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10월 9일 한글날. 1446년 한글반포. 580주년, 조선어학회가 가갸날(한글날)을 선포한지. 100주년을 맞이하며, 우리가 매일 숨 쉬듯 사용하는 한글의 가치와 고마움을 다시금 되새겨봅니다.
1. 독창성과 세종대왕의 애민 정신
한글(훈민정음)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만들어진 날과 만든 사람, 그리고 제정 목적과 원리가 명확히 기록으로 남아 있는 문자입니다. 세종대왕이 문자를 알지 못해 제 뜻을 펼치지 못하는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 만든 '훈민정음'에는 깊은 애민 정신이 담겨 있습니다. 권력의 독점이 아닌, 지식과 소통의 평등을 선언한 인류사적으로도 위대한 유산입니다.
2.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제자 원리
한글은 발음 기관의 모양을 본따 만든 기본 자음(ㄱ,ㄴ,ㅁ,ㅅ,ㅇ)에 소리의 세기에 따라 가획하는 방식과, 하늘(ㆍ)·땅(ㅡ)·사람(ㅣ)을 본뜬 모음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극도로 과학적인 문자입니다. 소리와 문자가 일대일로 대응하는 구조 덕분에 배우기 매우 쉽고, 몇 개의 기호만으로 수천 개의 소리를 표기할 수 있습니다.
3. 디지털 시대에 빛나는 우수성
한글의 진가는 IT·디지털 환경에서 더욱 도드라집니다.
중국이나 일본은 알파벳 문자를 입력해 비슷한 문자를 선택해 쓰기에 정확한 뜻이나 속도를 한글의 우수성과 비교가 안되는 것이다.
조합형 문자 구조 덕분에 스마트폰 자판이나 컴퓨터 키보드에서 타자를 가장 빠르게 입력할 수 있으며, 음성 인식 및 정보 처리 속도에서도 독보적인 효율성을 자랑합니다.
매일 무심코 사용하는 한글이지만, 세종대왕의 따뜻한 배려와 과학적인 지혜가 집약된 이 아름다운 문자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깊은 자부심과 고마움을 느끼게 돕니다.
한글의 폐기 위기
이렇게 우수하고 자랑스런 한글을
연산군이 한글(당시 언문)의 사용을 금지하고 단속(소위 ‘언문금압책’)한 가장 직접적인 계기는 자신을 비판하고 능멸하는 언문 투서(익명서) 사건 때문이었습니다.
1. 직접적 계기: 언문 익명 투서 사건 (1504년, 연산군 10년)
1504년 7월, 연산군의 폭정과 패륜적 행태(채홍사를 통한 채홍, 선왕의 후궁 처형 등)를 비판하는 언문 익명서가 조정과 대궐 근처에 붙거나 투서되었습니다.
* 투서에는 연산군의 실정을 고발하고 "왕을 폐위시켜야 한다"는 내용까지 담겨 있었습니다.
* 한문과 달리 한글은 부녀자나 노비, 하급 관리 등 서민층까지 널리 읽고 쓸 수 있었기 때문에, 왕을 비판하는 소문과 비방이 대중 사이에 빠르게 확산되는 매개체가 되었습니다.
2. 연산군의 대응과 언문 금지 조치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투서에 분노한 연산군은 즉시 강경한 탄압 조치를 내렸습니다.
* 언문 사용 및 학습 금지: "앞으로 언문을 가르치지도 말고 배우지도 말며, 이미 아는 자도 쓰지 못하게 하라"는 엄명을 내렸습니다.
* 언문 서적 수거 및 소각: 궁중과 민간에 있는 모든 한글 서적과 문서(언문 교서, 번역본 등)를 거두어 불태우도록 했습니다.
* 밀고 및 처벌 강화: 언문을 사용하거나 투서 작성자를 알고도 고하지 않는 자는 족형(발가락을 자르는 형벌)이나 처형 등 가혹한 형벌에 처하도록 했습니다.
참고: '언문(諺文)'이라는 표현에 대하여
연산군이 한글을 깎아내리기 위해 '언문'이라 부르기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언문'은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할 당시부터 '상대적으로 정식 문자(한문)에 비해 친근하고 비공식적으로 쓰이는 문자'라는 의미로 쓰이던 일상적인 명칭이었습니다. 연산군은 이 언문 자체의 쓰임과 보급을 정치적 탄압 목적으로 전면 금지했던 것입니다.
