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증(證)을 논(論)하다
애역(呃逆: 딸꾹질) 일증(一證)은 예전에는 이 병명(名)이 없었다. 내경([內經])에서는 본래 얼(噦)이라고 하였다. 애애(呃呃 ee)거리며 연(連)하여 소리를 내므로 지금은 애역(呃逆)이라고 명(名)하였으니, 그 뜻(:義) 또한 타당(:妥)한다.
내경([內經])의 얼(噦)을 치료(治)하는 법(法)을 보자면, 초(草)로 비(鼻)를 자(刺)하여 재채기(嚔)를 하게 하거나, 기식(氣息)을 영(迎)하여 인(引)하거나, 크게 경(驚)하게 하는 류(類)가 있었으니, 모두 애(呃)를 치료(治)하는 법(法)이었다. 이에 얼(噦)은 본래 애역(呃逆)이었음을 변(辨)할 필요도 없다.
손진인(孫眞人)이 이르기를 "방론(方論)을 두루 찾아봐도 이 명(名)이 없었으니, 따라서 해역(咳逆)이 곧 얼(噦)이다." 라고 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후세(後世)로 와전(訛傳)되어 해역(咳逆) 건구(乾嘔) 희기(噫氣)의 류(類)가 서로 뒤섞여서(:殽亂), 당(唐)에서부터 지금에까지 이르렀느니라. 이처럼 그 명칭(名)에 대해 살피지 않을 수 없고 또한 바로잡지 않을 수 없다.
一. 해역(咳逆)이란 명(名)은 원래 내경([內經])에 나오니, 본래 해수(咳嗽)의 기역(氣逆)을 말하였다. 기교변대론(氣交變大論)에 이르기를 "세(歲)에 금운(金運)이 태과(太過)하니 심(甚)하면 천(喘) 해(咳) 역기(逆氣)한다." 하였다. 이처럼 천(喘)이나 해(咳)로 인하여 기역(氣逆)에 이르므로 해(咳) 역기(逆氣)라고 말하였다. 또 이르기를 "해역(咳逆)이 심(甚)하면 혈(血)이 일(溢)한다." 하였다. 바로 해역(咳逆)이 부지(不止)하면 혈(血)이 기(氣)를 따라 일(溢)하는 것이니, 이는 병(病)의 평상(常)이다.
그런데 애역(呃逆)으로 혈(血)이 나오는 것은 들어보지 못하였다. 육원정기대론(<六元正紀大論>)에서 이르는 "금울(金鬱)이 발(發)하면 민병(民病)으로 해역(咳逆)한다."는 것이 또한 이러한 의미(意)이다. 이처럼 해역(咳逆)이 애역(呃逆)이 아니라는 것은 매우 분명한다. 그런데도 요즘 후세(後世)의 제공(諸公)들은 모두 얼(噦)을 해역(咳逆)으로 보았으니, 왜 자세히 살피지 않았는가?
단계(丹溪)의 말을 보건대, 찬요([纂要])에서 이르기를 "손진인(孫眞人)은 얼(噦)을 해역(咳逆)으로 잘못 알았다." 하니, 이는 얼(噦)이 해역(咳逆)이 아니라고 말한 것이다.
또 단계심법([心法])의 부록(附錄)에서 이르기를 "해역(咳逆)의 병(病)을 고(古)에는 얼(噦)이라고 하였고, 근래(近來)에는 애(呃)라고 한다." 하였으니, 이는 또한 얼(噦)이 해역(咳逆)이라고 말한 것이다.
또 구토(<嘔吐>)의 문(門)에서 이르기를 "유성(有聲) 유물(有物)하면 구토(嘔吐)라 말하고, 유성(有聲) 무물(無物)하면 얼(噦)이라고 말한다." 하였으니, 이는 또한 건구(乾嘔)를 얼(噦)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와 같이 전후(前後)가 서로 다르게 말하니, 어찌 이와 같이 스스로 잘못을 저지르는 것인가?
또한 해장(海藏: 왕호고)과 하간(河間)의 제공(諸公)들도 얼(噦)을 건구(乾嘔)로 보거나, 해역(咳逆)을 희(噫)로 보았는데, 모두 잘못된 것이다.
구(嘔)는 곧 토(吐)의 류(類)이니, 단지 토(吐)하면서 무물(無物)하면 구(嘔)라 하고, 구(嘔)하면서 유물(有物)하면 토(吐)라 하며, 복창(腹脹) 애기(噯氣: 트림)하면 희(噫)라 하고, 역기(逆氣)가 하(下)로부터 상(上)하여도 희(噫)라 한다.
