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수의 8보와 9경에 대한 논의
이 성 근 명예교수(사회과학대학)
사람마다 자기 직업에 대한 평가는 다르다. 어떤 이는 만족하고 어떤 이는 그저 그렇고 어떤 이는 불만족이다. 나는 교수직을 시작할 때나 과정에서나 마치고 나서도 절대 만족이다. 그래서 나는 교수직을 나의 운명이라고 믿는다. 그래서일까? 우리 가족 모두는 교육계의 일원이다. 부부는 평생 교수직에 종사했고 두 자녀도 대학에서 가르치는 일에 종사하고 있다.
이 글은 평생 대학교수를 직업으로 살아온 교수 직분에 대한 나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주관적인 생각을 논의하고 있다. 다만 내가 교수로 시작하고 마쳤던 시기와 지금의 대학환경은 많은 차이가 있어 글의 일반화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미리 밝히면서 시작한다. 또한 지금의 대학위기를 대학주체들이 함께 지혜롭게 극복하기를 바라고, 특히 우리 영남대학은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대학의 어원은 라틴어 ‘universitas’에서 파생된 ‘학문적 공동체’로 학술에 관한 심오한 이론과 그 응용방법을 교수하고 연구함을 목적으로 한다 .
대학교수는 대학에서 강의와 연구를 담당하는 교원으로 연구원과 교사가 하는 일을 동시에 한다. 필자가 38 년간 대학에서 교수를 지낸 경험에서 볼 때, 교수는 자유로운 가운데 강의하고 연구하며 봉사하는 일을 한다. 교수에게 자유는 중요하고 그만큼 소명과 책임의식도 요구된다.
칸트는 ‘자유는 스스로 자신을 자유의 몸으로 이끌어 나아갈 만한 사람에게 주어진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이라면 자유는 일생토록 반려자가 되어준다’고 하였다. 필자는 오랜 대학생활에서 고귀한 자유를 만끽하지 못했다. 지금 되돌아보면 스스로 자유보다는 구속적 삶을 살아온 것 같다. 이런 이유로 대학교수의 8보(보다 나은 여덟 가지)와 9경(경계해야 할 아홉 가지)에 대한 논의의 글을 쓰게 되었다.
필자는 현재 교수로 활동하거나 장래 교수를 희망하는 사람들, 그리고 나와 함께 동시대에 교수를 지낸 사람들에게 교수 직업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기회가 주어지기를 바란다.
옛날부터 공직자와 교직자, 그리고 성직자를 하늘이 내려준 직업 즉, 삼천직이라 했다. 나는 오랜 기간 교수직에 종사하여 삼천직의 하나에 종사한 셈이고 행운이었다.
세계적인 사회과학자인 독일의 막스 베버가 1919년에 쓴 「직업으로서의 학문」이라는 저서에서 교수직의 네 가지 조건으로 “건강, 지능, 돈, 기회/운”을 들었다. 나는 분명 운이 좋았다.
나는 지난 인생에서 세 가지 프리미엄을 가졌었다. 하나는 대학원 석ㆍ박사과정의 훌륭하신 지도교수님의 프리미엄이고, 다른 하나는 교수직분의 프리미엄이며, 마지막 하나는 영남대 교수와 지역개발 전공의 프리미엄이었다.
대학원생에게 지도교수는 학문과 직업선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학문을 막 시작하는 대학원생에게 지도교수의 학덕은 커다란 프리미엄이 된다. 나에게 지도교수님은 학문과 교수의 길을 터주신 분이다. 또한 학문과 교수직을 시작하는 나에게 지도교수님의 가르침은 평생 나침판이 되었다.
교수라는 직분은 타 직업군과 확실하게 구분되는 유무형의 프리미엄이 있다. 나는 이를 8보 9경이라 이름 지었다. 8보는 교수 직분이 갖는 여덟 가지의 보다 나은 의미 있는/보배 프리미엄이고, 9경은 교수 직분에서 아홉 가지의 경계해야 할 프리미엄이다.
영남대와 지역개발 전공의 프리미엄은 내가 온전히 교수직을 수행하는 데 버팀목이었다. 영남대의 자유로운 학풍은 교수 개개인의 역량을 발휘하는 학문적 생태계의 프리미엄이었고, 지역개발 전공과 학생들은 학문의 실사구시와 교학상장의 교수인생을 충실하게 해 준 자양분과 같은 프리미엄이었다.
