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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은행 비리 커넥션에 정·관계 인사들 떠는 내막
과거권력·현재권력·미래권력 다 엮여…‘복마전’ 어찌할꼬?
자료출처 : 사건 in 2012. 06. 04. 김현일 기자
▲ 지난 5월6일 금융위원회가 솔로몬·한국·미래·한주 저축은행 퇴출(영업정지)을 결정한 뒤 저축은행 대주주의 비리가 연일 쏟아지는 상황이다. 사진은 금융위를 항의 방문한 민주당 ‘저축은행 진상조사위원회’ 소속 의원들. © (주)펜그리고자유
‘저축은행 사태’가 ‘대형 게이트’로 번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지난 5월6일 금융위원회가 솔로몬·한국·미래·한주 저축은행 퇴출(영업정지)을 결정한 뒤 저축은행 대주주의 비리가 연일 쏟아지는 상황이다. 나아가 이들이 막대한 비자금을 조성해 정·관계 인사와 커넥션 관계를 유지했다는 정확이 속속 드러나면서 검찰이 수사 강도를 높이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여야 정치권이 연루됐다는 의혹이 있는 만큼 성역 없는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며 “검찰 수사에 한계가 있는 만큼 새로 구성되는 19대 국회에서 국정조사·특검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론되고 있어서 저축은행 사태가 앞으로 정치 지형에 미칠 파장을 가늠키 어려운 형국이다.
특히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민주연합청년동지회 간부 출신 임석 회장이 오너인 솔로몬저축은행을 놓고 물러설 수 없는 ‘전쟁’을 예고하고 있어 긴장감이 더해지고 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솔로몬저축은행의 자금에 “DJ 실세들의 돈이 상당 부분(80% 이상) 유입됐을 것”이라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저축은행 대주주 막대한 비자금 조성해 정·관계 커넥션 유지
임석 회장의 솔로몬저축은행, ‘DJ정부 실세 자금 유입설’ 파다
민주통합당에서 박지원 의원이 원내대표로 선출된 직후 금융위가 발표한 퇴출명단에 업계 1위인 솔로몬저축은행이 포함되면서 정치권 일각에서는 “특정 인사의 발목을 잡아두기 위한 노림수가 깔려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이를 의식이라도 한 듯 박지원 원내대표가 꾸린 ‘저축은행 진상조사위원회’는 서민들이 더 많은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솔로몬저축은행을 배제한 채 미래저축은행에 조사 초점을 맞추는 모습으로 비쳐져 관심을 증폭시키는 모양새다.
결국 저축은행 사태는 과거권력과 현재권력, 미래권력까지 실타래처럼 얽히고 난마처럼 설키고 대선정국과도 맞물려 누구도 물러설 수 없는 예측불허의 싸움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일각에서는 저축은행 사태가 정치권 전체를 공멸시킬 수도 있을 정도로 파괴력이 큰 만큼 솔로몬저축은행의 계열사로 살아남은 호남솔로몬 등 2개 정도의 계열사를 살리는 ‘딜(거래)’을 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이래저래 저축은행 사태의 중심으로 떠밀리며 의혹이 집중되는 솔로몬저축은행의 미스터리한 성장사 내부를 들여다봤다.
미스터리 1 - 솔로몬신용정보 대표 ‘발탁?’
임석 회장이 솔로몬금융 그룹의 모태가 된 채권추심회사 ‘솔로몬신용정보’ 대표이사를 맡게 된 과정부터가 미스터리다. 1962년 3월 전남 무안에서 태어난 임석 회장은 집안이 가난해 이리공고 야간을 졸업했다. 그는 25세인 1987년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 김홍일 전 의원이 주도해 결성한 ‘민주연합청년동지회(이하 민청)’ 조직국장으로 활동하다 다음해(1998년) 민청 중앙회 기획실장까지 맡았던 인물.
1980년 2월 김홍일 전 의원의 핵심적인 역할 아래 문희상 전 의원 등 13명의 중앙운영위원회를 중심으로 결성됐던 민청은 ‘DJ 대통령 만들기’의 숨은 일등공신으로 당시 회원수가 30만 명을 넘어서기도 했다. 민청은 1995년 11월 ‘새시대새정치연합청년회’로 이름이 변경돼 당조직으로 흡수됐다. 민청 소속 회원들은 DJ 집권 이후 그 공로를 인정받아 정·관계에 대거 진출하는 저력을 과시했다.
