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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주님께서 이르시되(부활주일/2023.4.9)
요20,18-29
(18)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19)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1)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23)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24)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25)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26)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7)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9)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1. 지난 한 주간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신 고난주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희생제물이 되신 것은 우리 인간들의 죄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해주시고,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켜주시며, 또 그래서 완전히 구원받은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제사를 드리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의에는 목적에 따라 인간의 죄를 속하는 속죄제, 하나님과 남에게 손해를 끼친 것에 대한 것을 배상하는 속건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화목제(감사제 서원제 낙헌제)가 있습니다. 제물을 드리는 방법에 따라서는 화제, 거제, 요제, 전제(포도주와 기름) 등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희생되는 것은 친히 희생제물이 되시어서 단번에 모든 제사의 목적을 완성하신 제사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완벽한 희생제물이 되신 것만이 두 번 다시 희생제물을 드릴 필요가 없는 완벽한 제사를 이룬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친히 희생제물이셨을 뿐만 아니라 멜기세덱의 반차를 쫓는 완벽한 대제사장이셨던 것도 완벽한 제사의 조건 중 하나였기 때문이라고 히브리서 7장이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완벽한 제사장이시라는 것을 히7,24-25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24)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25)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기독교의 최대 명절이라 할 수 있는 부활절의 중요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완성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단순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다시 살아나셔서 지금도 살아계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지금도 살아계셔서 대제사장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계시기 때문에 죄인 인간이 구원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부활절은 매우 중요한 날입니다. 또한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첫 말씀은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말씀은 바로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첫 번째로 하신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부활절의 의미를 더 깊이 깨닫고 부활 신앙을 확고하게 하는 은혜가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2. 제일 먼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무덤을 찾아갔던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에 예수님의 시체가 없는 것을 알고 울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시신마저 누군가 약탈해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새벽 일찍 무덤에 갔다가 무덤의 돌문이 옮겨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베드로와 요한에게 가서 말하기를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요20,2)고 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무덤으로 가서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두 제자가 집으로 돌아간 후, 무덤가에서 무덤 안을 들여다보며 울고 있던 막달라 마리아는 두 천사를 봤습니다. 천사들이 마리아에게 왜 우느냐고 묻자 마리아는 사람들이 주님을 옮겨다 어디에 두었는지 몰라서 그런다고 대답을 하고 돌아서는데, 거기에 또 한 분이 서서 말하기를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고 하자, 마리아는 그를 동산지기인 줄로 알고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동산지기인 줄로 알았던 그 분이 귀에 익은 음성으로 “마리아야”라고 하자 그때서야 예수님인 줄 깨닫고서 ‘랍오니(선생님)?’ 하며 붙잡으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붙잡지 말라고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가서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라고 알려주라고 하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에게 하신 이 말씀, ‘곧 승천할 것임을 가서 알리라’(17절)라는 것이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일 처음 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도마를 제외한 열 명의 제자들이 여전히 두려움 가운데서 비밀히 한 자리에 모여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갑자기 오셔서 그들 가운데 서서 말씀하십니다. “살롬”,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그러고는 못 박혔던 손과 창에 찔렸던 옆구리를 보여주시니 제자들이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보고, 믿고, 기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21절) 이것이 부활하신 주님께서 하신 두 번째 말씀이고 제자들에게 하신 첫 번째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후 제 일성(一聲)으로 하신 첫 번째 말씀은 방금 말씀드렸던 대로 ‘살롬’, ‘평강이 있을지어다.’입니다. 두려워서, 불안해서, 어쩔 줄 모르고 있던 그들에게 내가 여기 살아있으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한 번 같이 해보실까요? ‘내가 여기 살아있으니 두려워하지 말라.’
여러분, 오늘 부활절에 우리가 확고하게 해야 할 한 가지는 주님께서 지금도 여기 살아계시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은 그냥 일시적으로 다시 살아났다가 세월이 많이 지나간 후에는 다시 죽어야 하는 그런 부활이 아닙니다. 기독교가 말하는 부활 신앙은 ‘지금도, 여기 내 곁에, 우리 가운데, 서 계신 주님이신 것을 믿는’ 신앙입니다. 그냥 서 계신 것이 아니라 ‘살롬’이라고, ‘내가 여기 함께 있으니 평안하라.’고 안심을 시켜주시는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심한 풍랑이 이는 바다 한 가운데에서 절망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바다 위에 서서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막6,50)라고 하셨던 그 주님이 지금 여기 내 곁에서도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미디안 사람들에게 7년 동안이나 속박을 받으며 절망 속에서 살던 기드온에게 오셔서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하시니라”(삿6,16)라고 하시던 그 주님께서 오늘도 인구감소와 교회 안의 미래 세대 감소, 은혜가 메말라가는 곤경에 처한 어려움 때문에 덜덜 떨고 있는 오늘의 교회와 성도들에게 오셔서 ‘살롬, 평강할지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믿는 신앙이 부활 신앙입니다. 여태까지 든든하게 이끌어주던 지도자 모세가 목적지 가나안 땅을 코앞에 두고 있는 요단강을 건너기 직전에 서거했습니다. 40년 광야 생활을 끝낼 수 있고 끝내야 하는 순간이었지만 모두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철 병거 등 강력한 무기들로 무장하고 있는 가나안 군대와 전쟁을 치러야 하는 상황 앞에서 불안과 초조로 떨고 있던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인도하여 내가 그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신31,23)라고 용기를 북돋워 주시던 바로 그 주님께서 이 시간, 우리 곁에 살아계셔서 지켜주시고 함께해 주시는 것을 믿는 믿음이 우리가 다시 확고하게 해야 할 부활 신앙입니다.
