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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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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 이야기 스크랩 처갓댁은 박물관2
하늘땅 추천 0 조회 89 09.10.30 06:5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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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갓댁 박물관이야기가 오늘도 이어집니다.

내용도 무척이나 많거니와 설명이 길어지다보니 자세한 설명을 곁들이기 어렵고 

보는분들도 너무 지루해 하실거 같아서 조금씩 나누고 있긴 한데 이것도 역시 짧지 않을듯 싶네요

아마  한두번더 올려야 어느정도 제가 전하고싶은 내용들이 전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제 손저울 시범을 보여주셨던 옆집 동구지덕(댁) 할머님 이십니다.

저희 처갓댁 어르신들과 무척이나 절친하게 지내시면서 함께 했던 추억들이

무척이나 많으신 분이시면서 2년전쯤엔 오랜 병고를 앓으시던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현재는 혼자서

생활하고 계신 할머니 이십니다.

저희들 시골집에 찾아가면 바로 옆집이시기 때문에 가장먼저 반겨 주시고 김치며 반찬거리 쌓가지고

오셔서 안부를 전해주시며 저희 아이들 한번 안아보시길 즐기십니다.

어제 말씀드렸던 것처럼 제가 저희 처갓댁에서 옛날물건들 사진에 담는거 보시구는

골동품 우리집에 많응께 한번 가보라 하셔서 저는 콩타작 하시는

할머니께 감사하다는 인사와함께 할머니 댁으로

들어가 두어시간 동안 이곳저곳을 아주 신이나서 사진에 담았지요

 

 저희집 바로 옆집인 할머니 댁은 돌담이 아니고 흙벽으로 되어있답니다.

아마 집의 경계를 담을 대신해 사랑채 벽으로 대채하신듯한 구조입니다.

돌담과 다른점은 구성재료가 다르지요

돌을 이용하기 보다는 황토흙을 주 재료로 하였고 무너짐을 방지하기 위하여

중간 중간 나무 기둥으로 칸을 나누고 그 사이사이에는

아래사진처럼 수수깡이나 나뭇가지등을 새끼줄로 엮어서 발을 세운다음 그 위에 황토흙을 발라서

마무리하는 방식으로 흙집을 지으신 것이지요.

생각하기엔 이 흙담이 금새 무너지거나 빗물에 녹아 내릴거 같지만 쉽게 무너지거나

빗물정도에 ?거 내리거나 하지 않는답니다.

아마 이집도 70년대초에 새마을운동당시 초가집을 개량하여 만든 집일테고 대략 40여년을

잘 지탱해오고 있으면서도 크게 유실되지 않은듯 합니다.

 

 

 위에 사진은 처마 안쪽의 모습입니다. 수수깡으로 발을 엮어서 그 위에 황토흙을 개어 넣구서

지붕을 이은거지요

모든것들이 자연속에서 우리네 농업현장에서 얻어진 재료들이기에 더 정감있고

건강에 해롭지 않은듯 합니다.

수십년이 지났어도 썩거나 무너지지 않고 있는 힘이 놀랍습니다.

볏짚으로 꼬아서 만든 새끼줄들이 수십년을 이렇게 견디고 있는 힘들이 놀랍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할머님 댁입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 문패가 아직 그대로 입니다. 깨진 문패를 테이프로 동여메어 놓았군요.

문패의 함자위에 새겨진 노란색 마크! 농협 마크입니다.

농민들이 주 조합원으로 구성되어있는 농협은 연말결산을 하여 수익이 발생하면 저렇게 조그만

생필품등을 마련하여 조합원들에게 환원해주기도 하지요

아마 꽤 오래전에 마련해준 기념품 일겁니다.

이곳 할머니댁에 가면서 느낀것은 집 자체부터해서 할머니 할아버지의 손길 하나하나가

수십년간 묻어져 만들어진 많은도구들이 문화재이고 박물관이었습니다.

삐~~이~~익  하면서 열리는 저 나무로된 대문 부터가 아주 정겨웠습니다.

 

 

 

 대문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문간방이라 그러나요,별채라 부르나요 저두 정확한 명칭은 잘 모르니

이해하여 주시길 바라구요

아까 흙벽을 이루고있던 그 방이 바로 대문옆에 있더군요.

그 별채의 방문이 정말 정겨운 대나무 살로만든 빗살무늬의 문이었습니다.

아주 조그만 방이구요.

