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할렐루야. 할렐루야.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오늘도 예배자로 서 있는 저와 여러분의 삶과 가정과 일터 위에 충만하게 임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들을 사랑하십니다. 우리 그 사랑, 하나님의 사랑을 가득 담아서 좌우에 계신 분들에게 진심으로 전했으면 좋겠습니다. 주 안에서 사랑합니다. 우리 서로 고백할까요?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애굽을 향한 하나님의 마지막 경고가 끝이 나고 이스라엘을 위하여서 구원의 방법 또 분명하게 제시를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10번째 재앙이 실제로 임했던 그 현장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묘사해 주고 있는 것이죠. 이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어떻게 성취되어지는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본문을 살펴보기에 앞서서 먼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 성취는 재앙으로 인하여서 심판으로 임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이루기 위함이라는 거예요. 사실 10번째 재앙, 10가지 재앙이라는 이야기를 계속 읽고 듣다 보면 우리의 뇌리 속에는 구원의 하나님이라기보다도 심판의 하나님이라는 생각을 가질 가능성이 굉장히 많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무려 10번이라는 재앙을 통해서 하시고자 했던 근본적인 목표 이유는 심판의 초점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초점에 맞춰져 있다라는 사실이죠.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도 다르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 17절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말씀이죠.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내주셨습니다. 저를 믿는 자들은 구원을 얻겠다.
그리고 17절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우리와 같이 한번 읽어보실까요?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오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렇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독생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육신으로 보내신 분명한 이유는 세상을 심판하기 위함이 아니라 예수로 말미암아 누구로 말미암아 예수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함이라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는 것이죠.
저와 여러분들이 이 사실을 믿음으로 고백하셔서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의 기쁨과 감격을 누리며 사는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 땅에 살면서 육신의 아픔도 찾아오고 고통도 찾아오고 때로는 어려움들이 찾아올지라도 그것이 구원과는 상관없다는 거예요. 우선은 우리는 구원받은 자로서 기쁨과 감격 속에 살아야 한다는 것이죠.
이어서 한 가지만 더 연결해서 생각해 보실까요?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구름 타고 올라가시면서 다시 오시겠다 약속해 주셨죠. 재림의 목적은 어디에 있습니까? 천년 왕국사 하면서 666표를 받아야 된다 이런 이야기들도 많이 하는데 그런 것도 있겠지만 여러분, 진정한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이겠어요? 저는 요즘 이스라엘 땅 가자지구에서 펼쳐지는 저 전쟁을 보면서 정말 주님 오시는 끝자락이 되었구나라는 생각을 거둘 수가 없어요.
기도하는 동안 계속 떠오르고요. 주님이 정말 오실 때가 임박해 가는구나 저는 그렇게 느끼는데 여러분은 어떤지 모르겠어요. 전 세계를 한번 보십시오. 어떤 지역에서는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갑니다. 어떤 지역에서는 굶주림과 기근으로 인해서 하루하루 버티다 못해 죽어가는 영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이곳저곳에서 다발성으로 일어나는 자연 재해들로 인하여서 생명과 자연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죠. 부모가 자녀를 죽입니다. 자녀가 부모를 살해해요. 세상은 점점 더 부패해가고 세상의 희망이라고 하는 교회도 빛을 잃어가고 있는 시대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세상에 일어나는 이러한 현상들을 볼 때에 주님이 다시 오실 때가 임박했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으신가요?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주님 다시 오심을 또한 그 현상을 기록해 주면서 말씀하는 것이죠. 특별히 구약의 요엘 선지자 말라기 선지자는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에 대해서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라고 지칭을 하면서 그날이 임할 것을 예언했다는 것이죠.
신약에서 베드로는 어떻게 했습니까? 이 요엘 선지자의 이 예언을 받아서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라고 표현하면서 그날이 곧 올 것이다 그렇게 사도행전을 통해서 선포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이 날은 무엇을 위한 날일까요? 그때야말로 진정한 구원의 날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여러분 요엘 선지자도 또한 요엘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한 베드로도 그렇게 그날을 소개한 후 그 이후에 한 구절을 이야기하는데 뭐라고 말하는 줄 아십니까? 우리 같이 한번 읽어보실까요? 사도행전 2장 21절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주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지만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10가지 재앙도 예수님의 초림도 또한 예수님의 재림도 그 목적은 우리가 생각하는 심판이 아니라 구원에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마음 가운데 새길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좋은 일, 행복한 일도 많겠지만 반대로 여러 가지 재앙과 같은 일을 마주하게 될 때가 있을 것입니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걸로 인하여서 어려움이 찾아오기도 하고요 아픔이 있을 수도 있어요. 고통과 고통과 고난이 우리에게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것이 아무리 강력한 것이라 할지라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를 구원에서 제외시킬 수는 없다는 거예요.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에서 끊어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셔서 언제나 믿음으로 말씀에 순종하여 늘 승리를 맛볼 뿐만 아니라 승리의 찬송을 부르며 사시는 귀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은요 10번째 재앙에 대한 현장을 묘사해 주고 있어요. 그런데 그 재앙의 현장 속에는 하나님의 구원의 성취가 그려져 있다는 거예요. 그 재앙을 보지 마시고 구원을 어떻게 성취하셨는가를 보셔야 되는 거예요.