솔로몬신용정보 대표이사가 되기 전인 1998년 임 회장은 국민회의(현 민주통합당) 비상경제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당시 YS(김영삼 전 대통령)정권이 외환위기를 맞은 후 대통령이 된 DJ는 새정치국민회의(현 민주당) 의원과 재무관료 출신들을 모아 ‘외환위기 극복’을 명분으로 ‘비상경제대책위’라는 임시조직을 만들었는데 연청 간부로 참여했던 공로로 임석 회장이 부위원장 자리를 맡았다.
그의 경력에서 금융업과 연관성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임석 회장은 1999년 채권추심 회사인 솔로몬신용정보 대표이사로 취임하게 된다. 솔로몬신용정보는 DJ정권 때 권력실세 정치인이 주도해 국민·조흥·한미·하나은행 등이 30억원을 출자해 세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설립 과정에서 임석 회장이 초대 대표이사로 발탁됐던 것이다.
물론 임석 회장이 당시 이 회사 설립을 주도한 실세 정치인에게 “자신이 맡아서 하면 잘할 수 있다”는 의지를 강하게 피력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따라서 알려진 것처럼 임석 회장이 주도적으로 솔로몬신용정보를 설립한 것이 아니라 권력실세가 주도적으로 만들어 놓고 임석 회장을 발탁해 그 자리에 앉혔던 것이다.
미스터리 2-솔로몬저축은행 자금은 어디서?
정치권 일각에서는 임석 회장이 골드상호신용금고를 ‘어떻게 그렇게 쉽게 인수했느냐’와 ‘인수자금을 어떻게 마련했느냐’에 대한 의혹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임 회장은 2002년 골드상호신용금고를 인수해 솔로몬저축은행으로 개명하며 본격적으로 저축은행 업계에 발을 들여놓고 폭풍성장을 하기 시작했다. 임석 회장은 골드상호신용금고 인수와 관련해 수차례 “옥외 광고업체(한맥기업)를 운영하면서 번 100억원을 종잣돈으로 활용했다”고 주장했다. 임석 회장은 1988년부터 ‘한맥기업’이라는 옥탑광고 회사를 운영해왔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관련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옥외 광고업계 한 관계자는 “임석 회장이 옥외 광고로 번 돈은 많아야 5억원 정도였을 것”이라며 “이 사업은 100억원이라는 큰돈을 벌 수 있는 구조 자체가 되지 않는 사업”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는 몇 개 업체에 전화만 해도 금방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라는 게 이 관계자의 주장이다.
임석 회장과 친분이 있는 한 정치권 관계자는 “솔로몬저축은행에 투입된 돈은 DJ정부 실력자들의 자금일 가능성이 크다”며 “이들이 50%, 20%, 10%씩의 지분을 각각 가지고 있다는 소문이 벌써부터 있어 임석 회장에게 조심하라는 당부를 수차례 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검찰에서도 상당 부분 사실을 파악하고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솔로몬저축은행에 “DJ정부 실력자들이 적극적으로 관여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뒷받침하는 정황도 곳곳에서 포착된다.
우선 임석 회장이 ‘이용호 게이트’ ‘진승현 게이트’ 등 DJ정부 도덕성에 치명적 타격을 준 대형 게이트의 주인공들이 눈독을 들이며 ‘복마전’으로 불렸던 골드상호신용금고를 너무나 쉽게 인수한 것도 미스터리다. 골드상호신용금고 매각과정에서 단순한 권력의 압력이나 비호가 아니라 DJ 핵심 실력자가 직접 개입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당시 골드상호신용금고를 인수하겠다고 나선 사람 중에는 ‘이용호 게이트’의 핵심인물인 김영준씨가 포함돼 있었다. 김씨는 이용호씨와 함께 골드상호신용금고를 100억원에 인수하겠다며 30억원의 계약금까지 지불했다. 하지만 김흥주 그레이스백화점 회장이 김중회 당시 금감원 부원장보 등에게 거액의 로비를 하며 110억원의 인수대금을 제시하면서 김영준씨는 밀려났다.