흙벽이 그대로인 이 집이 참 따뜻해 보입니다.바로 앞에는 아궁이와 그 아궁이에는 쇠죽을 끓여내던

커다란 가마솥이 걸려 있었는데 지금은 많은 잡동사니들로 가득해서 사진에 담지는 않았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니 안채앞에는 나무마루가 있었고 그 앞 처마밑으로 빨래줄이 길게 늘어서 있는데

빨래와 함께 햇빛을 쬐고 있는것들은 무청 시래기와 곶감 몇알 이었습니다.

곶감은 아마 할아머지며 조상님들 기일에 쓰실려구 몇알 소박하게 말리고 계신듯 합니다.

쇠기둥 사이에 대나무 간대를 만들고 거기에 곶감이며 무개 나가는 먹거리들을 말리시나 봅니다.

대략 장독 몇개와 수돗가가 펼쳐져 있군요.

 

 본격적으로 눈에 보이는데로 이런저런 옛물건들을 찾았답니다.

제가 정확한 명칭이나 용도를 잘 모르는 것들도 많아서 허접한 설명이 될수도 분명있으니 이해하여

주시고 편안한 마음으로 예전의 추억속으로 함께 떠나 보지요

위 사진의 물건들은 그냥 눈으로 보셔도 알것 같지요

갈퀴와 콩이나, 팥, 깨등 농작물들을 타작할때 쓰는 작은 손 도리깨라고 할까요

큰 도리깨(긴 장대에 회전할 수있게 만들어진)도 있었는데 많은 물건들이 꽉 누르고 있어서

꺼내질 못했습니다.

요즘은 대부분 프라스틱이나 쇠갈퀴로 대체되었는데 이곳엔 아직도

대나무를 이용한 기구들이 많이 있더라구요

아무 순창이 담양과 가까운 지리적 환경때문도 분명있을겁니다.

위에 다섯가닥 도리깨를 만져보니 얼마나 오랜세월동안 닳고 닳았는지 엄청 부드럽고 촉감이

아주 좋았답니다.

 

 

 이건 처마밑 한쪽 기둥에 걸려져 있었는데 저두 처음보는 것이구 이름도 잘 모르겠지만

짐작이지만 용도는 분명 날카로운 허드렛 칼이나 긴 못이나

날카로운 긴 도구등을 보관할때쓰던 물건으로 보여지더군요.

볏짚을 마치 럭비공처럼 만들어서 안쪽을 푹신하게 하였고 여러가지 날카롭거나 길고 뾰족한 기구들이

꽃혀져 있는걸고 봐서 저두 그렇게 짐작을 하여 봅니다.

정말 지혜로운신 어르신들 이십니다. 기구도 다치지 않고 사람들도 상하지 않게 잘 보관할 수

있겠더라구요  마치 바늘을 꽃아둔 실패처럼 보입니다.

 

 

다음에 눈에 띈것은 나무 망치였습니다. 

콩타작하시던 할머니께서 들어오시길레 여쭤봤더니 나무 망치라고 하시네요

고추재배할때 고추들이 바람등에 넘어지지 않게 말뚝을 박고 줄을쳐 주는데 그때 말뚝 박을때

쓰던 망치라고 합니다. 깊게 패인 저 홈들은 오랜세월속에 자연스럽게 홈이 패인거구

쇠 말뚝도 있지만 대부분 나무 말뚝을 박으며 절렇게 깊은 홈이 패였다면 이 망치의 

나이도 참으로 오래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정말 두 내외분의 역사가 깊이깊이 새겨져 있더군요.

이걸 찾아가지고 나오자 할머니 정말 준우아빠 자상하기도 하네 하면서 웃으시면서

할아버지와의 기억도 되짚어 보시나 봅니다

그러시면서 사진으로라도 잘 찍어서 담에 보여달라시면서 카메라에 그렇게 많이 사진을 찍을 수

있느냐며 신기해 하십니다. ㅎㅎㅎ

서로가 신기해하는 시간이었죠

그러시면서 할머니 한쪽 헛간 문을 열어 주십니다. 농기구들이 걸려있는 곳이었는데

한쪽 기둥에 걸려져있는 원형 주철로 된 물건을 가르키십니다.

 

 

 아시는 분을 다 아시겠지만 바로 예전에 장작불로 난방및 화력을 이용할때 불의 화력을 높이거나

또는 처음에 불을 붙일때 이용하던 기구지요

 작은 손잡이가 있어 돌리게되면 바람을 일으켜 길다란 대롱을 연결해 불씨밑에 바람을 전달해주던

기구인데 저두 이름을 잘 모르겠네요

할머니 어떤 고물장수가 저거 만원에 팔라고 하는거 안팔았다고 하시면서 안팔기 잘했다고

하시네요. 그렇죠 정말 만원에 팔고나면 그 만원이야 한순간에 없어지고 말텐데요

 

 

 이건 아마 풍구의 신모델 이었지 않나 싶습니다.

