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슈켄트에서 남서쪽으로 35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고도(古都) 사마르칸드(samarkand)로 가는 기차는 일주일에 세번 금, 토, 일요일에 있다. 사마르칸드는 아미르 티무르 제국의 수도였던 곳이다. 사마르칸드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아미르 티무르를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을 만큼 이곳은 아미르 티무르와 많은 연관이 있는 도시다. 사마르칸드는 인구 약 40만이 살고 있는 도시지만, 타슈켄트에 비하면 작은 도시다. 사마르칸드의 중심가는 레기스탄 거리다. 아미르 티무르의 동상이 있는 레기스탄 거리를 서쪽에서 출발해서 동쪽으로 가다보면 티무르의 무덤인 구르 에미르가 있고 레기스탄 광장이 나온다. 여기를 지나서 타슈켄트 거리로 들어서서 걷다보면 비비하님 성원과 바자르가 있고 샤흐이진다 라고 부르는 대영묘, 아프라시압 언덕으로 통하는 길이 연결된다. '구르'는 무덤, '에미르'는 왕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즉 구르 에미르는 왕의 무덤이라는 뜻이 된다. 이곳은 아미르 티무르가 오트라르 원정에서 죽은 자신의 손자 무하마드 술탄을 위해서 지은 무덤이다. 이 무덤은 1404년에 만들어졌고 이듬해에 중국 명나라를 원정하러 가던 도중에 병으로 사망한 티무르도 이곳에 묻히게 되었다
가운데에 있는 흑녹색의 관이 티무르의 관, 그 북쪽은 스승의 관, 우측과 좌측에는 각각 무하마드 술탄과 아들 샤 루흐의 관이다. 하지만 이건 위치만을 나타낸 관이고 실제 관은 같은 위치의 지하 4미터 아래에 있다
아무르 티무르 동상, 사마르칸드 중심가 레기스탄 거리에 있는 동상
히바 전경
전설에 따르면 히바는 노아의 아들인 셤이 이곳을 발견했을 때 세워졌다고 한다. 히바는 카스피해와 볼가강으로 가는 실크로드의 지류에 위치한 작은 요새와 교역소로서 8세기까지 존재하였다. 16세기초에 히바는 티무르 제국의 수도가 되면서 북적되는 노예 시장이 들어섰으며, 다음 3세기동안 티무르 영토의 중심이 된다. 히바는 샤이바니 왕조의 한 왕후인 일바르스가 1512년 히바 지방에 독립왕국을 세운 것을 기원으로 한다. 이후 히바 칸국은 주변의 카자흐, 칼무크, 투르크멘 등 여러 민족과 부하라 칸국의 침략에 시달렸다. 제13대 군주 아불가지 바하두르 칸(재위 1643∼1663)은 유명한 역사가로 《투르크족의 계보(系譜)》를 저술하였다. 히바 칸국은 1717년 러시아의 표트르 1세의 침략을 받았고, 1873년에는 다시 카우프만 장군에게 침략당하여 러시아의 보호국이 되었다가 2월 혁명 후 1920년 완전히 멸망하여 1924년 히바 칸국의 영토는 우즈베키스탄에 편입되었다. 히바는 세계에 대수학을 전달해준 지루한 도시인 우루겐치에서 남서쪽으로 35킬로미터(22마일)떨어진 곳에 있으며 면화숲과 과일나무, 끝없는 사막의 지평선을 바라볼 수 있다. 현대의 히바는 아주 기이한 곳이다. 중앙 아시아의 다른 도시들과 달리 히바의 중심지는 완전히 보존되어 있으며, 너무 번쩍거리게 깨끗해서 모든 생명이 숨이 막힐 것같다. 히바가 이처럼 유물을 완벽하게 보존하고 있었던 이유는 이 곳이 키질쿰이라는 극도의 건조한 사막성 기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건조한 기후는 과거 유물을 보존하는 데 최적의 기후를 제공하였고 찾아오는 이 없는 고립된 환경은 유적 보존의 최적의 조건을 제공하였던 것이다. 19세기에 러시아가 마침내 티무르의 지배로부터 이 지역을 빼앗게 될 때까지 가장 용맹스런 사람들조차 이 사나운 민족과 그들의 사막 영토에 들어 오는 것을 두려워했다. 영국이 러시아의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해 두 명의 첩보원을 이곳에 보냈지만 한 명은 사형당하고 나머지 한 명은 노예로서 비참한 인생을 마쳤다고 한다. 히바의 명소에는 넓적한 터키석 타일로 된 칼타 미노르 첨탑(Kalta Minor minaret), 쿠크나 아르크 요새(Kukhna Ark fortress), 218개의 목재기둥으로 된 주마 모스크사원(Juma Mosque), 화려하게 장식된 토쉬-코블리 궁전(Tosh-KhovliPalace), 이슬롬-후자 메드레사(Islom-Huja Medressa)와 그 안의 등대처럼 보이는 첨탑, 정교하게 타일로 붙여져 있고 이슬람인들에 존경의 표본인 파라본 마무드 모슬럼(Pahlavon Mahmud Mausoleum)이 있다 (블로그 > "살아있는 꿈과 함께")
부하라는 사마르칸트에서 서쪽으로 300 km정도 떨어진 도시다.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종교적인 도시이자 세계적으로 오래된 도시다. 실크로드의 주요 도시 중 하나기도 했기에 과거에는 수많은 대상숙소들이 있었다. '부하라'는 산스크리트어로 '사원'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부하라 사마르칸트와는 달리 이곳은 한적하다. 큰 대로도 없고 큰 건물도 없다. 돌아다니는 차도 별로 없다. 라비하우스 주위로 많은 유적이 모여 있는 이곳은 커다란 야외박물관처럼 도시가 온통 이슬람 유적과 건물들이다. 과거 약 400개에 육박하는 모스크와 메드레세가 있었다는 부하라는 이슬람 건물 수로만 따지자면 사마르칸트를 능가할지도 모른다
부하라의 상징으로 가장 오래 되고 가장 높은 미나레트(첨탑)이다. 칼란이란 페르시아어로 '크다'는 뜻이고 미나레 트는 '첨탑'이라는 말이다. 높이 47m의 칼랸 미나레트는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탑이다. 18∼19세기 부하라 한국시대에는 죄인들을 이 탑의 꼭대기에서 내던져 처형했다고 해서 ‘죽음의 탑’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탑의 안으로 들어서면 나선형 계단이 있다. 탑 주변은 한줄기의 푸른 타일로 장식해서 신비감을 더해준다. 옛날 칭기즈칸은 칼랸 미나레트를 목표로 부하라를 침공했으며, 이 때문에 탑이 파괴되지 않았다고도 전해진다. 미나레트은 망망한 사막에서 오아시스의 도시를 찾는 대상들에게 사막의 등대가 되었다. 미나레트는 사람들에게 하루 5차례 예배시간을 알려주는 기능과 함께 밤에는 사막의 등대역할을 했던 것이다. 옛날 캄캄한 사막을 여행하던 대상들은 탑의 꼭대기에 밝혀진 불빛을 목표로 물과 음식 그리고 사람들의 환대가 기다리는 오아시스를 향해 지친 몸을 이끌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