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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수필세계 원문보기 글쓴이: 윤남석
시커먼 땟국 쌓인 코뚜레에 볼긋한 대롱 같은 게 붙어 있다. 새끼손가락 두 마디쯤 되는 길쭉한 형태의 나나니벌집이다. 벌집을 떼어 내고 끈끈하게 밴 땟물이 풀어지라고 초(醋) 탄 물에 담근다. 만귀잠잠한 쇠죽간에서 지독하게 엉긴 궁상이 서서히 누그러든다. 꾀죄죄하게 앉은 더께를 걷어내면 현관 위에 걸어 놓을 생각이다. 쇠코뚜레는 예로부터 잡귀를 쫓고 복을 불러들인다는 부작(符作)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그건 뭐하시게요.”
헛간 시렁가래에 매달아 놓은 통마늘을 채그릇에 따 담아 나오던 어머니가 방금 전에 떼어 낸 벌집을 주워든다. 예전에 어린아이들이 경기(驚氣)를 일으키면 나나니벌집으로 우려낸 불그스름한 물을 떠먹였다는 민간요법을 들려준다.
들마루에 걸터앉아 담아온 마늘 까면서도 채그릇 옆에 놓아둔 나나니벌집에 거푸 눈길을 준다. 가느다란 허리를 가진 나나니가 진흙 물어와 지은 자그마한 흙덩이에 불과하지만, 그 벌집에서 지워지지 않는 땟국 같은 아픔을 더듬는 듯하다. 잗다란 벌집의 그 잔무늬가 마치 물결털 운동하듯 일렁이게 하는 걸까.
비늘줄기의 쪽을 갈라 꼭지 떼어 놓으면, 어머니는 찬칼 들고 마늘쪽 껍질을 벗긴다. 뿌리 부분을 칼로 끊고 껍질 벗긴 마늘씨가 보얀 빛깔을 드러낸다. 마늘쪽을 감싼 얄따란 까풀이 벗겨지며 특유의 강한 향이 눈가를 찡등그리게 한다. 마늘을 까다보면 손끝에도 그 독특한 냄새가 배지만 눈도 이만저만 아린 게 아니다.
“그케 가물어쌌더니 마늘쪽이 행편읎구나.”
“그러게요. 지난겨울엔 눈이 지긋지긋하게 오더니, 올 봄엔 두어 달째 애간을 태우네요.”
가문 탓에 마늘 됨새가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봄가물이 들면 농사일이 순조롭지 못하다. 요즘은 소만(小滿) 정도에 한창 모를 내지만, 예전에는 마늘 뽑거나 보리 거두들인 하지쯤에나 모를 심을 수 있었다. 모내기 전후하여 가뭄 들면 팻물 대야 할 지경에 이른다. 팻물은 모내기 전후하여 가뭄 들 경우, 패를 짜서 교대로 물 대는 것을 말한다.
“그렁께, 니 낳기 전이었다. 그해도 엄청시로 가물었다. 물이 귀항께 밭곡석은 쳐다볼 여개도 읎었다. 자칫 논바닥에 모도 몬 꼽을 행편이었응게.”
어머니는 논물 사정이 좋지 않아 팻물 보던 시절의 껍질을, 마늘 까듯 조심스레 벗긴다. 어머니의 희끗한 머리칼처럼 색 바랜 껍질이 바람을 탄다. 마늘 냄새에 눈을 찡긋대며 나나니벌집처럼 자잘한 결로 방향 트는 속살의 껍질을 줍는다.
“먼저 몽리(蒙利) 순설 매기고 돌아감시로 고루고루 봇물을 받았지. 물꼬쌈이 안 나게 봇두감의 감시 속에 순번대로 논에 물을 대야 혔단다. 그 팻물을 대기 위해 니 아부진 첫새복부터 논꼬에 나가셨지. 논에 물 들 때까정 논 어귀에서 바래고 있어야 혔거든. 그래야 무넘깃둑이 찰방할 맨큼 댈 수 있으며, 만약 자릴 비우면 다른 논 주인이 봇물을 돌리는 일이 숱허게 벌어지곤 혔다.”
웃란들에 있는 두 마지기는 맨 위의 물꼬에서 봇물을 대는 여러 배미로 된 떼전이다. 배나무보(洑)에서 봇도랑 타고 흘러든 물이 차례대로 논배미를 적신다. 봇도랑 물도 시원찮아 두 마지기 정도의 봇논에 물을 대려면 반나절은 족히 걸린다. 작년에는 물난리가 휩쓸면서 배나무보를 형체도 없이 지우더니, 올해는 찔레꽃가뭄이 하얗게 가슴을 태운다.