전기를 이용해서 작동을 하나봅니다.

모터와 전기선이 연결되어 있군요.

역시 바람을 일으켜 벼등 농작물등의 쭉정이를 날리고 알곡을 골라내던 기계였지 싶습니다.

 

 부억옆 처마밑 한쪽 귀퉁이에 있는 소금단지 입니다.

소금은 적당한 통풍과 바닥을 간수가 빠져야하기 때문에 자리잡은 곳이고 역시 뚜껑도 소금을

보관하기에 적당한 원목을 육각으로 잘라 만든 모양입니다.

 

 아까 처음 들어오면서 봤던 별채 앞에 부엌쪽 난간에 걸려져있는 물건인데요

오랜세월 장작불 연기에 그을린 흔적디 검게 색칠을 한듯 합니다.

저 연기에 소독되고 코팅이 되어서 나무들이 썩지않고 오랫동안 튼튼하게 보존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군요. 위에 걸려진 저 ㄱ자형 도구는 무엇일까요 아마 무슨 고리 역할을 하던 것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역시 나뭇가지를 잘 다듬어 만든것이구요 못을 박아 단단히 고정시켜 두었더군요.

제가 아는 저 고리의 또다른 역할은 예전에 볏짚등 부피가 짐을 지게에 질때 저 고리에

밧줄을 연결하고 끝에 저 고리를 달아서 마지막에 고정할때 적당한 곳에 걸어서

마무리 하던 도구로도 사용되어진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번엔 헛간 처마밑에 걸려져있던 둥근 원형의 도구들인데요 새끼줄로 감아져있는 것과

고무 튜브로 감싸져 있는 것은 예전에 집집마다 한두마라씩 키우던 시절 힘이센 소들을

사람들이 다루기 쉽게 하기 위하여 소의 코를 뚫고 저 코뚜레를 끼워서 목에있는 줄과 연결하면 아무리 사나운 황소라해도 순한 양이 되지요.

얼마나 아팠겠어요 코구멍 사이에 구멍을 뚫고 저렇게 연결하여 당기면 꼬마가 당겨도 소는 따라

올 수밖에 없었던 거지요 지금이야 대량사육하고 또 소를 이용해 농사일하는 일들이 없다보니

저렇게 코뚜레 달고 있는 소 보기가 힘들지요

예전에 한우들은 참 멋쟁이였지 싶네요

피어싱을 하고 다녔으니 말입니다. 하고싶어서 한건 아니겠지만요 ㅎㅎㅎ

집을 매매하고 싶은데 잘 팔리지 않을때 저 코뚜레를 걸어두면 집이 잘팔린다는 속설때문에 요즘엔

옛날물건 파는데서 없어서 못파는 물건이 되었다고 합니다. ㅋㅋ

 

 이건 누구나 알 수 있는 산태미라고 불리는 농기구이지요 요즘이야 대부분 프라스틱으로 대체되어있지만 예전엔 이렇게 농한기에 고운싸리나무나 산죽(산대나무)을 모아서 겨울에 주로 동네 사랑방등에서

이런 농기구나 생필품등을 만들면서 긴긴 겨울을 보내셨을 겁니다.

 

 

이곳은 아마 예전에 소나 돼지등 가축을 키우시던 곳인거 같은데 참 지혜로운건 이 좁은 공간도 이층으로

만들어서 위에는 볏짚이나 농기구들 보관하면서 보온이나 시원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신거 같고

아래에는 가축이 선선하거나 따뜻하게 자랄 수 있도록 구조되어 있다는 점이지요

보면볼수록 현명하고 생활의 지혜등이 그대로 베어있는 모습들입니다.

아쪽으로 보니 개량된 손작두와 멍석도 보이구 저 안쪽 깊숙이에는 정말 보기힘든 볏짚으로만든

가마니가 몇장 멍석및에 눌려져 있네요 엊그제 제가 올렸던 쌀의 보관및 유통 단위였던 (섬,석)의

기본이 되었던 볏짚가마니를 보니 더욱 반가웠습니다.

 

 

 할머니께선 집안에 양변기식 화장실 있지만 아직도 이곳 재래식 화장실을 이용하시나 봅니다.

정말 소담스럽고 예전 모습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할머니께서 자꾸 별걸다 찍는다고 쑥스러워 하시는군요.

