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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적 종교와 기독교
우리 기독교는 과연 신화나 타 종교를 모방한 것일까?
딤전4:7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일본의 ‘호리’ 교수에 의해 쓰여진 ‘불교와 그리스도교’라는 책과, 우리나라의‘윤청광’ 작가 쓴 ‘불경과 성경, 왜 이렇게 같을까?’라는 책에 성경과 불경의 비슷한 내용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번호 | 내 용 | 출 처 |
1 | 붓다는 49일 단식 때 마라라는 악령의 시험을 받았다 | 불경 상응부전 |
예수는 40일간 단식 때 사탄에게 시험을 받았다. | 누가 복음 4장 | |
2 | 붓다는 12제자를 모든 계급의 사람에게 파견했다. | 아함경 |
예수는 12제자를 파견했다. | 마태복음 10장 | |
3 | 붓다와 제자가 물위로 걸어간 이야기 | 아함경 |
베드로가 물위를 걷다가 믿음이 약해 물에 빠지는 것을 예수가 건져 주었다 | 마테복음14장 | |
4 | 음식기적 이야기 | 아함경 |
예수는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000명을 먹이고도 남았다 | 마태복음 14장 | |
5 | 붓다는 과부의 두 냥 헌금이 더 값지다고 했다 | 잡보장경 |
예수는 과부의 한 냥 헌금이 더 값지다고 했다. | 누가복음 21장 | |
6 | 사기꾼이 인도하면 개천에 빠진다 | 무 문자설경 |
소경의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진다. | 누가복음 6장 | |
7 | 아시타가 천사들을 목격한다. | 본생경 |
목자들이 천사를 본다. | 누가복음 2장 | |
8 | 열반과 재물을 동시에 추구할 수 없다 | 무문자 설경 |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 | 누가복음 16장 | |
9 |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 받아 타향에서 방탕하다 거지가 되어 돌아온 아들을 아버지는 오히려 환대하며 돌보는 장자궁자 이야기 | 법화경 신해품 |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 받아 타향에서 방탕하다 거지가 되어 돌아온 아들을 아버지는 오히려 환대하며 돌보는 돌아온 탕아 이야기 | 누가복음 15 |
이상의 내용 외에도 예수님과 부처의 탄생이야기, 세례 받는 배경, 고향에서의 푸대접, 아난다라는 부처의 수제자가 마아탕가라는 처녀를 우물에서 만나 도를 전하는 이야기와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 불교의 말법시대와 기독교의 말세, 등등의 이야기들이 서로 비교되면서, 성경(신약)은 불경의 가르침을, 예수님이 시대의 배경과 장소를 달리해 약간 변형했을 뿐,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의 출처는 불경 즉 부처가 설법한 내용과 다른 것이 없다하여, 예수님을 부처의 제자로 만들거나, 아니면 불교와 기독교는 그 근본이 하나라는 씩의 오해를 하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이짚트의 호루스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전해지고 있다.
☞ 기원전 3천년 12월 25일 탄생
☞ 이쉬 메리라는 동정녀에게서 탄생
☞ 탄생 시 동방의 별이 지켜보았고 탄생 후 3명의 왕에 의해 경배 받고. 별을 따라
온 3명의 점성술 예언가인 동방박사(발다살,메키오르,가스파르)들로부터 경배됨
☞ 12세에 신성한 지도자가 되었으며
☞ 30세에 아누프라는 성직자에게 세례를 받고 성직생활을 시작함
☞ 12명의 추종자와 함께 방황하며 물 위를 걷는 등의 기적을 행함
☞ 타이폰의 배신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뒤 3일 만에 부활함
그리스의 아티스라는 신의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 나나라는 처녀수태
☞ 기원전 1200년경 12월 25일 출생
☞ 십자가에 못 박히고
☞ 3일 후 부활함
그리고 역시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신의 이야기다.
☞ 기원전 500년 처녀수태
☞ 12월 25일 출생
☞ 물로 포도주를 만듬
☞ 알파와 오메가로 불리고
☞ 왕중 왕, 신의 아들로 불리움
☞ 죽은 뒤 부활함
인도의 신 크리슈나에 관한 이야기다.