한글의 발전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 동안 한글이 단순한 언어를 넘어 '민족의 정체성'이자 현대적 언어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데는 주시경 선생, 한글 학자들, 그리고 외국인 선교사들의 각기 다른 노력이 결정적이었습니다.
1. 주시경 선생: 근대 한글학의 개척자
주시경 선생은 민중을 계몽하고 국권을 수호하는 길은 '우리말과 글을 바로 세우는 것'이라 믿었습니다.
* '한글' 이름 명명: '언문', '암클' 등으로 비하되던 훈민정음에 '크고 하나뿐인 으뜸 글'이라는 뜻의 '한글'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 문법 체계 수립: 《국어문법》, 《말의 소리》 등을 출간하며 한글의 음운과 문법 구조를 최초로 학문적으로 정립했습니다.
* ‘가로쓰기’와 ‘모아쓰기’ 개혁: 한글을 한자식 세로쓰기에서 현대식 가로쓰기로 전환하려 시도했고, 형태소를 밝혀 적는 표기법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 인재 양성: 보성학교, 배재학당 등 수많은 학교에서 강연하며 최현배, 이희승 등 훗날 조선어학회를 이끌 제자들을 양성했습니다.
2. 제자들과 한글 학자들: 조선어학회의 민족 문화 수호
주시경 선생의 제자들은 1921년 '조선어연구회'(후에 조선어학회)를 조직하여 일제의 언어 탄압 속에서도 한글 표준화 사업을 추진했습니다.
* 한글 맞춤법 통일안 (1933년): 방언과 소리대로 적던 관습을 정리해 형태주의 표기법을 확립한 현대 한글 표기의 기준을 마련했습니다.
* 표준어 제정 및 외래어 표기법: 전국 각지의 말을 수집해 '표준어'를 정의하고 정리했습니다.
* 우리말 큰사전 편찬 시도: 민족의 말을 지키기 위해 대규모 사전 편찬 작업을 벌였습니다. 비록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학자들이 투옥되고 수난을 겪었으나, 이 원고는 광복 후 《우리말 큰사전》 출간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 대표 인물: 최현배(주시경의 수제자로 맞춤법 체계화 주도), 이극로(사전 편찬 총지휘), 이희승 등.
3. 외국인 선교사들: 한글 대중화와 세계화의 조력자
19세기 후반 들어온 서양 선교사들은 복음 전파와 교육 사업을 위해 한글의 실용성에 주목했습니다.
* 호머 할버트 (Homer Hulbert):
* 최초의 순한글 교과서인 《사민필지》(1890)를 저술하여 세계 지식과 지리를 한글로 보급했습니다.
* 서양 언어학 논문과 잡지 등에 "한글은 문자의 알파벳이며 최고의 문자"라는 글을 다수 기고하여 한글의 과학성을 세계에 알렸습니다.
* 서재필, 주시경과 함께 《독립신문》 창간 시 순한글 발간과 띄어쓰기 도입을 적극 권유했습니다.
* 존 로스 (John Ross):
* 최초의 한글 성경인 《예수성교전서》(1887)를 번역·출판했습니다. 이 성경은 일반 민중과 여성들에게 폭넓게 읽히며 한글 문해율을 대폭 낮추는 데 기여했습니다.
* 언더우드, 아펜젤러 등:
* 한영사전, 한글 문법서를 제작하고 이화학당·배재학당 등 신식 학교에서 한글 교육을 시행하여 한글이 대중적 지식 전달 매체로 자리 잡도록 도왔습니다.
첫댓글 저는 반평생을 인쇄업에 종사했었습니다.
세종인쇄 경영할때 그땐ㅡ 한글이 이렇게 귀한 줄도 깨닫지 못했었다.
한글을 창제한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 한글을 체계적으로 발전시킨 근세 주시경과 그의 제자들, 복음전파를 위해 잠자던 한글을 깨워 성경을 출판하고 문서선교를 통해 한글을 널리 보급한 선교사님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위글은 Al의 도움을 받아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