 주권(sphere sovereignty, souvereiniteit in eigen kring)이란 개혁주의 신학에서 주로 사용되는 용어로서 하나님은 교회뿐만 아니라 사회, 국가, 과학과 예술등 모든 영역에서 주인되시며 만물의 창조주로서 주권적인 통치를 행사하신다는 사상이다. 일반 은총을 강조한 화란의 아브라함 카이퍼에 의해서 처음으로 주창되었다.
이하 아래 위키백과 내용 참조
https://ko.wikipedia.org/wiki/%EC%98%81%EC%97%AD_%EC%A3%BC%EA%B6%8C
링크 안에 들어가니 영역주권의 특징들이 잘 정리돼 있네요. 역시 서민들의 백과사전입니다!
신칼빈주의
신칼뱅주의(Neo-Calvinism, neocalvinisme, 네오 칼비니슴)란 네덜란드에서 시작된 칼빈주의 한 형태이다. 네덜란드 총리이며 신학자인 아브라함 카이퍼, 헤르만 바빙크, 그리고 스킬더를 중심으로 시작된 운동이다. 모든 창조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칼빈주의 신학체계이다. 신학자 브래트(James Bratt)는 네덜란드 교회를 몇가지로 유형을 정하였다. 분리주의자, 고백주의자, 신칼빈주의자, 긍정주의자와 부정주의자들이다. 분리주의자들은 주로 타락후선택설을 신칼빈주의자들은 타락전 선택설을 지지한다.
이하 아래 위키백과 참조
https://ko.wikipedia.org/wiki/%EC%8B%A0%EC%B9%BC%EB%B1%85%EC%A3%BC%EC%9D%98#cite_note-FOOTNOTEBratt1984-1
타락 전 선택이 택자들에게 안심, 위로와 세파를 이겨 나아가는 큰 힘이 되는 것 같습니다.
흐룬 반 프린스터[G.Gron van Prinsterer]
개혁주의 혁명사상의 기본을 마련한 인물인 흐룬 반 프린스터[G.Gron van Prinsterer]는 신 칼빈주의의 사회개혁사상에 엄청난 영향을 가져온 사람이었다. 흐룬 반 프린스터[G.Gron van Prinsterer]는 근대 칼빈주의 운동의 부흥을 가져온 사람이라고 할 수있다. 그는 역사가요 교육자요 법률가로서 19세기 네덜란드의 칼빈주의 운동의 선봉장이 되었다. 흐룬 반 프린스터[G.Gron van Prinsterer]의 시대의 유럽의 정치적 상황은 전쟁과 혁명으로 얼룩져있었다. 이러한 역사적 상황은 흐룬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흐룬은 이러한 파멸과 불행이 계몽주의와 프랑스 혁명으로부터 전해 내려온 자유주의의 유토피아적 이상주의에 기인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사상은 프랑스 혁명의 근본정신을 해부한 『불 신앙과 혁명[Unbelief and Revolution]』에 잘 나타나있다. 종교성을 중심으로 한 프랑스혁명을 해석하는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인간성의 신격화가 민주주의의 영적 열정이다. 인간성의 신격화는 프랑스 혁명의 숨결 그 자체이다.
인간성의 숭배라는 한 종교가 성립한 것이다.”
흐룬은 그의 책 불 신앙과 혁명의 결론 부에서 말하기를
①그리스도인들은 정치를 포함한 삶의 모든 영역에서 성경이 가르치는 규범에 입각하여 살아야하며
②그리스도인은 어떤 지역이고 고립된 문제들을 가지고 싸울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사회적 정치적 문제들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제시하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하며
③그리스도인은 성경이 가르치는 사회 정의를 위하여 투쟁하며 복음의 전 포괄성을 증거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고 하였다.