이처럼 네 가지는 변별(辨)되는 올바른 명칭(名)이 있는데도, 과거에는 어째서 이와 같이 병명이 분분(紛紛)하였던 것인가?
이에 내가 분석(:析)하여 구별하여(:判) 말하건대, 얼(噦: 딸꾹질)은 애역(呃逆)이고, 해역(咳逆)은 아니다. 해역(咳逆: 기침)이란 해수(咳嗽)가 심(甚)한 것이지, 애역(呃逆)이 아니다. 건구(乾嘔: 헛구역질)란 무물(無物)의 토(吐)이니, 즉 구(嘔)이고 얼(噦)가 아니다. 희(噫: 트림)란 포식(飽食)한 다음의 식(息)이니 곧 애기(噯氣)이고, 해역(咳逆)은 아니다.
후인(後人)들이 단지 이것으로 감별(:鑑)한다면 이상한 설(說)에 인한 의심(:疑)들은 전부 풀릴 것이다.
一. 애역(呃逆)의 증(證)에는 상한(傷寒)의 애역(呃逆)과 잡증(雜證)의 애역(呃逆)이 있다.
고인(古人)은 전부 허한(虛寒)으로 말하였지만 오직 단계(丹溪)만은 내경([內經])의 말을 인용(引)하여 이르기를 "제역(諸逆) 충상(衝上)은 모두 화(火)에 속(屬)한다. 병인(病人)에게 이것이 보이면 사증(死證)인 것 같지만, 또한 실(實)한 것도 있으니 알지 않으면 안 된다." 하였다.
내가 예전에 이 설(說)을 보고는 고인(古人)과 서로 다름(相左)을 의심(:疑)하면서, 그렇지 않다고 여겼느니라. 이에 내가 "이 증(證)은 반드시 허한(虛寒)에 속(屬)하니, 어찌 실열(實熱)이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하지만 내가 만년(晩年)이 되어 경험(:驗)을 거쳐 정견(定見)이 생기고 보니, 비로소 단계(丹溪)의 이 말이 거짓(:誣 속이다)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비록 그 중(中)에는 한열(寒熱) 허실(虛實)이 또한 부동(不同)하지만, 애(呃)에 이르는 원인(:由)은 모두 기역(氣逆)으로 말미암느니라.
기(氣)가 하(下)에서 역(逆)하면 상(上)으로 직충(直衝)하니, 기(氣)가 없으면 애(呃)가 없고 양(陽)이 없어도 애(呃)가 없다. 이처럼 병(病)으로 애(呃)하는 근원(源)은 반드시 그 기(氣)로 말미암느니라.
그 상(象)을 얻자면 우(雨) 중의 뇌(雷: 우레. 천둥. 곧 번개+뇌성), 수(水) 중의 발(浡: 용오름)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양(陽)이 음(陰)에 폐(蔽)하니 뇌(雷)가 되어 굉굉(轟轟honghong)거리며 그치지 않으니 이는 화(火)가 뇌(雷)의 본(本)이며 화(火)는 곧 기(氣)이다. 기(氣)가 수(水)에 복(覆)하니 발(浡: 용오름)이 되어 골골(汨汨)하게 그치지 않으니 이는 기(氣)가 발(浡)의 본(本)이며 기(氣)는 곧 양(陽)이다.
그런데 병(病)이 기분(氣分)에 있는 것은 본래 일단(一端)이 아니다.
애(呃)의 대요(大要)는 또한 오직 세 가지일 뿐이니, 첫째는 한애(寒呃)이고, 둘째는 열애(熱呃)이며, 셋째는 허탈애(虛脫呃)이다.
한애(寒呃)는 온(溫)할 수 있고 산(散)할 수 있으니, 한(寒)이 거(去)하면 기(氣)는 저절로 서(舒)한다. 열애(熱呃)는 강(降)할 수 있고 청(淸)할 수 있으니, 화(火)가 정(靜)하면 기(氣)는 저절로 평(平)하게 된다.
오직 허탈애(虛脫呃)만은 진실로 위태(危殆)한 증(證)이니, 혹 면(免)하기만 하여도 천만다행이다.
여러 가지 치법(治法)은 당연히 아래와 같이 변(辨)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