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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많은 사람들이 여기기에
부정적이거나 , 힘든 감정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옅어지거나 , 소멸된다거나 사라진다고 쉽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 개인적 경험들로 봤을 때
감정의 에너지는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사이코드라마를 공부하기 전까지는
감정이란 것이 참으면 으레 점차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반해 ,
막상 , 사이코드라마를 공부해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높은 밀도와 농도와 침투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감정이란 막대한 에너지였다.
한 사이코드라마 전문가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 감정은 말이죠 ...
물귀신 같은 거에요.
그 속에서 빠져 나왔다고 생각하면
또 나를 붙잡고
나의 발목을 놓아주지 않는 끈질긴 물귀신 같은 것이란 말입니다...... "
반면에 , 나의 관점에서 감정이라는 것은
고래 힘줄 같은 것이다.
너무나 억세고 질겨서 때로는 당해 낼 기미가 보이지 않는 불가항력의 에너지 같기도 하다.
아주 오래 전 ,
많은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명상계의 높은 스승이기도 한
틱 낫한 스님이 쓰신 ` 화 ` 라는 제목의 책이 선풍적인 인기를 끈 적이 있었다.
틱 낫한 스님의 그 온화하고 평화로운 모습과 함께 그 책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기에 충분했다.
그러던 어느 날 ,
나는 해외에서 열린 틱 낫한님과 제자들간의 간담회가 열린 모습을 tv 에서 볼 수 있었다.
그 간담회는 제자들이 질문하면 , 틱 낫한님이 답변해주시는 시간인 것 같았다.
나도 기대를 무척 많이 하고 보게 된 방송이었다.
어느 여성의 차례가 오자
그 여성이 마이크를 들고 질문을 하고 있었다.
" 틱 낫한님 ,
제가 최근에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 스트레스가 몸으로 나타나는지
얼마 전에 손을 보니 손에도 뭔가가 생기고 있어요.
어느 곳에서 보니
스트레스가 생겼을 때
쿠션이나 방석을 도구로 때리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그러던데
틱 낫한님은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
솔직하게 표현해내는 한 여성의 질문의 내용 뒤에
틱 낫한님의 답변이 이어졌다.
" 저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상대에 대해 미움이라는 감정을 가지거나
적대감을 가지고 무엇을 하려 하기보다는
차라리 상대를 위해 평화로운 마음을 가지는 것이
자신에게 더 이롭지 않을까요 ?
상대에게 미움이라는 감정을 가지게 되면
결국엔 자신만 더 힘들어질 뿐입니다. "
음 ..... 틱 낫한님의 답변은 이러했던 것이다.
내가 그 해당 여성이 되어
질문을 한 것은 아니지만
답변을 들은 나는 조금 의아하기도 하고 , 불편하기도 했다.
질문의 내용 속에 이미 그 여성은 스트레스가
몸의 증상 , 즉 신체화로까지 발전되어 진행된 상황인데
무조건 상대를 향해 기도를 하거나
평화로운 마음을 가져 주어야 한다니 .....
실망스러운 답변이기도 했다.
나도 평소 틱 낫한님의 그 인자하고 깊은 영적인 눈빛에 깊은 감화를 받곤 했지만
막상 힘들어하는 그 여성에게 그런 답변을 주는
틱 낫한님을 보니 의아함도 많이 생겼다.
또 , 한편으로는 틱 낫한님이
영적으로는 깊은 수행을 하셔서
깊은 깨달음을 가지고 계실지는 모르겠으나 ,
감정의 에너지 측면에서는
보다 더 깊은 이해가 부족하신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부정적인 감정이 생긴 사람에게
긍정적인 감정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말은
인간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여러 감정들 .....
즉 , 기쁨이나 슬픔 , 노여움이나 서러움 , 분노나 후회 , 죄책감이나 안타까움 등등의
이러한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당연한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지 않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 왜 너는 그 사람에게 미움이나 적대감을 갖고 있어 ? "
라고 비난하고 힐난하기 보다는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된 상황과 자기 자신의 내면을
한번 더 깊이 관찰하고 들여다 보면서
동시에 한번 더 깊이 그 감정들을 여과없이 느껴주게 되면
오히려 그 감정이란 아이는
자신이 인정받고 이해받았다는 생각에
주인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될 것이다.
