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70권인 명나라 ≪성리대전≫ 안의 ≪율려신서≫는 권22와 권23에 해당하는데, 각각 〈율려본원(律呂本原)〉과 〈율려증변(律呂證辨)〉이다
세종조 ≪율려신서≫의 유입과 아악정비에 미친 영향
세종은 재위(1418~1450) 시절, 예악문화의 황금기를 열었다.
예(禮)는
ⓛ 제사에 관한 길례(吉禮)
② 상사에 관한 흉례(凶禮)
③ 군사에 관한 군례(軍禮)
④ 인국의 외교에 관한 빈례(賓禮),
⑤ 왕실의 혼사와 국가 경사에 관한 가례(嘉禮) 등
오례의절(五禮儀節)에 따른 제도적 규범을 마련하였다.
악(樂)은 새 왕조의 무공(武功)과 문덕(文德)을 칭송하는 각종 제사음악, 조회음악, 회례음악, 연향음악 등을 재정비하여 하늘과 땅이 더불어 조화하는 균천(鈞天)의 시대를 열기에 충분했다.
따라서 세종조 음악정비는 크게 초기・중기・후기로 나누어 살펴진다. 초기(1419~1428)와 중기(1429~1442)는 율관제정과 악기제작, 제사음악과 조회음악의 정비로, 아악의 기틀을 확립한 때라면, 후기(1443~1450)는 여민락, 치화평, 취풍형, 보태평, 정대업 등 향악곡 제작과 정간보 창안으로 이어지는 향악(鄕樂)을 새롭게 일신한 시기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세종조 음악정비는 크게 아악과 향악 그리고 속악을 한 축으로 형성하고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닌데, 여기에서 아악정비에 많은 영향을 미쳤던≪율려신서(律呂新書)≫를 주목하였다.
왜냐하면 송나라 채원정(蔡元定, 1135~1198)에 의해 저술된≪율려신서≫는 1430년(세종12) 윤 12월 1일에 일단락 된 ≪아악보≫완성에 아악의 이론적 기틀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제어 : 세종(世宗), ≪율려신서(律呂新書)≫, 아악(雅樂), 제사음악(祭祀音樂), 조회음악(朝會音樂), 경녕군(敬寧君)
연구의 방법은 먼저 세종조 음악정비 과정을 살펴보고, 다음은 ≪율려신서≫의 유입배경과 ≪율려신서≫가 아악정비에 미친 영향을 차례로 살펴보았다.
그 결과≪율려신서≫의 유입은 태종(太宗, 1367~1422)의 큰아들 경녕군(敬寧君, 諱 裶)이 1419년(세종1) 8월 명나라 사은사(謝恩使)로 갔다가 그 해 11월 18일에 『성리대전(性理大典)』을 가지고 돌아왔는데, 그 속에 ≪율려신서≫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율려신서≫는 1419년(세종1)에 유입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 뒤 ≪율려신서≫은 경연(經筵)의 강학 교재로 채택될 정도로 관심이 집중된 책인데, 특히 세종은 ≪율려신서≫의 음악이론에 심취되어 그 이치를 깊이 탐미하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뿐만 아니라, 황종 율관제정, 아악기 제작을 비롯해 1430년(세종12) 윤 12월 1일에 완성된 제사와 조회≪아악보≫의 악조이론 정립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King Sejong opened the golden period of court music in his reign(1419~1450). That is, he developed institutional norms of 『Oryei(五禮儀)』 of five ceremonies: happy ceremony, bad ceremony, military ceremony, reception ceremony and auspicious ceremony. He reorganized various kinds of ritual music which were intended to admire military and literary achievements, morning assembly music, social visit music and entertainment music. It was enough to open the era of balance between the sky and the ground. Therefore, this study focused on the introduction of 『Yulryeosinseo(律呂新書)』 in the King Sejong's period and its effect on reorganization of court music. It was believed that 『Yulryeosinseo』 was included in 『Seongridaejeon(性理大典)』 he brought when he returned home from Ming as an appreciation delegate in November 18, 1419. Then, 『Yulryeosinseo』 was an guideline to speculate subtle and delicate reason of music theory. As well, it was confirmed that it had a great influence on making court music instruments and organization of musical tones of court music.
영락(永樂)은 명(明) 나라 영락제(永樂帝)의 연호이다.
명 성조 영락제(明成祖 永樂帝, 1360년 5월 2일(음력 4월 17일) ~ 1424년 8월 12일(음력 7월 18일))는 명 왕조의 제3대 황제(재위 1402년~1424년)이다. 그의 휘는 체(棣)이고, 명 태조 홍무제의 4남이며 어머니는 효자고황후 마씨이다.
영락제는 대외 정벌과 해외 무역로 확장 등의 대외 확장 정책을 펼쳐 주변국을 굴복시켜 조공질서를 명확히 하였다. 이에 베트남이 명에 정복당하여 한때 중국 영토로 편입되기도 하였다.
호광(胡廣, 1370년 ~ 1418년)은 명나라 초기의 학자이다.
《성리대전》은 성리학을 집대성한 책으로 1415년(명나라 영락13년)에 호광(胡廣) 등 42명의 학자가 왕명을 받고 편찬한 70권의 책이다.
이 책은 갑집과 을집으로 나누어 있는데,
1권에서 13권에 이르는 갑집은
태극도, 통서, 서명, 정몽, 황극경세서, 역학계몽, 가례, 율려신서, 홍범확극 등 성리학의 핵심 저작들을 포함하고 있고,
을집은
성리학의 주요 개념과 역사, 인물계보 등에 대한 사항을 사전적으로 기술해 두고 있다.
14권에는 이기에 대한 주제를 태극, 천지, 역법, 천문, 기상, 음양, 오행, 시련, 지리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고,
15권은 귀신에 대한 주제로 혼백, 제사, 신기, 생사 등을 다루고 있으며 성리에 대한 주제로 성명, 인성을 설명한다.
16권에서는 성리학에서 말하는 기질지성을,
17권에서는 심성, 정의, 사려를,
18권에서는 도, 이, 덕, 인을 설명한다.
19권에서는 성리학에서는 말하는 인의예지신, 성, 충신, 충서, 공경의 개념을 설명한다.
또한 이 책은 성리학의 역사와 주요 학자를 다루고 있다.
세종 정간보 창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