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주봉에 올라 한반도를 굽어보다
봄이 지났다고 하더니 벌써 여름이 중반에 들어섰다. 세월이 이렇게도 빨랐던가. 매미는 갈수록 뱃구레를 들썩이고 꽃들은 길가에 상큼한 향기를 풀어놓는다.
이런 날이면 가고 싶은 곳이 있다. 산 정상에 올라 한반도 지형을 굽어보고 유유하게 흐르는 금강줄기를 바라보며 산맛 물맛 시원히 느낄 수 있는 곳, 한번 가본 것만으로 모자라 두고두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추억으로 남겨 두고 싶은 곳,
옥천군 안남면 연주리 둔주봉은 그런 곳이다. 동네 뒷산처럼 야트막한 산이지만 둔주봉 정자에서 한반도 지형을 굽어 볼 수 있다는 매력 때문에 산꾼들이 사시사철 들끓는 곳이다. 좋든 싫든 밟고 살아가야 할 땅이지만 지도상이 아니면 한반도가 어떤 형태를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독락정을 향하는 강길에는 원추리꽃이 활짝 피어있다
점촌고개까지는 본격적인 길이 계속된다
그러나 둔주봉 정자에서는 원 없이 한반도를 굽어볼 수 있다. 생생히 살아 꿈틀거리는 한반도를 눈 속에 집어 놓고 유연하게 굽이치는 금강 길을 걷는 맛은 산꾼들에게는 영원히 잊혀 질 수 없는 매력이다.
둔주봉을 향해 발길을 옮긴다. 면사무소와 안남초등학교 사잇길로 접어들자 들녘의 냄새가 진동한다. 맘껏 자란 작물들이 제 몸속에 씨앗을 튼실하게 채우며 들녘을 풍성하게 휘젓고 있다. 길가 묵정밭에는 꽃구름처럼 부풀어오른 자귀꽃에 묻혀있는 효자각이 있다. 허물어진 담장에 둘러싸인 효자각은 귀신이 나올 듯 음산하다. 대문의 반은 썩어 내려앉았고 처마의 단청은 탈색돼 있지만 기둥만큼은 쓰러지지 않고 그 안에 있는 효자비 하나 지켜주는 것만도 다행이다. 김광성이란 분의 효자비라는데 아쉽다.
효가 사라져 간다고 한탄하면서도 효자비는 저렇게 잡풀 속에 내방쳐 놓고 있으니 후손들에게 어떻게 효를 바랄 수 있을까.
정자에서 굽어보는 장쾌한 한반도
점촌 고개까지 본격적인 흙길이 계속된다. 순한 황토 흙에 나무계단이 박혀있어 그다지 힘이 부치지 않는다. 리기다 숲이 펼쳐진 길은 물웅덩이에 고인 빗물 때문에 걷는데 몹시 불편하다. 요리조리 물웅덩이를 피해 걷다보면 길섶의 야생화들이 만발한 웃음을 쏟아낸다. 꽃이 활짝 핀 엉겅퀴와 도라지도 손을 흔들고 자귀나무도 꽃구름처럼 뭉실거리며 일행들을 반긴다. 애기똥풀과 짚신나물도 화사한 꽃을 피워 길손들을 기다린다.
산비탈 바위틈에 오복이 피어있는 패랭이꽃
금강변에서 낚시질하는 강태공들
꽃향기에 휩싸여 오르는 길이 심심하지 않아 좋다. 먹구름 때문에 선선해진 날씨가 걷기에는 안성맞춤이다. 한 20분쯤 오르막을 올랐을까. 순간 확 트이는 시야 속에서 정자 하나를 만난다. 이 정자가 한반도 의 지형을 감상할 수 있는 포인트다.
정자에서 산 아래를 굽어보면 거짓말처럼 한반도가 장쾌하게 펼쳐진다. 청마리와 석탄리, 장계리를 휘도는 금강 줄기가 만든 자연의 걸작이다. 산의 속살을 깎고 문지르며 한반도를 완성할 때까지 유구한 세월이 금강 줄기를 따라 흘렀으리라. 그러나 아직까지 한반도는 똑바로 돌아눕지 못하고 반대로 뒤집혀 있다. 산꾼들이 아쉬운지 한마디씩 내뱉는다.
