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과 반응
생각하는 사람과 반응하는 사람은 다른 세계에 속한다. 생각하는 사람은 반응하는 사람과 대화하지 않는다. 생각하는 사람은 반응하는 사람을 차단할 수 있다. 반응하는 사람은 생각하는 사람을 차단할 수 없다. 반응하려면 먼저 다가와서 말을 걸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생각은 연결이다. 연결은 매듭이 있다. 매듭은 에너지 방향을 바꾼다. 수평에서 연결할 수 없고 차원이 도약해야 한다. 매듭은 두 방향의 공존이다. 생각은 둘을 연결하여 공존시킨다. 두 점의 공존은 선, 두 선의 공존은 면, 두 면의 공존은 입체, 두 입체의 공존인 유체가 의사결정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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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
태초에 원형原形이 있었다. 원자原子는 쪼개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쪼개면 안 되는 것이다. 그것은 완전한 것이다. 완전한 것은 공유되는 것이다. 공유를 쪼개면 사유다. 어미와 자식은 공유한다. 기관차와 객차는 연결고리를 공유한다. 활과 화살은 공유한다. 머리와 꼬리는 불가분이다. 그것이 사유의 출발점이 된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사유는 연결된다. 원형은 간섭에 의해 복잡해지기 전의 본래의 모습이다.
메커니즘
메커니즘은 공유에 의한 이것과 저것의 연결이다. 그것은 구조의 공유가 발전된 형태다. 메커니즘은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둘의 연결이다. 물레가 돌면 방아가 돈다. 태엽이 풀리면 시계바늘이 돈다. 활시위를 놓으면 화살이 날아간다. 씨줄이 가면 날줄이 간다.
시스템
시스템은 쌍으로 일어선다. 시스템은 에너지에 의해 이것과 저것이 한 방향으로 간다. 기관차가 먼저 가고 객차가 뒤따른다. 시스템은 유체로 되어 있고 메커니즘은 강체로 되어 있고 구조는 공유로 되어 있다. 구조와 메커니즘과 시스템이 존재의 원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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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명한 진실
안과 밖의 경계를 가르는 데서 지식은 시작된다. 문제 안에서 답이 나와야 한다. 원인 안에서 결과가 나와야 한다. 자궁 안에서 아기가 나와야 한다. 총 안에서 총알이 발사되어야 한다. 내부에 조건이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그것이 완전성의 복제다.
1을 통과하지 않는 2는 없다. 자궁을 통과하지 않고 탄생하는 아기는 없다. 2는 1에 의해 제한된다. 1이 원본이고 2는 복제다. 그러므로 질서가 있다. 우주의 기본 힘은 미는 힘이다. 존재의 에너지 방향은 안에서 밖이며 밖은 안에 의해서 제한된다.
내부의 원인에 의하여다. 사건의 안과 밖을 가르는 경계를 정하고 닫힌계 중심으로 사유해야 한다. '의하여'는 안이고 '위하여'는 밖이다. 인간의 희망, 동기, 목적, 의도는 미래다. 미래는 밖이므로 근거가 될 수 없다. 내부를 중심으로 진술해야 한다.
틀린 판단 - 외부의 목표에 도달하여 성공하겠다는 개인의 야망이 있었다.
바른 진실 - 성공하겠다는 야망을 가지도록 가족 내부에서 압박을 받았다.
완전성
모형적 사유는 원형의 복제다. 복제는 연역이다. 연역은 자명한 진실을 따라 공유에서 사유의 일방향으로 간다. 정상은 공유된다. 정상에는 아무 것도 없으므로 직관된다. 정상에 도달하면 뇌가 반응한다. 언어감각에 의해 자동으로 아이디어가 나온다. 위화감을 느껴야 한다. 패턴이 같을 때까지 복잡을 걸러내면 남는 하나의 공유를 직관한다. 그것은 입체를 매개하는 유체다.
직관
사유는 자명한 진실을 따라 에너지의 전달경로를 추적한다. 에너지는 언제나 한 방향으로 간다. 에너지는 매개가 있다. 4차원 유체에서 에너지는 격발된다. 계 내부에서 유체는 압박이 걸려 있다. 에너지의 공급자가 있다. 배가 고프면 자식은 집으로 기어들어온다. 보급이 중단되면 적군의 공세는 멈춘다. 사건은 에너지 연결로 격발되고 에너지 고갈로 멈추므로 직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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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개
매개는 한 차원 위에서 대칭된 둘을 붙잡아 축을 이루고 공존시키므로 자명하다. 존재는 관측되는 것이고, 관측되는 것은 변화하는 것이고, 변화하는 것은 에너지가 공급되는 것이고, 에너지를 공급할 때는 멈추게 되고, 멈추려면 붙잡아야 한다.
비로소 주는자와 받는 자가 만난다. 매개자는 주는 자와 받는 자를 공존시킨다. 차원은 공유다. 선은 두 점의 공유, 면은 두 선의 공유한, 입체는 두 면의 공유, 유체는 두 입체의 공유다. 항상 보다 높은 차원에 낮은 차원 둘을 공유하는 것이 있다.