첫 다랑이의 물못자리를 넘긴 물이 아래 배미의 쟁깃밥 틈새로 질펀하게 스며든다. 골을 낸 두렁 쪽으로는 물이 거의 들어찼다. 아버지는 삽으로 두렁에 흙을 갖다 붙인다. 한 방울의 물이라도 가두기 위해서는 삽으로 두렁부터 반반하게 발라야한다. 두렁이 점차 매끈한 모양새를 갖춰간다. 물꼬 옆에 있는 큰 밤나무에 부연 동살이 잡힌다. 치렁대던 밤느정이가 끝내, 열성경련을 일으킨다. 잠박에서 떨어진 누에처럼 널브러져 있던 하얀 수꽃 이삭은, 옴폭 팬 물꼬받이에서 뱅그르르 돌다가 도구친 골에 처량하게 떠다니기 시작한다.
어머니는 예순이에게 젖을 물리고, 서둘러 보리쌀을 안친다.
“독에서 버리쌀을 퍼낼 쩍마다 오지동이에 쫌씩 덜어놓았지. 당시 부녀회에서는 절미 운동이라는 걸 펠치고 있었단다. 집집마다 동이를 부뚜맥 한쪽에 놔두고 식구 수 대로 한 숟갈씩 덜어놓았단다. 그케 조석으로 한 숟갈씩 덜어 놓아 버릿고개에 대비하자는 거였지.”
보리쌀 안친 솥에 뜸이 돌면, 된장독에 박아 놓은 무를 꺼내 잘게 채 치고 양념 넣어 고물고물 무친 다음, 양재기에 담아 솥 한쪽에 넣어 쪄낸다. 그렇게 쪄낸 무장아찌와 콩자반, 가죽김치를 함지에 담고 보리밥을 찬합에 퍼 담는다. 베보자기를 덮은 함지를 이고 웃란들로 향한다. 짚으로 튼 똬리 위에 동그란 널빤지를 덧대야 함지의 뜨거운 온기가 다소 차단된다. 그렇게 밤나무 그늘에서 대충 아침을 든다. 밤나무 가지 사이를 비집고 나온 햇살이 아버지 이마를 간질이고, 못자리에는 볏모에 맺힌 이슬방울이 새파랗게 흔들린다.
“그해는 민사무소에서 권유한 약물로다가 종잘 소독혔었다. 종잘 소독혀면 고르게 커고, 도열병이다, 파리똥병이다, 글고 그 뭐시냐, 해바라기병, 모 부패병 등이 읎어진다며 집집마다 권했던 터라 그케 따랐더니 모가 참 좋은 펜이었지. 해마다 종잘 소독하지 않아 여러 병균 땜시 수확이 줄곤 혔었는데 말이다.”
먼저 소금물 또는 잿물로 씨 고르기를 한다. 물 한 말에 소금 석 되 풀어 씻나락을 담그고, 작대기로 저으면 질 나쁜 종자는 물에 뜬다. 뜬 나락을 조리로 건져내고 맑은 물로 가신 후, 메르크론 한 봉지를 푼 약물에 여섯 시간 정도 담가 두면, 병균이 붙은 종자는 제거되고 발아가 고른 좋은 볍씨를 얻게 된다. 사지계에 있는 논다랑이와 모티에 있는 동네논도 부치기로 한 터라 씻나락을 넉넉하게 담갔다. 사지계 다랑이는 큰재 가는 어귀에 있는 논으로 비가 와야만 모를 심을 수 있는 천둥지기다. 그것도 개천 건너에 있기 때문에 소구루마도 들어가지 못한다. 냇둑에서 바지게에 모춤 얹어 일일이 져 날라야 할 형편이다. 작년에 큰물이 지는 바람에 그나마 있던 섶다리도 떠내려가고 없다. 터진 배나무보만 다시 둑을 쌓고 고치느라 미처 손볼 틈이 없었던 게다. 보릿가을이 들기 전에 부역을 소집한다고 했지만, 막상 다들 바쁜 탓에 다리를 복구하지 못한 상태였다.
유월 초이튿날로 모내는 날을 잡아놓았기 때문에 모찌기하고 물이 들면 써레질로 논바닥도 삶아야한다. 모판의 모를 쪄서 논둑으로 옮겨 놔야 못자리 논도 써레로 고를 수 있다. 갈아엎어 놓은 쟁깃밥 사이마다 물이 들어차고, 보릿대 밑동이 둥둥 떠다닌다.
