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메르인은 고대 한국인이었다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History Begins at Sumer)'의 저자로 유명한 사뮤엘 크레머 교수는 최초의 창조설화를 비롯한 교육제도, 사법제도 등 인류 최초의 39개 사건이 모두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고 했다. 수메르인들이 살던 지역은 지금의 이라크 지역을 의미한다.
[*수메르(Sumer); 서아시아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존재했던 고대 문명. 현재까지 알려진 인류 최초의 문명이다. 또한 인류 역사상 최초로 문자를 사용한 기록이 남아 있는 곳이다. 기원전 4500년경 이 지역에 정주하여 시작된 수메르 문명은 2,000년 이상 지속되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서부터 배우는 인류문명의 4대 발상지 가운데 하나인 메소포타문명은 말 그대로 'meso-potamia'로 양강(兩江) 사이란 뜻이다. 양강이란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을 두고 하는 말이다. 바이블에 나오는 '에덴'동산으로 불리는 '딜문'동산도 바로 이 양강 사이에 있는 지역이다.
과거에 부시 미대통령이 '악의 축'으로 부른 나라, 즉 이라크 이란 북한은 모두 인류 초고대 문명의 발상지란 점에서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지금 북한 학자들은 '대동강문명'이라고 하여, 검은모루 유적지 발견 이후 메소포타미아 문명보다 더 오래 된 문명이 대동강 유역에 있었다고 한다.
부시가 이 세 나라만 골라 '악의 축' 운운하면서 공격 표적으로 삼았던 것은 미국의 '역사 콤플렉스'라고나 해 두자.
기원전 3500년경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한 무리의 인간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거기에 정착하기 시작한다. 이 한 무리의 인간들을 '수메르인 Sumerian'이라고 하며, 그 뜻은 '검은 머리' (Black Headed People)라는 뜻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양강 지역에 올 때 문자, 학교제도와 법제도 등 고급문화를 이미 가지고 왔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도대체 어디서 있다가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이주해 왔느냐이다.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로 남겨져 있는 이 수메르인들의 유래 문제를 소위 '수메르 문제거리 Sumer Problem'라 할 정도이다.
나일강 유역의 이집트문명도 수메르보다 무려 1000년 이후의 것이며, 인도의 인더스강 유역 문명도 그와 비슷한 후기 문명이다.
수메르인들이 가지고 온 문명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급문명으로, 그 당시 지금의 히브리인들은 말 그대로 'Habiru'로 그 말의 의미는 '떠돌이' 혹은 '산적'의 의미 등을 갖는다. 수메르인들이 설형문자라는 것을 사용할 당시, 히브리인들은 문자도 없었으며 옷이란 동물 가죽을 벗겨 입고 다닐 정도였다.
그러나 수메르인들은 직조기술을 발견하여 이미 옷을 물들여 입고 다녔다. 건축술도 발달하여 2층 가옥을 지을 정도였다.
발견되어 지난 번 전쟁으로 도난당한 토판들은 거의 경제거래 문서들로서, 이는 거래를 한 다음 남긴 계약문서들이다.
(한국의 강신택 교수는 예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이 분야의 연구로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1830년대에 처음으로 이라크에서 수메르 문자가 발견되면서, 가장 충격을 받은 곳은 기독교였다. 왜냐하면 가장 최초의 사건이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생겼을 것이라 여겨져 왔고, 에덴동산도 그 지역 어딜 것이라 믿어 오던 터에, 창세기의 창조설화와 홍수 설화 등이 수메르의 토판 속에 그대로 그 원형이 기록돼 있었기 때문이다.
에덴동산에 남자와 여자가 있었고, 동산의 열매를 따먹지 말라는 금기. 그런데 슈메르에서는 여자가 아닌 남자가 먼저 따먹는다는 둥, 그리고 홍수가 나서 사람들이 다 죽는데 지아슈드라는 의인이 있어서 배를 만들어 사람들은 구제한다는 둥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기록들이 쏟아져 나왔다.
고급문화 수메르에 대하여, 히브리 문화를 저급문화로 분류한다. 서양문명은 그리스의 합리적 이성과 히브리의 감성적 신앙이라는 두 물줄기로 이루어진다.
이 두 물줄기는 올라가면 고대 수메르 문명에서 만난다. 그런데 기원전 2000년경 수메르 우르 남무 왕국이 멸망하면서, 슈메르 문명은 2갈래로 갈라지고 만다는 것이다.
그리스 올림푸스 신전의 원형이 수메르의 딜문 동산의 그것이라고 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히브리인들의 정신적 유산은 그대로 수메르의 것을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자, 그러면 이라크가 저렇게 무너진 것은 인류문명의 정신적 고향이 황폐화되거나 말살되고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닌가?