"아, 아쉽네, 한반도가 반대로 돌아누웠어"
"근데, 제주도는 없네, 아랫쪽에 섬 하나만 있었어도"
등주봉에 올라 만선의 기쁨을 누리다
정자에서 출발해 둔주봉 정상에 닿는데 거의 30분이 걸렸다. 정상에는 산소 옆에 등주봉이라는 표지석이 박혀있다. 날짜를 보니 2012년 3월 11일, 설치한지 불과 몇 달 전이다. 잃어버린 이름을 되찾기 위한 안남면 주민들의 노력으로 재경 안남산악회에서 발 벗고 추진한 결과다. 등주봉은 배가 오르는 봉우리란 뜻이다.
둔주봉의 옛 이름은 둥실봉이었지만 무슨 연유로 지명과는 하등 상관없는 둔주봉으로 바뀌었다. "진을 치고 머무른다"는 단순한 의미만을 지닐 뿐이다.
짚신나물
둔주봉 정자에서 굽어본 한반도 지형, 아쉽게도 좌우가 뒤바뀐 모습이다
초계 주씨의 사당인 영모사
그러나 둔주봉의 이름이 원래는 등주봉이라고 아는 이 얼마나 될까. 초계 주씨 족보에서 역사적 사실을 찾을 수 있으며 둔주봉 아래의 배바우 청정마을을 보면 등주봉이 지명과 연관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산꾼들은 표지석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날리기에 바쁘다. 그 바람에 산소는 북적이는 산꾼들 때문에 몸살을 앓는다. 마치 둔주봉 위에 배 한척이 떠 올라 만선의 기쁨을 누리는 모습이다.
사실을 알고 나면 우습다. 제 이름은 진창의 역사 속에 숨겨놓고 지명과 상관이 없는 둔주봉이란 이름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대놓고 사기를 쳤으니 하루라도 빨리 등주봉이란 이름으로 불러지기를 원한다.
정상에서 굽어보니 산세를 휘감고 흐르는 금강 줄기가 유려하다. 둔주봉 정자에서 선명하게 보이던 한반도 지형은 사라지고 금강줄기만 뱀꼬리처럼 풀어져 산허리를 휘감아 돌고 있다.
저 산속에 피실 마을이 틀어박혀 있다. 저 마을에 갈려면 산벚꽃 흐드러지는 늦봄이 좋겠다. 금강 줄기 가깝게 눈을 끌어당겨도 한없이 멀게만 느껴지는 피안 같은 곳,
강길을 걸으며 아기자기 눈맛을 즐기다
피실 가는 길을 제쳐두고 반대편 금정골로 내려선다. 다소 가파른 길을 한참 타고 내려가면 잡풀과 덤불에 발을 담그고 있는 버드나무 대열을 만난다. 마치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원시림 같은 풍경이다.
여기서부터 금강 길은 계속된다. 금강을 옆에 끼고 굽이치는 길은 아기자기 눈맛을 즐기기에 제격이다. 제 속살을 깎으며 굽이치는 강이 절경이다. 아찔한 층암절벽도 보이고 물속에 발을 담근 채 고개 쭉 빼고 물고기를 낚는 황새와 재두루미도 보인다. 모래톱에 걸쳐있는 낡은 배 한척은 낮잠에 곯아떨어져 있고 그물을 던져 물고기를 잡는 강태공들의 모습이 절경에 한 폭 풍경을 더한다.
정상에는 등주봉이란 표지석이 박혀있다
헝클어진 덤불에 발을 담그고 서있는 버드나무 대열
강을 바라보며 걷는 길은 걷고 걸어도 피곤하지 않다. 두 명의 여자가 길가에 휘늘어진 뽕나무 가지를 잡아당겨 오디를 따 먹느라 정신이 없다. 오고가는 산행객들의 손을 많이 탔는지 나뭇가지가 헐빈하다. 오디 하나 간신히 따 맛을 보니 맹탕이다. 아마 계속된 가뭄에 단물이 모두 말라붙은 것 같다.