☞ 기원전 900년 데바키 처녀수태
☞ 동방의 별이 그를 인도
☞ 제자들과 기적을 행함
☞ 죽은 후 부활
예수님 당시 로마의 종교로써 신으로 숭배 받던 페르시아의 미트라에 대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처녀수태
☞ 기원전 1200년 12월 25일 출생
☞ 12제자와 함께 기적을 행하고
☞ 죽은 뒤 3일 만에 부활
☞ 빛, 진리 등으로 불리웠고
☞ 이를 숭배하는 날이 일요일임
현대는 인터넷 문화가 우리의 지식과 삶을 이끌어 가고 있다. 예전에 알 수 없었던 수많은 지식들을 인터넷을 통해 습득하고 있다. 그 내용에 있어서의 진(眞),위(僞)도 구분하지 못하거나, 할 수 없는 지식들이 방대하게 널려 있는 실정이다. 성경적 바른 가치관이나 세계관을 갖지 못하고, 성경에 대해 올바로 알지 못하면 거짓 가르침에 물들거나, 잘못된 지식에 쉽게 빠지게 된다.
필자가 처음 교회를 다닐 때는 초등하교였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교회서 가르치는 대로 따르며 신앙생활을 했다. 교회를 다니며 중, 고등학교를 지나면서 나도 모르게 신앙생활 중 생긴 무서운 습성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나와 맞지 않는 신앙의 많은 사람들을 정죄하는 습성이었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냥 나를 보니 그렇게 만들어져 있었다.
필자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 합동교단에 속한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였는데, 당시 나는 장로교 외엔 모두 이단인 줄 알았다. 내 친구가 성결교에 다녔는데, 그게 이단이라 하였고, 침례교에 다니는 친구에게도 그 교회는 잘못되었다고 하였다. 토요일 저녁 12시부터 주일 12시까지가 주일이기 때문에 철저히 시간을 지켜 주일성수를 하였고,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비정상적인 신앙인처럼 보였다. 술, 담배를 하는 사람은 지옥 가는 줄 알았다. 그리고 교회에서 세상적 이야기를 하거나, 교회 피아노에서 찬송가 외 다른 노래를 치면, 속으로 저주를 하곤 했다. 무엇 때문에 내가 그렇게 되었는지는 나도 잘 몰랐다. 이렇게 신앙생활 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고 그것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자의 자세인 줄 알았다.
신학을 전공하고, 목사가 되어 부족하지만 성경에 대한 조금의 눈이 열리면서, 이러한 나의 신앙이 올바르지 못함을 알게 되었고, 율법적 형태의 신앙에서 믿음과 은혜 중심의 올바른 모습으로 변화되고자 많은 노력을 하였다. 목회자로서 성경을 바로 가르쳐야 성도가 잘못되지 않는다는 실제적 경험을 내가 했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성도들에게 성경을 바로 알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지도하며 안내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만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여러 매체를 통해 올바른 성경지식을 습득하고 알아 가던 중, 인터넷을 통해 우리 기독교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냉철하면서도 이성적인 반대논리에 의해 상당히 심적으로 도전을 받곤 했다. 그리고 신앙생활을 하는 많은 청년들이 인터넷이나 혹은 책자를 통해, 우리 기독교가 그 어떤 신화나 다른 종교의 아류 정도로 확신해 교회를 떠나는 사람도 많이 있음을 보았다.
성경과 불경, 위에서 비교한 내용만 보더라도, 성경을 올바로 알지 못하는 많은 분들이, 우리 기독교가 불교의 가르침을 그대로 혹은 약간의 변형을 가한 것에 불과하다는 확신을 갖기엔 그 내용에 있어 너무 위력적이다.
