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일시: 2020년 2월 2일 (일) [토요무박]
o 날씨: 맑음 (미세먼지)
o 산행경로: 어림고개 - 별산(오산) - 묘치고개 - 주라치 - 천왕산 - 서밧재 - 천운산2봉 - 천운산 - 돗재
o 산행거리: 22.2km
o 소요시간: 7시간 반
o 지역: 전남 화순
o 일행: 봉산악회
o 산행정보: 별산, 묘치, 서밧재, 천운산, 돗재
o 트랙:
▼ 코스지도
2년이 더 지나고서야 어림고개에 다시 섰다. 빼 먹었던 호남정맥을 땜빵하기 위해서다. 그동안 여러번 땜빵할 방법을 생각했으나 몇몇 산악회는 구간 구분이 맞지 않았고 나홀로 땜빵은 교통편 등 여러가지 사정이 여의치 않아 미루고 미루다가 벌써 2년이 훌쩍 지난 것이다. 오늘산행도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되고 있어 여러사람과의 접촉을 가능한 피하는 것이 좋겠지만 오늘을 놓치면 또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주섬주섬 등산배낭을 꾸리게 된다. 오늘 구간은 어림고개에서 돗재까지 약 21km 내외의 거리이며, 고도표 상으로는 비교적 무난한 구간으로 생각된다. 새벽을 달려 도착한 어림고개, 일기예보는 영하 4℃까지 기온이 떨어진다고 했는데 바람이 없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춥다는 느낌은 없다...
▼ 어림고개 (들머리)
어림고개는 화순군 동면 청궁리 어림부락에서 이서면을 잇는 고개이며, 어림(魚林)마을은 마을의 지형이 흡사 바닥에 배를 띄워 놓고 낚시하는 것 같다 하여 조동(釣洞)이라 하였는데 왜정 때 어림으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시작부터 제법 가파른 오르막이다. 오랜만의 중거리 산행이라 혹시라도 다리에 탈이 날까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오늘구간은 호남정맥하면 떠오르는 가시덤불과 잔가지와 부러진 잡목이 많은 구간으로 알려져 있는데, 소문대로 등로에 빼곡히 들어선 잔가지들이 온몸을 할퀼듯 달려든다. 이런 길은 서밧재까지 이어진다. 여름철에 오면 환장할 듯 ㅎㅎ
어라... 앞서가던 선두가 뒤돌아 오고 있다. 정맥에서 약간 벗어났다고 하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다른 길은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약간 왔다갔다 하는 사이 두다리는 텐션이 팽팽하게 걸린다. 등로는 시그널을 따라 그냥 직진하면 된다. 간혹 등로와 트랙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트랙뿐만 아니라 등로의 흐름과 시그널 등을 종합적으로 참고하면 알바를 줄일수 있다. 다시한번 비탈길을 치고 오르면 시그널이 잔뜩 달려 있는 곳이 570봉인가 보다...
다시 밤 숲길을 헤쳐 나간다. 밤길은 앞 사람과의 간격이 벌어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여차하면 방향을 놓칠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순간 가건물이 서 있는 시멘트포장도로를 만난다. 아마도 산꼭대기에 있는 풍력발전소와 연결되는 임도인 듯하다. 정맥길은 이곳에서 우측으로 능선을 따라가야 하지만 임도를 따라가도 산꼭대기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정맥길을 지키려는 몇명은 우측 능선으로 향하고 나를 포함하여 몇명은 그냥 편하게 임도를 따라 걷는다. 정맥길을 지키자고 우측 능선으로 가봐야 회초리 처럼 팽팽한 잔가지들의 '싸다구 세례'밖에 더 있겠냐는 자기 변명을 하며...
임도길을 따라 걷는데 그러렁그러렁 거리는 동물울음소리 또는 쉬익쉬익 거리는 비행기소리가 컴컴한 한밤중을 채우고 있다. 자세히 보니 풍력발전기가 돌아가는 소리다. 어둠속으로 풍력발전기의 형체도 조금 보이고. 임도길은 약간 구불구불 우회하면서 산 정상으로 연결된다. 임도는 정맥길보다 1~1.5km 정도 우회하는 것 같다...
