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외감(外感)의 발열(發熱)의 치법(治法)
소아(小兒)의 무고(無故)한 발열(發熱)은 대부분 풍한(風寒)의 외감(外感)으로 말미암느니라. 한사(寒邪)가 표(表)에 있어 풀리지 않으면 반드시 발열(發熱) 두통(頭痛)하고, 혹 신통(身痛) 무한(無汗)하거나 비색(鼻塞) 유체(流涕)하거나, 외한(畏寒) 구급(拘急)하며 맥(脈)에 긴삭(緊數)이 나타나니, 그것이다. 갑자기 감(感)하면 극(極)히 쉽게 해산(解散)할 수 있으니 한 번 한(汗)하면 나을 수 있다.
단지 살펴서 그 기혈(氣血)이 평화(平和)하고 별다른 실열(實熱) 등의 증(證)이 없으며 혹 단지 권태(倦怠) 혼수(昏睡)하면 단지 사시호음(四柴胡飮)이나 오시호음(五柴胡飮)을 위주로 하니, 아(兒)의 대소(大小)를 참작(酌)하여 그 제(劑)를 증감(增減)하여야 한다.
이 법(法)은 우선 그 중(中)을 고(固)하게 하고 그 다음에 그 표(表)를 해(解)하여야 거의 원기(元氣)의 상(傷)이 없으면서 사기(邪)도 또한 쉽게 산(散)하니, 가장 온당(穩當)하고 극묘(極妙)한 법(法)이다.
'소아(小兒)에게 무엇이 허(虛)하다고 이런 보(補)를 감당하겠는가?'라거나, '보(補)는 사기(邪氣)를 주(住)하게 한다.'는 설(說)은 모두 촌광(寸光)과 같이 이치(理)에 어두운(:昧) 이야기이니, 믿으면 안 된다.
만약 위기(胃氣)에 약간 허한(虛寒)이 나타나면 마땅히 오군자전(五君子煎)에 시호(柴胡)를 가한 것이나 이음전(理陰煎)의 가감(加減)을 써야 하니, 가장 묘(妙)한다.
원기(元氣)가 다소 강(强)하면서 능식(能食)하면 마땅히 정시호음(正柴胡飮)으로 하여야 한다.
내열(內熱) 화성(火盛)을 겸하면서 외사(外邪)가 풀리지 않으면 마땅히 일시호음(一柴胡飮)이나 전씨황룡탕(錢氏黃龍湯)으로 하여야 한다.
장열(壯熱) 화성(火盛)하여 왕래한열(往來寒熱)하면 마땅히 시금전(柴芩煎)으로 하여야 한다.
한기(寒氣)가 성(盛)하면 마땅히 이시호음(二柴胡飮)으로 하여야 한다.
한사(寒邪)가 성(盛)하면서 중기(中氣)가 약간 허(虛)하면 마땅히 오적산(五積散)으로 하여야 한다.
상한(傷寒)에 풍(風)을 견(見)하여 신열(身熱)하고 수(嗽)를 겸하며, 중기(中氣)가 허(虛)하지 않으면 마땅히 시진전(柴陳煎)으로 하여야 한다.
만약 중기(中氣)가 부족(不足)하여 열(熱)을 겸하고 수(嗽)를 겸하면 마땅히 금수육군전(金水六君煎)으로 하여야 한다.
동(冬)에 한사(寒邪)를 받아 춘하(春夏)에 이르러 발열(發熱)하면 이는 소아(小兒)의 정상한(正傷寒)이다. 단지 효(效)는 조금 지(遲)하지만 그 치법(治法)은 이를 벗어날 수 없다.
새로운 의안(按)
나의 둘째 아이(:仲兒)가 을묘년(乙卯年) 음력 5월(月)에 태어났는데, 그 해 초가을에 갑자기 한(寒)에 감(感)하여 발열(發熱)하고 맥(脈)이 약간 긴(緊)하였다. 그런데 평소에 장기(臟氣)가 음(陰)에 속(屬)한다는 것을 내가 잘 알고 있어서 감히 청해(淸解)하지 못하고, 이에 천궁(川芎) 소엽(蘇葉) 강활(羌活) 백지(白芷) 세신(細辛) 생강(生薑)의 속(屬)으로 하여, 그 한(寒)이 산(散)하기를 바랐느니라(:冀). 1제(劑)를 하인(下咽)하여도 열(熱)이 물러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대사(大瀉)가 작(作)하더니, 연이어 2일 동안 사(瀉)가 부지(不止)하고 천(喘)이 또 이어지니, 사(瀉)할수록 더 천(喘)하였다.