감정은 아이처럼 다루고 ,
느낌은 부모처럼 따라야 한다는 말이 있다.
즉 , 감정을 아이처럼 다루고
때로는 느끼고 이해해주어야지
틱 낫한님 말씀처럼
이미 느낀 감정을 처음부터 없는 듯이 제거해 버리고 묵살해 버리면서
단지 , 상대를 위해서 평화를 빌어주어야한다는
틱 낫한님의 말씀은
한편으론 , 어불성설이고 , 말도 안되는 그저 이론에 불과한 가식적인 이론이며 ,
감정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라는 생각까지 들기도 했다.
물론 영적인 평화를 말씀하시는 틱 낫한님은
무척 위대한 지혜를 가지신 스승임에는 틀림없지만 말이다.
감정이 얼마나 강력한 에너지를 가졌는지는 여러 예를 통해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
서로 본 적도 없는 청춘 남녀인 순희와 철수가
우연한 곳에서 , 우연한 기회로 보게 되다가
사랑에 빠진다고 치면 .....
이 두 사람은 온 우주에 마치 , 자신들만이 남은 것 처럼
그 사랑의 에너지로 급속도로 빠져들면서 시간은 상관없이
곧장 , 결혼과 함께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사는 인연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예로서 ,
오래 알고 지내던
영식이와 민재라는 친구가 있다고 치자
그 둘은 정이 깊은 죽마고우 같은
둘도 없는 형제 같은 친구 관계였는데
둘 사이에 일어난 어떤 사소한 일 때문에
그만 한 쪽이 미움과 배신감이 생겨버려
결국에는
전혀 모르는 남남처럼 헤어지게 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위의 두 가지 예에서 보듯이 ,
관계에서 사람들이 서로 만나고 헤어지게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런 인연을 이어지게 하고 멀리하게 하는
감정이란 에너지의 힘이 무척 강력하다는 것을 우리는 실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 그런 여러 감정의 에너지와 여러 측면들을
살펴보고 , 관찰하고 재체험하고 치유 할 수 있는 장이
바로 사이코드라마의 영역이기도 하다.
위의 틱 낫한 스님에게 질문을 한 여성의 경우에서도 볼 수 있듯이
감정은 우리의 몸과 일체화가 되어
잠을 자고 있는
우리 무의식의 심층적인 차원까지 파고 들어
때로는 우리를 겉잡을 수 없이 잠식시키고 집어삼키기도 한다.
그렇게 감정과 몸과 무의식이 긴밀하게 연결되어져 있는 이유는
바로 감정과 몸과 무의식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감정 = 몸 = 무의식
외국의 경우에서도 사이코드라마에서
흔히들 천은 적절히 활용된다.
천을 통해서 보다 많은 것을 표현해내고
잉여 현실을 창조해 볼 수 있다.
그래서 사이코드라마 전문가들은 말하기도 한다.
" 몸을 건드리면 감정이 건드려 집니다.
또한 몸 속으로 깊이 들어가게 되면
무의식으로까지 탐색해 볼 수 있습니다. "
감정과 무의식은 때때로 우리의 몸 속 깊은 세포의 차원으로까지 침투한다.
그래서
사이코드라마가 끝난 이후에
만약 , 주인공이 자신의 감정이 잘 정화가 되었다고 느끼게 된다면 ,
자신의 몸 속 깊은 세포의 차원까지 같이 정화가 되는 동시에
주인공이 그동안 의식하지 못한 채로
몸 안에 깊숙이 잠들어 있었던 오래되고 해묵은 감정적인 독소가 시원하게 빠져 나갔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더불어서 주인공의 무의식의 한 면이 정화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드라마가 끝나고 나서 ,
주인공을 했던 사람이 몸이 아프거나 , 몸살이 나게 되는 경우는
오히려 그 동안 빠져 나가지 못했던
탁한 독소가 빠져 나가는 과정을 체험하고 있는 것이어서
오히려 좋은 현상으로 봐도 좋은 것이다.
이때에 사이코드라마가
주인공에게 미치는 영향은
보약 100 첩을 달여 먹은 것과 같은 효과이다.