“버리농사도 썩 잘된 펜은 아니었지. 동핼 방지하려고 늦갈게 도구도 치고 잿간에서 퍼낸 재를 뒷거름으로 충분히 뿌렸는데두, 겨우내 지독혀게 추운 것도 추운 거지만 눈이 거의 오지 않었다. 그만 삐죽삐죽 서릿발 돋는 바람에 뿌리가 마를 수밖에 읎었던 게지. 해동하고 서벅서벅혀게 부풀어 오른 땅을 고루 밟아주었다만, 수확은 그리 신통치 못혔다.”
어머니는 모춤 묶어 밖으로 끌어내고서, 다시 함지 이고 좁다란 두렁길 따라 집으로 바삐 걸음을 옮긴다. 모내기철에는 아궁 앞의 부지깽이도 같이 뛴다고 했던가. 황급히, 함지를 한뎃부뚜막에 내려놓고 방문 열어젖힌다. 예순이가 울음을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젖 물려 재우면 몇 시간이고 잠자거나 혼자 잘 놀던 아이였기에 엔간하면 그칠 줄 알았는데, 얼굴 벌게지도록 운다. 안아서 얼러 보고 젖을 물려도 부르르 떨면서 칭얼거리기만 한다. 그저께부터 감기 기운이 조금 있기에 방에 불도 넣고 두터운 공단 이불도 꺼낸 터라, 이내 기침이 잦아들 줄 알았다. 웃란들 물꼬 옆에 있는 큰 밤나무에 밤느정이가 열성경련을 일으키듯, 심하게 떨기 시작한다. 수꽃 이삭이 물꼬받이에서 처량하게 떠다니더니만, 예순이 얼굴이 급기야 파래진다. 다급해진 어머니는 예순이를 둘러업고 부리나케 아랫마을로 뛴다. 구불텅한 논길에 수북이 돋은 그령이 미친 듯이 뛰는 어머니의 발목을 자꾸만 낚아챈다. 맨발에 신은 고무신짝이 오늘따라 몹시도 미끄럽다. 정신없이 달음박질한 끝에 백금마에 도착한다. 잘 따는 언년이 엄마네로 향한다. 열 손가락 다 따고 침도 놔보았지만, 이미 눈이 돌아가고 뻣뻣한 팔다리는 끝내 풀어지지 않는다.
언년이 엄마네 삽짝에 서 있는 살구나무에서 핏빛 띤 꽃잎이 바람에 날린다. 떨어진 꽃잎이 지독히도 붉다. 그 야들야들한 꽃잎 위에 어머니가 뜨거운 응어리를 하염없이 쏟아낸다. 억장이 막힌다. 대 끝에서도 삼 년이라 삭히며 견뎠거늘, 두 아들을 연이어 묻은 도울한 가슴이 다시 무너진다.
“니 아부지가 군에서 제대하기 전, 봄이었지 싶다. 밍방모리께에 있는 버리밭을 매놓고 오는 질에 소깝 한 짐 해서 짊어지고 마당으로 들어서는데, 니 이할머이가 내를 급히 찾더구나.”
당시 외할머니는 아래채에 기거하고 있었다. 말년에 눈이 어두워졌지만, 그때 만해도 눈이 조금 비어서 애들도 봐주곤 했단다.
기겁하듯, 둘째가 울어쌓는다. 축축한 등 쪽을 보니, 열꽃이 빨긋빨긋하게 피어오른다. 둘러업고 면소재지 시장통에 있는 공의한테 데려가기 위해 능말기재를 부리나케 넘는다. 공의한테 가서 주사 맞으면 괜찮아질 꺼야, 하며 등에 업힌 둘째의 발을 주물러보았으나, 이미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두 살 먹은 둘째, 엄마 얼굴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 채 그렇게 제 어미 품을 떠났다. 한동네에 살던 큰아버지와 작은아버지에게 기별 넣어, 멀리 떠나는 길에 마중을 부탁했다.
“첫째 눔은 말 그대로 미운 일곱 살 때였었다.”
아버지는 큰할머니 제사 때문에 십여 리 떨어진 다릿골에 간 날, 한밤중에 탈이 터졌던 게다. 그때도 언년이 엄마가 침을 갖고 부랴부랴 달려왔지만 허사였다.
“야속한 눔들 같으니. 그놈의 마진 땜시.”
그때의 저민 기억이 여전히 징거미처럼 팔딱거리는가 보다. 그렇게 네 해에 걸쳐 세 명의 자식을 껴묻은 가슴은, 실밥 훤히 드러나게 상침질되고야 만다. 무논 써레질에 흙더버기로 얼룩진 아버지가 타진 실밥을 움켜쥐고 달려왔다. 단단한 박달나무 써렛발이 왕창 으끄러지는 심정이지만, 그래도 이번만은 믿고 싶지 않았다. 목을 푹, 떨어뜨린 딸내미를 끌어안는다. 와락. 타진 실밥에서 삐져나온 실보무라지가 하염없이, 날린다.