이 때 내가 이르기를 '한기(寒氣)가 성(盛)한데 어째서 온약(溫藥)을 써도 도리어 사(瀉)할까?' 하였고, '그 화(火)가 금(金)을 형(刑)하였다면 어째서 청사(淸瀉)가 연일 되는데도 아직 한량(寒凉)을 견디어(:堪) 내는가?' 하였으며, '표사(表邪)가 제(除)하지 않는데, 어째서 소산(疏散)이 도움(:利)이 되지 않는가?' 하면서 속수무책(束手無策)으로 의구심(:疑懼)만 더 심(甚)하게 된다. 또 '표리(表裏)가 모두 극(劇)하고 크게 천(喘)하여 위중(:垂危)한 것으로 보건대, 어찌 천이(淺易)한 제(劑)로 만회(挽回)할 수 있겠는가?' 하였다.
이로 인하여 오랫동안(:良久) 깊이 생각(:沈思)하였는데, 점차 깨달은 바가 있어 인삼(人蔘) 2전(錢) 생강(生薑) 5편(片)을 달여, 그 즙(汁)이 반잔(半盞)이 되도록 하였다. 그러나 감히 바로 진(進)하지는 못하다가, 다시 천(喘)이 더하므로 이제 완전히 불구(不救)에 이를까 염려하여, 차 숟가락(:茶匙)으로 2~3시(匙)를 떠 주었다. 이에 바로 아기를 안고(:懷) 방 안(:室中)을 빙빙 돌면서(:旋走) 조용히(:徐) 호흡(呼吸)의 진퇴(進退)를 관찰(:察)하였다. 그런데 천(喘)은 비록 감(減)하지 않았지만, 또한 더 증(增)하거나 더 심(甚)해지지는 않았으니, 이에 다시 3~4시(匙)를 주었다. 잠시 뒤에(:少頃) 그 비식(鼻息)이 조금 완화(:舒)되는 것을 느꼈으니, 이에 결국 안심(:放膽)하고는 작은 종지(:小鍾)에 반(半)을 더 주었더니, 더욱 잘 응(應)함을 느끼게 되었다. 이에 오시(午時: 12시)에서 유시(酉時: 18시)까지 1제(臍)를 다 주었다.
마침 일의(一醫)가 이르러 급히 호통치며(:呼) 이르기를 '잘못되었도다! 잘못되었도다! 어찌하여 이와 같이 대천(大喘)하는데, 오히려 인삼(人蔘)을 쓸 수 있단 말인가? 속히 마땅히 포룡환(抱龍丸)을 주어서 풀어야 할 것이다.' 하였다. 내가 대답(:諾)만 하고는 그 말을 듣지는 않았다.
이어서 다시 인삼(人蔘) 2전(錢) 5분(分)을 앞과 같이 달이고는, 그 제(劑)의 탕(湯)을 유시(酉時: 18시)에서 자시(子時: 24시)까지 다 주었다. 제(劑)를 다 먹고는 기식(氣息)이 결국 평(平)하게 되고 쿨쿨(:齁齁 houhou) 단잠(:大睡)을 자더니, 사(瀉)도 그치면서 열(熱)도 물러갔느니라.
이로 인해 그렇게 된 까닭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사(瀉)로 인하여 도리어 천(喘)한 것을 보건대, 어찌 이것이 중허(中虛)가 아니겠는가? 만약 실사(實邪)가 있었다면 당연히 천(喘)이 사(瀉)를 따라 감(減)하였을 것이니, 이로 변(辨)할 수 있었다. 만약 그 의사(醫)의 말을 잘못 듣고 청리(淸利)로 바꾸었다면 중기(中氣)가 한 번 탈(脫)하게 되어 바로 사지(死地)에 내버려두었을 것이다. 또 내가 인삼(人蔘)을 잘못 써서 그렇게 되었다고 반드시 스스로를 책망(:咎)하였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느 것이 맞고 어느 것이 틀렸는지를 어떻게 변(辨)할 수 있었겠는가?
내가 이로 인하여 기록(紀)하였으니, 온중(溫中) 산한(散寒)의 공(功)을 볼 수 있었고, 그 묘(妙)함이 이와 같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