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
만 생명의 근원이신 자비로운 부처님 감사드립니다.
법성 광명으로 감로의 법문을 베풀어 주시는 부처님 참으로 고맙습니다.
저희가 스스로 광명의 태양을 등지고,
어둠 속에서 방황하고 헤매고 있는 저희에게 바른 불법을 가르쳐 주시어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이웃과 함께 한마음으로 정진하며 부처님의 크신 은혜 갚아지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이렇게 기도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2년 전쯤에 인왕수 보살님의 배려로 노흘 스님을 전화로 뵙게 되었습니다.
바른기도 방법을 가르쳐주셔서 덕분에 매일 기도를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다생부모 왕생정토진언”을 정성껏 날마다 염송하면서 지심 참회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부모님을 실망하시게 했습니다.
부모님은 아들이기를 간절히 원하셨는데...
딸이 태어났으니 얼마나 서운하셨겠습니까?
저는 세상에 태어나는 날부터 아프기 시작했답니다.
머리에 부스럼으로 4년을 누워서 앓았답니다.
네 살 때부터 걸음마를 배웠는데 똑바로 서지를 못하고 자꾸만 넘어져서 한의원으로 갔더니 일주일만 침을 맞으면 고칠 수 있다고 하셨는데 나흘을 침 맞고 닷새째 날에 갔는데 의원님이 다른 곳으로 가셨답니다.
7일을 맞아야 했는데 사흘만 침을 맞은 저는 많이 불편했습니다.
학교에 다닐 때는 글씨도 잘못 쓰고 노래도 못하고 달리기는
꿈도 못 꾸고, 자라면서 저는 날마다 힘들고 괴로워서 그냥
죽고만 싶었습니다.
친구들에게 다리 병신이라고 놀림을 당하는 날은 엄마한테 왜 나를 낳으셨냐고 왜 죽게 두지, 살려서 이런 수모를 받게 하느냐고 소리를 지르며 울고 또 울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 낳을 생각뿐이셨고, 어머니는 삯 바느질로 지내는 가난 때문에 저는 중학교 3학년 때 수업료를 못 내서 제적을 당했습니다.
삼 년 동안 혼자 독학으로 공무원 시험을 봤고 합격해서
마침내 괴산 우체국에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한 가지 간절한 소원이 있었습니다. 종교가 무엇인지도 몰랐었는데 다시는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미인으로도 박사로도 부자, 장자로도 다 싫었습니다.
날마다 서러웠고 괴로웠고 고통스러웠습니다.
저에게 삶의 무게가 너무도 무거웠고 힘겨웠습니다.
28살 때 결혼하고 아들과 두 딸을 낳아서 키우면서 앞만 보면서 살려고 무던히 노력했지만 병이 들었습니다.
위가 몹시 아파서 밥을 먹을 수 없어 일 년 넘게 고생하다 1979년 6월 세브란스 병원 흉부외과에서 X레이 검사를 하시고 수술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그 말씀을 듣고 저는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인턴 선생님들이 달래면서 조성구 박사님을 모셔 왔습니다.
조성구 박사님은 저를 보시며 아주머니는 기적을 이루신 분이신데 왜 우시느냐고 하셨습니다.
제가 무슨 기적을요? 하니까
첫째 지금까지 살아 계신 것, 둘째 세 아이를 낳으신 것,
그리고 세 번째는 세 아이를 모유로 키우신 것,
왜냐하면...
아주머니는 심장이 너무 작습니다.
갓 난 아이의 심장만 하다면서 의학으로는 이해가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항상 숨이 차서 입을 다물고는 일 분을 있기도 어려웠는데 그렇게 숨이 찬 이유를 그날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전생에 얼마나 나쁜 짓을 많이 했는지 몇 년 후 또다시 병마가 왔습니다.
강남 성모병원에 갔는데 뇌출혈이었습니다.
식물인간이 되면 누가 간병하고 애들은 어떻게 하나 걱정하면서 수술을 안 하고 그냥 집으로 왔습니다.
머리에 바윗덩어리를 옮겨 놓은 듯이 수백 개의 바늘로 마구 찌르는 듯한 통증에 몹시 아팠습니다.
