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시30분 출발 예정이던 두바이행 비행기는 한 시간이 넘도록 인천공항에 묶여 있었다. 공항의 컴퓨터 시스템이 다운됐다고, 스튜어디스는 거의 울먹이는 소리로 다섯 번째 안내방송을 내보냈다. 잠이라도 쏟아지면 좋으련만, 재발한 오른쪽 어금니의 통증이 훼방을 놨다. 승무원들의 훤칠한 몸매와 이국적인 유니폼을 구경하는 것으로 시간을 때웠다. 모래 빛깔 제복, 붉은 모자 아래로 늘어뜨린 시폰 스카프. “얼굴 가리개냐”고 묻자, 금발의 스튜어디스는 “사막에서 부는 바람”이라며 싱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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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무룩 잠이 든 지 9시간여 만에 비행기는 ‘셰이크 라시드’ 공항에 착륙했다. 오전 7시인데도 30도가 넘는 열기로 두바이 시내는 찜통이다. 그래도 ‘사막 속 뉴욕’은 눈부시다. 에미리트 타워, 월드 트레이드 센터, 페어몽 두바이 등 화려한 현대 건축물들이 메인 도로 ‘셰이크 자예드’를 따라 정렬해 있었다.
아랍에미리트를 구성하는 7개 토후국 중 하나. 두바이는 2005년 현재 세계의 돈과 야망이 몰려들고 있는 코스모폴리탄 도시다. 120만 인구 중 82%가 150개 국적의 외국인들. ‘삼성’ ‘소니’ ‘노키아’ ‘렉서스’ 등 사방이 온통 유명 기업 광고물 천지다.
‘세금 없는 나라’로 모든 가게에 면세가 적용되는 대형쇼핑센터를 들고나는 건 관광객만이 아니다. 터번 아래 선글라스를 낀 남자, 검은색 차도르를 썼지만 가방부터 샌들까지 구찌와 프라다로 치장한 원주민 여인들. 인도 출신의 가이드 라울이 말했다. “혈통 보존을 위해 두바이 정부는 자국민을 극진히 대접합니다. 결혼하면 집을 사주고 수천만원의 돈을 주지요. 두바이엔 거지가 없습니다. 구걸은 불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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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 통치자인 셰이크 모하메드 왕세자는 열사의 사막에 젖과 꿀이 흐르는 낙원을 건설하겠다는 야심을 가진 게 틀림없다. 1966년 석유가 발견되자, 그는 아라비아만(灣)을 품은 지정학적 위치를 활용, 무역과 금융·비즈니스의 거점으로 두바이를 성장시키는 데 자본을 쏟아부었다.
‘Nothing is Impossible!’. 타워크레인 아래 나부끼는 플래카드 문구처럼 이곳에서 불가능이란 없다. 세계 건축가들의 관심은 2008년 완공되는 700m 높이의 ‘버즈 두바이’에 쏠려 있다. 63빌딩의 3배 높이로, 세계 마천루의 역사를 바꿀 현대판 바벨탑이다. 바다를 매립해서는 야자수 모양의 ‘팜 아일랜드’ 세 곳과, 300개 섬으로 조성될 세계 지도 모양의 섬 ‘더 월드’를 건설 중이다. 올 9월엔 450m 길이의 스키장이 문을 연다. 40도를 웃도는 불바람 속에서 스키를 즐긴다!?
일명 세븐 스타 호텔로 통하는 ‘버즈 알 아랍’ 또한 두바이의 명물이다. 요트 형상을 한 이 초특급 호텔의 하룻밤 방값은 최저 150만원. 투숙객만 들어갈 수 있는 이 호텔을 구경하려면 2층 커피숍에서 이뤄지는 ‘티 타임’에 입장료 5만원을 내야 한다.