“니 아부지가 예순이를 밤새 껴안고 울더라. 멀리 간 눔, 그케 봐야 돌아오능 게 아닌데두. 니 아부지 눈을 보니 마치 실진한 사람처럼 겉더구나. 자석이 죽었는데 그 배알이 오죽 혔겄냐. 내도 하늘이 다 무너지는 듯 했응께 말이다.”
이튿날 희붐한 어둑새벽, 예순이의 몸이 온습하다. 아버지가 밤새 껴안고 소생하기를 바랐건만, 그 타들어간 애간장의 촛농으로 데워진 걸까. 아비의 구곡간장이 말끔히 녹아내린 속눈물에 딸자식의 몸이 축추근하다. 아버지는 예순이를 꼭 껴안고 응골 애장터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긴다. 아비 품에 안겨 사립짝을 나가는 마지막 모습에 망연자실한 어머니의 곁옷고름이 다시 젖는다. 그 원망스런 딸자식이 태어난 해도 팻물 보던 오월 스무 여드렛날이었다. 거꾸로 들어서는 바람에 난산한 역아(逆兒)였기에 더욱 가슴 아리다. 모내기철이라 바빠서 해산 수발도 제대로 못 받고 모꾼들 새참을 봇논에 날라야 했던 기억, 젖 물려 재워놓고 모땜하러 논에 나왔다가 하동대던 기억이 애잔히 스친다. 이제 방울떡같이 동글동글한 얼굴만이 미어진 가슴에 검붉게 우물각 된다.
동녘이 희끄무레하다. 검붉은 흉터 같은 태양이 응골 쪽에서 굼틀거린다. 어머니는 쌀독 긁어 보리쌀을 말박에 담는다. 그 지긋지긋한 모를 내는 날이다. 놉을 맞춰 놓았기 때문에 서둘러야 한다.
드그럭 드그럭,
보리쌀 이는 자그러운 소리가 음음적막한 새벽을 두들기고 있다.
매운 마늘 때문인지 어머니가 겉소매로 눈가를 훔친다. 어렸을 때 체하거나 놀라면 종종 손을 따주었다. 손가락을 실로 죄고 바늘로 머리를 두어 번 훑은 다음, 손을 딴다. 검붉은 피가 나오면 막힌 기를 뚫어주는 것이라 믿었다. 그렇게 사혈을 하고 약손으로 어루만져 주면 아픈 게 싹 달아나는 것 같았다. 여태껏 어머니가 나나니벌집 하나라도 버리지 못하는 것도 지난날의 아픔 때문일 게다. 그렇게 모아 두었다가 급할 때 쓰려는 습관이 고착하여 반사적 반응을 보이는 것이라 짐작된다.
어렸을 적, 갑자기 열이 끓거나 한기가 들면 어머니는 생콩 세 알을 씹게 하였다. 만약 맛이 비리지가 않으면 객귀(客鬼)가 들었다면서 바가지에 부엌칼 담그고 푸닥거리를 벌이기 일쑤였다. 방안에 거꾸로 눕히고 칼등으로 장지문 문살을 거칠게 긁은 후, 칼끝을 입 가까이 대고 숟가락으로 물을 세 번 떠먹였다. 퍼런 칼끝을 타고 입속으로 흘러든 물방울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어머니의 헛기침이 이어지더니 이내 부엌칼로 머리카락 베는 시늉을 한다. 칼끝이 머리카락을 섬뜩하게 끌어당긴다. 곧이어 짧은 머리카락 몇 올 떠 있는 바가지에 침을 세 번 뱉어 낸다. 그 바가지에 된장 풀고 밥 한 술 떠 넣어 대문 밖으로 가서 ‘헛세이’하며 잡귀 내모는 주술을 읊는다. 그리고 부엌칼을 던져 칼끝이 한길 쪽으로 향하면 악귀가 물러가는 것이라 여겼다. 그렇게 물림하고 나면 열이 눈 녹듯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또 부뚜막에 정화수 떠 놓고 조왕(竈王)께 무탈하기를 빌었고, 햇곡 밥 지으면 서너 가지 나물과 함께 윗목에 올려 가족 평안을 기청 드리는 것도 거르지 않았다. 복은 불러들이고 잡귀는 몰아내는 어머니의 유다른 치성은 집안 곳곳에 뿌리 깊게 스며들 수밖에 없었다.
