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과 산헤립의 육면주
도입
니느웨의 궁전 폐허에서 발견된 앗시리아 왕 산헤립의 육면주(육각점토 기념비)에는 히스기야 왕 때 남방 유다를 침략한 사실이 매우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들은 역대하, 열왕기하, 이사야서 등에 나타난 내용들과 놀라운 일치를 보여주고 있다.
전개
1. 앗수르의 대왕 산헤립은 어떤 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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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722년 대담한 불신과 돌이킬 수 없는 도덕적 퇴폐가 만연했던 북방 왕국 이스라엘은 하늘에서 내린 심판의 도구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하고 말았다. 이어 앗시리아는 남방 유다에 그 칼을 겨누었지만, 마침 남방 유다에는 경건한 왕 히스기야가 개혁과 국가 쇄신에 힘을 써 유비무환을 실천했다. 특히 수도 예루살렘이 포위될 경우 성내의 급수로를 확보하기 위해 성밖 동굴 속의 간헐천인 기혼샘의 물을 성안으로 끌어들이는 대수로 공사에 착수했다. 그런데 참으로 놀랍게도 히스기야 왕 때 뚫은 기혼샘과 실로암 못을 잇는 대수로가 1880년 한 소년에 의해 발견되어 성경의 역사성이 다시 한번 증명되었다. 바로 이 북방 이스라엘을 평정했던 사르곤 2세를 이어 왕이 된 산헤립은 히스기야왕 때인 기원전 701년 드디어 팔레스틴을 정복하기 위한 대대적 군사행동을 개시했다.
2. 산헤립 침공시 유다의 상황은 어떠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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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기야는 즉위하자마자 오직 하나님만 섬기고 대국 앗수르를 섬기지 않기로 결심했다. 앗수르왕 산헤립은 이같은 히스기야의 정책과 태도에 못마땅하여 히스기야 14년에 유다를 침공해 들어왔다. 그리고 46개의 요새지/국고성과 수많은 작은 마을들을 점령했고, 파괴하였다. 그러면서 유다와 이스라엘 국경지대 전략적 요충지였던 제2의 도시 라기쉬까지 침공하여 거의 함락시켰다. 그리고는 유다의 주요 성읍들을 차례로 공격하다가, 마침내 수도 예루살렘을 넘보며 다가온다. 그러자 히스기야는 급히 수도방위 전략을 짜고 사령관들과 신복들 그리고 백성들을 동원하여 성 밖의 모든 수원과 시내 등을 메우고 막아버려 적군이 물을 구할 수 없게 만든다(대하 32:3~4). 이것이 계기가 되어 히스기야 왕 시대에 예루살렘 시내에 대대적인 수도공사가 이뤄졌고 수로들이 지하에 구축되는 과정에서 기혼샘과 실로암 못 사이를 연결하는 길이 533m의 지하 수로 히스기야 터널이 생긴 것이다. 여하간 앗수르의 상당한 압박과 두려움 속에서 히스기야는 산헤립의 비난과 조소를 견뎌야만 했다.
3. 육면주(육각 점토 기념비)에는 어떤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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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육면주에는 산헤립이 히스기야가 다스린 유다를 유린했다는 사실을 선명한 그림과 글로 남겼다. 육각 면 한 부분에는 산헤립이 자부심에 사로잡혀 기록한 내용이 다음과 같이 남아 있다. “유대인으로 나의 멍에에 복종하지 않은 히스기야에 관하여는 내가 그의 강한 성벽을 가진 도시들 중 46개와 그들 이웃의 수많은 작은 도시들을 ...(중략)포위하고 점령했다. 200,150명의 남녀노소와 말과 노새 당나귀와 낙타와 가축과 양들을 수도 없이 거기서 끌어내었고 전리품으로 간주했다. 자신에 관하여는 내가 그를 새장에 갇힌 새 같이 그 왕도인 예루살렘 안에 가둬 두었다...(중략) 나는 이 전의 조공에 부과해서 그에게 매년의 지불 즉 나의 주를 위한 선물 형태로 세금을 물렸다...금 30달란트, 은 800달란트에 부과해서 보석과 안티모니 진주... 모든 종류의 값진 보물과 그의 딸들, 그의 처첩, 그의 남녀 음악인들을 나의 왕도 니느웨 나에게로 그것들을 가져왔다.”
너무나 놀랍게도 열왕기상 18:13에 보면 앗시리아와 산헤립의 요구대로 히스기야가 바쳤던 금의 중량이 30달란트이다.
4. 열왕기 하에 보면 히스기야 왕에게 앗시리아 왕 산헤립이 파견한 무관 랍사게가 예루살렘 성 밖에 와서 여호와 하나님을 모독하고 백성들을 낙담시켰는데 랍사게는 개인의 이름인가, 아니면 직위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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랍사게는 사실 개인의 고유명사가 아니라 앗시리아 궁중의 고급 관리의 직위명임이 밝혀졌다. 즉 다르단(turtannu)은 ‘무관,’ 랍사리스(rabu-sha-reshi)는 ‘환관장,’ 랍사게(rab-shagu)는 ‘주장’의 직분이었다.
생각 나누기
히스기야가 산헤립의 공격을 받고 불가항력적인 위기 상황에서 성 안팎을 정비하고 퇴락한 성과 망대를 중수한 후 백성과 군대장관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마음을 강하게 하며 담대히 하고 앗수르 왕과 그 좇는 온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말며 놀라지 말라 우리와 함께하는 자가 저와 함께하는 자보다 크니 저와 함께하는 자는 육신의 팔이요 우리와 함께하는 자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리라”(대하 32:7~8)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