먼저 29절을 한번 같이 읽어보실까요?
밤중에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 곧 왕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가축에 처음 난 것을 다 치시네.
한 문장으로 짧게 이야기하면 밤중에 여호와께서 모든 처음난 것을 치셨다입니다. 즉 하나님은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애굽의 모든 처음 난 것을 지신 것이죠.
그런데 이 구절을 잘 보시면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담겨져 있다는 거예요. 그것은 재앙이라는 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것처럼 구원도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라는 사실이죠. 애굽 땅에서 처음 난 것을 모두 다 치셨다 말씀하면서 왕으로부터 시작해서 옥에 갇힌 자의 장자 모두 치신 것이죠.
더 나아가서 가축에 이르기까지 애굽 땅에 있는 처음 난 것은 예외가 없다는 거예요. 모두 다 걸려 있다는 거예요. 본문은 이를 더 강조해 주기 위해서 이어서 30절에도 말합니다. 죽임 당하지 않은 집이 하나도 없다.
우리 30절 말씀 읽어보실까요?
그 밤에 바로와 그 모든 신화와 모든 애굽 사람이 일어나고 애굽에 큰 부르짖음이 있었으니 이는 그 나라에 죽임을 당하지 아니한 집이 하나도 없었음이었더라.
그런데 여러분, 이날 밤에 이르기 전에 예외 조항을 하나 가르쳐 주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다 알고 있습니다. 그 조항은 다음과 같죠. 어린 양의 피를 문인방과 좌우설주에 뿌려라 그리고 아침까지 그곳에서 나가지 않도록, 집 문 밖에 나가지 않도록 애써라고 적혀 있었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 예외 조항이 순종했던 사람은 또한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즉 누구든지 죽음의 재앙으로부터 유월되었다는 거예요.
여러분, 애굽 땅, 이 같은 애굽 땅에 있으면서 어떤 사람은 그날 밤에 반드시 하나님의 치심을 경험해야 했던 것이고요. 어떤 사람은 그날 밤에 반드시 죽음이 넘어가는 유월을 경험해야 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여호와의 말씀에 절대적 순종이라는 매우 중요한 요소가 담겨져 있다는 것이죠. 만약에 이스라엘 백성이라 할지라도 그날 밤에 말씀하신 대로 순종하지 않아서 어린 양의 피를 바르지 않거나 그 지문 밖에 있었다면 그 가정은 애굽 사람들과 같이 동일하게 애국하는 일을 경험해야 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창세기 19장에 보시면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치시기 전에 아브라함의 준거였습니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하나님께서는 소돔 땅에 있는 롯의 가정을 밖으로 인도해 주셨어요. 그리고 그들에게 도망가라 말씀하면서 얼른 도망가야 생명을 보존할 수 있다고 전해주십시오. 구원의 은혜가 롯의 가정 가운데 임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한 가지 하신 말씀이 있었어요.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돌아보거나 들에서 멈추지 말고 산으로 도망해서 멸망을 면해라. 이게 마지막 그들에게 주어진 말씀이었습니다.
이를 반대로 생각하면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게 되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멸망이 임할 수도 있다는 것이죠. 따라서 이들이 멸망을 면하기 위해서는 단 한 가지 말씀, 거기에서 도망가되 돌아보지 않고 들에서 머물지 않고 도망가는 것, 그것을 순종해야만 했다는 것이죠.
그런데 성경은 말합니다. 롯의 아내는 결국 소금기둥이 되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창세기 19장 26절에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씀해 주고 있어요. 같이 읽어보실까요?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그가 뒤를 돌아보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말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뒤를 돌아본 연유로 인해서 속은 기둥이 된 것이죠.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조항을 따르지 않았다면, 순종하지 않는다면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반면에 이스라엘 백성이 아닐지라도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가 있었다면 이스라엘 백성들과 동일하게 죽음이 넘어가는 유월을 경험하는 축복, 즉 구원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죠.
따라서 여러분, 구원은 혈통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순종의 문제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사실을 38절을 통해서 확실히 알 수가 있습니다. 38절을 같이 한번 읽어보실까요? 38절입니다.