이 글에서 필자는 교수인생을 되돌아보면서 직업으로서의 교수 직분에 대한 보다 나은 특징과 경계해야 할 사항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먼저 교수 직분의 보다 나은 의미 있는 특징인 8보에 대해 논의해 보자.
교수는 자신이 잘하고 좋아하는 과목을 가르친다는 것이 1보이다. 교수의 직분 가운데 하나가 강의이다. 교수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으나 대부분 자신의 과목에 대한 전문지식과 자신감과 자긍심을 갖고 강의에 임한다. 지금은 학생들로부터 강의평가를 받고 있어 예전만은 못하다. 그러나 이는 가야 할 길이다.
교수는 연구과제를 스스로 선택하고 연구를 수행한다는 점이 2보이다. 교수 직분에서 연구는 타 교육직군과 구분되는 특징이다. 교수와 달리 연구 직업군에서는 연구과제 선정이 자신보다 기관과 조직차원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교수는 자신이 잘하고 좋아하는 연구 과제를 수행하기 때문에 연구로 인한 피로도가 타 연구 직업군과 비교하여 낮은 편이다.
교수는 자신의 전문지식을 통해서 세상을 이롭게 하는 자문의 기회가 많은 것이 3보이다. 교수 직분은 강의와 연구와 봉사의 책무성이 주어진다. 학문의 궁극적 목적은 인류사회의 공헌이다. 봉사는 자문활동에 해당한다. 교수는 학문분야에 따라 다양한 자문기회를 가진다. 그러나 학문분야의 성격과 교수 개개인의 성향, 그리고 사회수요에 따라 자문활동의 정도는 달라진다.
사색의 자유를 갖는 것이 교수의 4보이다. 교수는 초ㆍ중등 교육직군과 달리 개인별로 연구실 공간을 갖는다. 교수들은 이 공간을 집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거나 집처럼 소중하게 여긴다. 교수의 연구 활동은 대부분 연구실에서 이루어진다. 연구실은 상상하고 집중하며 몰입하는 공간이다. 또한 휴식과 소통의 공간이기도 하다.
교수는 강의와 연구와 봉사를 통해 만난 사람들과의 네트워크 구축이 5보이다. 교수는 재직기간 강의를 통해 많은 학부 학생들을 만난다. 또한 대학원 학생들과 논문지도를 통해 지도교수로 만난다. 그리고 전문분야의 외부 자문활동에서도 많은 전문가와 일반 사람들을 만난다. 여기에서 특별한 인연을 맺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교수는 타 직업군과 달리 인적 네트워킹과 사회적 자본형성에 비교우위가 있다. 이는 삶의 질과 행복, 그리고 보다 의미 있는 삶에 관계되는 가치이다.
교수는 타인과의 경쟁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것이 6보이다. 교수는 타인과의 경쟁보다는 자신과의 경쟁을 하는 직업이다. 일반 직장에서 경쟁은 승진이다. 교수 직업은 테뉴어/정년보장 제도가 있다. 테뉴어 이전까지는 승진의 스트레스가 주어지나 승진 이후에는 정년이 보장되어 스트레스 정도가 낮아진다. 이 또한 타인과의 상대적 경쟁보다 자신의 절대적 점수관리가 중요하다.
시간 활용이 자유로운 것이 교수의 7보이다. 이는 교수에게 유비쿼터스적 자유자재의 시ㆍ공간 이용의 자유이다. 우선 교수는 출퇴근 시간에서 자유롭다. 물론 일반 직장처럼 정해진 출퇴근 시간은 주어진다. 그러나 교수는 필요에 따라 개인적으로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다. 또한 교직자에게 주어지는 방학이 있고 사오 년 마다 돌아오는 안식년제도가 주어진다.
교수는 자신의 선호와 가치와 신념에 따라 표현하고 행동하는 자유가 보장되는 것이 8보이다. 교수는 대체로 호불호가 명확하다. 교수는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분명히 한다. 또한 교수는 지향하는 가치에 따라 원칙과 기준을 세워놓고 표현하고 행동한다. 따라서 교수는 신념이 강하고 이에 기반하여 소신과 지조가 강하다 .
16세기 코페르니쿠스는 지동설을 주장하였고 갈릴레오 갈릴레이 망원경으로 입증하였다. 1633년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지동설을 주장한 이유로 종교재판을 받고 나오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하였다. 현대 들어 교수들의 신념과 지조가 퇴색되어 아쉽다.
