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라비와 시그나기가 있고 알라자니강이 지나는 조지아 동부 카헤티주는 조지아 와인의 60% 이상이 생산되는 조지아 와인의 상징이다. 와인의 본고장이라는 카헤티의 주도 텔라비에서 와이너리 체험을 하기위해 트빌리시 동쪽으로 1600미터가 넘는 고개를 넘고넘어 텔라비에 갔다. 텔라비 가는 길은 험한 고개가 계속 나타나고 안개까지 끼어서 만만치 않았다. 조지아 사람들은 와인에 진심이다. 집집마다 포도나무를 가꾸고 매년 와인을 담궈 손님이 오면 대접하거나 평소 식사 때마다 반주로 마신다. 알라자니강이 흐르는 알라자니 평원은 물빠짐이 좋고 일조량이 많으며 카프카스 산맥의 빙하가 녹은 미네랄이 풍부한 물이 있어 포도 농사에 적지라고 한다. 지형과 기후가 다양해서 조지아에서 생산되는 포도 종류만 500종이 넘는다고한다. 조지아 와인은 '크베브리 와인'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크베브리'는 우리 옹기항아리와 비슷한 아래부분이 뾰족한 와인항아리이다. 텔라비 가는 길에 들렀던 이갈토 수도원은 물론이고 모든 수도원이나 정교회 유적에서 조지아 와인 항아리 '크베브리'를 많이 보았다. 조지아에서는 오크통에 와인을 담그지않고 으깬 포도를 넣은 '크베브리'를 땅에 묻어 발효시켜 와인을 만든다. 2013년에 크베브리 와인 제조법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8000년 전부터 와인을 제조했던 조지아에서는 가는 곳마다 와인을 권하는 사람을 자주 만날 수 있다. 조지아 사람들은 물에 빠져 죽는 사람보다 신이 주신 와인에 빠져 죽는 사람이 더 많다고 눙친다.
우리도 포도주에 빠져죽을 뻔했다. 우리가 차박을 하며 와인 시음을 하기로 한 와이너리가 닫혀서 기다리는 동안 이웃 농장에서 맛보라며 주신 와인부터 시작이었다. 와이너리에서 맛을 본 열세 가지 와인과 차차로 또 한 번 만취했다. 와이너리 운영자 쇼타씨는 다른 일을 하다 은퇴하고 10여년 전에 와인농장과 와이너리를 시작했는데 직접 생산한 와인에 대한 자부심이 넘쳤다. 므츠헤타에서 만났던 축구 삼인방의 쇼타씨와 같은 이름이어서 금방 정이 갔다. 우리가 갔던 와이너리에서는 시음을 할 때도 타마라(연회의 주관자)가 있었다. 쇼타씨가 타마라가 되어 함께 마시며 술도 따라주고 건배사도 해주었다. '건배'라는 말인 '가우마르조스'를 외치고 잔을 비우다보면 금새 친해진다. 와인과 함께 먹는 안주로는 호두나 땅콩 등 견과류에 포도즙 젤리를 덮어 말려먹는 조지아 전통 간식 츄첼라와 견과류가 있다. 우리는 와인잔에 마셨지만, 조지아 사람들은 원래 짐승 뿔로 만든 '깐지'라는 끝이 뾰족해서 건배한 잔을 비우지 않고는 내려놓을 수 없는 잔으로 와인을 마신다. 조지아 사람들은 와인을 섞어 마시지 않는다지만, 우리는 와인 일곱 종류, 포트와인 세 종류, 차차 세 종류 모두 열세 종류를 시음했다. 나는 조금씩 받았지만 워낙 여러 잔이다보니 취하고 말았다. 그런데 이베리 와이너리 79세 정정한 쇼타 아저씨는 운전해서 집에 다녀오신단다고 가셨다. 생전 첨 보는 우리에게 와이너리 열쇠를 통째로 맡기고서. 아침에 일어나 주변을 바라보니 발 아래로 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멀리 마을 너머 눈 덮인 카프카스 산맥이 보이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이렇게 카프카스 산맥이 병풍처럼 둘러싼 아름다운 텔라비에서는 정신줄을 놓아도 나쁘지 않았다.
