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오를 떠나서 국제 공항이 있는 상파울루에 비행기로 왔습니다. 이곳 상파울루(sao paulo)는 그 옛날처럼 문화의 중심지라고 안내인이 말해 주었습니다. 우리 교포들도 이곳에 많이 살고들 있다고 했습니다. 나는 이곳에서 뜻밖에 옛날 서울고등학교 시절의 제자들을 만나서 하루 저녁을 즐겁게 보냈습니다. 김우진(9회,《상파울루 저널》사장), 김운용(9회, 봉재 공장 사장), 안영호(9회, 여행사), 명덕준(17회, 봉재 공장 사장). 실로 뜻밖의 일이라, 하나 기록해 둡니다. 이들은 이곳 브라질로 이민을 온 지 오래 되어 모두 자리를 튼튼히 잡고, 잘들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 이야기로는 이곳같이 살기 좋은 곳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 교육 문제만 제외하고. 인종 차별도 없고, 물가도 싸고, 미인들도 많고, 과일·야채 등 먹을 것도 많고, 기후도 살기가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농산물은 일본인들이 모두 점령하고 있고, 일본인들은 이곳 브라질에서 가장 존경과 신용을 많이 받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상파울루 시가지를 버스를 타고 한 바퀴 돌았는데, 참으로 광대한 고색 찬란한 대도시였습니다. 이곳도 어딜 가나 카톨릭 성당이 많았습니다. 국민들이 모두 카톨릭 신자들이나, 진실로 믿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는 안내자의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곳 선물로는 브라질 보석이 유명하다고 해서 여러 브라질 보석 상점을 구경시켜 주었지만, 나는 보석 같은 것에 관심이 없어서 당신에게도 선물을 사지 않았습니다. 다이아몬드, 루비, 비취라 해봤댔자 모두 그것이 그것, 돌이 아닙니까. 보석처럼 허무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 나는 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살아오고 있는 것, 당신도 알고 있을 줄 압니다. 이제 LA에서 소식 올리겠습니다. 그럼 또. 안녕. (1994.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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