“익히 아실 테지만, 심장은 두 개의 방과 두 개의 실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바로 좌우심방과 좌우심실이죠. 혈액이 심장으로 들어오는 곳을 방, 혈액을 폐 또는 온몸으로 보내주는 곳은 실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네 개의 판막은 문의 역할을 하며 혈액이 한쪽 방향으로만 흐르게 합니다. 우심방은 온몸에서 돌아오는 정맥혈을 받아 우심실로 보내고, 우심실은 산소가 적은 정맥혈에 산소를 보충하기 위해 폐동맥을 통하여 폐로 혈액을 보내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폐로부터 산소를 보충 받은 혈액은 좌심방으로 들어와 좌심실로 가게 되고, 좌심실은 대동맥을 통해…”
고동색 뿔테 안경을 쓴 레지던트는 백지에 심장의 구조를 그려 보이며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한다. 우심방과 우심실 사이에 있는 삼첨판과 좌심방과 좌심실 사이에 있는 승모판에 고장이 생겨 한쪽 방향으로만 흘러야 할 혈액이 마구 뒤엉키는 상태란다. 그렇기 때문에 숨이 막힐 듯 질통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판막은 혈액이 흐를 때는 열리고 혈액이 통과하면 닫혀야 하는데, 그 망가진 판막으로 인해 혈액이 역류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판막성형술을 시행해야 한단다. 중요한 것은 수술을 하기 위해서 가슴 중앙을 이십오 센티미터 이상 열어야 하며, 수술 중에는 심장과 폐의 기능을 대신하는 인공심장 바이패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
“그럼, 수술 중에는 심장과 폐의 기능이 정지된 상태에서 순전히 그 기계에 의존해야겠네요.”
뿔테 안경을 만지작거리며 내 표정을 살피던 그는, 그동안 충분한 설명을 했다는 듯 서서히 매듭을 지으려한다.
“현재 어머님은 판막폐쇄부전증의 증상이 심한 편이기에 수술 이외의 방법이 없습니다.”
그 말은 결국, 그가 내민 서류에 반드시 서명을 요구하는 엄포로 비쳐지고 있다. 수술 중 위급상황 발생 시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으니 그에 대한 동의서라지만, 환자나 보호자들은 그걸 보통 수술 전에 쓰는 각서라고 여기며, 그게 오히려 맞을 듯하다. 한 군데만 서명하면 될 줄 알았더니 자꾸, 다음 서류를 내민다. 이건 뭐죠, 하며 물어보았지만, 레지던트의 준비된 멘트는 늘 같았다. 무려 여섯 군데의 서류에 서명을 할 수밖에 없었다.
병원에 당도하자마자 심전도 검사와 심장 초음파 검사를 했지만, 오늘 오후엔 심장ㆍ혈관 조영술을 시행해야 한단다. 심장 안으로 삽입되는 카테터를 통해, 심장 내부와 관상동맥의 구조와 활동을 촬영하는 시술이란다. 허벅지 부근 대퇴통정맥으로 전극도자를 밀어 넣어 간단하게 검사한다고는 하지만, 모든 절차와 검사 방법이 여간 녹록한 게 아니었다. 심장ㆍ혈관 조영술을 끝내고 병실로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어머니의 잠든 모습을 지켜보면서 머릿속에서 꿈틀대는 오만 잡생각을 애써 털어내기에 바빴다.
“오늘 새벽에 나한테 연락이 왔었다. 메칠 전부터 걸을 때마다 숨이 차오르기 시작하더니 엊적부턴 숨을 쉴 때마다 가쁘고 가슴속이 꽉 막힌 것처럼 조여 왔다는구나. 하지만 오밤중이라 연락하기도 뭣해 밤새 뒹굴며 참은 모양이더구나. 새벽 네 시쯤, 전화가 고모한테 왔더구나. 심한 통증으로 말도 채 이어나가질 못하더구나. 나 좀 병원에 데려가 줬으면 한다는 그 한마디도 한참 걸렸응께. 어지간해선 그때쯤 촌사람들은 다 깨어나 논에 나가고 할 시각이거든. 그때까지 미욱스레 참았던 게지. 그래서 119에 전화 넣고 급히 오토바이 시동을 걸었던 게지. 너는 멀리 있응께, 가찹게 사는 내한테 먼저 연락을 한 게지. 고모도 그때꺼정은 밸 거 아닌 줄로 알았던 게지. 뭔 밸 일이야 있을라구 생각했던 모양이더구나.”