지금도 내 곁에 살아계시고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하시는 ‘부활의 주님’을 믿으십시오.
3. 부활 후 제 일성으로 ‘살롬,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신 주님은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23)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부활의 증인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부활의 증인이 되라는 말씀은 부활 신앙의 전파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어떤 전파자입니까?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 같이 그런 보내심을 받은 전파자가 되라는 뜻입니다.
앞에서 ‘지금, 여기, 내 곁에 살아계신 주님을 믿는 것이 부활 신앙’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부활 신앙의 다른 한 가지는 ‘우리도 부활한다’의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 아버지한테서 오셔서 다시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께서는 예수님의 부활을 ‘부활의 첫 열매’(고전15,20)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그리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것은 고전15,22-24에서 ”(22)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23)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24)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는 말씀처럼 우리 믿는 성도들도 다 부활한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부활의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런 부활 신앙의 전파자가 되라고 하시면서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고, 이 믿음이 전파되는 누구에게든지 그 사람의 모든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완벽한 희생 제물이 되시고 완벽한 대제사장이 되시어서 단번에 완벽한 제사를 드리심으로 모든 믿는 자의 구원자가 되신다는 이 믿음은 오직 성령의 역사에 의해서만 믿어지는 것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고전12,3은 밝히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용서 받지 못할 사람이 없습니다. 사도 요한께서도 요일1,7에서,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하신 것을 확인합니다.
여러분, 오늘 부활 주일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부활하셨던 그날 저녁에 제자들에게 하셨던 말씀을 들으십시오. 어떤 말씀입니까? ‘너희는 부활 신앙의 전파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이 부활 신앙은 성령에 의해서만 믿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성령을 받으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이 믿음은 의심할 여지 없이 모든 죄를 말갛게 씻어준다는 것을 확신하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날의 교회와 성도들에게 강조되어야 할 믿음이 ‘주님은 부활의 첫 열매이며 우리도 주님처럼 부활한다는 것’을 믿는 부활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요5,28-29에서 말씀하셨습니다. ”(28)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모든 사람이, 생명의 부활이든지, 심판의 부활이든지, 부활합니다.
모든 사람이 부활하여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날이 있습니다. 그날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칭찬을 듣도록 사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요, 가장 신앙생활을 잘하는 성도라 할 것입니다. 이 부활 신앙의 전파자가 되라고, 그러기 위해 믿음에 굳건히 서서 성령 충만하라고 하시는 주님의 명령을 들으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4. 부활하신 그날 저녁에 처음으로 제자들을 만나셔서 ‘살롬, 두려워말라’라는 말씀과 성령 받아 죄 용서받음과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라는 말씀을 주셨던 주님께서는 마침 그 자리에 없어서 부활하신 주님을 뵙지 못해 자기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을 수 없다고 하는 도마가 함께 모여 있던 자리에 다시 오셨습니다. 이때가 부활 후 여드레가 지난 그다음 주 월요일이었습니다. 26-28절입니다. ”(26)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7)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9)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다시 제자들에게 오신 예수님은 믿지 못하겠다던 도마에게, 못박혔던 손과 창으로 찔렸던 옆구리를 보고 손으로 만져도 보라고 하시면서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어서 보고서야 믿는 사람도 있겠지만 보지 못하고서도 사죄의 복음과 구원의 복음을 믿는 자들은 복되다하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믿는 사람은 믿을 이유를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지만 믿지 못하는 사람은 믿지 못하는 이유를 끝없이 찾아냅니다. 믿음을 갖느냐 갖지 못하느냐의 문제는 증거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그래서 믿음은 믿는 것이라기 보다는 믿어지는 것이라 하기도 합니다. 믿지 않겠다고 하면 믿지 않을 이유도 충분하지만 반대로 믿을 이유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십자가의 능력을 믿고 죄를 사함 받은 기쁨을 가지고 사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백배나 낫습니다. 부활 신앙을 가지고서 구원의 소망 중에 새 삶을 사는 것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천배나 낫습니다. 복음의 씨앗이 내게 떨어졌는데 그 복음을 내 안에 잘 뿌리가 내리게 하고 자라게 하면 100배의 열매가 생기지만 세상의 유혹이나 재리에의 탐욕, 때로는 세상의 핍박이나 환난 때문에 그 복음의 씨앗이 자라지 못하게 되면 아무런 열매도 거둘 수 없거나 공허와 허무라는 열매만 거두게 됩니다.
그러므로, 무슨 핑계를 대고 무슨 이유를 대든 십자가의 복음과 부활의 복음을 믿는 사람이 되십시오.믿지 않겠다는 편보다 믿는 편을 선택하십시오. 믿는 것도 안 믿는 것도 자기 선택이지만 주님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더냐”(요11,42)고 약속하셨습니다. 믿어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