다음은 교수의 아홉 가지 경계(9경)해야 할 덕목을 보자.
첫째, 교수는 배우는 것보다 가르치는 것에 익숙하다. 교수는 일반적으로 학위과정을 통해서 전공지식을 함양하고 교수가 된다. 교수가 되면 가르치는 일을 우선하고 배우는 일은 습관적으로 기피하게 된다. 따라서 교수가 경계해야 할 일은 끊임없이 훈육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교수는 듣는 것 보다 말하는 것에 익숙하다. 교수는 일상에서 강의와 논문지도와 자문활동을 한다. 이때 교수가 일방적으로 말하게 된다. 이와 같은 습관은 교수로 하여금 말하기를 좋아하고 듣는 역량을 부족하게 만든다. 따라서 교수가 경계해야 할 것은 학생들과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는 것에 익숙해야 한다.
셋째, 교수는 강의와 연구와 자문에 상식적 설명보다 과학적 설명을 주로 한다. 교수의 말과 글은 구조에 체화되어 있다. 따라서 교수가 경계해야 할 것은듣고 읽는 사람이 지루하고 딱딱하지 않으면서 재미있고 공감성을 높히는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
넷째, 교수는 대체로 강의와 학생지도에 수요자 중심 보다는 공급자 중심으로 강의와 연구를 한다. 최근에는 수요자 중심의 교육에 관심이 커지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여전히 공급자 중심적이다. 따라서 교수가 경계해야 할 것은 교수중심의 사고와 행동에서 탈피하여 학생중심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다섯째, 교수는 자기 전공 중심으로 강의와 연구를 하는 평생 한 우물을 파는 직업이다. 따라서 교수는 자기 전공분야는 중요하고 타분야의 전공은 관심을 두지 않는다. 따라서 고집이 세고 자기중심적이며 타협이 잘 안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경계해야 할 것은 지나친 아집과 전문성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
여섯째, 교수는 직장이동이 거의 없는 편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비해 교수 시장이 더욱 경직되어 있다. 한 번 직장이 평생직장이 된다. 동료교수는 한 번 만나면 평생 인연이 된다. 따라서 경계해야 할 것은 동료교수와의 원만한 인간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는 학과발전과 학생교육은 물론이고 교수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도 필수조건이 된다.
일곱째, 교수는 타 직업군에 비해서 정년 연령이 길다. 한 번 취업하면 수십 년간 한 조직과 기관에 근무하고 정년을 한다. 성격이 개방적이고 활동적이지 않으면 수동적이고 소극적으로 변하게 된다. 따라서 경계해야 할 것은 자기 전공만 잘하면 만사형통이라는 무사태평의 마음가짐이다.
여덟째, 교수는 정년과 함께 연금생활자가 된다. 매월 연금을 받기 때문에 비교적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정년 이후 대부분의 교수들은 소극적이고 현실안주적으로 된다.
따라서 교수들도 재직기간에 자신만의 취미/여가기술이나 전원주택을 마련하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예적금은 정년 이후를 고려한 장기간이 좋고 전원주택과 취미/여가기술은 최소한 정년 십 년 전에 준비에 들어가면 좋다. 정년 이전 십 년은 가꾸고 정년이후 십 년은 즐기는 것이다.
아홉째, 교수는 정년이후 설계에 인색한 편이다. 이는 인생노계에 해당한다. 대부분의 교수들은 정년과 함께 일이 년간은 그간 하던 강의와 자문를 하거나 아예 하지 않거나 그간 하던 전공의 새로운 일을 찾아서 하는 것이 하나의 패턴이다. 필자는 정년이후에도 그간 하던 일을 소확행의 원칙과 재능기부 차원에서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개인과 사회를 이롭게 하는 작은 실천이 되기 때문이다.
필자는 대학교수의 8보와 9경에 대한 논의를 마치면서 보다 나은 의미 있는 교수의 여덟 가지 특징을 살리고 경계해야 할 교수의 아홉 가지 사항에 대한 주의 깊은 관심을 통해 교수 자신은 물론이고 학생과 대학, 그리고 국가에 큰 공헌이 있기를 바란다.
이성근 지음. “대학교수의 8보와 9경에 대한 논의”. 「이성근 교수의 인생사색 3」. 퍼플. 2023. 10. 5 에서 일부 수정한 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