러시아의 언론인 니콜라스 노도비치가 예수는 13세 때 인도로 건너가, 17년 간 인도, 네팔, 티벳 등지에서 스님 생활을 하고 29세 때 이스라엘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밝힌 이후 수 십 명의 사람들이 인도와 티베트를 방문하여 이를 확인하여 왔던 바 이를 종합하여 1984년 엘리자베스 C. 프로펫트가 ‘예수의 잃어버린 세월’을 발간하면서 세계적인 화제 거리가 된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후 계속된 연구에서, 예수의 잃어버린 17년의 생활은 인도의 승려생활을 통해, 유대로 돌아와 그 가르침을 전하다 보니 불경과 신약성경에서의 예수의 가르침이 거의 일치 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려, 예수님을 부처의 제자로 만들어 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현재 이 문제는 연구가 되어 거의 해결 되었으나, 예수님의 가르침과 불경의 가르침의 유사점에 대해선 대체적으로 침묵하고 있는 실정이다.
호루스의 눈
인도라는 세계를 떠나 이짚트를 보자. 호루스에 대해선 웬만한 성도들은 아마 그 이름정도는 들어 봤을 것이다. 목회자로서 호루스에 대한 내용을 전혀 알고 있지 못하다면, 참 애석한 일이다. 이시스와 오시리스의 아들인 호루스는 이짚트 사람들에게 있어 승리의 상징이며, 그리스에서는 아폴로라하여 태양신으로 받들어 지고 있는 신이다. 이짚트의 왕들인 파라오들은 호루스를 자신과 동일화 하는 경향이 뚜렷했고, 호루스의 상징은 그의 눈인 전시안에 있다. 전시안을 통해 모든 것을 보고 있고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호루스의 눈인 전시안은 우리 주변에 수도 없이 많으니, 조금의 주의만 기울이면 쉽게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불경보다 더 공격적인 내용이 이짚트 신화에 나타나는 호루스에 관한 이야기다. 불경보다 예수님에 대한 부분에 있어 흡사한 내용들이 더 많이 나타나고 있다. 그리스의 아티스, 디오니소스, 인도의 크리슈나,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트, 미트라 등의 이야기들도 역시 마찬가지다.
예수님에 관련한 신화나 경전에 있어 예수님과 비슷한 많은 이야기들이 나오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성경이 신화나 다른 경전을 모방한 것일까. 아니면 수많은 신화나 종교들이 있지만, 그 모든 것의 잘못됨을 성경이 지적하면서 올바른 종교나 신에 대한 안내를 성경이 하고 있는 것일까. 예수님에 대한 수많은 유사한 이야기들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등장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불경이 성경과 유사해 예수님이 불자였다면, 불경보다도 예수님과 더욱더 유사한 내용이 있는 다른 지역의 신화 속에 등장하는 신들의 내용은 무엇인가.
부처는 B.C 2600 여 년 전의 사람이다. 이런 부처의 가르침이 로마나 그리스로 흘러가 그 내용들을 각색해 이들이 신화에 적용시켜, 예수님이 그 신화의 내용을 일찍 배워 새로운 자신만의 종교인 기독교를 만든 인물이란 말인가
. 조로아스터 교(배화교)
기원전 6세기 경 페르시아에서는 유명한 한 종교적 인물이 태어난다. 그 사람이 조로아스트(자라투스트라)라는 인물이다. 조로아스터는 선과 악을 분명히 나누어 이 세상은 선의 세력(마후라 아즈다)과 악의 세력(앙그리 마인유) 간의 투쟁의 장소로 보았다. 최후의 승자는 선의 세력으로 악의 세력을 멸하고 새로운 세상을 여는 것으로 마무리 한다.
조로아스트교에서는 유일신인 아후라마즈다란 신의 계시를 발판으로 삼고, 아후라마즈다는 하나의 성령 (Spenta Mainyu) 및 불멸의 신성 (Amesha Spenta) 이라 불리우는 신성한 행동을 통해 자기의 뜻을 표현하고, 구세주인 샤오샨트가 와서 인류를 구원할 것이라는 삼위일체적 개념을 분명히 하고 있으며, 천사, 천국, 지옥, 그리고 연옥의 개념, 최후의 심판 등의 가르침들을 복합적으로 갖고 있는 종교다.
