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연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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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冬柏).
폭설이 내리고 한겨울을 연상케 하는 강추위가 오는기상 이변 때문에 봄이 영 봄 답지 못하다
움츠린 매화꽃,시냇물의 살얼음,추위에 화들짝 꽃잎 다문 산수유,우수 경칩이 지나갔는데도
두둑한 겨울옷을 다시 입는 인간의 무리가 어찌 자연 앞에서 큰소리칠 수 있겠는가, 자연
재해는 뻔히 쳐다보며 퍼질러 앉아 다리 두드리기다.
남편 대신하여 결혼식장에 가기 위해 통영에 가게 되었다.여유 있게 도착하면 산양일주도로를
돌면서 60리나 되는 동백꽃과 달아공원에서 점점이 수놓은 한려수도를 보고 오자고 일행들과
입을 모았는데 식장에 도착하고 보니 빠듯한 시간으로 다음 기회로 미루게 되었다. 시간 내어
일부러 오는 것도 어려운데 온 김에 둘러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동백>이라는 또래 친구가 통영에 살고있다, 유년의동무도, 학교의 동창도 아닌 사이버
상의 같은 또래 모임에서 알게된 친구다, 통영에서 얼굴이라도 봤으면 하는 마음으로 전화를
하니 뜻밖에 내가 와 있는 결혼식장에 있다고 한다,관광특구 미륵도의 겨울 동백꽃 대신 인간
동백 친구나 보고 가라는 뜻인지 하여간 반가운 해후를 했다,
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꽃시샘 추위에 보리는 초록의 생명체로 고개를 쳐들지 못하고 땅
밑으로만 뿌리를 뻗고 있었다, 움츠림 어깨 펴듯 빈 나뭇가지마다 붉은 기운들이 마치 젊은
처녀의 볼처럼 생동감 있어 보였다, 통영 앞 바다도 봄 파래향 같은 갯 내음이 파도의 결 따라
육지로 올라와 싸늘하지만 계절의 향취를 더해 주었다, 돌아오는 차창으로 느껴지는 상큼한
바람이 마음을 들뜨게 한다, 한려수도의 쪽빛 바다가 유난히 겨우내 묵은 마음을 단배주린 것
해결하듯 느즈러진 하늘도 무척 한가로웠다.
차가 밀리는 휴일의 도로 사정으로 늦은 오후 시간에 집에 도착하여 여정을 푸는데 남편이
아파트 마당으로 좀 내려오란다, 거꾸로 주차한 차를 다음날 아침에 쉽게 출근할 양으로 바로
주차한다고 차를 빼내다 아파트 담 벼락에 심어진 나뭇가지가 앞바퀴와 앞쪽 앞 사이에
끼이고 말았다, 꼼짝달싹도 못하는 차를 빼느라 혼자서 진땀을 빨빨 흘리다가 도저히 혼자서
는 안될 것 같아 나를 불러 내린 것이다.
아직은 서툰 운전이라 요령 있게 후진을 못해 그 지경이 된 것이다, 가장 쉬운 방법은 차의
앞쪽을 달랑 들어 옮기면 될 것인데 차가 어디 보통 무게인가, 나는 핸들을 조정하고 남편은
나무를 기우렸다 제쳤다 온갖 짓을 다해도 `날 잡아 잡숴` 하며 제자리에 버티고 있는 차,
나무를 베는 수밖에 없다고 남편이 말한다, 아파트와 같이 입주한 동백나무를 잘라 내야 하다
니 쉽게 결론 내릴 일이 아니었다.
15년을 아파트 앞마당을 지킨 상록수다,우리 아파트 정원수 중에서 유일하게 꽃을 피우는
동백꽃을 우직한 실수로 잘라 내야 하다니 쉽게 응할 수 없어 아침까지 기다려 보자고 했다,
시간을 좀 벌기 위한 수단으로 좋은 수가 생기지 않을까 싶어서였다,여러 사람이 차를 살짝
들어서 빼내는 방법도 있긴 한데... 다음날 아침이라고 별수가 없음을 내가 더 잘 아는 데
자꾸 민그적 거리는 이유는 딱 하나다.
