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괴산 각연사(覺淵寺)-
김 인 동
괴산 쌍곡구곡을 들렸다가 보개산과 칠보산 둘레에 쌓여 있는 각연사를 찾아보았다.
각연사와 처음 인연 맺은 것은 예성문화연구회(1994년?월)괴산지역답사 인 것 같다. 그 후로 충주박물관문화학교와 충주전통문화회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오늘까지 두 번째이니 모두 다섯 번을 찾았다. 이렇게 자주 가는 이유는 우선 가깝고 주변 경관도 시원하고 한적하게 답사 공부하기 좋아서이다. 다른 이유가 하나가 더 있다면 절집에서 하얀 얼굴에 붉은 입술로 화장한 부처님을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불상광배의 채색된 화려한 화불과 하얀 분칠을 한 불상이 연화좌대에 앉자 있는 모습이 마치 꽃가마를 타고 있는 신부 모습 같았다.
예전에 법당에서 뵙던 묵직하게 내려다보는 부처님하고 달랐다. 제사 지낼 때의 향내와 어두운 법당 천장에 매달린 조형물과 용머리 닫집과 감로탱화의 지옥도 같은 그림 등, 불심도 없었던 초등학교 때 어머님을 따라 갔던 절집에 대한 두려움이 남아 있었다. 그 두려움을 없애 준 부처님이 각연사 석조비로나자불좌상(보물제433호)이었다. 오늘도 법당이 조용하다. 찬찬히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법당에 오래 머물며 앞으로 뒤로 옆으로 위로 아래로 숨겨진 부분까지 사진을 찍어도 지금까지 뭐라 하는 보살님이나 스님이 없었기에 시간적이나 마음적으로 여유로웠다.
어쩜 나의 행동이 불경(不敬)스럽게 보일 수가 있었다. 각연사는 다른 사찰과 달리 까다롭지 않게 받아준 통 큰 절집이었다.
통큰 절집 각연사(覺淵寺)의 역사는 이러하다. 신라 법흥왕(法興王·재위 514-539) 때 유일대사(有一大師)가 한 곳을 분주히 오가는 까마귀 떼를 따라가 보니 연못이었다. 그 곳에서 석불을 발견하고 절을 지어 모시었다고 한다. 그래서 "각유불어연중(覺有佛於淵中)깨달음이 연못속의 부처님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해서 절 이름을 각연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삼세여래급관음개금기(三世如來及觀音改金記)'에는 고려 광종(925~975) 때 고승인 통일대사(通一大師)가 창건했다는 기록과 1768년에 작성된 각연사(覺淵寺)대웅전의 상량문에도 통일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나와서 고려 초에 세운 사찰로 보고 있다. 통일대사는 고려 전기에 중국 유학을 다녀와 불교의 교리를 강의하자 전국에서 대중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고 한다. 대사가 입적하자 광종은 ‘통일대사’라는 시호를 내리고 당대의 문장가였던 김정언에게 비문을 짓도록 하였다.
그 비석(통일대사탑비/보물 제1295호)이 각연사 동남쪽의 보개산 계곡을 따라 1㎞ 쯤 떨어진 산 아래 남아있다. 그리고 통일대사탑비에서 동남쪽에 있는 보개산 향해 약 30분 정도 올라가면 산중턱에 통일대사승탑(보물 1370호)이 자리를 잡고 있다. 오늘은 늦게 와서 승탑(부도탑)까지는 무리일 것 같다. 절집에 이루니 새로운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전각은 아닌 것 같다. 숙식을 할 수 있는 부속 건물 같다.
내 눈길은 절 초입에 한 쪽에 쌓아둔 옛 유물에 머문다. 널짝하고 우람한 승탑의 흔적과 곱고 아름다운 석연꽃문양과 석등유구와 큼직한 절구 그리고 자유분방한 맷돌과 주초석 등이 번창하던 시절 우리 절도 크게 잔치를 벌리었다고 말을 하는 것 같다. 마당에 올라서니 한여름 보리수나무 그늘이 시원하게 반긴다. 인기척 없는 널찍한 마당이 매번 올 때마다 정갈하고 풀 한 포기도 없다. 지인도 사진을 담는다. 지인과 각연사 답사가 오늘까지 두 번째이다. 십 년전 가을이었다. 그때도 따로따로 이었다. 서로 보고자 하는, 바로 머무는 공간의 시간 차 이었다.
서예와 그림과 문양에 관심이 많은 지인이고 난 건축물, 불상, 석탑, 승탑 등, 그런 쪽으로관심이 있는 편이라 처음에는 동선이 같은데 언제 보면 주위에서 사라졌다. 첨에 그러하였는데 이제 서로 편하다. 뛰어 보았자 절집마당이고 부처님 손바닥일터이니까? 서로 약속은 없었는데 오늘은 비로전으로 자연스럽게 발길이 같았다. 부처님께 돌아가신 어머님 극락왕생하시기를 빌며 공양을 올리고, 단아하고 아담한 부처님을 찬찬히 살피었다. 불교에서 비로나자불은 진리의 세계를 두루 통솔한다는 의미를 상징하는 부처님으로 항상 여러 가지 몸과 명호와 여러 삶의 방편으로 나타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지권인 비로자나 불상은 예전에 지리산 자락에서 만난 산청 석남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으로 명문을 통하여 통일신라 혜공왕 2년 766년으로 보고 있다. 중국과 일본보다 반세기 앞서며 화려한 보관을 쓴 보살형이 아니라 여래형으로 육계가 드러난 비로나자불상으로 조성하여 한국의 독창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각연사 비로나자불은 세련된 기교는 없지만 단아하고 우아한 통일신라말 고려초 불상의 모습을 찾을 수가 있다. 오히려 세련되고 화려한 것은 아홉 구의 화불을 모신 거신형 광배이다. 팔각연화좌대는 구름이 풍성하고 용머리가 방금 고개를 불쑥 내민 것처럼 생동감이 있다.
한참이나 앞뒤 아래와 좌우를 오가며 눈도장을 찍었다. 시간이 꽤 흘렀다. 합장을 드리고 뒷걸음치니 푸른 하늘 뭉게구름에 쌓여있는 칠보산이 아름답다. 비로전을 뒤로하고 나한전에 오르니 없던 석조 나한상들이 마당에 가득하다. 누가 시주를 하였는지 공양 나한상 발우에 동전을 넣었다. 그리 잘 어울리는 풍경은 아닌 것 같다.
나무아래 다람쥐가 참선을 하는지 미동도 안하고 빤히 처다 본다. 부처님 빽이 좋긴 좋은가보다. 해탈을 하였는지 겁도 없다. 그래 각연사는 통큰 절집이다. 문창호지에 햇살이 깊게 내리는 경내를 나와 승탑과 탑비로 가는 길로 나섰다. 보개산을 오르는 작은 내를 건너야 한다. 늦은 오후라서 발걸음이 바쁘다.
*각연사 문화재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433호)
+통일대사탑비(보물 1295호)
+통일대사승탑(보물 1370호)
+비로전(충북도 유형문화재 125호)
+대웅전(충북도유형문화재 126호)
+석조귀부(충북도 유형문화재 21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