아랫마을에서 농사짓는 외종사촌형의 전화를 받고 읍내 병원 응급실에 당도하니, 아침 햇살이 창가에 놓아둔 베이지 빛 테라코타 화분에서 꾸무럭대고 있다. 화분에 심어 놓은 뱅갈고무나무가 영 시무룩한 표정이다. 정확한 건 담당 과장이 출근해봐야 알겠지만 현재 상태로서는 이 병원에서는 힘들 것 같다고 하더구나. 외종사촌형이 자판기 옆구리에서 커피를 꺼내 건네주며 그 종이컵 위에 야간 당직 의사에게 들은 말을 조심스럽게 덧얹는다. 허한 식도 속으로 뜨거운 커피를 쏟아 부었다. 쌔한 기운이 식도 안쪽에서 스멀댄다. 그럼, 큰 병원으로 옮기는 게 빠르겠군요. 휴대전화 꺼내 129번을 누른다. 응급환자이송차를 불러야 하기 때문이다. 번쩍이는 경광등이 고속도로에 짙게 드리운 미지근한 안개를 쪼개고 있다. 액셀러레이터가 올려놓는 아르피엠에 안개가 차츰 떠밀리기 시작한다.
다음날 아침 일곱 시 사십 분, 어머니는 침대에 누운 채 수술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향한다. 여덟 시부터 수술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맥없이 수술실로 끌려가는 어머니를 보니 착잡하다. 어머니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편한 낯으로 자식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지만, 만약 잘못되면 지금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마저 들자 가슴속에서 뜨거운 기운이 세차게 펌프질한다. 질퍽한 그것이 후두를 타고 울컥울컥 쏟아지려는 걸 앙다문 입술이 가까스로 막아선다. 어머니의 손목을 으스러질 듯 꽉 잡아본다.
“크게 염려치마시고 이제 대기실에서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침대를 끌던 남자간호사가 매정스럽게, 어머니 손목에서 그만 손을 떼어 놓았으면 하고 부탁한다. 수술실 철문이 철컥, 닫힌다. 완력으로는 도저히 열 수 없을 만큼 철문이 육중해 보인다. 뒤따라오던 여동생의 눈자위에서 출렁거리는 눈물이 복도에 뚝뚝 떨어진다. 왠지 막연한 불안감이 한밤중에 화장실 문 앞에서 서성대는 꼽등이처럼 어정쩡하게 팔딱거리기 시작한다.
대기실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려니 속이 너무 답답하다. 밖으로 나와 담배를 꺼내 문다. 구부슴한 소나무가 목신(木神)처럼 줄지어 서서 차가운 바람을 부르고 있다. 담장을 허문 병원 화단에 이식된 소나무들은 고스란한 상태가 아니다. 비대칭적인 골간(骨幹)을 올이 숨숨한 부직포로 동여매고, 스테이플러로 고정한 버팀목에 기댄 채 주춤거린다. 늘그막에 고향을 등진 처량한 신세를 한탄하며 어기대는 듯하다.
오래 자리를 비우면 안 되겠다 싶어 다시 대기실로 올라간다. 전광판에는 여전히 ‘수술중’이라는 자막이 차르르, 돌아가고 있다. 답답증이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토마스 칼라’라고 부르는 경추보호대로 꽉 조이는 듯, 뒷목마저 뻣뻣하다. 다시 담배 생각에 밖으로 나온다. 의사는 다섯 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는데, 그 다섯 시간이 지난 지 이십분이 흘렀다. 물론 수술 부위마다 다르겠지만 다른 환자들은 ‘수술종료’ 또는 ‘회복중’이라는 화면이 뜨곤 하는데, 어머니 이름 옆에는 줄곧 ‘수술중’이라는 울연한 문구만 쳇바퀴처럼 돌고 있다. 뭔가 잘못된 것 아니겠지, 아니 아무래도 어려운 수술이라 늦어질 수도 있을 꺼야, 하며 열두 번도 더 갈팡질팡하는 마음을 다잡아보곤 하지만, 얼굴에 깃든 초조의 빛은 도저히 걷어 낼 수가 없다. 깊게 드리운 그 장막을 걷어 낼 힘조차 온몸에서 급속히 빠지고 있음이 여실히 드러날 만큼, 이미 공황 속으로 깊숙이 진입하고 있었다.