음식물을 버리고 나면 마당에 있는 수돗물에 그릇 행군 물을 동백나무에 뿌려 준지도 십 수년
이다, 겨울에 고운 모습 피우라고 가뭄에 갈증풀 듯 찔끔찔끔 뿌려준 것도 정이라고 자꾸만
마음이 캥긴다. 아파트 신축 당시 조경 차원에서 몇 그루 나무를 심었는데 아스팔트를 깔면서
나무의 숨구멍이라 하여 전체 한 뺌 정도 흙 속에서 여태 연명해 온 생명이다, 답답한 도심
속에서 그나마 잘 견디어 왔는데 이런 일로 나무를 잘라 내야 하다니,
나무도 시샘을 하는지 동백나무에만 물주면 옆의 나무가 마음에 걸려서 어느 날은 이 나무
다음날은 다른 나무에 그것도 뭔 위세라고 차별한 것도 늦게사 미안타, 어느 집의 화단에
너무 큰 나무가 귀찮아서 "이구...베어 낼 수도 없고 그냥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부터는 나무가 시들시들해지더니 그러다 결국 죽고 말았다고 한다.인간보다 어쩌면 나무가
더 눈치 빠른 영악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겨울 어느 날,그릇 씻은 물을 동백 옆 나무에다 칙 뿌리면서 나무를 올려다보니`아 세상에,,,
십 여 년 동안 한번도 보지 못한 빨간 열매가 나무잎 뒤에 수없이 달려 있는 게 아닌가, 그냥
사시사철 푸른 잎만 달고 볼품 없이 자라는 이름 모르는 사철 푸른 나무라 물 보시하는 것
조차도 내 마음의 잣대로 경계를 하고 말았는데 인간이 어쩌면 말못하고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보다 못하단 말인가, 나는 결코 나무에게도 까지 편애를 했다는 것이다.
마누라의 궁시렁을 들을 사이도 없이 실톱을 들고 내려오는 남편은 나무의 저승사자였다.
손잡이도 없는 쇠 톱으로 비좁은 나무 밑 둥에다 대고 설경설경 썰어 대는 것이다.
그래도 아쉬워 행여 다른 다른 방법이없을까 하고 "우리 이 나무 베어 버리면 벌금으로
아파트에 돈을 좀 내놓아야 할걸요," 협박 아닌 압박조로 말했지만 소귀에 경 읽기로 끙끙
거리며 계속 톱질만 하고 있다.
꽃망울이 올해 유난히 더 많이 피었다고 좋아한 것도 나였는데 우리 손으로 그 나무를 잘라
낼 줄이야, 삭막한 아파트 마당에 핏빛 꽃망울이 벙글면 어른 아이 할것 없이 툭툭 떨어진
동백 꽃송이를 주워 책갈피에 넣는다고 부산떨던 것도 이제는 사라지는 순간이다,
허연 톱밥이 아스팔트 위에 깔린다. 사람이 기절하여 넘어질 때 게거품을 내놓는 것처럼
고통의 분신이 흩어진다.
유독 인간만이 죽음을 별스럽게 슬프한다,"나" 라는 것에 집착하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
하는지도 모른다. 반쯤 잘린 동백나무를 억지로 비틀어 자빠트린다. 겨울 가뭄에도 잘 견딘
나무가 툭 분질러 나뒹군다. 뿌리는 땅속에서 몸을 잃고 허연 가슴을 내놓는다. 하나의
생명이 사라지듯 앞마당의 동백은 소멸의 세계로 돌아가고 말았다.
어젯밤의 그 소동을 확인하러 마당에 섰다. 톱날에 잘려 나간 밑퉁치에 이슬 같은 수분이
송글송글 맷혀 있다. 뿌리에서 퍼 올린 수액이 갈 길을 잃어 멈추어 버린 것이다.아니면
동백꽃이 화려한 맵시도 펼쳐 보이지 못한 억울함에 피를 토한 것인가, 한 번 왔다가 한 번
가는 삶의 행로에서 거세당하는 것처럼 나무 한 그루의 삶도 이 아침에 진실로 인간의
마음을 흔들고 심해의 압력처럼 짠함을 남겨 놓는다.
새우등을 하고 풀밭에 버려진 동백,꽃망울은 허리가 잘려진 줄 모르는지 봉긋한 붉은
꽃잎이 어제보다 더 벌어져 있다. 새 세상에 보이기 위해 분단장을 하는 듯 부산스러워
보인다.무성한 이파리에 가려 세상 돌아가는 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꽃의 소임을
다하는 무수한 봉우리들, 어쩌면 하루의 삶이 최상의 생인 듯한 현실에서 미래도 과거도
현재 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암시 해준다.
잘려진 나무의 하얀 속살이 하루 사이에 거므틱하게 변했다. 동백나무의 삶도 타의에
의하여 사라진 것이다.어짜피 나무의 일생이 이런 것이라면 나무로서 제 몫을 다했다고 말
할 수밖에,범죄 현장을 다시 와 보는 범인의 심리처럼 동백이 잘려진 그 자리로 자꾸
눈길이 간다. 남편도 주차할 때마다 뿌리만 박고 있는 동백의 남은 그루터기를 발로 슬슬
문질러 본다. 반년이 지난 지금 너 댓개의 윤기 흐르는 새순이 "나 좀 보셔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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