이 사실은 검찰이 2007년 ‘김흥주 로비’ 사건을 수사하면서 밝혀졌고 이 사건으로 김중회 전 금감원 부원장이 구속되기도 했다. 하지만 김흥주 회장은 골드상호신용금고 노조의 반대로 인수에 실패한다. 당시 골드상호신용금고 노조는 민주노총이 ‘우수 사업장’이라고 꼽을 만큼 강성 노조였다.
특히 골드상호신용금고는 임석 회장이 인수 당시 부실금고가 아니었던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골드금고는 1차 매각 시 매각조건에 해당조차 되지 않은 회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차 매각이 실패하자 조건을 완화시켜 임석 회장이 사들이도록 편의를 제공했던 것이다.
서울서부지검이 ‘김흥주 로비’ 수사결과 발표에서 “당시 골드금고는 주식 배당이 잘못돼 금감원의 지적을 받은 적이 있지만 운영에는 문제가 없는 부실 금고가 아니었다”고 발표했다.
결과적으로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멀쩡한 우량회사가 매각대상에 올라 임석 회장에게 넘어간 것이다. 그것도 임석 회장이 쟁쟁한 실력자들을 물리치고 손쉽게 골드금고를 손아귀에 거머쥐게 됐다.
골드상호신용금고를 인수한 임석 회장은 이완 전 조흥은행 부행장, 조병락 전 조흥은행 부행장 등을 경영진으로 영입하면서 정권과 유착설은 확대 재생산됐다. 이들은 모두 호남 출신인 위성복 전 조흥은행 행장의 ‘측근’으로 알려졌던 인물들이다.
게이트 주인공 대거 등장 ‘골드금고’ 쉽게 인수 ‘막강 파워’ 자랑
과거권력·현재권력·미래권력 얽히자 ‘뒷거래’로 정치공멸 피해가나?
임석 회장은 당시 금융당국으로부터 적극적인 비호를 받았다는 주장도 끊임없이 제기됐다. 외환위기 전후 정부는 ‘산업 구조조정’을 명분으로 재벌기업인 LG반도체와 현대반도체 등을 통폐합해 ‘하이닉스’를 만들고, 삼성항공·현대항공 등을 통합해 한국우주항공을 만들었다. 은행들에 대한 강제 통폐합도 실시해 상업은행·한일은행 등이 사라졌다. 대우그룹도 이때 해체됐다.
DJ정부는 ‘외환위기’를 이유로 보험감독원·예금감독원·증권감독원 등 4개로 나뉘어 있던 금융 감독기관을 하나로 합치고, 여기에다 민간인도 포함한 ‘반민·반관’ 조직인 ‘금융감독원’을 만들었다.
이 금감원의 초대원장을 지낸 인물이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다. 경제 관료 출신인 이헌재 전 부총리는 DJ정권 시절부터 재정경제부 장관 2번, 경제부총리 1번, 국무총리 권한대행을 2번 역임했다. 이 전 부총리는 외환위기 당시 DJ의 전폭적인 신임을 얻어 그 ‘측근’들과 함께 금융감독 업무를 도맡다시피 했다.
당시 이 전 부총리가 신임한 ‘측근’ 중 한 명이 바로 솔로몬 금융그룹의 총괄 회장을 역임했던 김영재 전 금감원 부원장보였다고 한다. ‘이헌재의 오른팔’로 불리던 광주일고 출신의 김영재 전 금감원 부원장보는 2003년부터 솔로몬저축은행-솔로몬신용정보-솔로몬자산운용을 총괄하는 회장직을 맡았다.
이외에도 금감원 출신 다수가 솔로몬저축은행 임원으로 재직했다. 강상백 전 금감원 총괄부원장보와 강대화 전 심의제재국장은 사외이사로 근무했고, 김강현 전 분쟁조정실 팀장과 윤익상 전 은행검사1국 부국장은 감사를 지냈다. 김상우 전 금감원 부원장보는 상근고문을 역임했다.
임 회장의 저축은행 인수는 계속됐다. 2005년 7월 부산을 연고로 한 한마음상호저축은행(부산솔로몬)을 인수했고, 2006년에는 전북 익산의 나라저축은행(현 호남솔로몬)도 사들였다. 이어 2007년 10월 경기 파주시의 한진저축은행을 인수해 경기솔로몬저축은행으로 편입시켰고, 2008년 3월에는 KGI투자증권(구조흥증권)을 인수해 솔로몬투자증권으로 바꿨다. 이 같은 ‘영토확장’을 통해 솔로몬저축은행그룹의 자산은 일부 지방은행을 추월할 정도로 커졌다.