오후 두 시가 가까워진다. 수술실에 들어간 지 벌써 여섯 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다. 담뱃갑이 들어 있는 윗주머니를 더듬는다. 뜯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데, 담뱃갑이 벌써 홀쭉하다. 밖으로 나오려는데 보호자 찾는 방송이 뒷다리를 용소 물귀신처럼 와락, 잡아당긴다. 수술이 끝나고 중앙집중치료실로 이동했으니 5층으로 올라가라는 방송이 그렇게 사근사근할 수가 없다. 안도를 느낄 새도 없이 5층으로 올라가기 위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려다가 엘리베이터 진행 층수가 B2를 가리키는 걸 보고 계단으로 난 방화문을 열어젖힌다. 정신이 없는 터라, 수술실이 4층이고 중앙집중치료실이 5층이면 한 층만 더 오르면 되는 걸 무작정 계단으로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다 보니, 계단참 벽면에 표시된 아크릴 표찰을 볼 틈도 없었다. 헉헉거리는 숨을 벌컥벌컥 내뱉으며 쳐다본 픽토그램에서 7자와 8자가 상하로 나란히 붙어 있음을 뒤늦게 눈치 채야만 했다.
중앙집중치료실 보호자 대기실에서 두어 시간 기다린 뒤 짧은 면회를 할 수 있었다. 손을 세척한 뒤 녹색 가운 걸치고 허리춤의 매듭을 조였다. 간호사가 알려준 대로 필요한 물품을 사들고, 어머니의 심장 박동 소리가 덜컹대는 것 같은 통로를 따라 중환자실로 안내되었다. 여기저기 연결된 튜브, 규칙적인 기계음, 어머니는 마취가 덜 풀린 탓인지 흐리멍덩한 눈빛을 띠고 있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어머니를 불러보아도 전혀 알아채지 못하는 상태다. 그렇게 잠깐 얼굴만 보고 돌아서려니 눈시울에 신김치 같은 시금한 기운이 차오르지만, 한편으로는 그래도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는데 그게 어디냐, 는 생각이 다행히도 그 신김치 넣고 김밥 말 듯 돌돌 말리고 있었다.
북새통 같은 중앙집중치료실 보호자 대기실에서의 쪽잠. 오전 열한 시, 오후 일곱 시, 하루 두 번의 짧은 면회, 그렇게 지긋지긋한 나흘이 지겹게 흘러갔다. 어머니가 드디어 5211호실로 올라오니, 그동안의 팽팽한 긴장감이 다소나마 느슨하게 풀리는 듯하다. 흉부외과 과장의 라운딩이 끝나고 처치 트레이를 끌고 들어선 간호사가 링거를 새것으로 갈더니 수액 방울 수를 조정한다. 이어서 스테이플러로 봉합된 어머니의 가슴을 소독하고 드레싱하기 시작한다. 스테이플러로 촘촘 집어놓은 가슴, 그 가슴뼈 안의 무엇이 그렇게 아프게 했을까. 뭐든지 속으로만 삭여 내려 했기 때문일까. 그러나 기어이 삭여 내지 못하고 가슴 한 켠이 먼저 삭아 버렸던 걸까.
어머니는 손가락 마디 같은 자식 셋을 가슴에 묻기도 했지만, 늘그막에는 중풍으로 몸져누운 아버지를 오 년여 동안 수발해야 했다. 심장 판막이 온전할 리 만무했다. 애처로운 가슴앓이로 옥아든 가슴은 삭정이같이 바슬바슬 바스러졌지 싶다. 그만 켕긴 끈목을 당기던 힘이 탈실되고 만 게다. 불근불근한 결 맺힌 가슴엔, 삼첨판과 승모판을 성형하는 여섯 시간의 수술로도 치유하지 못할 흔적이 여전히 버성겨져 있을 것만 같다.
그래도, 어머니는 늘 따뜻했다. 어머니 품에 안겨서도, 가슴에 난 숭숭한 바람구멍으로 찬바람이 훑고 지나가는 걸 느낄 수 없었다. 어머니는 절대 궁한 기색 안 보이려 한다. 시든 배추 속잎처럼 어깨가 늘어지고 허리가 꼬부라져도, 자, 업히렴, 하며 금세 어부바 해줄 것처럼 늘 당찬 기운을 내보인다. 성한 것과 좋은 것은 모두 우리들 몫이라며 챙겨준다. 이것저것 몇 보따리 챙겨놓고, 혹시 더 줄게 없나, 하며 곳간을 두루 살피곤 한다. 김치 하나만 꺼내놓고 식사를 하기도 하고, 밥맛이 없다며 찬물에 말 때도 있고, 잇몸이 상해 제대로 씹지도 못하면서도, 나는 ‘괘안타’고만 한다. 다 내어주고도 더 주고 싶어 한다. 내허한 어머니 가슴엔 애오라지, 자식 생각뿐이다.
