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8일 금요일.
이번 제주 여행의 하이라이트, 한라산 영실코스 탐방.
1947m,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한라산 .
해발 1280m, 영실 주차장에서 시작하는 등반코스.
이곳은 12시 이후에는 출입을 통제한다.
가을 단풍철이면 그 아름다움을 훨씬 더 뽐낸다는 곳.
그래서인지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탐방코스이다.
서너 살 어린아이도 칭찬과 격려를 받으며 올 수 있는 곳.
실제 간난쟁이 아이를 업은 엄마 아빠가 귀여운 꼬마 아이랑 윗세 오름까지 오르고 있다.
탐방로는 예년과 달리 워낙 정비가 잘 되어 있다.
거의 대부분 나무 데크로 길이 놓여져 있다.
당연히 등산화랑 스틱을 갖추고 올라야 할거라 생각했는데 등산화가 아닌 운동화 차림이 7, 8할 정도 되어 보인다.
한참 오래 전 이 길은 울퉁불퉁한 바윗길로 끙끙거리며 올랐더랬다.
초입 부분 잠깐 제외하고 계속 오르막이다.
오르고 또 오르고, 무수히 많은 계단을 오른다.
깔딱 고개 깔끄막처럼 경사가 가파르다.
힘들긴 하지만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면 시원스런 풍경에 힘겨움은 금세 사그라든다.
에궁, 알록달록한 영실을 기대했지만 해발 고도가 높아서인지 잎을 다 떨궈버리고 갈색 나뭇가지들로 가득하다.
어쩐지 쉽사리 주차가 가능하더라니.
단풍과 만나려면 10월 하순경 찾아와야 하지 않을까.
아쉬움은 있지만 가을빛이 여운처럼 남아있는 산의 모습도 참 좋다.
조금 더 오르니 병풍 바위가 떡 하니 버티고 있다.
길쭉한 바위들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다. 주상절리같은 느낌이다.
병풍바위 옆으로 기암괴석들이 줄지어 있다.
하늘로 치솟아 있는 그 위용이 장엄하여 오백장군 또는 오백나한이라 불리운단다.
오르막을 다 오르고 나면 길게 평지가 이어진다.
데크로 놓인 길은 오르막 오르느라 고생했다며 주는 선물같다.
데크 주변으로는 구상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고사목과 어우러지며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고사목 우둠지에는 까마귀 한 마리가 터줏대감마냥 앉아 내려다 보고 있다.
이리 넓은 평지가 산 위에 있다는 게 신기하다.
데크 주변으로 키작은 조릿대들로 가득 덮혀 있다.
조릿대때문에 한라산의 특산작물들이 자라지 못해 제거작업을 하고 있단다.
바로 가까이 윗세 오름이 보인다.
붉은 오름, 누운 오름, 족은 오름이라는 크고 작은 3개의 오름이 연달아 이어져 있어 윗세 오름이라 부른단다.
윗세 오름 대피소에 이르니 바람결이 틀리다.
올라오는 길 벗었던 자켓을 걸치고 패딩을 껴입는다.
점심으로 가져온 김밥을 펼친다.
예서 컵라면을 사먹었던 기억이 확실한데 지금은 아무것도 팔지 않는다.
따뜻한 커피라도 가지고 오지 않았음 어쩔 뻔.
예전에는 까마귀가 떼지어 놀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저 몇 마리 날고 있을 뿐이다.
먹이주는 사람이 없어 그런 걸까.
까마귀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현수막이 큼직하게 걸려 있다.
남벽분기점까지 남은 거리 2.1km.
1시 이후에는 철저하게 통제한단다.
점심을 먹고 나니 고작 10분 남았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은 이곳에서 발걸음을 돌린다.
남편도 되돌아 가고 싶은 눈치다.
하지만 예까지 왔는데 2킬로를 남기고 돌아설 순 없지.
거의 마지막 스타터가되어 남벽분기점으로 향한다.
울퉁불퉁 돌길을 잠시 걸으니 데크길의 편리함이 이어진다.
사람들도 뜸하다.
가을의 고즈넉함이 하나 가득이다.
남벽의 웅장함은 더 가까이 다가온다.
스위스의 아이거 북벽도 떠오르는 걸.
구상나무들도 더 많이 보이고 온통 조릿대로 뒤덮힌 산자락도 보인다.
저 정도의 극성이라면 다른 작물이 자랄 틈이 없겠구나.
제거작업을 할 수밖에 없겠단 생각이 든다.
오르락 내리락거리며 데크길과 돌길을 번갈아 걷는다.
남벽의 한 귀퉁이가 큼직하게 떨어져 나간 흔적이 보인다.
무엇이 저 단단한 덩어리를 부서지게 만들었을까.
자연의 장엄함과 경이로움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방아오름 전망대에 이르러 남벽을 마주한다.
저 뒤로 백록담이 자리하고 있겠지.
몇 해 전 다녀온 백록담 화구를 떠올리는 것으로 만족한다.
저 멀리 하늘과 바다의 경계를 가르기 힘든 곳에는 아스라이 산방산과 송악산 형제섬이 보인다.
구름이 오가는 하늘에 언뜻 드러나는 파랑이 참 예쁘다.
아름다운 자연이 주는 위로와 힐링의 힘은 참 강력하다.
남벽분기점을 100여미터 남겨 놓고 발길을 돌린다.
남벽분기점이 바로 아래 보이지만 굳이 더 내려갈 이유가 없다.
돈내코와 영실을 가르는 지점일 뿐 남벽은 이미 충분히 눈에 담았다.
돌아오는 길 더 짙어진 늦가을의 정취를 양껏 누리며 내려온다.
이번에도 스틱은 제 3의 다리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이제 산을 오르거나 올레길을 걸으려면 스틱과 등산화는 필수다.
다섯시간의 산행으로 몸은 고단하지만 한라산의 정기를 충분히 들이마시며 몸과 마음을 맑게 정화시킨 행복한 하루였다.
첫댓글 와 탄탄하시네요.
작년에 영실 올랐었는데 꽤나 힘들었어요. 시간도 많이 걸렸고요.
다리 알 배지 않았나요.
남편보다 더 잘 오르나 봐요. 슈퍼우먼 이세요.
종아리랑 허벅지가 땅기더라구요.
계단 내려갈 때 으악 소리가 절로 났어요.
지금은 그래도 양호해졌네요~^^
한라산 넘 좋아요
아직도 여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