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는가?
우리나라가 살기 좋은 나라인가? 하는 질문에 여러 사람들의 의견은 분분합니다. 일반적으로 자기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를 논할 때 젊은 사람들은 세상에 불만을 갖고 이야기하고 나이 든 사람들은 그러한 젊은이들에게 불만을 갖습니다. 얼마 전에 ‘노인이 사는 나라는 없다’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제목을 보면 고령화나 독거노인, 고독사 등 사회에서 발생하는 노인 문제를 다룬 작품으로 오해하기 쉬운데 내용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코엔 형제감독이 만든 미국영화인데 1980년대를 배경으로 우연히 거액의 돈 가방을 손에 넣은 남자가 사이코패스 살인마에게 쫒기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1970년대 미국은 베트남전과 오일 쇼크로 사회적 경제적으로 악화되어 연쇄살인이 대규모로 급증하기 시작합니다. 제목에서 '노인'이란 단어는 '늙은 사람'이 아니라 '오래된 지혜를 가진 현명한 생각의 소유자'를 의미합니다. 만약 노인의 경험과 지혜대로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하게 흘러가는 사회라면 그곳에서 노인들은 대접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지혜로운 노인이 가진 세계관처럼 흐르지 않고 우연을 통해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고, 누군가의 선한 의도는 본심과 무관하게 범죄와 참극이 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조리한 혼돈의 세상이 되는 실태를 그립니다. 영화는 노인, 즉 ‘지성인이 안심하고 살 수 있을 정도의 나라와 세상은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중국어로 표현하자면 '늙은이가 기댈 곳은 없다(老无所依)’가 비교적 적절하겠습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노인의 기준 나이를 1981년에 제정된 노인복지법상의 65세에서 70세 또는 75세로 상향하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100세 시대라는 지금 노인 연령 기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들지만 한편으로 과연 우리나라는 노인이 살기 좋은 나라인가? 라는 의문이 듭니다. 2024년 5월 노인의 삶에 활용 가능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영국 기업인 '에이지코(AgeCo)'와 장애인이나 노인을 위한 계단 리프트, 이송, 보조 장치 등을 지원하는 기업인 '핸디케어(Handicare)'는 세계에서 노인이 살기 좋은 국가 순위를 기대수명과 의료지수, 사회적 안전 지수, 행복지수, 생활비지수, 부동산가격지수, 남녀 퇴직연령 등 여러 분야에서 조사하였습니다. 그 결과 노인이 살기 좋은 상위 국가에는 노르웨이, 카타르, 핀란드, 말레이시아, 스웨덴, 일본 등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1위인 노르웨이의 경우 평균 기대 수명이 높고, 행복지수도 높으며 부동산 가격 지수가 낮아 1위를 차지한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의 경우 높은 평균 기대 수명이 5위를 차지하는데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그 외 아랍에미레이트, 슬로바니아, 오스트리아, 프랑스 그리고 우즈베키스탄이 10위안에 들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캐나다, 뉴질랜드에 이어 27위를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평균 기대 수명은 높지만 상대적으로 행복지수가 매우 낮았습니다. 거기에다 비관적인 부동산 가격 지수가 더해져 27위를 기록한 것으로 보입니다.
누구든지 예외 없이 노인이 됩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노인 기준 나이를 변경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노인들이 살기 좋은 환경과 지역사회가 무엇인지 알고 준비하려는 노력이 더 중요해 보입니다. 노인들이 안심하고 살아 갈수 있는 고령 친화적(Age Friendly)인 도시와 지역사회에 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고령 친화적인 도시와 커뮤니티 가이드라인은 건물, 도시와 지역사회의 교통, 주택, 의료시설, 휴식공간과 같은 물리적인 기반 외에도 사회참여, 고용, 존중과 포용, 소통과 정보, 돌봄 등 사회 문화적 기반도 포함됩니다.
일반적인 예기입니다만 우리나라는 외국에 비해 치안이 좋고, 물가가 비싸지 않으며, 와이파이도 잘 터지고 어디가도 깨끗한 화장실이 구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방방곡곡 볼거리와 즐길곳이 많아 참 좋습니다. 지하철에서 분실한 물건들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빙빙 돌다가 다시 제자리에 옵니다. 국민 성정도 화끈하고 역동적이어서 국가권력이 잘못하면 힘을 모아 혼을 내 줍니다. 빠르게 배달되는 각종 필요품들은 편하고 좋은 세상에 살고 있음을 느낍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 예외없이 서서히 늙어가는 생물학적 존재입니다. 예이츠의 시 ‘버드나무정원 아래에서’를 보면 ‘젊고 어리석은(young and foolish)’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현명한 중년의 내가 젊은 시절의 나에게 삶을 느긋하게 바라보라는 뜻입니다. 지금 중년입니다. 현명함은 지난날의 무모했던 기억과 추억을 전제로 하니 이제부터라도 느긋하면서도 치밀하게 ‘노인을 위한 세상’을 마련해 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