와이너리에서 시그나기로 가는 도중 시그나기에서 2킬로미터 떨어진 보드베 수도원에 들렀다. 보드베 수도원은 9세기에 지어졌고 4세기 조지아에 기독교를 전한 성녀 니노가 묻힌 곳이며 카헤티 왕국의 왕들이 대관식을 하던 곳이다. 조지아에서 가장 큰 종교서적 보관소 중 하나이고 신학교가 있었다. 보드베 수도원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참으로 멋지다. 보드베 수도원은 알라자미 계곡 가파른 산허리에 있고 너른 알라자미 평원을 내려다보며 그 너머로 멀리 눈 덮힌 카프카스 산맥을 병풍처럼 두르고있다. 키 큰 사이프러스 나무들이 둘러싸고 있으며 12월에도 장미 정원에는 장미가 많이 피어있었다.
'백만송이 장미' 원곡의 실제 모델이 된 조지아 국민 화가 '니코 피로스마니(1862-1918)'의 작품을 보러 트빌리시에서 국립미술관에 갔었다. 자신의 집과 전재산을 다 팔아서 사랑하는 여인에게 백만송이 장미를 선물했다는, 너무나 순수하고 바보같은 화가. 지금은 피카소에게 영감을 준 화가로 세계적으로도 유명하고 조지아 국민화가가 되었지만, 살아생전에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받다 죽어간 화가. 조지아 음식점에 가면 '니코 피로스마니'의 그림 복제품으로 실내를 장식한 곳이 많다. 작품은 단순하고 대상이 된 동물이나 사람들 표정이 순수하기 그지없다. 라트비아 출신 작곡가 '레이모드 파울스' 곡에 러시아 시인 '안드레이 보즈넨센스' 의 시를 가사로 러시아 국민가수 '알라 푸가초바'가 불러 유명해졌고 심수봉이 개사된 노래를 리메이크했던 노래는 다들 알 것 같다.
'니코 피로스마니'는 시그나기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시골에서 태어났다. 그 덕분인지 시그나기는 사랑의 도시라고 불린다. 사랑의 도시라는 이름답게 연인들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결혼 서약을 할 수 있도록 결혼등록소를 24시간 운영한다.
또 시그나기에는 백만송이 장미의 화가 '니코 피로스마니' 두상이 있고 그의 작품이 있는 시그나기 국립박물관이 있다. 시그나기는 18세기 만들어진 피난용 성벽으로 둘러싸인 해발 800미터 산 위에 있는 작고 예쁜 도시다. 이름이 터키어로 '피난처'를 뜻하는 '시그낙'에서 유래된 것처럼 외적이 침입하면 주변 주민들이 대피하던 곳이다. 시그나기 성벽을 따라 걸으면 멀리 보이는 카프카스 산맥도 멋지고 산 아래로 알라지니 평원도 아름답게 내려다 보인다. 시그나기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으니 문화재일텐데 사람들은 성벽의 일부를 집이나 식당의 벽으로 이용하기도해서 신기했다. 그래서 성벽 주변의 식당들은 멋진 전망을 가지고 있다. 우리도 '발코니 시그나기'에서 멋진 전망과 맛난 저녁을 즐길 수 있었다.
조지아에는 와인과 '니코 피로스마니'의 이야기가 어우러진 '피로스마니'라는 이름의 와인도 유명하다. 이 와인은 '피로스마니' 백만 송이 장미 이야기와 함께 각국으로 수출되고 있단다. 실제로 포도 농장 울타리에는 장미를 많이 심는다. 장미가 포도나무의 상태를 알려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란다. 와인과 장미는 이래저래 인연이 깊은듯하다. 피로스마니 연구자들은 피로스마니가 백만송이 장미의 주인공과 같은 일을 한 적이 없다고 하지만, 나도 사람들도 무모하게 낭만적인 노래 가사의 주인공이 그이기를 믿고 싶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