산꼭대기에 있는 두개의 큼직한 바위가 있는 곳이 별산 정상이다. 이 두개의 암봉이 자라처럼 생겼다고 해서 오산(鰲山)이라고 한다는데 국토지리정보원의 정확한 명칭은 별산이다. 자라별(鱉)을 자라오(鰲)로 잘못 읽었다는 설도 있다. 별산 정상에는 시그널이 잔뜩 달려 있는 것 외에는 별다른 표식이 없고 그 아래 산불감시카메라 시설물 철조망에 '별산(오산)'이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다...
▼ 별산 정상
별산 정상에서 사진을 찍느라고 잠시 주춤한 사이 선두는 벌써 저만치 달아나고 있다.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선두를 따라 잡아야 한다. 트랙이 있지만 앞서가는 일행들을 따라 가는 것이 가장 안전빵이다...
풍력발전단지를 벗어나면 다시 숲길, 594봉을 지난다음 등로는 묘치(고개)를 향해 급락한다. 땅은 얼었고 그 위에 낙엽이 수북히 쌓여있어 여차하면 미끄러지고 넘어지기 일쑤다. 이구간은 키높이를 넘는 산죽과 잡목과 잡풀도 수북하다...
미끄러운 길을 쭉 미끄러져 내려오면 묘치(고개)다. 묘치에는 '화순적벽'이른 간판과 '적벽가는 길' 이라는 커다란 이정석이 세워져 있다. 묘치는 현재 화순군 동복면과 동면을 이어주는 국도15호선이 통과하고 있으며, 고양이의 모습이라고 하여 '괭이재'라고 불렸으나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묘치(猫峙)라고 한다. 인근에 있는 동북호 때문인지 겨울이지만 이곳의 새벽은 안개가 자욱해 서늘한 기분이 든다...
묘치에서 잠시 장비를 점검한 다음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숲길이 이어지고, 묘치고개가 신설되기 전에 많이 왕래했다는 '주라치'는 어디쯤일까? 한번 잊혀지면 그것을 유지하는 것이 생각보다는 싶지 않은 모양이다...
어느듯 새벽이 밝아오고, 헤드렌턴에 비치던 한뼘 남짓의 세상은 현실이 되어 파노라마처럼 다가온다...
등로가 참 난해하기도 하고 때로는 난감하다. 어쩌면 가장 자연스럽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내키는 대로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친 크고 작은 나무들과 어느듯 생을 다하여 자연스럽게 스러진 고사목들...
발바닥에 땀좀 흘리고 도착한 천왕산에는 삼각점과 나무팻말이 붙어 있다. 이곳에서 일행들도 너나 할 것 없이 베낭을 풀고 아침요기를 한다. 억지로 쑤셔넣은 샌드위치가 목을 넘어가지 않는다. 따뜻한 커피라도 한잔 있었으면...
▼ 천왕산
천왕산을 지난 등로는 급격하게 꼬부라진다. 낙엽때문인지 얼어 있는 땅 때문인지 한걸음 한걸음이 아슬아슬하다. 급격하게 하강한 등로는 제자리를 찾은 다음 부드럽게 통신탑을 지난다...
▼ 뒤돌아본 천왕산(중간)
굶어 죽었을까? 얼어 죽었을까? 아니면... 통신탑의 전기철선에 걸려 멧돼지 한마리가 죽어 있다. 이곳이 구봉산 갈림길 위치이며, 등로는 우측으로 서밧재를 향해 하강한다...
▼ 내려다 보이는 벽송저수지(서밧재)와 천운산(좌측 뒤)
서밧재에는 벽송빌리지가 분양중이다. 등로는 벽송빌리지 우측의 아스팔트 길에서 철제펜스를 넘어 광주광역시 학생교육관 방향으로 이어진다. 이곳부터는 등로가 제법 잘 정돈되어 있다. 서밧재는 화순군 동면과 사평을 이어주는 국도15호선이 통과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릴 때 누에 섶 같다고 하여 섶밭재라고 부르다가, ‘섶밭재’가 ‘서밧재’로 음이 변한 것으로 추정된단다. 서밧재는 도로가 겹쳐 헷갈리기 쉬운 곳이니 미리 도상훈련이나 트랙을 사용할 것을 추천드린다...
