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설흘산 가는 길
남해군은 면적 357.33㎢, 인구 5만 9762명(2001)이다. 동쪽은 통영시, 서쪽은 한려수도를 사이에 두고 전라남도 광양시·여수시, 북쪽은 사천시·하동군과 접하고, 남쪽은 남해에 면한다. 1읍 9면으로 이루어졌으며 군청소재지는 남해읍 서변리이다.
한국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인 남해군은 68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임야면적은 241.28㎢로 녹지율은 67.5%이다. 국내 섬 가운데 가장 산이 많고, 하천은 짧고 평야가 협소해 논 48.89㎢, 밭 31.97㎢이다. 따라서 남해군은 계단식 논·밭이 발달되어 있다.
주민의 대부분이 큰 섬인 남해도와 창선도에 거주하고 있다. 유인도인 조도·호도·노도에는 69가구 189명이 생활하고 있다. 나머지 65개의 섬은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로 빼어난 절경을 갖추고 있다. 1973년 6월 길이 660m의 남해대교가 개통되면서 육지와 직접 연결되었고, 1980년 창선교가 놓이면서 남해도와 창선도가 연결되었다.
소백산맥 줄기가 남해안까지 뻗어져서 이루어진 남해도는 지층은 경상계가 약 80%를 차지하고, 주로 쥐라기 말기에서 백악기 말에 형성된 것이다. 남해도에는 망운산(786m)·금산(701m)·송등산(617m), 창선도에는 대방산(468m) 등 험준한 산들이 솟아 군의 대부분이 산지로 되어 있다. 또 이들 산지에서는 입현천·동산천·초음천·다천천·화천천 등 15개의 하천이 사방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해안은 굴곡이 심하고 긴 해안선이 있어, 어족자원이 풍부하여 연근해어업의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기후는 따뜻한 동한난류의 영향으로 온난다우한 해양성기후이다. 연평균기온 13.9℃ 내외, 1월 평균기온 1.3℃ 내외, 8월 평균기온 25.9℃ 내외로 기온의 연교차는 20℃이며, 연평균강수량은 1722.6㎜이다.
1914년 3월 1일 설치되었다. 2002년 2월 현재 남해읍 등 1읍 9개면을 관할구역으로 하는 행정기관이다. 기구는 군수와 부군수가 있고, 기획감사실과 종합민원실 등 2실 9과로 이루어져 있다. 보건소·농업기술센터 등의 직속기관이 있다. 중앙 정부와 광역자치단체로부터 위임받은 업무와 남해군 고유의 행정 및 민원업무를 수행한다.
주요 업무는 행정구역을 관리하고 조례와 규칙을 제정하며, 지방세 부과와 징수, 예산의 편성 집행, 국가 재산의 관리, 호적과 주민등록 관리, 복지사업과 위생사업, 각종 산업 진흥, 지역개발과 생활환경 개선, 체육과 문화예술 진흥 등이 있다. 군 고유 사업으로는 남해에코파크 조성·남해하모니 리조트타운 개발·독일교포 정착마을 조성·창선연륙교 주변지구 개발·남해스포츠파크 조성·전통문화예술촌 조성·관광농업단지 조성·어촌체험관광마을 조성·산촌종합개발 등이 있다.
' 자연이 살아 숨쉬는 남해'를 캐치프레이즈로 삼고, 함께하는 자치행정·풍요로운 주민복지·쾌적한 환경보전·특성 있는 관광개발을 군정방침으로 정하고 있다. 남해대교를 형상화시킨 심벌마크가 있으며, 군을 대표하는 동식물은 치자꽃(꽃)과 비자나무(나무)·백로(새)이다. 청사는 경상남도 남해군 남해읍 서변리 24-1번지에 위치한다.
삼한시대의 역사 자료는 없으나 남쪽 변한의 12개 부족국가 중 군미국 또는 낙노국에 속했다고 한다. 가야시대에는 6가야 중 지리적 여건으로 보아 현 진주 관할인 고령가야에 속하였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690년(신라 신문왕 10)에는 전야산군(轉也山郡:남해도)으로 부르다가 757년(신라 경덕왕 16) 지방행정구역 개편 때 남해군으로 고치고 일선현(창선도)을 흥선현으로 고쳤다. 이때 영현으로 난포현과 평산현을 가졌다.
