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엄영아
텔레비전에서 목사님이 결혼식 주례를 하고있다. 결혼생활은 engage ring과 wedding ring그리고 Suffering 이라고 한다. 하객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이 세 번째 링을 어떻게 감당하느냐가 결혼생활의 행복을 저울질한단다. 나도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남편이 유난히 좋아하는 양말을 들고 와 구멍 난 곳을 보여준다. 얼마 신지 않았는데 벌써 닳아서 구멍이 났다며. 보고, 듣고 자란 것은 잔재로 남는지 나는 습관이 되어 물어본다.
"꿰매줄까요?" "그럼, 아직 멀쩡한데 버리긴 그렇지" 한다.
색깔도 멋지고, 도톰하며 따뜻한 양말이다. 푹신하여 발바닥에도 도움이 되고 적당히 길어서 종아리에도 잘 맞는단다. 바느질을 시작 하기전에 나는 돋보기를 먼저 찾는다. 시집올 때 친정엄마가 마련해 준 반짇고리는 반 백년을 열고 닫다 보니 많이 닳았다. 그 안에서 전구를 찾아 양말 속에다 넣고 헤어진 양말을 꿰맨다. 남편은 내가 양말을 꿰매고 있으면 어릴 적 엄마가 어두운 촛불 밑에서 양말 꿰매주던 모습으로 오버랩 되어 마음이 따뜻해진다고 한다.
나에겐 양말 꿰매는 일도 삶이고 예술이다. 단순히 예술이 아닌 주님과 동행하며 또한 이 일을 통해서 영감도 얻는다. 헤어진 친구가 아무 소식이 없으면 해진 양말을 보며 우리 우정 어디에 구멍이 났나 생각해보기도 한다. 손가락이 바늘에 찔리면 아픔을 견디며 인내를 배운다. 비록 꿰맨 자국이 내 만족에 못 미친다 해도 다음에 더 잘 하면 되지 하며 항상 기대만큼은 환상이다.
오늘 꿰매는 양말은 청색과 회색이 섞여있다. 기운 양말이라도 미운 것보다는 보기가 좋아야 좋다. 회색 양말로 덧댔는데 기대만큼은 아니지만 괜찮다. 한동안 더 신을 수 있어서 좋아할 남편의 미소 띈 얼굴이 양말 위에 보이다가 사라진다.
버리지 않고 꿰매어 쓰는 것은 내가 특별히 알뜰해서가 아니라 지엄한 할머니 교육의 일부이기도 하다. 어릴 적 친할머니는 "헌 것이 있어야 새것이 있다" 하시며 떨어진 것은 다 침모에게 꿰매라고 하셨다. 할머니의 겉옷은 새옷이어도 겉옷을 벗고 잠자리에 드실 때 보면 속옷은 기운 걸 입고 계셨다.
요즘 나는 눈이 많이 나빠져 바느질은 suffering에 속한다. 새 양말을 사다 주면 편하련만 좋아하는 양말은 해져도 더 신고 싶어 하는 남편의 뜻을 따라주는 것도 사랑의 Suffering이겠지.
꿰맨 양말이 부메랑을 타고 날아간다.
(6-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