또한 , 감정의 에너지 강도가 강하다고 여겨지는 경우에 ,
때때로 사이코드라마의 장에서
바타카 (방망이) 를 쓰기도 한다.
바타카라는 도구를 씀으로써 ,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감정의 밀도와 강도를
관객과 디렉터도 여실히 알 수 있게 된다.
어떤 이들은 바타카를 쓰는 것이
폭력적이지 않냐는 반문을 하기도 하는데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위에서 어떤 여성이 틱 낫한 스님에게
쿠션을 때리는 효과에 대해서
물어 보는 장면이 있었는데
이 여성의 질문은 참으로 적절하다.
실제로 바타카 (방망이) 를 경험해 보고 난 이후에
감정의 정화와 해소
개운함을 느꼈다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 이러한 것들은 다 감정의 에너지 특성 때문이다.
감정의 에너지가 그렇게나 강력하고 밀도가 높은데
감정이란 에너지를 평면적으로만 보는 것이
그냥 흘려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내 입장에서는 더 부자연스럽다고 보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느끼는 다양한 감정의 양상과 밀도층과 에너지를
천이나 바타카로 표현하게 할 때 ,
주인공의 에너지는 더 입체적으로 살아서 확장하게 된다.
즉 , 주인공이 느끼고 표현하는 생생히 살아있는 에너지를
드라마에 참여하는 모두가 다 체험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바타카를 쓰게 되는 어떤 경우를 생각해 보면 ,
예를 들어 ,
나르시스트 성향이 강한 문자라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
문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스트레스를 풀거나
혹은 칭찬 받은 이야기를 누구에게 잔뜩 자랑하고 싶은데
자랑 할데가 없어서
만만한 한 사람을 골라서
하루에도 피곤하고 쉬어야 하는 저녁 때를 골라
상대를 생각하지도 않고
상대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내가 전화 또 해도 될까 ? )
두 번씩이나 전화 하려 한다면
일방적으로 전화해서 자신의 이야기들을 다 쏟아내려 한다면
아마 상대는 지치고 피곤해서 기운이 다 빠져 나가지 않을까 ?
아마 상대는 마치 자신이 그 문자라는 사람의
감정의 쓰레기통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면서
마치 물 먹은 솜처럼 몸 안의 에너지가 다 빠져나가게 되는 기분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겪게 되는 사람이 있다면
에너지 피딩 현상 (氣 기가 빨리는 현상) 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비웃음을 짓는 교만한 문자
이럴 때 , 바타카라는 유용한 도구로
문자라는 사람을 생각하면서
문자에게서 받았던 가스라이팅을 생각하면서
그 감정들을 다 토해내듯이 ,
그 힘들었던 강도만큼
100 번 정도를 세게 소리를 지르면서 방망이질을 한다면 ,
그 힘들었던 에너지가
순간 , 바깥으로 날라가서 산화되고 , 정화되고 소진되어
주인공은 맑게 갠 아침처럼
다시 , 에너지 재충전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마치 마법 같은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 에너지의 산화 현상
또 다른 예에서
문자라는 사람은 자기가 공부하는 영역에서
이제 막 1년 밖에 안된 늦깍이에 경험도 적은 걸음마에 불과한데 ,
거만하게 왕처럼 앉아 있는다든지 ,
10 년이나 넘은 경험 많은 윗 선배에게
도리어 , 도구를 놓는 위치를 놓고 ,
교만하게 지적질하면서
두 번씩이나 콧방뀌를 뀌면서 비웃게 된다면
그 선배가 되는 사람은
그런 당황스러운 일을 겪고서
온 몸이 얼어붙는 충격과 함께 ,
동시에 심한 모욕감에 몸이 마비되고 떨리는 경험을 하게 되면서
멘붕이 올 수도 있는 것이다.
바야흐로 , 문자라는 사람이
그동안 자신의 진짜 본 모습이었던
교만한 본색을 교묘하게도 , 교활하게도 오래 숨기고 있었다는 것이
온 몸을 얼어 붙게 하는 것이다.