1018년(고려 현종 9)에 군에서 현으로 강등하고 현령을 두었다. 1358년(고려 공민왕 7) 왜구의 침략으로 정상행정이 불가능하여 한때 진주 대야천부곡(晉州大也川部曲:지금의 하동군 북천면)으로 행정관서를 임시로 옮겼다. 난포현과 평산현은 왜구의 약탈이 심하여 사람이 살지 못하였다. 고려시대 때 창선도는 유질부곡이라 하였다가 창선현으로 고친 뒤 진주목의 영현으로 삼았다. 충선왕대에는 창선현을 흥선현으로 고쳤으나 왜구의 침범으로 역시 사람이 살지 못하였다.
1404년(태종 4)에 왜구로 인해 진주로 철수한 지 46년 만에 남해현을 복구하였고, 남해읍성을 쌓았다. 1413년(태종 13) 하동과 합쳐 하남현(河南縣)이 되었다가, 이듬해 하동현이 독립하면서 진주 금양부곡(金陽部曲)과 합쳐 해양현이라 하였다. 금양현이 진주에 속하면서 남해현으로 개칭하였다가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혁으로 23부제가 실시되면서 남해군은 진주부 관할 행정구역이 되어 7개 면을 관할하였다. 이듬해 13도제 실시에 따라 지금의 경상남도 남해군이 되었다.
1906년에 창선도가 면으로 승격하여 남해군에 편입되면서 8개 면이 되었다. 1973년에 이동면 상주리의 갈도(葛島)를 통영군 욕지면에 이관하였으며, 남해고속도로와 남해대교가 개통되어 육지화되었다. 1979년에 남해면이 읍으로 승격하였고 이듬해 창선교의 개통으로 남해도와 창선도가 연결되었다. 1986년에 이동면 상주출장소를 상주면으로, 삼동면 미조출장소를 미조면으로 승격시켰다.
2001년 현재 남해읍·이동면·삼동면·남면·서면·고현면·설천면·창선면·상주면·미조면 등 1읍 9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금산(錦山)
높이는 681m이다. 원래는 신라의 원효(元曉)가 이 산에 보광사(普光寺)라는 절을 세웠던 데서 보광산이라 하였는데, 고려 후기 이성계(李成桂)가 이 산에서 100일기도 끝에 조선왕조를 개국한 그 영험에 보답하는 뜻으로 산 전체를 비단으로 덮었다 해서 금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려해상국립공원 내의 유일한 산악공원으로 기암괴석들로 뒤덮여 있으며, 1974년 12월 28일 경상남도기념물 제18호로 지정되었다. 주봉(主峰)인 망대를 중심으로 왼쪽에 문장봉·대장봉·형사암, 오른쪽에 삼불암·천구암 등의 암봉(巖峰)이 솟아 있다.
이성계가 기도했다는 이씨기단(李氏祈壇)을 비롯하여, 삼사기단(三師祈壇)·쌍룡문(雙龍門)·문장암(文章岩)·사자암(獅子岩)·촉대봉(燭臺峰)·향로봉(香爐峰) 음성굴(音聲窟) 등 금산 38경을 이루는 천태만상의 기암괴석과 울창한 숲, 그리고 눈 아래로 보이는 바다와의 절묘한 조화는 명산으로서 손색이 없다. 산 정상에는 양양 낙산사, 강화 보문사와 함께 한국 3대 기도처의 하나이자 쌍계사의 말사(末寺)인 보리암이 있고 그 밑에는 1977년에 해수관음보살상이 바다를 향해 세워졌다.
이동면 복곡 입구에서 금산 8부 능선까지 도로가 개설되어 있고 인근에 상주해수욕장이 있어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남해 가천 암수바위 [南海加川-]
남해군 남면 가천마을의 민간신앙으로 숭배되는 자연석 암수바위이다. 이곳 주민들은 이 바위를 숫미륵·암미륵이라고도 부르며 매년 음력 10월 23일에 각종 음식을 차려 놓고 풍농(豊農)과 풍어(豊魚)를 비는 마을 제사를 지낸다.
1751년(조선 영조 27)에 발견된 것으로 전해지며,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들이 아무도 모르게 숫바위 밑에서 기도를 드리면 득남을 한다 하여 다른 지방에서까지 많은 여인들이 다녀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