강둑은 꽃들로 지천이다. 이름 모를 꽃들이 강둑에 붉고 노란 꽃물을 뿌려놓고 사람들의 눈길을 유혹한다. 씀바귀와 애기똥풀도 나비들을 불러 모아 꽃잔치를 벌인다.
팔랑이는 나비들을 따라 한참을 걸었더니 묵정밭에 일렬로 벌통 몇 개가 놓여있다. 벌떼들이 벌통 구멍에 새까맣게 달라붙어 웅웅거린다. 꽁지에 날을 세운 벌떼들이 일행의 머리 위를 탄피처럼 날아다닌다. 벌통 주인이 꿀을 사가라며 낡은 탁자위의 꿀에 눈길을 준다. 아카시아꽃으로 만든 둔주 봉꿀이란다. 설탕 하나 섞지 않았다고 사람들을 유혹하지만 믿을 수가 없는 것이 세상의 현실이다.
독락정 앞에는 유유히 금강 줄기만 휘도는데
연주리 독락정은 이곳에서 5리 떨어진 거리에 있다. 일행들의 눈길이 심심하지 않게 강둑은 곳곳에 꽃물을 뿌려놓았다. 강변에는 낚시질 하는 강태공들의 모습이 보이고 낡은 목선을 배경으로 정수장 건물이 보인다. 정수장 도로 건너편에 독락정이 있다. 금강을 배경으로 활짝 꽃을 피운 원추리꽃의 자태가 요염하다. 앞서 가는 사람이 원추리꽃에 달라붙어 렌즈를 맞추느라 정신이 없다.
산비탈 바위 밑에도 패랭이꽃들이 오복이 둘러앉아있다. 연분홍 양산을 쓰고 오종종 마실가는 여인네처럼 정겹다.
주몽득에 세운 독락정은 나중에 선비들의 서당 역활을 하였다.
묵정밭에 늘어선 벌통
경운기와 통통배가 금강변에 외롭게 서있다
꽃과 나비의 밀월을 보며 얼마나 걸었을까. 벌써 독락정이다. 독락정은 조선 선조 40년 절충장군 중추부사를 지낸 주몽득이 이괄의 난을 진압한 후 세운 정자다. 처음에는 선비들의 담론 장소로 이용하다가 나중에는 유생들이 학문을 논하는 서당 역할을 하였다.
얼마나 주변 풍광이 절경이었으면 정자 이름을 독락정이라고 지었을까. 금강의 풍광을 홀로 즐기기에는 아깝다는 뜻일까. 그 당시 선비의 마음이 되어 다시 한 번 금강의 속살을 훑어본다.
그러나 흉물스런 양수장이 말썽이다. 양수장을 세워도 왜 하필 독락정 앞인가. 탁상공론만 하는 정책 담당자들 때문에 독락정에서 굽어보는 금강의 풍광은 이제 옥에 티가 되고 말았다. 정수장을 옮기던지 독락정의 이름을 바꾸던지 둘 중에 하나는 결판내야 할 처지다.
금강길을 걷는 사람들
강둑에 피어있는 원추리꽃
독락정 옆에는 초계 주씨의 비석군과 사당인 영모사가 있다. 영모사 옆에는 연주 2리 독락정 노인정이 있고 거대한 느티나무가 그늘을 내린 쉼터가 있다. 쉼터에 앉아 도시락을 푸는 동안에도 자꾸만 마을 자랑비에 눈길이 간다.
“앞에는 금강이 휘돌아 흘러가고, 뒤로는 층암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산천이 아름다워 정자 없이 지낼 손가. 이곳에 정자지어 이름은 독락이라 어찌 즐거운 낙 누리리까. 태평세민 모두 모여 함께 낙을 누리로서“
알고 보면 연주리 사람들의 성격은 낭만으로 가득하다. 힘들게 농사를 짓다가도 수려한 금강의 풍광에 눈을 씻고 피곤한 마음 한 자락 내려놓을 것이다. 느티나무 그늘 아래 쉼터에서 든든히 배를 채우고 아침나절 일행이 출발했던 연주 1리로 회귀한다. 짙푸른 녹음이 가슴을 여는 길에서 무더위에 취한 매미들이 지친듯 뱃구레를 들썩이며 지친 울음을 쏟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