가끔 전화 넣게 되면 어머니는 그랬다. 어쩐 일이냐, 무신 일 있냐, 며 자식 안위부터 궁금해 했다. 가슴속 멍울이 여태껏 아물지 않은 탓일까. 그래, 추운데 옷은 따숩게 입고 댕기냐, 얘들도 핵교 잘 댕기고, 저번에 오그락지 싸준다는 걸 깜빡 혔다, 지름 값이 또 오른다는데 볼러 지름은 넣었냐, 글고 목디수쿠 땜시 어깨가 자리다더니 좀 어떠냐, 전딜만 혀냐. 노심초사하는 목소리가 수화기에서 질금질금 쏟아지기 일쑤였다.
흉부외과 진료 가던 날, 처음으로 어머니를 업어준 적이 있다. 3층에 주차하는 사이, 주차장 입구에서 내린 어머니가 본관 쪽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어머니의 휘움한 뒷모습에서 비곤함이 줄줄거린다. 하나같이 휘고 뒤틀린 병원 화단 소나무의 골격이 어머니의 쓸쓸한 뒷모습과 흡사하다. 곧게 자라고 싶어도 어깨의 짐이 녹록지 않았기에 저렇게 형태를 배배 틀었을 것이다. 그간의 고단했던 심정이 알알하게 그려진다. 어머니가 잠깐 걸음을 멈추고, 구부정한 허리를 쭉 편다. 삶의 풍파에 짓눌린 탓인지 삭신이 제대로 젖혀지지 않는다. 무릎을 살짝 구부리고 주저앉듯 해야만 상체가 곧추세워진다. 허한 어깨 위에 내려앉아 토닥이던 얕은 햇살이 그만 미끄럼 탄다. 밤송이 가시처럼 삐죽삐죽, 뒷모습에 돋는 애틋함이 싸락눈처럼 흩날린다.
급히 쫓아가서 어머니를 업었다. 수척해진 어머니는 솜털같이 가볍다. 양파껍질처럼 한 꺼풀씩 가족에게 아낌없이 벗겨주었기 때문일까. 백여 미터 남짓한 본관까지 거의 다 왔지만, 등에 업힌 어머니를 한번 추스르면서 일부러 느릿하게 걸었다. 어머니는 그만 내려놓으라고 자꾸 손사랫짓한다.
“남사시럽다. 남들이 마캉 쳐다보자녀. 얼릉 내려도가.”
“뭐, 남들이 쳐다보면 어때요.”
오래 전, 어머니가 어린 나를 업고 마당 거닐던 일을 반추해 본다. 어머니의 등은 아랫목처럼 따스했다. 구들처럼 온기가 돌았다. 그러나 등에 업힌 어머니는 냉돌(冷堗)처럼 차갑기만 하다. 예전에 어머니가 등에 업고 따스하게 데우던 자식에게 불기가 전혀 남아 있지 않은 걸까. 어디만큼 왔을까? 둥개둥개 둥개야. 둥개타령을 부르며 어르던 그 노랫소리가 우뚝한 소나무에 희멀겋게 들러붙는다.
마늘통이 그다지 실하지 못하다. 생육기인 봄에 가뭄 들면 토양이 건조해 양분을 뿌리에서 흡수하기가 겹기 때문이다. 잎 마름 현상도 심해지고 마늘종도 나오지 않을뿐더러 품질 또한 떨어진다. 병반 든 마늘쪽이 더러 눈에 띤다. 담갈색 병반이 생긴 마늘쪽을 보니, 어머니 가슴에도 이렇게 우묵한 병반이 밀생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썩은 마늘쪽처럼 떼어 낼 수도 없는 바이러스, 그 항원도 없이 속으로만 삭여 낸 세월이 바짝 마른 햇발에 설렁거린다.
“그제나 이제나, 날이 어짠 샛바람에 게 눈 감기듯 하는지 몰러.”
모낼 무렵, 한목에 오는 비를 목비라고 한다. 바짝 탄 어머니 가슴에 목비는 아니 오고 팻물만 서물거리는 듯하다. 이렇게 봄가물 들면, 갈변증 든 어머니 가슴엔 너누룩하던 팻물이 모질게 솝뜨는가 보다. 애 낳은 달에는 유독 찌뿌듯한 피로가 온몸을 엄습한다는데, 무심중에 봇물의 패를 잡게 되는 걸까. 팻물은 코뚜레에 달라붙은 나나니벌집만큼 그렇게 여할한 기억을 쏟아 내는 것 같다.코뚜레에 엉긴 궁상은 물에 서서히 누그러드는데 가슴속에 켜켜이 쌓인 땟국 같은 애젖함은 언제쯤 걷힐까.
자꾸만 마늘의 매운 향이 눈꺼풀을 알알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