그렇다고 아라비아의 쪽빛 해변이 부자들만의 것은 아니다. ‘주메이라 비치’에서 만난 다섯 살 소년 핫산은 이방인의 카메라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고향은 탄자니아지만 핫산은 두바이에서 태어나 자랐다. 대학에서 엔지니어링을 전공하는 핫산의 형은 모랫바닥에 ‘Love, Hope, Faith’를 새겨놓고 바다를 향해 엎드렸다. 예수든, 마호메트든 진리는 하나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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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감 사막에서 만난 지프 운전사 칸은
“당신은 오늘 밤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두바이 여행의 히트상품인 ‘듄 디너(Dune Dinner)’를 두고 한 말이다. 사륜구동 지프를 타고 모래언덕을 오르내리는 스릴, 황혼녘 낙타떼가 사구를 거슬러 올라가는 장관…. 진짜배기는 어둠 내린 사막을 달려 당도한 베두인족 마을에 있었다. 다이어트하는 서양 여자들이 환장한다는 아랍 전통음식들. 꽃장식한 낙타를 타고 여왕 행세를 하고 돌아오니 이번엔 타투를 해주겠다며 손짓한다. ‘나비를 새길까? 등허리에 꽃띠를 두를까?’ 그러나 쉰 줄의 베두인족 여인은 팔뚝에 돌고래 두 마리를 새겨주었다.
하이라이트는 벨리댄스였다. 모래벌판 한가운데로 뛰어나온 반라(半裸)의 여인이 관능적인 율동으로 관중을 유혹한다. “무희치곤 너무 뚱뚱해.” 그러자 칸이 웃는다. “살이 출렁거려야 진짜 벨리댄스지.” 저 무희 외에는 어떤 베두인족 여인도 이방인들 앞에서 춤을 출 수 없다고 그는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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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의 짧은 악몽. 검게 차도르를 두른 여인이 호텔방 욕실 유리문 앞에 서 있다. 베두인족 그 무희를 닮았다. 소리를 질렀으나 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는다. 누군가 어깨를 흔들었다. 아침 기내식을 들고 승무원이 생긋 웃는다. 꿈이었을까. 베두인의 무희도, 사막에서의 사흘 밤도…. 모든 것이 신기루처럼 사라지자, 다시 어금니가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여행수첩]
●항공편:인천공항에서 두바이공항까지 에미레이트 항공 (www.emirates.com/ kr·02-779-6999) 매일 0시30분 출발. 6월30일까지 이코노미 좌석은 50% 할인한다. 왕복 55만원. ‘두바이 건축여행’ 상품도 나왔다. 3박4일 105만원(1588-0074)
●환율:1디르함 276.48원(6월 1일 기준)
●날씨:6월 현재 낮기온 40도 안팎. 한겨울에는 20도 안팎의 초가을 날씨다.
●숙소 및 여행정보:두바이관광청 사무소가 서울에는 없다. 대신 ‘www. datadubai.com’ ‘www.timeout dubai.com’에 숙소부터 식당·골프·승마 정보에 대해 자세히 소개돼 있다. 주한 아랍에미리트 대사관 연락처는 (02)790-3235.
●쇼핑:금값이 싸고 세공술이 세계 최고라는 두바이 금 시장 ‘골드 수크’<사진>는 반드시 구경하자. 가격은 상인이 부르는 것에서 무조건 60% 낮추고 흥정하면 된다. 시내에서도 면세가 적용되는 두바이에서 가장 유명한 쇼핑센터는 시티센터, 와피시티, 머캐토몰 등 세 곳. 이곳에서도 원가격에서 20%까지 싸게 흥정할 수 있다. 쇼핑을 위한 여행이라면 1월이 가장 좋다. 명품을 최고 80% 싸게 살 수 있다.
●듄 디너와 도우 디너:두바이엔 아직 한국여행사가 없다. 에미레이트 항공사 계열인 ‘아라비안 어드벤처’(www.arabian-adventures.com)가 사막에서의 듄 디너와 도우(Dhow·두바이 전통어선·사진 아래) 디너를 포함해 가장 많은 이벤트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