수많은 족속과 양과 소와 심이 많은 가축이 그들과 함께 하였으며,
여기에 기록된 수많은 잡족과 심이 많은 가축들은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 즉 람셋에서 떠나 수꽃에 이르는 곳에 함께했던 것을 표현해 준 것입니다. 즉 족속들이 함께 출애굽했다는 것이죠.
그럼 여기에서 말하는 수많은 족속들은 누구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을 제외한 다양한 사람들을 지칭한 것이죠. 이스라엘과 혼혈이 된 자들도 있을 것이고요. 여호와를 믿는 신앙으로 개종한 셈족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애굽 사람들 가운데도 있었을 것이라는 거죠. 이처럼 하나님의 구원은 이스라엘 혈통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민족에게 허락된 축복이다.
왜 그럴까요? 왜요? 그 이유는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언약을 맺으실 때에 혈통의 후손들만을 위해서 축복하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2장에 보시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복을 얻게 될 것이다 그렇게 약속해 주셨다는 것이죠.
만약에 하나님께서 이러한 약속의 말씀이 없었더라면 저와 여러분들도 예외 없이 구원에서 제외된 자들이 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구원 사역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대로 성취하셨고 또 지금도 여전히 성취해 가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그 자리에 저와 여러분들이 쓰임받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앞에 나눈 바와 같이 구원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것이죠.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 또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는데 불 가운데서도 구원받게 될 것이다.
그렇게 말씀해 주셨다는 거예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한량 없는 은혜로 저와 여러분들이 값없이 구원을 얻었으니 이제 내 주변에 아직 구원받지 못한 자들을 위해서 복된 소식을 전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쓰임받는 주인공이 저와 여러분, 우리 신흥교회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어지는 31절, 32절에 보시면 10번째 재앙으로 인하여서 바로가 어떻게 반응을 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는 그 바로의 입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도록 선포하게 했다는 것이죠. 31절, 32절 우리 같이 한번 읽어보십니다.
밤에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서 이르되 너희와 이스라엘 자손은 일어나 내 백성 가운데서 떠나 너희가 말한 대로 가서 여호와를 섬기며 너희가 말한 대로 너희 양과 너희 소도 몰아가고 나를 위하여 축복하라 하매
첫 번째 선포는요 떠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10번째 재앙이 이르기 전의 모습을 기억하십니까? 마지막 재앙을 경고했던 그 메시지를 전했던 그때를 보면 바로가 모세에게 아주 격하게 반응을 했던 것이죠. 이스라엘 백성들을 결코 보낼 수 없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내 얼굴을 보지 말라 내 얼굴을 보는 날에는 니가 죽을 것이다.
그래서 떠나게 했던 것이죠.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제왕이 임한 그날 밤에 바로는 모세와 아론을 다시 불러들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반대했던 것들을 모두 다 철회하고 오히려 내 백성을 데리고 떠나거라 재촉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는 것이죠.
그런데 여기에서 재미있는 두 가지 반복되는 표현이 있다는 거예요. 31절에 보면 너희의 말대로 32절에는 너희가 말한 대로 이것은 떠나가되 모세와 아론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진행해도 좋다는 의사를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절대 절대 보낼 수 없었던 그의 마음 이제 애굽 백성들과 한마음이 되어서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을 통해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도록 속히 떠나라 재촉하고 있다는 것이죠. 33절을 보실까요? 애굽 사람들도 동일한 마음이었습니다. 읽어봅니다.
애굽 사람들은 말하기를 우리가 다 죽은 자가 되도다 하고 그 백성을 재촉하여 그 땅에서 속히 내보내려 함으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 아무리 능력이 있고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사람들에게 신처럼 보였던 바로 왕이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계획을 바꿀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막을 수도 없었다는 거예요. 결국 하나님의 뜻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죠.