(이중 인격 , 강약 약강의 문자를 파악하게 됨)
몸이 얼어붙는 트라우마 현상
몸이 얼어붙을 때 ,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
움직일 수 없는 무감각
몸의 일부가 마비되고 , 감정의 흐름이 정지
감정이 얼어 붙어서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음
제한된 호흡
* 헤드라이트 앞의 사슴 (중요한 표현임)
어두운 밤에 다가오는 차량의 헤드라이트 불빛에 갑자기 잡힌 사슴이 놀라서 멈춰 서는 상황
이 표현은 은유적으로
갑자기 두려움이나 혼란에 사로잡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몸이 굳어버리는 것에 적용한 것이다.
무거운 팔 다리
몸의 긴장을 알아차림
공포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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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 바타카를 사용해서
몸이 얼어붙은 그 정도 만큼
힘껏 몽둥이를 내려치기도 하고
소리를 힘껏 질러 보기도 하고 ,
몸이 얼어 붙은 그 현상을
다시 깊이 재체험해 들어가면서
자신이 느꼈던 그 감정을 다시 기억해 보고 존중해주면서
깊이 느껴주는 것이다.
그동안 문자라는 사람에게서 받아 왔던 ,
문자라는 사람이 저질러 왔던
경험도 적은 늦깍이 걸음마이자 얼치기였던 문자가 주인이 되고
경험 많은 선배인 자신을 도리어 종처럼 바보처럼 부려 먹으려 했던
어찌 보면 기가 막혔던 적반하장급의 그 주객이 전도된 경험들을
문자에게서 받았던 그 악랄했던 가스라이팅 경험들을
이야기로 풀어내고
몸으로 풀어내고
천의 색깔로
그 당시 느꼈던 모호했던 감정의 다양한 스펙트럼과 층위를 다시 구체적으로 섬세하게 기억해내고
바타카의 몽둥이로 흠씬 두들겨 패면서
다시 자연스러운 몸의 리듬으로 되돌아 올 수 있다는 것이다.
덧붙여 이때 ,
디렉터가 주인공에게 독백이나 , 역할 교대 , 거울 기법 등 을 시행해 보면 ,
더 자세히 그 당시 상황의
주인공이 느껐을 몸의 긴장이나 심층적인 무의식
그리고 문자의 심리나 본모습 등을
문자라는 사람이 바로 옆에 없음에도 더 면밀히 파악할 수 있게 된다.
( = 꼭 관계의 당사자가 그 자리에 없어도 당사자의 심리를 알 수 있게 되는 사이코드라마의 신비현상 중 하나)
그런데 이러한 관계에서의 여러 갈등들은
꼭 지인이나 친구 관계가 아니라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 직장 상사나 부학 직원의 관계 ,
결혼한 부부의 관계 , 연인간의 관계 , 교수와 학생 간의 관계 등등
여러 관계에서 드러나는 갈등들을
사이코드라마에서 보다 더 면밀히 펼쳐 보이고 시행해 볼 수 있으니
가히 , 사이코드라마의 영역은 무한하고도 끝이 없는 영역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초대 사이코드라마 학회장이셨던
최헌진 선생님은
바타카라는 도구를 일컬어 이렇게 말씀하시기도 했다.
" 바타카는
우리 조상들로부터 대대로 전해 내려 왔던
도깨비들의 방망이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 방망이는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기도 한
보석 같은 방망이였습니다.
또 다른 면에서 바타카는
옛 여인들의 다듬이질을 떠올리게 하기도 합니다.
여인들은 다듬이를 두드리면서
마음을 정갈하게 하고
옷감을 정성스럽게 다듬기도 했습니다. "
나 역시도 , 최헌진 선생님처럼
바타카라는 것은
사람의 감정 에너지를 나타내고 표현하고 표출해내는데
아주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음에
동감하고 있다.
최헌진 선생님은
한국인 특유의 깊은 정서와 한을
천으로 바타카로 잘 적용을 하신 분이다.
천 = 다양한 감정층의 스펙트럼을 표현해준다.
바타카 = 감정의 밀도와 강도를 표현해준다.
첫댓글
감정의 성질은 스프링과 같다.
그러함에 누르면 누를수록 더 튀어 오른다.
그러한 감정을 더욱 깊이 느껴 주어야 감정이 용해되고 해소된다.
더 깊이 ... 더욱 깊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