 

 

 화장식 안쪽에 보이는 이 기구를 아시는 분도 계시지요

시골에서 60~70년대 (80년대까지도사용되어진기억이있음 그러니 저두 사용해 봤지요)를 보내신 분들은

다들 기억하실 걸로 압니다.

바로 어쩌면 그당시엔 최신신 분무기였지요.

등에메고 한말(20L)씩 농약이나 물을 뿌려주던 시기에 이 기계는 정말 획기적이었지요

커다란 물통에 물이나 약을 담아놓구선 위에 보이는 검은 호스를 물통에 담그고

녹색 부분의 홈에 긴 나무막대를 이용해 앞뒤로 밀고 당기고 하면 압력이 생겨서

긴 호스를 연결해서 상당히 멀리까지 끌고가서 농작물에게 농약이나 물을 줄 수있었던 기계지요

저두 어린시절(초등하교,중학교) 아버님 도와드린다고 이거 밀고 당기고 하던 기억이 새롭네요

말이그렇지 두어 시간씩 저거 밀고 당기고하고나면 어린 저는 쓰러집니다. ㅠ.ㅠ

지금이야 경운기나 트렉터 또는 트럭등에 저런 원리를 이용한 벨트를 이용한 회전식 분무기들이

있어서 아주 간단하지만 예전엔 무척이나 힘든 작업중 하나였지요

 

 

 이건 아직도 많이들 이용하는 키 이지요

곡물등을 담아서 높이 올렸다 내렸다하면서 역시 바람을 이용해 쭉정이를 골라내던 기구지요

이 키의 역할은 또 있었지요

밤에 잠자리에 지도를 그린 자식들 옆집가서 소금을 얻어오게 하시면서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대소변을 가릴 수 있는 교육이 되었던 그 시절의 교육방식들이 그립네요

 

 

 이건 망태라고 하나요 두개가 걸려있었는데 하나는 나일론 소재로 되어있었고 하나는 좀더 오래된듯

보이는데 새끼줄로 대부분 만들어진 가운데 중간 중간 나일론 줄이 들어가 있네요

새끼줄을 어떻게 저렇게 얇고 정교하게 꼬아서 이렇게 만들었는지 참 이쁘네요

펼쳐보니 굉장히 크더라구요 상당히 많은 부피의 짐을 담아올 수 있겠더라구요

 

 

 

 통나무절구통과 절고공이 인데요 이건 아직도 종종 이용하시는지 깔끔하게

보관되어져 있군요 나무의 투박하면서도 부드러운 질감이 그대로 전해져 옵니다.

이곳을 거쳐간 수많은 음식들이며 이야기들을 한가득 담고있을 절구통을 보니 어찌나

정겨운지 모릅니다.

 

 간만에 사우같은 사람 왔다고 이것저것 꺼내오시면서 소주한잔을 건네십니다.

마루한쪽에 서있는 커다란 소주병 보이십니까  까~~악 

과실주용 1.8리터 대병 소주~~

대낮에 두잔을 연거푸 마셨더니 피~~잉 돕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농촌에서 태어나시고 평생 7~80여년 농촌에 살아가시며 이나라

농촌을 지켜주시고 많은 자식들 낳아서 도회지로 떠나보내며

이나라의 근간을 지켜오시던 우리 어머님들의 오늘의 모습이십니다.

정과 사랑이 가득하시고 욕심없는 모습의 우리 어머님들이 계셨기에

지금의 우리 대한민국이 세계속에서 목소리를 높여볼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오늘 이글 보시는분들께선 홀로 계신 부모님이나 주변 분들께 전화라도 한통화

해 주시고 요즘흔한 과일 한박스 택배로 보내 보시면 어떠실까요.

요즘 농촌엔 먹거리도 많지만 이래저래 한가한 마음들로 이렇게 평화스러운 시간을 가질일도

많답니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주전부리가 필요하구요

아 이건 우리 사우가(우리 아덜이) 보내준것인디 어디 맛좀보자며 슬그머니 자랑하고 싶으셔서

지나가는 이웃들 불러서 함께 술도한잔 나누시거든요

가능하다면 손주들 얼굴 자주 보여주면 더없이 좋아라 하실거구요

오늘 제가 아침부터 분위기에 젖어서 말이 좀 많아졌습니다.

아무쪼록 올 가을은 어르신들 한번더 찾아뵙는 시간들 가져주시길 바랍니다.

이상으로 처갓댁에 갔다가 할머님들과 소주한잔했던 기억에 표고아빠 아침부터 필 받아

주저리 주저리 해 봅니다.

 박물관 이야기는 내일 또 이어져야 할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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