여러분, 이 세상에 마음이 교만하여서 하나님을 대항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며 사는 것이 자신이 굉장히 높은 자인 것처럼 표현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 누구도 하나님의 뜻을 대항하는 자는 단 한 사람도 승리할 수 없다는 것 그 누가 대항할지라도 하나님은 절대 패배하지 않으시고 오직 승리만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조금 부족하고 조금 연약하고 그렇게 살아갈지라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승리의 하나님을 의지해서 그 일들을 다 때히 감당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서 우리의 연약함으로는 이길 수 없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넉넉히 이기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탄도 그러합니다. 우리보다 훨씬 강한 존재가 맞아요. 그러나 그 사탄은 예수님의 발 앞에 이미 무릎 꿇은 존재이기에 아무리 강력하다 할지라도 우리가 예수를 모시고 예수를 의지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선포한다면 반드시 승리한다는 이 확신을 가지고 한 주 동안 살아가는데 사단이 나를 깰 때에 예수의 이름으로 물리치셔서 승리하며 살아가는 아름다운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두 번째 반응은요 나를 위해 축복하라 그렇게 이야기했답니다. 여러분, 바로가 누굽니까? 신과 같은 존재로서 백성들로부터 신으로 추앙받았던 자이죠. 그런데 바로가 모세를 향해서 나를 축복해라 그렇게 구했다는 것 아니겠어요? 신이라고 말하는 자가 모세를 신 같은 존재로 여기고 축복을 소망했다는 것입니다. 즉 모세를 향해서 ‘야 니가 나보다 한수 위인 것 같다 내가 졌다 니 나한테 좀 축복 좀 해봐’ 그렇게 고백한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이것도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시 출애굽기 7장 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약속해 주셨어요. 우리 7장 1절 말씀 같이 읽어보실까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너를 바로에게 신같이 되게 하였은즉 내 형 아로는 내 대언자가 되리니.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하신 말씀이 때가 찬 시각 그대로 성취됨으로 인해서 바로가 인정하는 신 같은 존재가 되고 마는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도 이 모세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서 복음을 위해 살다가 또한 하나님의 복된 일들을 위해서 헌신하며 살다가 때가 찬 시각 세상 사람들로부터 높임을 받고 인정받는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요 애굽 사람들의 재촉으로 말미암아서 급하게 이제 떠나게 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급한 상황 속에서도 모세는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애굽 사람들에게 은금 패물을 또한 의복을 받으라 그렇게 명령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36절에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같이 읽어보실까요?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사 그들이 구하는 대로 주게 하심으로 그들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
여러분 이 물품을 취한 것 역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성취하게 하신 것이라는 거예요. 이스라엘 백성들은요 여러분 그동안 노예로 살았으니 우리가 억울하다 안 되겠다 이대로 떠날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의 것을 강탈한 것이 아니었어요. 아버지 이왕 떠나는데 좀 챙겨서 떠나자. 그래서 그들의 것을 욕심을 내서 탈취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광야를 걸어가야 되는데 어떡하냐 먹을 것도 있어야 되고 가진 게 있어야 되지. 그래서 그들에게 좀 비굴하지만 구해야겠다 해서 비굴하게 구한 것도 아니었어요.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각하는 대로 은금 패물을 구했던 것이 아니라 이들은요 모세의 지시에 순종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지시했을 뿐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셨고 모세는 백성들에게 말함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지시가 백성들의 순종으로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이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순종했을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은혜를 입히셨다. 순종했을 때 그 말씀 앞에 순종하며 자랐을 때 은혜를 입히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는 이미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1장 2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을 주시죠. 같이 읽어보실까요?
백성에게 말하여 사람들에게 각기 이웃에게 은금 패물을 구하게 하라 하시니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그렇게 이야기한 것이죠. 그리고 이 계획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호렙산에서 대면하실 때 이미 약속해 주셨다는 것이죠. 출애굽기 3장 21절, 22절 말씀을 같이 읽습니다.
내가 애굽 사람으로 이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할지라. 너희가 나갈 때에 빈손으로 가지 아니하리니 여인들은 모두 그 이웃 사람과 및 자기 집에 거류하는 여인에게 은폐물과 금폐물과 의복을 구하여 너희의 자녀를 꾸미라. 너희는 애굽 사람들의 물품을 취하리라.
여러분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가운데 일하시는 역사는 한 치의 오차도 없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지는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이루시기 위해서예요. 말씀하시는 이유는 이루시기 위함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이 땅 가운데 성취되기를 원하십니다. 이 사실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오늘 나에게 우리 가정에게, 우리 교회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혹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말씀하십니까? 주님의 마음으로 순종해 보십시오. 그 하나님의 온전하신 사랑이 내 안에 채워질 것이고, 그것이 이웃들에게 전해질 때 진정한 사랑으로 흘러갈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십니까? 사명감을 가지고 순종해 보십시오. 생명의 복음의 씨앗이 뿌려지게 될 것이고, 그 복음은 반드시 구원의 열매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모이기를 힘쓰고 기도하기에 힘쓰라 말씀하십니까? 기도의 자리에 나오는 것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충만한 역사와 치유와 회복의 역사, 하나님께서 원하는 부흥의 은총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어떤 말씀이 나에게, 우리 가정에, 우리 교회에 주어지든지 간에 그 말씀에 순종해서 하나님이 이루시는 역사를 우리의 눈으로 보고 하나님께 감격의 고백을 드릴 수 있는 은총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