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08. 28
호주 퀸즐랜드 선샤인 해안의 동물원 국장이었던 스티브 어윈(Steve Irwin)은 2006년 홍어에 물려서 죽었다. 그는 열렬한 환경 운동가이자 원시림 탐험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악어 사냥꾼’으로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었던 인물이다. 잔치 때마다 빼놓지 않고 홍어무침을 먹었던 나는 저 뉴스를 보며 ‘독이 있는 홍어도 있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난다. 벌처럼 쏘는 범무늬노랑가오리(stingray)는 꼬리에 가시가 자리 잡고 아래 독의 분비선이 있어서 포식자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한다. 재미있는 점은 홍어와 같이 연골어류에 속하는 상어의 비늘도 저 가시와 진화적 기원이 서로 같은 상동 기관이라는 사실이다.
오돌토돌한 상어의 피부는 방패비늘(楯鱗, placoid scales)이라고 불리는 200~500 마이크로미터(㎛, 100만분의 1m) 크기의 비늘로 덮여 있다. 전자 현미경으로 상어 피부를 관찰했던 과학자들은 저 비늘이 우리 인간의 치아와 구조적으로 동일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물고기와 사지동물의 중간 단계에 해당하며 “팔굽혀 펴기”를 할 수 있었던 물고기 화석을 발견한 닐 슈빈(Neil Shubin)은 턱이 없는 어류인 칠성장어 이빨에서 입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중인 상어의 방패비늘을 보았다. 척추동물은 오랜 시간에 걸쳐 방어용 외골격 조직을 여러 가지 기능을 수행하는 내골격 이빨로 용도를 바꾸어버린 것이다. 캄브리아기를 규정하는 대량의 화석은 분해가 쉽지 않은 이런 외골격과 이빨, 그리고 근육이 붙어 있던 뼈에 다름 아니다. 생명체의 역사에서 마침내 “피로 물든 이빨과 발톱”의 시대가 찾아온 것이다.
인간처럼 척추동물로 분류되지만 턱이 없어 무악어류로 불리는 생명체 중에는 우리가 즐겨 먹는 곰장어도 있다. 청소동물로 바다 아래쪽에 사는 곰장어와 달리 몸통에 7개의 아가미 구멍이 있는 칠성장어는 강한 이빨을 물고기 몸통에 박아 체액을 빨아먹는다. 강원도 양양 남대천에서 발견되는 칠성장어는 먹장어와 더불어 ‘살아있는 화석’이면서 동시에 이빨이 턱보다 먼저 진화했다는 사실을 몸으로 증명하는 신비로운 물고기이기도 하다.
턱과 이빨은 살아가는 데 먹는 행위가 중요하다는 점을 웅변하는 진화적 장치이다. 척추동물의 98%가 턱을 가졌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저 기관의 유용성을 익히 짐작할 수 있다. 턱은 먹잇감을 잡고 소화기관 안으로 집어넣는 일을 수행한다. 이빨이 없는 닭도 부리와 턱을 움직여 물고기를 입안으로 욱여넣는다. 하지만 이빨이 있으면 잡고 씹어서 소화의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 사자나 기린 모두 먹는 방식은 사실상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이빨의 종류가 다르다는 점뿐이다.
잡식성인 인간의 입에는 앞니, 송곳니, 어금니가 각각 8개, 4개, 20개 있다. 앞니는 끊고 자른다. 송곳니는 구멍을 낼 수 있다. 어금니는 맷돌처럼 음식을 잘게 갈 수 있다. 익히 잘 알고 있듯이 육식성인 사자는 송곳니가, 초식성인 기린은 어금니가 발달했다. 코끼리는 길고 커다란 엄니(ivory)를 공격용으로 사용한다. 200개가 넘는 이빨을 가진 돌고래도 있다. 과학자들은 포유류가 진화하면서 이빨의 수는 점차 줄어든 반면 다양성은 증가했다고 말한다. 동물의 이빨은 다양하지만 사실 그 형태는 무엇을 먹는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젖을 먹을 때 이빨이 필요하지 않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우리 인간을 포함한 젖먹이 포유동물이 태어날 때 이가 없다는 사실이 단박에 이해가 된다.
약 6~8개월 정도 자라면 아기의 입 아래쪽에서 앞니 2개로 시작해 얼추 30개월 정도면 전부 20개의 젖니가 나오게 된다. 이로부터 우리는 두 발로 걷는 사건보다 치아가 나오는 일이 먼저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 30개월 정도면 젖을 떼고 아기가 다른 종류의 음식물을 먹을 생물학적 준비가 완성된다는 점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치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발생을 시작한다. 수정이 되고 약 8주 후면 젖니, 20주 후면 영구치의 발생이 시작되기 때문에 우리는 태어날 때 이미 52개의 치아를 다 갖고 있다. 그게 인간 치아의 전 재산이다. 상어는 살아 있는 동안 3만번 이빨을 교체할 수 있다고 한다. 빠지면 바로 나오기 때문이다. 인간은 초등학교에 들어갈 즈음에 곤충이 탈바꿈하듯 치아를 교체한다. 아이의 몸통은 성장을 하지만 한번 형성된 치아는 더 자라지 않기 때문이다. 성인이 될 때까지 부피가 네 배 증가하는 뇌를 담기 위해 인간의 머리통은 당연히 커져야 할 것이다. 이렇게 자라난 턱에 맞춰 인간은 치아를 새것으로 교체할 필요가 생겼다. 새로 나온 영구치는 더 크고 튼튼하다. 뼈와 달리 수산화 인회석이라는 무기염류가 함유된 강력한 법랑질(enamel)이 위아래 두 개의 이빨이 마주치는 부위에 자리 잡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랑질을 만드는 세포는 잇몸을 뚫고 치아가 나오자마자 죽어버린다. 치아의 표면이 부식되고 손상되면 다시 회복되지 못한다는 뜻이다. 게다가 사랑니는 17~21세 정도에 느지막하게 나온다. 아예 사랑니가 없는 사람도 더러 있다. 인간이 불을 사용하면서 턱과 이빨에 부담을 줄인 덕택일 것이다. 앞으로 인류가 더 부드러운 음식을 먹게 되면 우리 치아는 약해지고 그 수도 더 줄어들지 모르겠다. 길게 보면 인간은 늘 진화하는 중임에 분명하다.
김홍표 /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