- 수메르와 한국
그러면 수메르인들은 과연 어디서 왔는가? 이것이 수메르 문제의 화두이다. 그들의 유래를 알 수 있는 단서가 있다. 그것은 그들이 남긴 문자이다.
어느 두 언어가 같은 계통이라면 먼저 언어의 특징이 같아야 하고, 문법 구조가 같아야 하고, 유사한 언어 특히 수사가 같아야 한다. 우리가 인도와 유럽의 언어가 같다고 하는 것은 영어, 독어, 프랑스어와 인도의 산스크리트어가 모두 이 3가지 점에서 같기 때문이다.
물론 수메르어와의 비교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생각키로는 이 3가지 점에서 거의 완벽하게 같은 언어는, 우리 한국어가 아닌가 한다.
먼저 언어의 특징이란, 수메르어가 교착언어인데 교착언어란 우리말의 주어나 목적어 다음에 '은, 는, 이, 가' 등이 붇는 언어를 의미한다. 이는 우랄 알타이언어의 공통된 현상이다. 그런데 중국와 인도어는 일단 교착언어가 아니다. 그래서 수메르어와는 그 특징에 있어서 같지 않다.
다음으로 문법 구조에 있어서 수메르어는 '주어+목적어+동사'이다. 이는 영어 혹은 중국어와는 다르고, 우리말과는 같은 구조이다.
마지막으로 수사(數詞)에 있어서 같아야 하는데, <삼국사기>에는 고대 우리말의 수사가 남아 있다. 필자는 수메르 수사와 우리 고대 수사를 비교 한 바 있으며, 최근 히브리대학에서 수메르어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온 조철수 교수가 더욱 심화연구 하여 발표 한 바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수메르어는 처음 1을 '아스 as'라고 하는데, 이는 <삼국유사> 고(古)한국어의 그것과 일치한다. 처음 빨래를 '아시 빨래'라고 하며 아침은 '아사'라고 하는 것이며, 해 뜨는 아침을 의미하는 Asis가 여기서 유래한다.
[* 주: '아'는 '아침' '아이'에서 보이듯 시작을 뜻함. 아 → 하(하나,한)]
언어 이외에 수메르 유래의 단서를 제공하는 것이 '지구라트'이다. 지구라트는 벽돌로 쌓은 인조 탑이다. 물론 피라밋의 유래이며, 구약성서의 바벨탑의 전신이 다름 아닌 지구라트이다.
...다행히 고고학자들은 지금 터키 그리고 만주, 몽고 지역까지 관련 유적을 찾아내고 있는 실정이다. 기원전 3500년경 과연 그 찬란한 고급 문명을 가지고 있던 지역은 과연 어딘가?
그밖에 수메르와 한국은 묘장제도, 순장제도, 60진법, 최고지도자의 상징을 봉황으로 삼고 있는 점 등에 있어서 앞으로 두고두고 그 유사성이 연구의 대상으로 남겨져 있다.
필자; 김 상 일 교수 (한신대 철학과) - 오마이뉴스 2003/04/14
출처; https://cafe.naver.com/sky2002.ca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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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 수메르인들은 우리과 똑같이 씨름(그것도 왼씨름)을 했다.
- 우리말 '밭'을 수메르어로 '받'이라 하고, '길'은 '길'이라 한다. 아버지를 그들은 집에선 '아바'라 하고, 남에게 말할 땐 '아비'라 하며, 높은 분을 높여 부를 때는 이름 뒤에 '님'자를 붙였다. '하늘'은 수메르어로 '아눌'이고, 높임말 '하늘님'은 '아눌님' 혹은 '아누님'이라고 했다.
- 수메르인들이 귀하게 숭상하던 꽃은 'Rose of Sharon(샤론의 장미)인데, 이 꽃의 학명은 히비스쿠스 시리아쿠스(Hybiscus syriacus)로 무궁화 꽃의 학명과 동일하다.
- 수메르인의 격언 하나. '진리와 함께 걷는 자는 누구든지 생명을 얻는다.' (예수 탄생 수천 년 전부터 이미 있었던 격언)
- '환단고기' 등에는 고대 한국의 12국 중에 수밀이(須密爾)라는 나라가 있었다고 한다. 상고 대에 만주에 있던 '수밀이' 사람들이 이동하여 세운 문명으로 보인다. 유사한 우리말 '소머리'(牛頭)와의 관련 설도 있다.
<덧글>
인도 문명
↗ ↑
인류문명은 한겨레 상고문명 → 수메르 문명 → 이집트 문명 → 그리스 문명 등으로 전파된 것으로 보입니다
↘
황하 문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