▼ 광주광역시 학생교육원
등로는 학생교육원을 지나 임도로 이어진다. 학생교육원에서 시그널은 숲속으로 연결되지만 곧 임도와 합류하기 때문에 고생스럽게(?) 숲길을 고집할 필요는 없을 듯...
학생교육원 바로 뒷편이 호남정맥 228km의 중간지점이라고 한다. '시작이 반'이라고 하니 '절반은 전부를 다한 것과 진배없다'라며 의욕을 펌프업할수 있겠지만, 전구간 완주후 한구간 땜빵을 하고 있는 나로서는 뭔가 손해를 보는 느낌 ㅎㅎ
등로는 이제 천운산을 향해 올라간다. 경사가 그렇게 높지는 않지만 꾸준히 이어지는 오르막길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한동안 편하게(?) 쉬었던 다리도 계속되는 오르막길에 힘이 부치고...
눈앞으로 보이던 산봉우리를 기를 쓰고 올라왔는데 천운산이 아니다. 쉼터가 마련되어 있고, 천운산2봉은 조금 더, 천운산은 이곳에서 한참을(?) 더 가야 한다. 할수없이 쉼터 의자에 앉아 호흡을 가다듬고 산하를 둘러보지만 하늘을 가리고 있는 미세먼지 때문에...
능선삼거리를 지나고
570봉(천운산2봉)을 지나
천운산으로...
▼ 천운산 2봉 (570봉)
천운산에도 산불감시시설이 들어서 있으며, 컨테이너 박스 뒷편에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천운산(天雲山)은 산이 높아 늘 구름이 끼여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주변의 무등산, 백아산, 만연산, 용암산 등이 잘 조망된다고 하던데... 실제로는 조망이 없다...
▼ 천운산
천운산을 지나면 돗재까지는 쭉 내리막길....이면 좋겠는데 능선삼거리에서 직진하여 514봉 등 몇개의 작은 암릉과 바윗길을 넘어야 한다. 10시간의 산행시간이 주어졌는데 이런 페이스라면 8시간이 채 걸리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고 양지바른 곳에 앉아 놀수도 없고...
돗재를 0.4km 앞두고 팔각정이 세워져 있고, 진행방향으로 다음구간의 태악산이 다가온다. 겨울 찬바람을 맞으며 넘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돗재는 전남 화순군 한천면 오음기에 있는 고개로 한천면 오음리에서 반곡기를 지나 남면 사평리를 이어주며 822번 지방도로가 지나고 있다. 해발 350고지에 있는 돗재를 중심으로 영내 12개 마을과 영외 8개 마을이 있었는데 험준한 돗재때문에 불편을 많이 겪었는데 주민들이 새마을사업의 일환으로 도로개설사업을 하여 1977년에 완공하였다고 한다. 천운산의 산세가 암돼지가 누워서 7마리의 새끼에서 젖을 주고 있는 형국이라 하여 천운산 중턱재를 돗재라 하였으며, 돗재골에는 장군대좌가 있다고 전하는데 즉 돗재장군이 천운산(천자봉)에서 천자를 모시고 있으며 천운산 아래에 문바위가 있어 여기에서 병사들이 문을 지키고 있다는 전설도 전해지고 있다...
▼ 돗재
일행들 모두가 준족이다. 주어진 10시간을 채우지(?) 못하고 대부분 8시간 반만에 하산을 완료했다. 일찍 내려온 일행들은 버스 옆에서 간단하게 뒷풀이를 하고, 점심은 인근식당에서 추어탕과 주물럭으로...
빨리 하산한 덕분에 서울로 빨리 돌아올 수 있었고 또 울산행 기차를 놓치지 않아서 다행이다. 호남정맥은 이제 다다음 마지막 한구간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