조로아스트교는 예수님 당대나 초대교회, 그리고 교부시대에 까지 많은 영향을 주었다. 로마의 미트라교도 조로아스트교의 한 분파이며, 영지주의 또한 조로아스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사상이다. 한 때 죄의 문제로 고민하던 어거스틴이 마니교로 빠져 방황하였는데 이 마니교 또한 조로아스트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종교이다.
예수님과 관련해, 조로아스터는 죽고 3일 만에 부활해 하늘에 올라가 신의 우편에 앉으신다. 특히 동정녀에서 태어나고 12세에 집을 떠나 30세에 강에서 신의 계시를 받고 12제자를 이끌고 기적을 일으키며 새로운 메세지를 가르친다. 그들의 구세주인 샤오샨트는 선한 목자이며. 구원자이시며 진리를 알려주시는 이로 나타나고 있다.
이 정도면 우리 기독교가 정말 조로아스트교의 아류인 한 종교에 불과하거나, 아니면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예수님이 부처의 제자로서 부처에게서 배워온 내용들을, 자신의 고향에 돌아가 유대에 맞게 약간 수정하여 가르친 것이 아닌가 하는 오해를 충분히 할 수 있고, 자칫 이러한 문제로 고심하거나 실족 할 수 있음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고 성경만 알고, 믿음생활을 하면 별 다른 의심 없이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었을 텐데, 괜한 내용을 알아 시험에 들게 만드는 꼴이 될 수 있다.
기독교를 반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억지가 아니라 나름, 정확한 자료와 근거를 제시해 반론을 제기한다. 그 반론의 자료들에 대한 신빙성 보다. 뭔가 성경을 반대할 만한 근거만 나오면 그것을 무기 삼아 기독교에 대해 무조건적인 대적을 서슴지 않는다. 현재 우리 기독교에 대한 사회적 정서는 호의적 태도보다는 악의적 태도가 주를 이루고 있다. 모 설문조사에 의하면, 기독교에 대한 불신자의 선호도는 채 10%로도 넘지 않는다는 보고가 있고, 청소년 신자는 5%로 미만에 불과하다는 무서운 통계가 있다. 이런 조짐으로 한 두 세대(30-60년)만 지나면 우리 나라에 있어 기독교의 뿌리마저 이 땅에서 사라질 수 있다. 한 때 기독교 국가로 위세를 떨치던 영국의 기독교 신자는 현재 1%도 안 된다. 100년도 걸리지 않아 영국의 기독교는 무너졌다. 수많은 이유들이 존재 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요인은 우리 기독교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성경에 대한 불신, 예수님에 대한 불신, 기독신자들에 대한 불신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성경에 대한 불신과 예수님에 대한 불신은, 성경과 예수님을 무시하는 다양한 학적 주장들이 성경보다 더 설득력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이성과 논리, 그리고 합리적 과학이나 고고학 등으로 성경을 대적하며, 성경은 모순이 가득 찬 책으로 믿을 수 없는 신화적 책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그들의 주장이 세상 사람들에게 더 정확한 사실로 다가선다. 대부부의 불신자들은 이제 성경은 믿을 수 없는 책으로 인식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우리 기독교내에서도 성경에 대한 도전을 두려움 없이 하고 있는 실정이다. 성경 내에 나타나는 초자연적 하나님의 역사나, 예수님의 사역에 의심의 눈초리를 갖고 바라본다. 에덴동산의 실재, 노아 홍수의 실재, 주님의 동정녀 탄생이나 부활, 등의 이야기를 거부하는 목회자들이 수없이 많이 있다. 예수님의 외 구원의 길을 외치는 자들의 목소리는 더욱더 놓아가고만 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순 없다. 우리가 아무리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전도를 하다보면 지나치리만큼 냉소적인 불신자들의 태도, 심각한 마음의 상처를 받기도 한다. 지금의 교회를 보고 안도의 한숨을 지을 것이 아니라, 미래의 우리 교회를 보고 기도하며 염려해야 하고, 지금 부터라도 철저히 준비하지 않으면 우리 미래의 교회는 복음이 사라진 종교적 한 단체로 남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