최상자 보살님이 오셔서 기도도 해 주시고 찬불가도 불러 주셨습니다.
항상 여러모로 저를 도와주시던 유민자 보살님의 따뜻한 배려로 참고 견디며 지내다가 불광사를 찾았습니다.
아들이 저를 업고 친정어머니와 두 딸이 양쪽 다리를 붙들고 힘겹게 힘겹게 불광사를 찾았습니다.
큰 스님 광덕 대선사님도 뵈었습니다.
자주는 못 갔지만 큰 스님의 감로 법문은 저에게 약이 되기도 하고, 힘이 되기도 하고, 아픔이 되어 울 때도 있었습니다.
1987년 이른 봄날 새벽기도를 드리고 집에 가는데 추웠습니다.
왜 갑자기 추울까 하고 보니 오른쪽 다리가 따뜻했습니다.
평생 어쩔 수 없는 영원한 고통의 다린 줄 알았는데 따뜻해졌습니다.
너무 신기했고 기뻤습니다.
그래서 만져보고 또 만져보고 그랬습니다.
며칠 후 빨리하고 절에 가려고 서둘다가 오른손 검지, 손가락을 다쳤습니다.
병원 가서 깁스하고서 절에 갔는데 큰 스님을 뵈었습니다.
정상적으로 온 것뿐인데 무엇이 달라졌다고 좋아하다가 기어코 손을 다쳤느냐고 호되게 꾸중하셨습니다.
21년 10월 10일(음력 9월 15일)
노흘 스님께서 오늘은 보름날 밝은 달님께 감사의 기도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11시쯤 창문을 열고 보니 달님이 참 밝았습니다.
그야말로 청아한 달밤이었습니다.
노흘 스님의 말씀대로 달님께 절을 하고 마음 모아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새로운 기적이 저를 찾아주었습니다.
평생 숨이 차서 힘 들어 했었는데...
숨이 안 차고 편안해졌습니다.
입을 꼭 다물고는 1분도 견디기 어려웠는데 입을 다물고 한참을 있어도 괜찮았습니다.
기도를 하면서 물을 한입 가득 물고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여러분 읽어도 괜찮습니다.
광덕 큰 스님께서 보셨으면 정상적으로 온 것뿐 달라진 것은 없다고 하셨겠지만, 저는 지금 너무 좋고 정말 정말 기쁨니다.
고맙고 또 고맙고 모두 다 고마웠습니다.
그토록 원망했던 부모님이 고마웠고 저의 남편까지도
(남편은 삼십 삼년을 공무원으로 근무했지만, 항상 봉급의 절반만을 가져왔습니다)
고마웠습니다, 그분들이 아니였다면 제가 어찌 최상의 불법을 만날 수 있었겠습니까?
저를 키워 주신 자비로운 보살님들입니다.
거듭거듭 감사를 드립니다.
돌이켜 보면 무척이나 힘겨운 삶이었지만,
그 많은 시련이 저를 이 자리로 이끌어 준 징검다리였습니다.
한없이 어리석은 제가 제 그림자에 묻혀 있으면서 어둡다고 깜깜하다고 답답하다고 방황하며 허둥대고 그랬습니다.
이제 지지리도 못난 정임이가 묘덕화로 돌아왔을 뿐입니다.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밝은 태양 아래 어디에도 어둠은 없습니다.
길가에 꽃들이 말없이 아름다움을 보여 주고 새들도 하나같이 예쁘게 노래하는 여기는 극락이고 날마다 축복의 날들입니다.
작은 도랑물이 모여 시냇물이 되고 시냇물이 모여 모여서 강물이 되고 강물이 흐르고 또 흘러서 마침내 바다가 됩니다.
이 기쁜 마음으로 열심히 수행 정진에 매진하겠습니다.
저의 생명의 근원이신 부처님 감사합니다.
저를 진리로 키워 주시는 부처님 감사합니다.
저의 건강과 자비 용기 모두를 이뤄주시는 주시는
부처님 감사합니다.
나무 마하반야바라밀 _()_
송파 9구 1법등 묘덕화(계미생) 81세
010–6385-2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