2005년 정무위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권영세 의원은 “솔로몬저축은행이 2001년 기관 경고와 2003년 임원문책 요구 등 제재조치를 받았다”며 “상호저축은행법 시행령의 출자자 자격요건에 최근 5년간 법령 등을 위반해 처벌받은 사실이 없어야 한다고 명시돼 있는데 한마음상호저축은행 인수를 승인한 것은 문제가 있다”며 불법 특혜 매각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같이 솔로몬저축은행이 증권사와 다른 저축은행들을 인수할 때 당시 상황을 살펴보면 권력과의 관계를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 관련업계는 물론 정치권의 시각이다.
금융당국 특혜 속 성장한 저축은행
부실 저축은행들의 비리가 속속 드러나면서 이름에서 ‘은행’을 빼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은행’이라는 명칭이 자칫 고객들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상호저축은행은 비은행권 금융사 중에서 유일하게 ‘은행’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금융당국의 특혜 속에서 고객들로부터 은행 수준의 신뢰를 가진 우량 금융사로 과대 평가됐던 것도 사실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금융당국은 지난해 10월 저축은행 업계 퇴출 명단 발표와 함께 ‘저축은행 행장’ 직함을 ‘사장’으로 바꾸는 제재를 가했다.
사실 저축은행 업계는 금융당국의 특혜 속에서 크게 성장했다. 원래 저축은행의 뿌리는 사채업자였다. 1972년 정부는 ‘8·3 사채동결 긴급 경제조치’를 내려 기존의 사채를 모두 신고하게 하고 금리는 월 1.35%를 넘기지 못하게 했다. 이와 함께 사채업자들을 양성화하면서 이들이 ‘상호신용금고’ 간판을 달고 영업하기 시작했다.
저축은행이 지금과 같은 ‘상호저축은행’ 명칭을 쓰기 시작한 것은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2년 3월부터다. 2000년대 초반 진승현 게이트, 이용호 게이트, 정현준 게이트 등 상호신용금고와 관련된 주가조작 사건이 잇따라 터지며 상호신용금고가 고객들로부터 외면받고 경영난이 심해지자 정부가 법을 고쳐 이름을 바꿔줬던 것이다.
당시 일부에서는 ‘은행’이라는 명칭으로 인한 오해의 소지에 대해 우려했다. 저축은행이라고 하면 시중은행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금융당국은 특별한 보완책 없이 밀어붙였다. 이후 상호저축은행 업계는 더욱 승승장구했다. 2003년 노무현 정부에서는 카드 사태로 부실이 깊어진 저축은행에 2005년 인수합병을 허용했고 2006년에는 우량 저축은행에 대출 규제를 없애줬다. 한마디로 ‘돈’만 있으면 누구든지 저축은행의 주인이 될 수 있었다.
이번에 퇴출당한 솔로몬·미래·한국·한주 저축은행도 바로 이때 사세를 확장했다. 현 정부에서는 ‘상호저축은행’ 명칭에서 ‘상호’자도 뗄 수 있게 허용됐다.
10여 년간 3개 정권이 저축은행 업계의 확장을 허용하는 사이 저축은행의 부실과 경영진의 방만 경영도 커졌다. 저축은행 대주주와 경영진의 자격 심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무려 6년간 채무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 상태였던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이 대주주 자격을 유지했다는 사실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금융권에서는 저축은행이 비리의 온상으로 변질될 수 있었던 것은 ‘금융당국’의 탓이 가장 크다는 주장과 함께 명칭을 다시 예전처럼 ‘상호신용금고’로 되돌려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고객들이 은행과 저축은행을 분명히 구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도 인수합병 업계나 금융권에서 “저축은행과 권력 간의 유착관계를 파보라. 이들의 유착 때문에 제대로 조사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치권이 대선정국의 변수로 등장한 저축은행 사태의 ‘폭발성’을 의식해 적절한 선에서 ‘뒷거래’로 마무리를 시도할 것인지에도 이목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