흐룬 반 프린스터[G.Gron van Prinsterer]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의 하나님의 주권을 드러내는 영역주권사상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칼빈의 사상을 좀더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정치적인 영역도 역시 예외가 아님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Gron van Prinsterer는 주장하기를 “복음과 혁명” 현대세속 문화 속에서 기독교 신앙을 방어하기 위한 두 번째 국면은 인간의 죄와 하나님의 은총, 이 양자가 활동하고 있는 일반 은총의 영역으로서의 교회에 대한 이해, 그리고 최종적으로 이 모든 것에 대한 그리스도의 주되심에 기초한
주되심에 기초한 기독교 세계관을 발전시켜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흐룬의 사상은 당대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러나 뒤이은 개혁자들에 의하여 흐룬의 개혁사상을 부활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M. R. Langley는 흐룬의 개혁사상은 카이퍼와 바빙크 그리고 스킬더 메이첸, 반틸, 쉐퍼, 로크마커등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었다고 본 것이다. 정성구는 쉐퍼의 문화의 세속화에 대한 기독교적 비평은 바로 흐룬의 사상과 일맥상통한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흐룬의 사상은 그를 이은 걸출한 사상가요 학자이며, 목사인 아브라함 카이퍼에 의하여 영향력이 증가되기 시작하였다.
출처: 섬김과 나눔 그리고 쉼
이 분이 카이퍼에게 영향을 주신 분이군요!!
<기독교 강요>
1권.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지식
14장. 우주와 만물의 창조에 있어서까지 성경은 참 하나님과 거짓 신들을 뚜렷한 특징들을 가지고 구별한다.
17. 마귀는 하나님의 권능 아래 있다
사탄과 하나님 사이에 불화와 반목이 있다고 하는 것에 관하여 우리가 확고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은, 하나님의 의지와 허락이 없이는 사탄은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욥의 역사를 읽어보면, 사탄이 하나님의 허락을 받기 위해 하나님 앞에 스스로 나타났으며(요 1:6, 2:1), 따라서 먼저 하나님의 허락을 받지 않고는 어떠한 악도 감히 행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욥 1:12, 2:6).
또, 이와 같이 아합이 속임을 당하게 되었을 때에도 사탄은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모든 선지자의 입에 들어갔고
하나님의 위탁을 받아 자기 일을 수행하였다(왕상 22:20-22).
이러한 이유에서 사탄은 역시 사울을 괴롭힌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라고 불렸는데, 이는 그가 그 불경건한 왕의 죄를 벌하기 위해서 채찍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었다(삼상 16:14, 18:10).
그리고 다른 곳에는 하나님께서 "벌하는 사자들"을 통하여 애굽사람들에게 재앙을 내리셨다고 기록되어 있다(시 78:49).
이상의 개개의 실례에 따라 바울은 불신자들의 눈이 어두워진 것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기 때문이라고 증언하였다(살후 2:11).
그러나 조금 앞에서는 이를 사탄의 역사라고 불렀다(살후 2:9; 참조, 고후 4:4; 엡 2:2).
그러므로 사탄은 분명히 하나님의 권능 하에 있으며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그를 섬기지 않을 수 없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실로 우리는 사탄이 하나님께 반항한다든가 사탄의 일과 하나님의 일은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와 동시에 우리가 주장하는 것은 이 반항과 반대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전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나는 지금 사탄의 의지나 노력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 결과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마귀는 본래 사악한 존재여서, 조금도 하나님의 의지에 순종하려고 하지 않고 아주 완강하게 불순종하며 전적으로 반항한다.
그러므로 사탄이 하나님께 대하여 격렬하게 또 고의적으로 반항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과 자신의 사악함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 사악함이 마귀를 재촉하여,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신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행하게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권능의 고삐로 마귀를 잡아매고 제지하시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만을 행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창조주에게 순종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재촉하실 때에는 언제든지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출처: “1.14.17. 마귀는 하나님의 권능 아래 있다”, <기독교강요>.
읽어 보았습니다. 기독교강요는 기독교 신자의 필독서 같습니다.
영역주권의 뜻이 쉽지는 않지만, 모든 영역에서 주님이 주권자 되신다 정도로 이해하겠습니다.
국가, 교회, 학문, 예술, 과학, 사회 등 인간 생활의 각 영역들이 있는데 이것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이 주신 것이며, 각 영역들은 각자 자기 주권을 가지기 때문에 서로 속박하거나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골자이기도 합니다.
@코람데오 더욱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