메타
메타는 '그것을 그것이게 하는 그것'이다. '그것을 그것이게 하는 그것'이 객체로서의 그것에 앞선다. 메타 존재가 객체에 앞선다. 지식에 대한 지식이 메타 지식이다. 메타 지식이 지식에 앞선다. 집합이 원소에 앞선다. 맹지에 집을 지을 수 없다. 길이 집에 앞선다. 길이 두 집을 연결하는게 아니라 길이 끝나는 지점이 집이다. 앞서가며 길을 인도하는 에너지 전달 경로가 있다.
차원
매개는 붙잡고, 메타는 앞서고, 차원은 공유한다. 그것은 수평에 없고 수직에 있다. 두 점이 마주쳐 수직선을, 두 선이 마주쳐서 수직각을, 두 면이 마주쳐서 수직체를, 두 체가 마주쳐서 수직계를 만든다. 수직은 기존 동력 전달 경로를 다치지 않고 다른 방향으로 동력을 연결하며 두 방향 연결이 한 지점에서 공존하게 한다. 차원은 기존 경로를 다치지 않고 경로를 신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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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는 힘과 권력
우리는 객체 중심의 언어, 단위 중심의 언어, 원소 중심의 언어에 익숙하다. 틀렸다. 객체를 붙잡고 단위를 연결하고 원소를 공유하는 것을 나타내는 언어가 없다. 그것은 구조와 메커니즘과 시스템이며 내부를 에너지가 관통하고 있다. 유체의 압박이 강체를 붙잡고, 강체에 앞서고, 강체를 공유한다. 권력의 압박이 개인을 붙잡고, 개인에 앞서고, 개인을 공유한다. 이기는 힘의 압박이 존재를 붙잡고, 존재에 앞서고, 존재를 공유한다.
유체와 강체
유체가 입체를 매개한다. 유체는 닫힌계를 이루고 대칭 2를 붙잡아 축 1로 공존시킨다. 존재는 사건이고 사건은 변화다. 닫힌계 내부에 변화를 격발하는 축과 대칭의 구조가 있다. 의사결정구조다. 강체는 대칭이고 축은 유체다. 에너지는 유체다. 관절은 유체다. 집단은 유체다. 권력은 유체다. 의사결정은 유체에서 일어난다. 우리가 목격하는 강체와, 원자와, 원소는 시스템 내부에서 결정된 것을 외부로 전달할 뿐 결정하지 않는다.
다르마와 동기
동기, 목적, 의도, 야망, 위하여는 객체지향적 사고에 오염된 거짓이다. 집단의 압력에 의해 각자 역할을 찾아가는 것이 진실이다. 위하여는 인지부조화나 계급배반투표로 나타난다. 생각이 행동을 결정하지 않는다. 집단의 관성이 행위를 결정하면 생각은 그것을 자신에게 설명하여 납득시킨다. 인간은 집단에 의지하는 호르몬과 본능과 무의식을 따르며 자신을 기만하려고 거짓 동기를 만들어낸다. 환경과 집단 속에서 역할을 찾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다르마다. 인간의 행위는 자신에게 가해진 압력을 해소한다. 물리적 진실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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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력엔진과 타력엔진
진짜는 자체동력에 의지한다. 인간이 오판하는 이유는 남의 힘을 이용하는 타력엔진이 일시적으로 더 쉽게 성공하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 타력엔진이 유리하다. 자력엔진은 전략이다. 전략은 외부와 연결한다. 외부와 연결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타력엔진은 전술이다. 전술은 상대가 선공을 해야 상대의 힘을 역이용할 수 있다. 공격에는 쓸 수 없고 방어에만 쓸 수 있다. 길목을 지키는 전술로는 수비만 할 수 있다.
전략과 전술
장기전을 하고 전면전을 하면 자력엔진의 합리주의가 대세력작전으로 이긴다. 인간은 일시적, 단기전, 국지전의 전술적 승리를 안겨주는 타력엔진의 유혹에 넘어가서 실용주의를 추구한다. 국지전으로 끝내려고 하지만 에너지 쏠림현상에 의해 결국 전면전으로 확대되고 만다. 처음에는 전술적 대응으로 충분한 싸움이었는데 갑자기 외부에서 에너지가 공급되면서 게임의 형태가 변해서 전략이 필요해진다. 에너지의 비가역성에 의해 전술에서 전략으로 갈아탈 수 없다. 반대로 전략에서 전술로 갈아탈 수는 있다. 사전에 장기전, 전면전의 궁극적, 전략적인 승리에 대비한 쪽이 최후에 승리한다. 인터넷, SNS, 인공지능과 같은 신무기가 외부에서 계속 들어와서 전술로 끝낼 단기전이 전략을 필요로 하는 장기전으로 변한다.
이중의 역설과 역설
에너지가 공급되면 관성력이 작용하여 인간의 의도와 반대로 된다. 공을 차면 가는 것은 정설이다. 오뚝이를 차면 넘어졌다가 도로 일어서는 것은 역설이다. 그러나 세게 차면 오뚝이도 날아간다. 상대의 맞대응에 의해 게임의 형태가 바뀌는 것이 역설이고 장기전, 전면전으로 가면 상대의 대응을 무력화 시키고 다시 정설로 돌아오는 것이 이중의 역설이다. 역설과 이중의 역성에 의해 인간의 의도는 빗나가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으면 최후에는 의도대로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